오류 드러내기
■《우리는 젊은 세력과 오래된 세력 간 전쟁에 참전한 군인으로써 자비를 베풀 수 있다. 젊은 이는 이제까지 해온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이루어낼 창조성에 의해 평가된다. 하지만 그들은 실수를 범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이는 1916년 ' 1영국 사회에서의 과학의 진보를 위한 컨퍼런스'에서 알프레드 와이트헤드가 내린 결론이다. 다소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이 발언은 당시 세계 대전이란 맥락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이렇게 오류에 의해 과학이 발전한다는 논지의 배경에는 놀라운 점이 있다. 이런 진실을 규명하는 체제의 전복은 예술적 창조성과 비교하여 볼 수 있으며 한 마디로 규정될 수 없다. 과학은 창조적이며, 오류에 의해 일어난다고 와이트헤드는 말한다. 이런 논지에 대한 연구가 예술 교육기관에 의해 진행될 때, 역사학계와 인류학계는 마치 다른 현상을 해석하는 것처럼 그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확신한다 : 서툰 작업, 시행착오, 안정과 파괴...만약 오류가 예술적 시도에 필요하다면, 예술가들이 고안한 방식이나 그들의 논리 속에 있는 비합리성에 맞서는 것은 더이상 불가능하다.
실험적 행동
마르셀 뒤샹은 이를 《예술의 공동 효과》라 부르며 창조적 행위에 오류가 일부분 포함되도록 했다. 그것은 원치 않는 결과-엄격한 의미로는,《레디-메이드》의 의도로 실행된-와 창조자의 의도가 드러나지 않는 결과를 유도한다. >(1957), Duchamp du signe, Paris, Flammarion 1975, rééd,Coll> < 2>,1994, pp.188-189">
우리는 모든 실험적 시도를 하면서 소위 오류 효과라 불리는 이 현상을 재인식 할 수 있다. 또한 뒤샹의 말한 가설,예측불가능하며 드러나지 않는 것들의 가설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예술적 시도는 인위적 조건에서 실행되기에 일상생활과 멀어지며, 행위적 면을 강조한다. 또한, 그런 예술적 시도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종속적인 환상을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오류가 없어야 한다는 것은 환상인 것이다. 하지만 의도의 주관성-예를 들어 본성, 무의식 혹은 불규칙성-보다 객관성을 강조하는 것은 예술적 시도의 실험이라고 볼 수 없다 : 거기엔 오류의 기준이 있다.
카르슈텐 휠러Carsten Holler의 의심의 실험실(1999)을 보면 운행 전 자동차에 설치된 메가폰으로 작가의 의심에 찬 말이 들린다. 이 점이 바로 미학적 알레고리이다. 종종 오류를 범하기 위한 실험적 행위가 소통을 단절- 인플레이션과 무의식적 표현들-시키므로 그런 예술적 시도는 넘치지 않아야 할 필요가 있다. 과학에 준거한 지표, 첨단기술의 사용, 이미 보았거나 형식적인 것의 혁신 등이 창조적 과정에서 주요한 시행착오인 것이다.
만일 과학이 결과물에서 오류를 계속 거부한다면 예술적 시선으로 다시 볼일이다. 어떤 예술가들은 진실과 거짓에 대한 학설을 의심하기 위해 과학적 단계를 이용하기도 한다. 윌렘 라이히Wiheilm Reich의 오르공 지역에서 포격으로 비를 오게 하는 시도는 혹평을 받았다. 크리스토퍼 켈러Christoph Keller는 그의 시도를 재해석했다. 어떤 이는 다른 수단으로 예술이란 이름으로 과학적 실험을 하는 것이다. 플로리안 동부와Florian Dombois는 지각변동과 지진활동을 감지하는 여러 장치를 고안했다. 과학적 한계와 위상을 바꾸면서 그 절대성을 바꾸면서 과학과 예술, 창조적 사용을 통합하여 구성하려면 스스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오류와 시도
하지만 시대는 이미 여러 의미로 신-구성주의로 기울고 있다. 예술가들은 새로운 생각으로 다가올 미래에 잠재적으로 기여하는 자들이 아닌가? 《예술과학》,그에 대한 연구와 문화 개발은 자본주의에 새로운 정신을 불어넣을 예술적 유토피아다. 도약하는 창조적 대안은 쌓여간다 : 새로운 것을 유발시키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에 단지 힘을 불어넣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또한 예술가들과 《창조적 산업》을 연합시키는 것이 가치를 놓이는 일이 될 것이다. 이런 개혁과 만남의 조건은 보다 변화무쌍하다. 무엇보다 오류를 범하기 일쑤인 실험 예술이 반드시 혁신적인 것은 아니다. 예술가-기술자로써 뿐만 아니라, 예술가-거장의 위치에서도 멀어질 수 있다. 오류는 일부러 첨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 바로 오류가 시도를 결정한다.
여전히 역설은 남는다 : 예술은 비예술적 시도를 불신하는 예술가처럼 행동에 옮기는 것보다 오류와 그의 회의를 단지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휠러는 이렇게 말한다《예술가들의 회의는 알아차리기 힘들다. 생각을 유도하면 그의 고유 성격을 잃는다. 게다가, 그의 방법과 회의에 의문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 실패, 미완성, 버그의 미학은 전면적 개방과 통제된 상황이나 작품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역설에 존 케이지의 경우가 한정적이나마 답이 될 것이다.
수기의 방식
온건주의에 가까운 비평과 유사한 문화의 수동적인 조합은 예술적 행위의 실험단계를 이해하는 데 주요한 장애물이다. 현대에 이르러 예술적 생산물은 양면성을 가지게 되었다
고 규정해야 한다. 한편 결과적으로 모든 작품은 생산되고 그것은 행위의 결과이다. 다른 면에서 보면, 이것의 생산조건은 대중으로부터 오랫동안 감춰져있었다. 실험예술은 관람객에게 비평적 시선을 요구한다. 구체적 행동과학이 기호학을 대체하고, 상징에 지나지 않는 문화와 이유나 행위가 부재한 창조물의 신화를 깨뜨리기를 요구한다. 구성주의자들은 문학적인 과잉구조의 베일을 벗었다고 한다. 여러 가능성과 그것들의 다양성에 대해 인지하면서 있을 법한 의미를 추측한다. 로베르트 뮤실 3의 소설 특성없는 남자 의 말미에 나타나는 소위《다량의 수기》는 예술적인 행위를 상기시킨다. 이런 예는 울리히의 《가능성의 의미》보다 더 급진적인 신기술의 수업에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오류를 부추기는 예술은 무시되어 온 원칙으로 이뤄졌다. 현대예술은, 오늘날 그가 추구하는 바에 쫓기는 이 예술에서, 와이트헤드가 말한 전쟁은 시작되었다기보다 일어나지 않았는지도...■ 4
출처: 42-43page, Artpress #347
기사: Laurent Jeanpierre
번역: zamsoobu
'★자료.번역(;Recherche > 현 상황.출판.전시(;les vérités réell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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