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적 공간에 대한 질문은 아직 진행 중이다-자크 라캉과의 인터뷰

인용: 44page, D'ARCHITECTURES 191- MAI, 2010
원제: La quête de la surface neutre n'est pas achevée
번역: ZAMSOOBU


건축가. 비평가, 교수인 자크 라캉은 지난 30여년간 건축의 진화를 지켜봐왔다. 그가 건축 분야에 중립, 또는 상호 간섭의 개념을 불러일으킨 지 2년이 지났다. 그는 이후에 방대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구성과 비구성의 개념이 새롭게 건축계를 받아들여지면서 말이다.

D'A:언제 중립적 공간의 개념을 제시하셨나요?
JL :19세기 동안, 구성이란 단어는 건축물 설계를 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어 왔습니다. 대칭적이고, 단계적이고 규칙적인 설계로 단일한 건물이 가능했습니다. 장 니콜라 루이 뒤랑(1760-1834)은 한 세기하고도 반 동안 영향을 끼쳤죠. 하지만 동시에, 이런 전통이 견고했기 때문에 다른 설계가 가능했죠. 아주 빠르게, 18세기를 지나 19세기에 이르러 불규칙성이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모두가 구성에 대해 염려할 때, 어떤 부류는 균형과 유사성, 혹은 20세기에 이르러 어디에서나 발견되긴 하지만, 앗상블라쥬에 대해 집중했어요. 그리고 여분의 공간과 장소 개념에도 그랬습니다. 2차 대전 이후, 1950-60년대에 중립성과 비-구성에 관한 고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D'A:<<중립적 설계>>가 가리키는 바는 무엇인가요?
JL :위계질서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활동이 가능한 곳이죠...난 크게 두가지로 분류했었습니다: 하나는 그물 구조에 의한 폐쇄된 상태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결집에 의해서 드러나는 것이죠.

D'A:어떻게, 그리고 어디에서 그물구조의 형태가 연상되나요?
JL :시카고에 있는 일리노이 과학기술원Illinois Institute of Technology(1941)의 경우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는 설계단계에서 요소 간 위계를 제거했습니다. 원형극장과 실험실은 철책구조에 의해 서로 균형을 유지합니다. 이어서,아키줌Archizoom과 슈퍼스튜디어Superstudio 사이에 놓인 철책에 대해 생각하면-더이상 공간이 아니라 활동의 조건에 대해 말하고 효율적 개발에 대해 말하는 겁니다-, 그 다음이 렘 쿨하스Rem Koolhaas이구요. 이 외관에 대한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주창한 바를 현대에 찾아볼 수 있는 것처럼요, 토요 이토Toyo Ito는 센다이와 SNAA의 카나자와 뮤지엄Kanazawa에 미디어도서관에 대해 말합니다. 이런 관점으로 SNAA가 건축한 로산Lausanne의 학습센터Le Learning Center도 해석할 수 있어요: 옹벽이나 장애물이 없이, 위계가 없는 연속적 공간입니다. 

D'A: 당신은 자주 <<중심>>의 개념을 사용하는데, 이건 중립적 공간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까? 어떤 계보를 따르고 있는 건가요?
JL : 1889년 파리에서 만국박람회를 위해 건립한 갤러리관Galerie des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그건 임시공간이면서, 전시를 할 수 있고, 어떤 중립적 공간이었습니다. 이런 구상은 20세기를 관통하게 되죠 : 앞서 파악할 수 없이 더욱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했다.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의 생스버리 센터Le Sainsbury Center는 비-설계의 사례로 당시 영국에서 비판을 받았습니다. 마치 피아노Piano와 로제Roger의 퐁피두 센터Le Centre de Pompidou(1977)건물이나 핀 지펠Finn Geipel(2009) 디자인센터la Cité du design 처럼 말이죠.

D'A: 그렇다면 중립의 개념을 보려면 20세기 중반이래로 이어지는 비-구상의 행보를 좇아야합니까?
JL :그건 말한 것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다른 면을 살펴볼 수 있겠죠. 보자르 학파로 구성된 팀은 다른 특별한 프로그램과 관계가 없기 때문에는 중립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추상적이었고, 상호 변환가능했습니다. 알버트 라프라드는 1840년 빅토르 발타르Victor Baltard에 대해 말하곤 했죠. 모든 설계는 반복적 그물 구조 장치로 이뤄졌습니다. 거의 중립적으로 이뤄졌어요. 이어서 조르주 그라모Georges Gromort(1870-1961)는 건축이론에 관한 엣세Essai sur la théorie de l'architecture(1942)에서 그것에 대해 사실적으로 거의 같았다고 설명합니다!

D'A:그렇다면 당신은 건축에서 프랑스적 전통이 있었다고 말하는 겁니까?
JL : 시공할 때 <<다리>>는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습니다: 서로 협력을 하려면 학생들은 같은 언어를 써야했어요. 예외적으로 설계의 효율성을 위한 경우 빼고는 말입니다. 

D'A: 어느 건축 분야가 우선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어느 건축 분야가 우선하는 지의 여부는 법률을 개선하는 가에도 영향을 미칩니까?
JL : 예외적 건물, 즉 개인건물과 공공건물 사이에서 어떤 분야가 먼저냐하는 문제는 프랑스 건축사에서 계속,빈번히 나타나는 겁니다. 18세기 이후, 보자르 학파는 시민사회의 건축을 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라이트Wright, 그로피우스Gropius,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미스 반 데어 로에Mies는 주거 건축에 집중하였기 때문에 우선하는 분야에 대한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코르뷔지에는 빌라 라 로슈La villa La Roche는 거대한 건물을 구축하기 보다 중요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 이후로, 건축적 표현은 어떤 프로그램에 관련한 게 아니라, 건축에 관해 어떤 고찰을 하느냐에 따라 연결된 겁니다. 이런 변동은 장르와 분야에 관한 경계를 지우도록 합니다.
하지만 프랑스는 그렇게 되도록 놔둘 수 없을겁니다! 그리고 보자르는 방대한 공공 프로젝트를 이어가도록 할 것입니다. 오늘날, 프랑스 건축가는 <<진정한 건축가>>로 인정받기 위해 공공기관을 구상합니다: 주택가는 멋진계획이긴 하지만 명성을 떨치기에는 부족하죠...
이런 상황은 프랑스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입니다. 다른 나라 스위스에서는, 잘은 모르지만, 건축적 가치는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80년 대에, 프랑수아 미테랑은 이상한 기준으로 상황을 처리했고, 국가는 거대<<A>>와 건설사를 보류해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가장 좋은 건축은 아직 상상 속에 있죠.

D'A:중립적인 건축은 어떤 장르에도 속하지 않은 겁니까?
JL :네...이런 장르적 문제에 관해 묻는다면요! 그보다 중립적 건축은 다른 질문을 합니다. 바로 비-구성에 관한 문제이죠.

D'A: 중립적 설계나 비-구성 설계의 예시는 너무 낯섭니다. 그런 개념들로부터 프랑스는 거리가 먼듯한데, 그런 거리를 좁혀야 할까요?
JL :전 프랑스가 현대 건축사에 위치할 수 있었던 것이, 페레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후에는 르 코르뷔지에였구요.
20세기 초반 보자르 학파의 중심인물의 대부분이 이 논쟁을 했다고 봅니다. 그다음,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에서는 독특하게도 이런 논쟁이 사라졌죠. 60년 대에, 조르주 캉딜리Georges Candilis, 알렉시스 조식Alexis Josic, 산드라 우즈Shandrach Woods는 모두 다른 곳에서 왔기 때문에 보자르학파의 전통과는 거리가 멉니다. X 팀으로 국제적으로 프랑스팀을 구성했습니다. 그들은 보다 개방적이었 연속구조나 응집구조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베를린에 Université libre(1962)는 이런 문제에 관련이 있습니다; 이런 제안은 centre de Franfort(1963)의 재건축에서도 반복되죠.

D'A: 캉딜리는 보자르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왜 그런 논쟁이 활발히 일어날 수 없었을까요?
JL : 그건 학교보다 시스템이 더 강력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국가의 거대 프로젝트에 의해서 <<의무적>> 우수성이 가능하기 때문에, 독립적인 건축가가 거의 없거나 전무합니다. 건축 학교, 건설계통 직업, 프로젝트는 유일한 시스템을 양산했습니다: 학교장들은 이 계통 직업과 대학기관들을 통제해왔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아키줌Archizoom과 슈퍼스튜디오Superstudio가 생길 때, 영국에서 스미슨Smithon, 레이너 번햄Reyner Banham, 아키그램Archigram이 생길 때 프랑스는 어땠습니까? 로마의 건축상 수상자 중에, 장 뒤비송Jean Dubuisson, 베르나르 제퓌스Bernard Zerhfuss, 으젠 보두엥Eugène Beaudouin은 프랑스에서 보자르에서 수학했습니다. 그들은 <<현대적>>건축을 원하지만, 그것이 진정 무엇을 상징하는 지에 대한 간섭이 없는 상태에서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아방가르드>>의 순간을 클로드 파헝Claude Parent에 의해서만 맞을까요? 지금은 프랑스가 그들의 건축계에서 거물들을 발굴하면서 역사를 다시 쓰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D'A: 현재 많은 <<소규모>>프로젝트가 프랑스 곳곳에서 실현 중입니다-건축계 스타가 없는 상황에서- 중립성과 관련해서 묻고 싶습니다.
JL : 여기서 중립성이 전개되는 양상에 간섭을 하며 하나의 가설을 세울 수 있습니다. 수수께끼같은 이 형상처럼 우리는 라카통Lacaton과 바살Vassal을 상기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프랑스 건축계에서 건설계획이나 건물의 형상을 만드는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그들이 세계적으로 알려져있다는 것을 짚어볼 수 있죠. 비록 그들이 조금 축소된 계획을 추진했었다고 보더라도 말입니다.

D'A: 사실 많은 건축프로젝트가 다양한 계획을 가지고 있음에도 유사한 외양을 지향합니다. 중립성에 관한 또다른 접근일까요?
JL : 지금 많은 것들이 공통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단일한>> 것이 되기원하는 건축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이런 연구가 집대성 된 문집의 제목이 <<연속성>>와 유사성이란 것도 이런 현상을 확실히 보여줍니다. 수미일관되려는 긴장감으로 부를 수 있겠죠. 외관의 단조로움을 배가시키는 겁니다. 구성의 관점에서 보면, 건물의 부피와 외관은 중립적인 요소입니다. 부분적으로 구별되지 않게 할 수도 있고, 그 관계와 조합, 균형면에서도 같게 할 수 있어요.

D'A: 단일한 형태는 중간 단계를 감추는 경향이 있어요. 건축적 세부사항과 건물 실루엣사이에서 말이죠.
JL : 맞습니다. 그것도 효과적으로요.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는 <<세부사항이 흐려질 때 >>단일한 형태가 확실해진다, 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단일형태에서, 형태에 관해 논란의 여지를 제거하는 면도 있습니다. 체육관, 학교와 주거건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자연적이고 유사하면서 연속적인 건물 외관을 최종적으로 둘러쌀 수 있어요. 
이건 건물이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시대에서 건축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아마도요. 이것은 최근 건축물에서 모든 요소가 조각처럼 보이게끔 하는 경향이고, 단지 평범하거나 혼잡하고 주변과 무관한 건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사한, 단일한, 조각적인 건물들은 건축적 관점에서 중립적이지만 전후 맥락에서 보면 그렇지 않죠! 이건 좀 역설적이죠...

D'A: 건축분야를 진척시키면서 어떤 문제들은 해결되는 듯합니다. 하지만 향후 10년이나 20년 후를 어떻게 에상하시나요?
JL : 지극히 평범한 건물 주변을 아주 복잡한 외관으로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봅니다. 이런 순간이 올까봐 두렵습니다. 그런 것은 우습고 조금 과장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콘트라리오A contrario,추론을 해보면,점점 더 존재감이 강해지는 이 환경에 부응하는 것을 요소를 찾으면서 외관에 대해 고찰을 해봐야 할까요? 혹은 건물 두께에 관해서 고찰을 해야 할까요? 그래서 이 두가지의 문제를 화합시키는 것이 오늘날의 문제가 아닐까요? 

작성 :솔린 니베Soline Niv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