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원자글 버서난 영화처럼
par 이준익, 2010
원작은 박흥용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다. 이 만화를 본 적은 없지만, 작가의 다른 작품 『나무 위에 사는 나무』를 보면, 현재 대한민국에 사는 사회 소외계층이 등장한다. 거기에는 쪽방촌이나 판잣집, 싸구려 전등이 번쩍이는 홍등가를 누비는 떠돌이가 나온다. 작가 박흥용이 아직 머릿 속에 깊게 각인되어있는 이유는 단지 이런 인물들이 나온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의 독특한 화법때문이다. 그의 작품에는 단순히, 그들의 사연을 비통하게 동정어린 시선으로 묘사하는 게 아니라, 이미지를 통해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 틈새에는 기묘한 엇박자가 불쑥 나타나곤 했다. 그래서, 구정물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도피적인 환상이어도 그것은 분명 '자유'로워 보였다.
원작은 박흥용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다. 이 만화를 본 적은 없지만, 작가의 다른 작품 『나무 위에 사는 나무』를 보면, 현재 대한민국에 사는 사회 소외계층이 등장한다. 거기에는 쪽방촌이나 판잣집, 싸구려 전등이 번쩍이는 홍등가를 누비는 떠돌이가 나온다. 작가 박흥용이 아직 머릿 속에 깊게 각인되어있는 이유는 단지 이런 인물들이 나온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의 독특한 화법때문이다. 그의 작품에는 단순히, 그들의 사연을 비통하게 동정어린 시선으로 묘사하는 게 아니라, 이미지를 통해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 틈새에는 기묘한 엇박자가 불쑥 나타나곤 했다. 그래서, 구정물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도피적인 환상이어도 그것은 분명 '자유'로워 보였다.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이런 원작 고유의 화법에 치우치기보다는 쉽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야기의 짜임새 있는 구조가 드러나기 보다, 큰 강물을 보듯 무심히 있으면 어느 순간 아늑하고 소담스러운 정경이 눈가를 어루만지듯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머리께를 넘는 갈대숲을 뒤로 하고, 노랗고 푸르스름한 빛이 어우러진 공간을 세 개의, 혹은 두 개의 점이 가로지른다. 또는 빛이 바래서 서로 자연스럽게 섞인 색색이 눈을 즐겁게 한다.
또는, 요즘에는 잘 볼 수 없는 전통의례도 영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볼 수 있다. 이를 테면 종갓집의 이런 제사 장면이다.
하지만,영화가 이런 수려한 영상미에만 머무르기에 아쉽다. 원래의 작품인,변칙적으로 흐름을 예기할 수 없이 톡톡 튀는 이야기를 무난히 읽을 수 있는 옛날이야기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인물 간의 갈등구조는 조선시대 신분계층 사이의 갈등, 개인의 입신양명의 욕망으로 압축되었고 결말을 향해 너무 쉽게 달려간 걸까? 하지만, 이몽학이 궐안으로 돌진하는 시기와 외세가 침입하는 시기를 겹치도록 한 것은 절묘하지 않았나?
그러나... 모르겠다. 나도 왜, 이 영화가 아쉬움을 남기는 지. 어떤 점에서.
이야기의 긴박한 전개 사이에서 수려한 산야를 볼 수 있다.
시정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많은 대사 없이도 말이다.
그래, 그것은 시가 아니었기 때문이 아닐까? 박흥용의 만화는 분명 서사이지만 느낌은 시에 가까웠다. 함축된 감정이 있었고, 굳이 애써 친절하지 않아도 하나씩 짚어서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지나 비유, 환상으로 독자와 작가가 통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인물의 현실적 설정에 충실했고, 단지 '이야기'에 멈추고 말았다는 점이다.
너무 착하게(동시에 안타깝게)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점이 낯설었던 것이다. 좀 불친절해도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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