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크 상페의 데셍법 Le Cahier Dessinée
그는 같은 질문을 받는 것을 싫어했다. 나로선, 그에게 질문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에 대한 답은 좋았다.
-나는 종종 내게 질문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되봅니다. 그리고 자문하죠 :《내가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한가지는, 나는 늘 《모른다》는 것입니다; 대단치 않은 대화였다.
-오늘도 그림 그리셨나요?
-아니요. 전 괴로워하면서 그림그리기는 싫어요. 오늘 당신이 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릴 수 없었어요.
그는 세심한 편이다. 그는 소심하리만치 세심하다. 그래서 불편함을 덜기 위해 우리는 서로 말을 편하게 하기로 하였다. 다른 때였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하지만, 풍자화를 말하는 이 순간 만큼은 시간이 정지되 있는 게 아닐까?
장 자크 상페는 1932년 8월 17일 보르도에서 태어났다. 17세에 입대하기 전, 포도농장에서 아마포제작을 돕곤 했었다. 입대할 당시에 그는 직업이 없었고, 마음이 끌리는 대로 선택할 수 있었다. 파리에 도착한 아침, 기차에 내리면서 뎃셍화가 샤발Chaval(본명은 이반 르앙Yvan Le Louarn,1915.2.10-1968.1.22)-그 역시 보르도에서 살았었다-의 집에 찾아간다.
칸에서의 첫 단행본 Livre de l'exposition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집 앞에서 7시 45분 즘 벨을 울렸어.그가 파자마 차림으로 나와 내게 말했지; "이렇게 일찍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잖아요, 밤새 일했는데, 다시 오세요. 나중에!" 난 다시 돌아왔어. 8시 15분 경에 다시 올라갔지. 우리의 샤발씨는 아직 파자마차림이었지. 나는 양해를 구하고, 다음에 다시 한번 갔어. 아마 9시였을거야. 나는 다시 벨을 울렸어 : 여전한 파자마. 그는 결코 내가 들어가는 걸 꺼려하는 눈치였지.》
-자네는 1976년 이래로 흥미로운 소재에 전념했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는데...
-아 그래? 내가 그렇게 말했나, 내가?
-그래.
-만약 내가 그랬다면, 앞뒤가 맞지 않은 거야. 그리고 그런 척했을 뿐이고. 어떻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재미있다》고 할 수 있나?
그는 마치 물위를 걷는 사람같다. 신중하게 한발 한발 내딛는다. 그는 풍자화가 계보를 잇는 동시에 19세기의 말부터 전후를 거쳐 새로운 웃음을 몰고 온 사람이다. 미술사조에 부는 신선한 울림처럼-예를 들면 로드코(Marl Rothco,1903-1970색면 추상회화의 거장), 미쇼(Henri Michaux,1899-1984)나 브람 반 벨드(Bram Van Velde,1895-1981)-그리고 문학에서는 베케트(Samuel Beckett,1906-1989)처럼 말이다.
샤발, 모스(Mose,1917-2003) 그리고 보스(Jean-Morice Bosc,1924-1973) 는 해학의 코드를 바꿨다. 그리고 사울 스타인버그(Saul Steinberg,1914-1999,Romanie)와 함께 철학척 면모도 갖추기 시작했다. 현대적 유머를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와 클레(Paul Klee,1879-1940)가 그랬듯이 그림에서 동심을 발견하였다.
그 이후, 상페가 조용히 풍자화계에 등장했다. 혼란스런 생활에서 도피하고 싶은 이들이 그저 중얼거리기만 할 때; 그리고 중얼거림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다. 무엇보다 그림으로 건네는 농담이며, 매거진의 칼럼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상페의 그림은 고급앨범의 흰 여백을 채우며 겉표지로 이용되기도 했다. 상페는 우리의 보는 방식과 웃는 방식을 바꿨다 : 그는 우리 안으로 들어와 관조적인 시선으로 웃는다.
-오늘도 그림그렸나?
-아니요. 내가 어렸을 때, 음악가가 되고 싶었어. 하지만 음악을 공부하진 않았지. 또, 축구선수가 되고싶었지. 설명하긴 어렵지만...난 일거리를 찾았었지...일거리를 구하는 건, 내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에 집착일 정도였어.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 당시 일자리를 구하는 게 힘든 시절이었지.
그는 이렇게 말한다 :
《내 아버지, 에드몽 율리스 상페Edmond Ulysse Sempé는 양념통 판매상을 오랫동안 했었어. 자전거의 짐받이에 올린 손가방에는 정어리, 연어, 파테, 멸치통조림등이 있었어. 어느날은 본점에 모든 것을 넘기고 관두셨지. 전화기가 보급되면서 이 가여운 사내는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야.》
-무엇때문에 그림그리고 싶은가?
-난 베토벤의 솔페지를 연주하는 것보다 그림그리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해.
-풍자화가가 되기로 한 건 언젠가?
-그런 생각은 안해봤는데. 방세를 내야될 때 뭐가 필요하겠나? 당신이라고 해도 달리 방법이 없을 거야. 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어 : 상황을 벗어나는 것 ; 아니면 : 집주인이 나를 쫓아냈을거야! 나는 어느 일이라도 손에 잡히는 대로 하길 원했어. 그리고 달리 일이 없었기에, 그림그리는 것을 계속했지.
-자넨 풍자화가가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나?
-하긴 했었어, 그게 내가 가진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끔찍한 순간에 말이야. 그리고 혼잣말을 했지 : 단,내 그림을 출판할 수 있는 한!
-달리 화가가 되고싶진 않았나?
-다른 조건이었다면 가능했을 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밀알을 털어 내 수확할 밭으로 갈 시간이 없었어. 출판을 하려면 많은 그림을 그려야 했어. 시대가 달랐어. 살기 위해 악을 썼어.
-그럼, 샤발이나 보스 이외에 자네의 풍자화가 친구는 어떻게 만나왔나?
-그들에 대해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내게 너무 친절했어. 난 베르나르 알데베(Bernard Aldebert,1915-1968)를 무척 좋아했었어.그의 그림은 유달리 두드러지진 않지만, 재미있었어. 내가 진정 좋아하는 작가지. 그리고 풍자화가는 대부분 소년으로 머물러 있는 멋진 사람들이야. 어떤 사람은 파악하기 쉽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아. 그들은 기가막힌 인생을 살아가는 즐거움을 느꼈어. 그 즐거움을 오늘날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베르나르에 대해 생각했다. 1943년 8월 1일 그의 첫 단행본 Ric et Rac이 출판됐다. 그림 속 콧수염이 귀여운 남자가 말하고다 : 《방금 설탕그릇에 손을 담궜었지. 더 이상 탈출하기 힘들어.》
오늘날 신선한 바람이 상페의 집 창문으로 나무가지를 타고 들어온다. 파리의 중심에서.
파리는 이제 그의 고향이 되었다. 파리스케치에서 보면 그렇듯이 말이다. 마지막 장을 뺴고는 대화도 없고 범례도 없다. 사람들은 고독하고 보통사람들이며 자동차를 먹어치우는 광기를 보이기도다 ; 그들은 서로 말하지 않는다. 그림 속 인물 이상이 아니다. 인물? 그것은 나무며, 길들, 다리, 그리고 열지어온 건물들이 페이지마다 그림자를 드리운다. 일광과 가로등의 희미함 사이에서.
큰 작품에서 파리는 어두운 사막이다 ; 갑자기, 동물을 피해 거대한 나무 둥우리가 보인다.
-고양이인가? 개? 아니면 족제비?
-아! 그거 고양이야! 하지만 알아보기 어렵지.
-일부러 그랬나?
-그런 면이 없지 않지.
그는 그림을 완성하는 데 몇달이 걸린다. 몇 번이고 다시 보며, 다시 그린다.
-난 그림 그릴 때 너무 어려워. 자주, 엄청난 작업량을 요구하지. 언제인가는 피아노를 치는 것처럼 성공적으로 작업을 하길 원해. 하지만 그리는 건 즐겁지!
-그리면서 먼저 염두에 두는 건 뭔가?
-분위기야.
-분위기야.
-자넨 자연스럽게 그리는 편인가?
-난 거의 매일 수첩을 가지고 다녀, 하지만 바깥에서 크로키를 하진 않아. 내가 유일하게 밖에서 그린 건,정차역의 표지판이었어. 차단바를 따라 어떤 문구가 써져있었던 걸로 기억하네. 가끔 기차에서 그리곤 하지만 내가 보는 것은 아니야. 예를 들면 이런거지. 어떤 이는 에펠탑을 최고의 탑이라고 하지만 구스타브 모파상은 최악으로 여겼지. 뭐, 내경우에 에펠탑은 멋지기만 하지!
-어떻게 구상하나? 먼저 구상한 후 그림을 그리나, 아니면 그리기 시작한 후 구상을 완성시키나?
-풍자화는 중요하게 강요되는 점이 있어. 어떤 그림은 아주 잘 그려진 것 같고 생각을 전하지만 무엇보다 주제가 있어야돼. 그래서 주제를 놓고 잘 표현할 방법을 찾는 편이지. 가끔 잘 되.
-자네 그림엔 여러 주제가 있어...
-주제나 재밌는 상황이들이지. 상황은 거의 곧 주제야.
-그건 《거의》다른 거지만, 상황이나 주제가 있긴 해.
-하지만, 어떤 주제지?
-내가 《주제》라고 부르는 건, 풍자화의 형태로 나타낼 수 없는 어떤 것이야: 언어를 초과하는 상황이나, 그림보다 중여한 부가 설명이지. 그리고 어떤 것은 읽을 수 있는 한, 텍스트를 보면《분위기의 일러스트》란걸 알수 있어.
-텍스트는 공통의 것일까?
-그래, 종종 그렇지. 플로베르는 말했어 : 여기 낮은 데 관심있는 사람, 그것은 모두의 공공장소다.
-신문사에서 일한 후로, 어떤 《의무감이 생겼나》?
-날 강요한 건 아니었지만 내 그림이 왜 출판되야하는 지 알았어.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그림을 그리곤 했어 : 반응은 끔찍했지! 내 책도 마찬가지로, 재미없는 분위기의 그림을 보일 수도 있어.
-책은 자네에게 중요한가?
-자넨 책을 내고 싶지 않은 풍자화가를 몇몇 아는가? 책을 출판하는 것은 어떤 시기에는 기적과도 같아. 꿈이지. 지금은 늘 책을 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 책이란, 환상적인 거야. 오랜기간 준비할 수 있어. 페인팅은 준비할 수 없어..그래, 하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몇일간 그림을 모사해서 친구에게 줄 수도 있겠군...
-자네의 책, Information-Consommation에서 보면 1968년도 이전의 그림에서 우리를 짓누루는 것을 예측할 수 있어. 이런 혼란을 보여주는 그림에 사로잡혔지. 이런 상황을 그리는 것은 그림의 힘 아닌가, 그렇지?
-잘 모르겠어. 1967년에 그 책이 나왔지. 그리고 사건은 68년 5월에 일어났고. 인상을 남기긴 했지만 더 이상 흥미롭지 않았어. 그런 《사회적》측면은 마음에 들지 않아. 불편해. 내가 조금 재능이 있다고 느끼는 건; 그리고 그 재능은 잘 발휘되지 않아. 좀 더 가벼운 걸 원해.
-샤발이나 보스는 그들의 그림에 핵심이 줄어든 건 같아 : 한 명 혹은 여러명, 부가설명이나 언어유희, 또 주변이 없는 것 말이야. 자넨 반대로, 사람들의 무리나 주변을 중요하게 다루었어 ; 어떤 이유에서 자넨 이런 생략하는 방식을 따르지 않았나?
-그대로 따른다고?
-당시에 보편적인 방식이었어...
-난 풍자화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아, 왜냐면 자네가 다른 작가와 다르니까...내 생각으론 그림에 다른 원칙을 적용하고 있는게 느껴져.
-자네가 이른 아침 노동자들을 가득 태운 버스를 그린 적이 있어. 재미도 없이, 부가설명도 없이...
-하지만 항상 그건 재미가 있어. 유머는 내 삶의 일부야. 아니면 삶이 내 유머의 일부분이고.
그림 속에 중국인이 등장한다. 가득찬 충만감을 깨뜨리는 건 공허함만은 아니다. 하지만 빌딩과 다리를 지나다보면 수직으로 뻗은 풍경을 걷는 것같다.
그가 문고판을 출판할 때 큰 그림을 나누었고 그 몇 장에 걸쳐《말했다》: 각각의 이미지가 여러 이미지를 만들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림의 각 주변을 보면 놀랄만 한 게 있습니다.
깃털펜, 붓, 크레용 ; 잉크. 파스텔, 담채화, 수채화, 과슈 : 모든 것이 훌륭하다. 상페는 그의 스타일의 중심에 자유를 놓는다. 그리고 그 스타일은 더욱 더 자유롭게 한다. 그는 그림에《숨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어려움은 없어보인다 ; 독자의 유일한 즐거움만은 아닌 것이다. 최고의 관대함이다.
-풍자화가 그린 그림과 화가가 그린 그림 사이에 어떤 다른 점이 있을까?
-거기에 대해선 생각해 보진 않았는데. 다른 점이 있겠지만 말하고 싶진 않아. 편집자는 화가에게 풍자화를 그리라고 요구하진 않겠지. 그리고 풍자화가는 벽화를 그리는 사람과 식당벽을 장식하진 않아.
-《현대》미술에 관심있나?
-《현대》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 내가 사랑한 장 콕토의 말이란 이거야 : 《5분 늦는 것보다 50년 후 도착하는 게 낫다》
-풍자화가란 직업일까?
-아! 그래, 가끔 그렇게 말해. 지금도 내 일부분이고. 내 직업을 말할 때 ; 나는 그림을 그립니다. 라고 말해. 사실, 난 《작가》야. 작가의 대부분은 글을 쓰고, 나는 그림을 그리지.
-풍자화를 그리는 사람은 많이 없어,안그래?
-말할 필요는 없이, 두려운 일이지. 난 더 할 생각이고 그러는 게 좋아. 내가 좋아했던 풍자화가들에게 유감이라고 할 수는 없어. 절대로 그건 죽음과 같아. 거기에 대해 너무 심각해지지 않으려고 해. 왜냐면 너무 우울해지거든. 그것보다, 그들의 그림을 봐 ; 그리고 지금은 더 많이 보여고 해.
-출판사나 잡지에서 많이 도와준 사람이 기억나는가?
-모든 이가 관련되어있어. 잡지의 페이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그것이 곧 이문이 되는 것이고. 점점 그림이 설 자리는 없어져 가. 기사는 비싸지 않고, 그림은 비깐 편이니까.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어야 하는데, 그림을 이용하면 쉬워. 독자는 현재에 바로 반응하거든 ; 그래서 주의를 집중하지 않아도 되지. 물론 다른 시대의 풍자화는 번역이나 번안이란 수고가 따르지만 말이야.
-그래서 《정치적》그림은 전혀 해보지 않을텐가?
-내가 왜 그래야 하는 지 모르겠어.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유가
설득이 되면 하지.
-정치에 관심이 없는건가?
-한 때 정치에 열정적 관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덜해.
-그리고 그 열정이 그림으로 이어지진 않고?
-아, 하지만 그건 다른거야. 라벨(Morice Ravel,1875-1937)은 전쟁 때 팔을 잃은 친구 피아니스트 폴 비트겐슈타인(Paul Wittgenstein,1887-1961)을 위해 왼 팔의 콘체르토Concerto pour la main gauche를 작곡했어; 그 콘체르토를 들으면 14의 전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 그리고 자네가 알다시피, 내가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가 뭔가. 가벼움이야. 가벼워지기는 어렵고 힘들지. 그래서 자명한 이치를 말하려면 가벼워질 수 없어. 무거워지지. 그렇게 무거워지면 아주 우울해. 그런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지 ; 그리고 설마 그렇게 되도 말야, 에휴!
-정치풍자화는 자네한테 《무겁다》는 건가?
-아니, 하지만 날 매료시키지 못해. 자네가 알다시피, 나는 대담한 사람들을 찾고 있어. 단지 존재하기 위해 그들이 하는 것들을 존경해. 정치적 삶에 대해 특별히 동기를 찾지 못하겠어.
-자넨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인가?
-(한숨)뉴요커 지에 마천루를 그린 것을 미국인들이 보면, 이 그림은 프랑스사람이 한 것이라는 걸 단숨에 알거야.
-무엇이 그럴까?
-그냥 내가 프랑스인이니까
-샤뱔은 《샤발의 캐릭터》를 창조했어 : 거의 50대에, 대머리지. 가끔 안경을 쓰고, 외투에 넥타이를 하고 모자를 썼어. 보스도 그의 캐릭터가 있어 : 그도 역시 40세 즘이고, 복코에, 발이 작아. 그의 눈은 까만 점처럼 작지. 그리고 상페의 캐릭터는?
-이 귀여운 남자는 대머리에 안경을 꼈고, 콧수염을 조금 길렀어. 보편적인 프랑스인 스타일이지 ; 전혀 경멸의 뉘앙스는 없어 : 전형적이라는 것일 뿐이야.
-몇 세처럼 보이나?
-다양해. 아마 38세에서 75세 사이야. 내가 표현하는 것에 따라 달라지지.
-하지만 《진실된 삶vraie vie》에서, 더이상 보이진 않는데, 이 보통 프랑스인이 말이야!
-그래, 아침 일찍 파리에서 그런 사람들을 만난다구.
-자넨 그림 속 캐릭터에대해 미움이나 조롱을 나타내지 않는군...
-신은 그들이 존재하는 한 지켜주는 거 아닌가!
-그림 속에서, 실제보다 커보이는 도시나 풍경의 거대함이 아주 작게 묘사된 사람과 같이 보이는데, 고독이나 혼란이 느껴져. 극명한 대조가 종말론적 관점으로는 전혀 비춰지진 않아.
-잘 모르겠어, 계속 말해보게.
-분노라기 보다 단지 자애 속에 드러나는 아이러니랄까. 그런 자애는 연민이나 비탄에서 오는건가?
-길에서 갑작스레 날 웃게 하는 것은 퀼레스(Paul Quilès, 정치가)가 지구의 장이나 파리의 시장이 되려고 애쓰는 걸 봤을 때야. 군중 속에서, 사람들은 차를 타고 있던 그냥 서있던 서로 치고받으려고 했지. 난 거기 속에서 이런 슬로건을 적은 판넬을 봤어 : 《퀼레스, 파리, 자애》이 자애라는 단어는 온통 섞어 쓰이고 있어. 《끔찍한 커플이 있어-아, 하지만 그들 알고보니 다정하던데!》그 단어는 날 좀 화나게 하는군.
-그러면《동정》인가?
-가끔 어떤 이에게 친절함을 느껴. 누군가를 경멸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아. 난 별로 싫어하는 게 없어. 그렇게까지 되지않지.
-《파리스케치》이후에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었나?
-그래. 난 더 알고 싶어졌어. 어떤 경우에라도, 계속그리고 싶네. 가끔 웃음기 없는 책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어. 재검토하고 있어 : 풍자화 문집을 다시 출판하고 싶어. 그렇다해도 그건 내 욕심이고, 어쨌든 풍자화는 내가 열렬히 좋아하는 거야. 그리고 풍자화가도 사모하지. 그들 대부분의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 나를 기쁘게 하는 사람들이 있어 ; 내게 주어진 큰 칭찬이라고 믿네. 그들은 내게 친절히 이렇게 말해 : 《당신이 하는 것은 풍자화, 그 이상이야.》하지만, 나한테 풍자화보다 나은 것은 없다네!
2002. 5. 25
프레데릭 파약 Frédéric Pajak
출처 : 20page-39page, Le Cahier Dessiné/ BUCHET CHASTEL
번역 : zamsoobu
'★자료.번역(;Recherche > 예술가(;les artist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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