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a Rego: 개인적이면서 정치적인


1980년대 이후, -행정기관에서 요청한 작품을 요청하고 수집가가 그의 작품을 산 이래로-파울로 레고는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의 중요한 회고전이 마드리드의 레이나소피아 예술 국립센터(Museo Nat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에서 지난 가을에 열렸다. 이후,
워싱턴의 여류 예술 국립미술관(National Museum of Women in the Arts)에서 열렸다.(1)프랑스에서 이번 여름 님므의 예술학교école supérieur des  beaux-arts에서 런던에 작업실이 있는 이 포르투칼 작가의 첫 개인전을 열었다.

■최근의 삼면화Human Carge(2007-2008)에서,파울라 레고는 여자를 짐승처럼 그린다 : 매
달려 있거나 십자가에 매달려 있거나 하는 인물들이 눈길을 끈다. 잡지에서, 텔레비전에서 보아왔던 이미지를 연상시키며 뒷거래의 더러움을 보여준다. 또 현대판 노예주의가 보이는 동시에 가족애도, 살인에 대한 동경도 보인다. 이 이야기는 서로 이어지며, 절망적 이야기를 함축한다. 파울로 레고가 보는 것은 우리가 보이는 데에서 다른 것을 상상한다. 기이
하게 재편성하는 것이다. Jane Eyre라는 2001-2002년까지 판화연작은 어떤 상황에 샤를로트 브론테의 세계를 끌어들인 듯 보인다 : 그림 속 아이의 고독, 가족과 아버지에 대한 복종, 불가능한 사랑...독특한 상황은 의미의 알레고리로 이어지며 계속 보는 내내 수수께끼로 남는다. 1990년대에 대형 캔버스로 제작된Avortements에서는 여자는 플라스틱 양동이에 앉아, 아이를 낳기 위해 몸을 구부린다. 이 그림은 적절한 상황이 아닌 곳에서 달리 방법을 찾지 못한 여자를 그대로 노출시
킨다. 이미지는 포르투칼에서 합법적 행위지만 이런 금기의 사회적 위선을 보여준다. 이 그림은 정치적 행위로 구성되어 우리를 불편하게 하며 날 것 그대로인 것이다. 하지만 얼굴은 자신감을 가지도록 표현되었다 : 확실하게 두드러지는 것은 근육의 대조와 턱의 경련이다. 그림이 무엇에 대해 말하는지 마치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그거기에 파울로는 말한다.《그것은 괴물이 아니다.》이전에 1980년대 작가는 유명한 Henry Darger의 소설에 관심이 있었다 : Vivian Girl에서 소녀들은 힘과 권력을 발견하면서 혼란스러워지는 주변에 대해 말한다. 파울로 레고는 이후 계속 그림을 그려왔다. 그의 작품은 규정지을 수 없는 뎃셍의 실험이다. 그건 습관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진《천성적 태도》라고 말한다 《비밀인데, 나는 내 부모님이나 교수님께 하고 싶었던 것을 그립니다....그림 속에 하고싶었던 것을 그린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이해못하는 것 같더군요》그는 아마 그의 작품 속 뎃셍이 주는 불투명성을 믿는지도 모르겠다. 얼굴, 자세, 상황등에 무언가 유발시키고, 논란을 일으키는 것이 보인다면, 감정을 가졌던 만큼 이야기와 내용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찾기 위해 아직도 애를 쓸만큼 충분히 그림은 모호하다. 만약 파울로 레고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면, 혹은 웃게 한다면, 기이하고 위험하다면, 혼란스럽게 한다면, 이미 관객은 오감이 움직이며 해석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파울라 레고는 그의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를 기억한다. 요정은 없지만, 괴물이 있고, 마법사와 성자와 성녀가 있는 이야기이다. 《내겐 그게 문학이예요 : 폭력적 이야기, 마법세계에서 벌을 주죠. 그런 점이 교육과 관련한거죠.》오페라나 고야의 판화,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é가 일러스트를 그린 성경, 벤자민 라비에 Benjamin Rabier의 책, 포르투칼의 대학교재, 그리고 대중적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그의 뎃셍은 가능한 모든 것이 녹아있다. 확실히 이미지들은 이런 문학으로부터 유산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그림의 주제에 맞는 이미지는  단순히 의미를 옮겨쓴 것이 아니다. 내용에 이어지는 삽화라기보다 무관하게 이어지는 각색이며 왜곡이다. 작품의 의미가 그 속에 갇히는 위기 속에서 아무 것도 정확한 해석을 보장하진 않는다. 미스테리로 남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위협이 되진 않는다 :
거기엔 예를 들어 Famille 은 루벤스의 그림 Descente de croix(Rubens,1616)에 얽힌 개인적 주제에 대해 구상한 작품이다 ;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림 속 집 안에서 두 소녀는 서로 닮아보인다. 한 명은 기절한 남자에게 붙어 마치 그를 움직이려는 것처럼 보이며, 다른 이는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Target(La Cible)에서는 
 처형의식을 가지려는 듯하다 : 무릎꿇은 여자의 치마는 잠금이 풀어져있고 열려있다. 매우 에로틱하게도 이미지는 성 세바스티앙을 가리킨다.
의심의 여지없이 파울로 레고가 끌어들인 과거이다. 20여년이래, 그가 멀리했던 재료들을 사용하면서 : 소형 판화, 크레용, 파스텔화를 그리다 1994년 스타일을 바꾼다.
 
■감정을 굳히다
《처음에 감정을 그리기 시작하지만, 그림에 대한 것으로 바뀝니다.》이 감정으로 형식에 대한 탐구를 하고, 필연적으로 힘을 잃지 않기 위해 거리를 운다 : 파울로 레고는 그것을 자유자제로 움직인다. 모든 발견된 것들, 복잡한 설치물을 그의 아틀리에에 실현시킨다 : 그것은 수정되거나 바뀌어진 오브제, 다양한 물질과 영감을 불어넣는 사물들이다. 또한, 그는 인형, 마리오네뜨, 끈으로 묶인 십자가를 만든다 : 꿰메고, 붙이고, 속을 채워넣고, 잇는다...이 설치물은 감정을 불어일으키는 신체이며, 사물의 중립성을 확보한다. 본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인다. 그녀는《소재를 놓고》그림을 그린다. 세심하게 배려된 이미지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 ; 감춰진 감정, 날카로움, 생생한 상황이 역설적으로 감추기힘들어보인다.
그림 속 동물은 우화 속의 그것처럼 보인다. 또한 동화와 유아기의 잔인하게 경험한 것들이다.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이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이 동물-장난감은 의식을 상징하며 문화에 대해 언급한다. 피 묻은 토끼가 나오는 War(2003)에서는 가장 끔찍한 공포와 인간의 고통을 형상화한다. 폭력의 불씨를 포함하며 긴장감을 유지한다. 알지는 못해도, 파괴적 힘을 보여준다. 그리고, 작가에게 이런 멜로드라마의 이미지는 사람들을 충동질하는 극도의 고통을 이해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전쟁사진, 대학살의 르포사진에 드러나는 맹목적 폭력은 이기적인 미디어의 특성을 강조한다. 사건의 진실성에 상관없이 말이다. 그로테스크한 구상적 이미지로-War라는 잡지에 실린 사진처럼-기대하지 않은 날카로움을 보여준다. 그가 강조하는 감정의 표현은 현대적이면서 일반적 범주에 속하기를 거부한다.

■명상
파울라 레고는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을 존경한다.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폭발, 자유의 감각은 그에게 어린아이의 그림을 떠오르게 한다. 그녀는 빠른 작업 속도로 그림을 그린다. 이미 그녀의 첫 그림에서 보여주듯이 그녀가 밟아본 적이 없는 아카데미의 화풍을 쇄신한다. 자유주의자로써 뒤뷔페로부터 영감을 받은 그녀는 미학적 기준에 맞는 기존의 이미지를 재창조하면서 그 힘을 좇는다.힘의 세계에서 현실은 주관적 감정이며 바로 그점이 파울로 레고가 담으려는 것이다. 고전적 명료함과 아름다움, 추함, 폭력, 몰상식을 뒤섞으며 범주를 오간다. 파울로 레고는 현대적 주제를 그린다. 그리고 《현재를 말하기를》원한다. 그렇게 그녀는 정치적 역활을 맡는다. 비록 대변가는 아니지만, 절망적인 다수를 통해 말한다. 그것은 현실이 이미지, 혹은 감춰진 이야기로 뒤덮이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는 더이상 현실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히.■

출처: Artpress. Nº346. Juin 2008
기사:Jérôme Lebrun과 Thérèse Moro 
번역:zamsoob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