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Sempé : "내 그림 속 인물들은 축소판이 아니예요, 아주 거대한 세상이죠"

2009년. 3월 9일. 오후 5시
Sempé -사진: 앙투완 르 그랑 Aantoine Le Grand

76세의 그는 스스로 게으르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일상을 탐험하기를 멈추지 않는 그이다. "텔레라마Télérama"의 표지를 장식한 상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지붕 위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그가 앉아 있는 작업대는 파리의 한 건물 6층에 자리잡고 있다. 그곳에서 그는 생활하고 작업을 한다. 이곳에서 올해 76세가 되는 그는 영원히 꿈꾸기를 바라면서 세상으로 눈을 돌리는 것으로 족하는 듯하다. 상페는 그의 유년기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했다. 그에 관해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출생일, 1932년 8월 17일이라는 것과 보르도 출생이라는 사실 뿐. 그 외에는 침묵을 지킨다. 그는 18세에 파리로 와서, 1950년 에스키스를 맡는다. 몇 번의 결정적인 만남이 있은 후: 그의 스승, 풍자화가 샤발Chaval(1915-1968)과 그의 동료, 르네 고시니 René Goschiny이다. 르네와 1959년 만난 이래, 프띠 니콜라가 탄생하기 까지 5여년이 걸렸다. 수많은 뎃셍을 거듭한 끝에, -프랑스 잡지와 뉴요커에 1978년이래 커버를 그렸다-30여 권의 단행본이 출간되었다(1). 주변의 모든 것들에 손그림의 맛을 더한 세상을 열어왔다: 상페가 여는 세상은, 친숙하면서 시간을 초월한다. 우리와 너무도 닮은 인물들이 일상에 대한 풍자와 꿈과 숭고함을 오가면서 선보인다.

당신의 그림은 순간을 포착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아주 끔찍한 질문이네요! 사실,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한다는 원칙이 없었어요. 여러 이미지들이 거기에 대해 말을 해야 하거나, 또 아닌 경우가 있겠죠. 텍스트에 맞는 이미지일수도,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미리 정해놓은 것은 없습니다. 풍자화가로서 나는 상황을 가능한 잘 보여주는 것이 낫다고 봐요. 그것은 분위기이죠. 사람들의 일상을 드러내고 하는 것이 날 매료시킵니다. 풍자화는 아주 특별한 장르입니다. 정치적이지도 않고 코믹도 아닙니다. 정해진 지침이 없어요: 예를 들어 길위에 한 연인이 걷고 있는 장면은 너무 흔해서 반 세기 이전에 있었던 일인지, 혹은 훨씬 그 이전에 있었던 일인지 알 수 없어요.: 지침이 없다는 건, 아주 큰 매력이죠.  시간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정작 작업대 앞에 앉으면, 떠오르는 것을 그리는지 묻지 않습니다. 가끔 나중에 떠오를 때도 있어요. 가끔, 그러지 않을 때도 있죠.

그림을 그리는 데에 오랜 시간을 가지십니까?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종종 생각이 꼬리를 물어서 사로잡힐 때가 있어요.  달아나기 전에, 아주 오랫동안 생각합니다. 생각이 다른 곳으로 가기도 하고, 멈추거나 하기 때문에 잡으려고 애쓰죠. 5~6년 동안 내가 생각해왔던 그림을 그리는 데에 2주 정도 걸렸어요. 호기심은 이거였어요: 몇 년동안 쇼파에 누워있는 사람들에게 그 쇼파를 병원용 긴 의자로 바꾸면 어떻게 바뀔까? 스스로 흥미로울 만한 현상을 다각도에서 바라보려 했어요. 내 테이블에 앉아서 다시 곱씹어봤어요. 결국, 생각이 떠오르고, 아주 만족했어요.

주변의 것들에 아주 무심하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것으로부터 영감을 받습니까?

스스로부터 영감을 받습니다. 아주 간단해요. 그림을 그려야만 하니까요. 숲 속에서나, 도시에서나; 한번은 어린아이였을 때, 다른 한 번은 성인이었을 때예요. 당시 내가 생각했던 것들에 달려있어요.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것들에서 특별히 생각할 것은 없어요. 난 항상 다른 것에 대해 생각하기 때문에 정신이 다른 곳에 가있기 때문이죠. 사건이 벌어져서 내가 관심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달라요. 나는 실제로 거기에 있지 않죠. 난 타고난 몽상가예요. 하지만 이런 면과 계속 맞서기도 하죠. 그림 속에서 세심하게 디테일에 염두합니다. 현실과 가깝기 위해, 내가 상상하는 대로 그림이 되도록 말이죠. 그리고, 만약 몽상가적 기질이 없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저는 제 그림 속 인물들과 가깝습니다. 그들은 내 분신이죠."

당신의 시선을 보면 느껴지는 것인데 , 당신은 도덕주의자입니까?

그런 생각이 좋지 않군요. 다른 사람에 대해 판단을 하거나 고위층에 비판을 하거나 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유머작가고, 그런 맥락에서 내가 그리는 휴머니티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매우 노력하죠. 나는 내 그림 속 인물들과 가깝습니다. 그들은 내 분신이죠. 그들을 희화화하면서, 나 스스로를 희화화해요. 그게 기지와 유머의 차이점이예요: 유머는 나 스스로 웃는 것이고 기지는 다른 사람을 웃게 하는 거죠.

그림 속 인물들 중 몇몇은 자화상입니까?

그게 자연스럽다면 그렇겠지만, 하지만 곧바로 그렇게 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보다 몇년 후에 우연히 다시 보게 되면 그렇죠.

당신의 어떤 면을 다시 보게 됩니까?

괴팍하거나, 거만하고 허영 등을 보게 됩니다. 언제봐도 달갑지 않죠. 아주 고약하죠. 사람이란 나빠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한테 괴팍함과 거만함은 아주 친숙합니다. 내 그림 중에, 어떤 것에서 한 남자가 자신이 그린 그림에 매우 만족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 남자의 뒤에 부인이 아주 실망스런 눈길을 보내고 있는 데 말이죠. 그게, 저를 완전히 보여주고 있어요...

"나는 엄청나게 많은 그림을 그리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아주 들쑥날쑥합니다."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그림에 대해 말할 때에는 조금 누그러진 투인데요,

아니요. 나한테 없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겁니다. 나는 스스로 혼란스러운 사람이고, 내가 예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단행본때문에 엄청나게 그림을 많이 그리지만, 그건 내가 좋아하는 내 직업일 뿐이고, 질적인 면에서는 아주 들쑥날쑥합니다. 어휴, 완전히 만족하지 못한 작업도 수두룩해요. 당신이 별로라고 생각하는 그림을 버릴 수도 있습니다-그게 없다면, 난 벌어먹고 살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내 실수들을 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어요. 하는 수 없이, 만족하지 못하더라고, 그림은 거기 있게 마련이죠.

어쩔 수 없이 당신이 만족하지 못하는 그림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끝까지  괴롭히면서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이 있죠. 그리고, 점점 그것은 볼 만해지죠. 또, 단호하게 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혼잣말을 합니다: 그래 좋다, 너는 할 줄 몰랐던 것을 시도했어. 라고요.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고, 사람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작업을 많이 하면서, 쓰레기통에 버려진 초안이 쌓이고,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그의 걸음새에도 성격을 부여하고, 유머를 만드는 뎃셍 화가란 직업이 난 좋아요. 내 좁은 식견으로 그렇게 같은 일을 하려 하죠. 걷고 있는 멋진 사람을 그릴때, 그가 몇 살인지, 그가 기분이 좋은지 아닌지, 시간에 쫓기는 지, 아닌지, 무엇때문에 그런지 알려고 합니다. 그림 속에서 모든 것은 원칙을 품고 있어요. 많은 것을 설정하고 가끔 성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걸 어색하다고 하죠. 그렇게 어색해 지면, 내 스스로에 대해 미치도록 화가 납니다.

가장 안 좋은 것이, 어색함일까요?

네. 서투르고 미숙함, 거기에 시의 마음은 없으니까요. 너무 설명적인 것, 너무 교훈적인 것, 강조하거나 과장하는 것은 지루합니다. 내가 말하는 경쾌함이 요점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내가 한 말이 좀 잘난 체 하는 것 같네요, 그렇죠? 생각에 내 작업은 끊임없이 흐르것 같지만, 말로 하자면 생각보다 그렇게 상대방을 귀찮게 하지는 못해요.

당신은 50여년 동안 그림을 그렸습니까? 스스로에 대해 확신하나요?

데뷔를 한 이래로 22년인가 23년인가는 그린 그림에 사로잡혔었습니다. 당시에 그린 것들은 뛰어나지는 않지만 먹고 살기에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림을 요청받았을 때 , 나는 고작 1.50프랑을 가지고 있었어요. 생계를 위해 뭐라도 했을 것입니다.

"나는 필요에 의해서, 그리고 우연히 뎃셍 화가가 되었습니다.
 꼭 일을 해야만 했어요. 그리고 그건 결코 쉽지 않았죠."

그래서 당신은 그림그리는 법을 예전엔 몰랐나요?

아까 말했듯이 나는 필요에 의해서, 그리고 우연히 뎃셍 화가가 되었어요. 꼭 일을 해야만 했어요. 하지만 그건 결코 쉽지 않았죠. 5년여동안 현실적으로 고심했어요.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은 내게 엄격해졌어요. 왜냐면 어렸을 때에야 다음 해에 다시 하면 된다고 말할 수 있는데, 나이가 들면 그렇게 말하는게 어렵기 때문이죠.

여전히 그림 그리는 법을 모른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림그리는 것을 아는 걸 뭐라고 해야됩니까? 완벽히 그릴 수는 없지만, 항상 그럴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풍자 뎃셍 화가라면 더 좋고, 그게 바로 내 직업이죠. 아시다시피,  이런 문제라면 죄의식에서 벗어나게 한 일화가 있어요. 당시에 나는 좀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어요.-하지만, 그래요. 사람들이 서로 말하는 것처럼, 복잡한 심경이었어요: 자, 보세요, 나는 그림을 그리고, 그게 내 직업입니다! 일화는 이런 겁니다: 마티스가 콜롱브도colombe d'or에 머무를 때였습니다. 어느 날 오후, 사장이 그림을 그린 후 마티스한테 보여주었죠. 그는 아주 유심히 보고 친절히 말했죠. 하루는 콜롱브도에 대해 사장에게 말했죠:  <<친구야, 당신이 그린 것은 아주 좋아. 하지만 화가란 모름지기 전문가이어야 하는 거야>>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건 이 사람이 못났다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잘났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전문가라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추어로 남겠죠. 그래요, 난 풍자화 분야에서 전문가입니다. 그게 내 직업이고, 내가 하는 거죠.

당신은 1950년, 22살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때를 가깝게 여기십니까?

그래요. 몹시도요. 당시 느꼈던 감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다 진지해졌죠. 보다 젊었을 때에는 두려움이나 초조함같은 감정에 좀 더 쉽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게 즐거웠죠. 그때에는 너무 불안했었어요. 그건 성인군자라면 느낄 수 없는 것이겠죠. 성인은 스스로도 족하니까요. <<성인군자>>라는 표현은 좀 나무가지에 드물게 열린 열매를 연상시켜요...

"멜랑콜리는 내 삶의 일부예요.
 모든 것이 쉽게 부러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당신이 말한 불안함은 멜랑콜리의 한 부분이 아닐까요?

멜랑콜리는 어디든지 있죠.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 라벨이나 드뷔시, 푸레처럼 말이죠; 좋아하는 렘브란트에게도 찾을 수 있어요. 멜랑콜리는 내 삶의 일부예요. 모든 것이 쉽게 부러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사람의 관계나, 존재, 햇볕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지나가는 시간과 연결되거나 시간이 하는 것들이요. 모짜르트의 초기 작품들에서 멜랑콜리를 느낍니다. 그건 작품의 일부죠.

당신이 말하는 것에 가끔 두려움을 느끼시나요?

물론입니다.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너무 많죠. 모든 것이 두려워요. 내가 말한 것들, 심각해지는 것들이요. 흥미가 없어지는 것도요. 두려움은 모두에게 있어요. 내가 보기에, 사람들이 가진 감정 중에 두려움이 가장 큰 것같아요. 내 그림 속 인물들은 종종 두려움을 드러내고, 삶의 무게로 짓눌리기도 합니다. 그들은 축소판이 아닙니다. 내가 말하지만, 그들의 세계는 우리 주변의 거대한 세계입니다.  땅에 발붙이고 사는 거죠: 우리 자신보다 보다 큰 무엇이죠. 물론, 존재로써 불안함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 그림 속 사람들이 그렇게 보여지는 지, 아닌지 모르는게 낫습니다. 내가 알고 있다면, 나에 대해 희화화해서 그리겠죠.

당신은 무척 오랫동안, 그리고 수없이 작업을 했군요.

나는 아주 게을러요. 다른 게으름벵이들 처럼요. 어떻게 구성해야 할 지 모르니까 많이 작업을 합니다. 아마 그게 없다면 불가능할 겁니다. 난, 오후에 8시간 일하고 잠깐 점심 때 쉰다음에, 저녁까지 다시 일을 시작하는 작곡가, 예술가, 작가들 몇몇에게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너무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나로선 그렇게 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하죠. 매순간 충실하지만 일을 적게 하는 편입니다. -가끔 그렇게 하려고 하지만, 곧잘 잊고 포기해버리죠.

그림을 그릴 때에 다른 불편한 것이 무엇인가요? 그런 것에 작업을 방해받습니까?

작업은 때론 투쟁이고 때론 사치이고 양면이 있어요. 물론, 당신이 일을 많이 하면 다른 일은 뒤로 제쳐두겠죠. 난 운동을 하거나 내가 하지 않은 그 무엇을 하는 것을 좋아했을 겁니다. 외국어를 배우거나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팔방미인이 될 수 있었겠죠-하지만, 그런 건 할 수 없습니다. 어렸을 때 말을 더듬었었고, 언어를 배울려고 할 때 끔직하게도 다시 그런 버릇이 나타났죠. 나는 그보다 읽는 것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읽을 때 조차도, 일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죄책감이 들더군요. 사실, 내 일생동안, 그림 그리는 것 이외에 것을 하면 들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에 괴로웠었습니다. 마치 죄인처럼 말이죠.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예요.

나탈리 크롬 Nathalie Crom
Télérama n° 3086

(1) Les albums de Sempé sont parus chez Denoë

출처: 

http://www.telerama.fr/livre/sempe-mes-personnages-ne-sont-pas-minuscules-c-est-le-monde-qui-est-grand,40097.php

Traduction 번역: 잠수부 zamsoob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