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 스타인버그Saul Steinberg
〈그의 비밀 이야기〉
_사울 스타인버그Saul Steinberg(1914.7.15-1999.5.12, 루마니아 출생)
그의 옛 친구 알도 버지Aldo Buzzi와의 인터뷰를 보면 단행본 그림자와 환영Ombre et reflet만큼 사울 스타인버그에 대해 알 수 있다. 단행본에서는 이 특별한 뎃셍화가의 면모가 별로 드러나 있지 않기에 그의 비밀스러움에 불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 텍스트는 그의 뎃셍집 서문이 되는 것이 나았을 지도 모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생애는 대서양을 횡단하듯 하기때문에 여정 동안 머무를 선실 하나면 충분할 것이다.》
그의 또 다른 영감은 이렇게도 볼 수 있다 : 가족 앨범에서 보면 그림이 사진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에 사울은 《예술은, 그 냄새가 타르트 자체보다 먼저하듯이 기술보다 앞서기 마련이다》라고 덧붙였다. 이 가족의 초상에서 사울은 잊지 않는 것이 있다 ; 그 곳에서 자유롭게 형식을 뒤섞거나 바꾸면서 훌륭한 뎃셍을 수없이 해내었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미적인 영감을 기록하며, 그는 《아방가르드와 원시주의가 공존했던》20세기 초반에 부카레스트에서의 삶을 회고했다. 지금은 잊혀진 그 시대 말이다. 그 곳에서 동향인 마르셀 얀코 Marcel Janco, 트리스탄 차라 Tristan Tzara에 의해 다다이즘이 창설되었다. 이후 스타인버그는 루마니아 출신의 젊은 청년이었을 때를 말하며, 미시시피의 흑인의 처지와도 같았다고 말한다.
그는 밀라노에 1933년 유학을 떠나, 9년을 수학한다. 그 곳에서 그는《희열과 놀라움이 행렬》과 함께 고독을 발견한다.
사울은 이탈리아 전쟁의 바로 직전 파시스트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살아야만 했다. 그릴로 바나 친구의 집에서 자면서 죄수로 수감되기 전까지 말이다. 그의 생에서 이 시기는 거의 기억하지 않는다. 마치 악몽을 꾸었던 것 같이 : 《난 나의 바깥에서 살았습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그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
몇 달 후 수용소 해제 되면서 러시아 백인들, 유대인들, 집시들, 무국적인 들 사이에서 그는 기적적으로 미국여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거기에서 1999년 생애 마지막까지 살았다.
1943년에 스타인버그는 이탈리아의 참호에서부터 돌아온 후 미국시민으로 정착하였다. 미군 해군부대의 장교의 군복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이후 그의 파란만장한 일화는-동방국의 군 임무와 부카레스트 해방 운동에 참가하였다-언급되지 않았다. 뉴렌버그의 사건이 뉴요커 매거진에 실리지 않았다면, 거기에 대해 우리는 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전후, 뉴욕에서 그는 샤갈, 막스 에른스트, 페르낭 레제와 마르셀 뒤샹과 만났다. 또 폴록, 바넷 뉴만과 그 쿠닝 같은 미국화가들도 알게 되었다 ; 그는 단 한 번,마그리트의 일화를 빼고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 《그는 우릴 웃게하려고 그렇게 많은 그림을 소비하죠.》
이 소박한 책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그의 사생법을 털어놓는다는 점이다. 스타인버그는 보는 것을 다시 그리려고 애쓰는 것보다 새로 구상하는 것이 쉽다고 한다. 문제는 이미 뻔히 나와 있기 때문에 작업실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 관찰은 늘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그가 보면서 그릴 때마다, 마치 그림이 그를 피해가는 것 같았다. 마치 그에게 그런 벌이 내려진 것처럼 : 《다른 뎃셍과 달리 사생화의 작업시간은 너무 깁니다. 난 상상하는 그림을 말하고 싶습니다. 나의 세계와 나 자신을 그리지 않고도 나를 포함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그릴 수 있습니다. 반면에, 사생화에서는 중심요소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 속에서 난 단지, 엑스트라로 복종하는 노릇을 할 뿐이죠. 현실의 문제에 몰두하다보면, 자아의 개념을 잊게 마련이죠. 마치 트랜스처럼 나는 내가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의식없이 그림을 그립니다. 자, 이제 왜 나 자신의 일부를 펼쳐 보이지 않는 지 보이시나요...》
비밀 이야기는 끝까지 궁금증을 낳는다. 사울 스타인버그는 누구인가? 신문사 삽화가인가, 예술가인가? 《난 아주 낮은 데서부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해 풍자화가로서 말입니다. 눈물짜는 통속성이나 보잘 것 없는 구석이 있는 상업예술의 평범함이나 캐리커처의 조잡한 솜씨등을 보면서, 어깨너머로 배웠습니다. 》
풍자화와 회화적 뎃셍 사이에서, 《마이너리그》예술과《메이저리그》예술의 이중성을 가지고 스타인버그는 다듬는 것 이외엔 하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을 예술가라기보다 풍자화가라고 생각한다. 거의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빼는 방법으로 《발상》을 하도록 선고를 받은 풍자화가로 말이다. 그는 거대한 질서나 규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두려웠다. 또, 그에게 뎃셍을 위한 뎃셍은 엘리트주의적이며 거기에 경계했다. 예술계를 경계하는 그 자신을 매춘을 알선하는 자에 비교하기도 했다.
그가 모순되게 말하는 취향으로 무슨 말을 하였든 그는 풍자화를 닮았다기 보다 풍자화라는 이름의 적막한 지대에서 길을 잃은 예술가에 가깝다. 그는 예술가이다. 왜냐하면 그는 진정한 마법사이자 모든 것을 가능케 했다. 특히 우리가 뎃셍에 도취되는 것을 피하도록 하며, 동시에 그는 우리가 웃지 않을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Saul Steinver, avec Aldo Buzzi,
Ombre et reflets,
Christian Bourgois éditeur, Paris, 2002>
Dessin : (c)Fondation Steinberg
약력
1914.7.15-1999.5.12, 루마니아 출생
부카레스트 대학 철학 전공
1940 밀라노 공학기술학교 졸업.
밀라노 비평지 Bertoldo 기고
1942 , The New Yorker 매거진에 기고
1944 루마니아 출생 화가 Hessa Sterne과 결혼
1978 휘트니 미술관에서 회고전
사후 스타인버그 재단 설립.
기사: Frédéric Pajak
출처:46-47page, Cahier Dessinée .
번역: 잠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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