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보았다 I Saw the Devil ; 서늘한 침묵을 유지하는

김지운감독의 영화를 볼 때는 긴장을 늦추기 힘들다. 그 영화 속 조명, 소품, 구도, 인물의 의상 등의 미장센에 주의를 유심히 기울이게 된다. 둔감한 척 넘어가려해도 두드러지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기류에 눈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악마를 보았다> 

제목의 다소 독백하는 투와 상투적일 위험에도 개의치않고 '악마'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한 것부터 심상치 않았다. 영화는 그 정체의 모호함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이 영화를 스릴러라고 할 수 있지만 사건의 전개에서 오는 긴장감보다 인물간의 관계, 그리고 한 인물의 내면에서의 갈등이 조용하고, 그리고 깊게 흐르는 영화다. 



그리고 낮은 카메라 앵글이 '살해장면'에 사용된다. 그리고 골목신에서도 사용된다.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에서 유독 낮은 시점은 사람의 것이라기보다 사람이 아닌 그 무엇으로 보게된다. 그 무엇은 무엇일까.
분명 낮아질 수록 그 생경함에 더해 보다 땅은 더 많이 보인다. 울퉁불퉁한 바닥과 그 위에 밀착된 노란 알전구의 빛, 네온의 푸른 빛이 일말의 온기도 허락하지 않는 듯하다. 이 것은 누구의 현실인가? 영화 속 살해범의 현실일 수 있다.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 그는 자신의 세계로 보는 이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스스로 들어가는  것일지도.

 수현이 살해범의 뒤를 좇으며 그를 린치하는 여정의 한 장면이다. 여기에서도, 미장센이 두드러진다. 악마에게 쉽게 그리고 가볍게 그에게 마땅한 쓴맛을 보여주리라 생각했건만, 그와 마주하는 순간 마다 그는 자신이 처한 불행한 현실를 보게 된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 그는 멈출 수도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자신에게 가해진 절망을 직접 나서서 되갚지 않는다. 분노하지만 무력하다. 좌절하지만 일어날 수 없다. 우리는 그런 인간의 한계를 넘어 직접 복수하는 그를 영웅으로 봐야 될까. 이 장면의 그는 사방의 푸른 벽으로 구성된 상자 안에 갇힌 형국이다. 그리고 깊게 숙인 어깨와 떨구어진 고개가 슬픔과 분노로 고립된 그의 내면을 보여준다.

또 다른 이야기로, 배우 천호진이 형사로 등장한다. 그는 종종 텉털하고 강직한 형사로 나오는데,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그의 목소리는 친근한 동시에 단호하다.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지는 상황을 제대로 잡기위해 애쓰는, 그리고 동시에 철부지 딸의 아빠로 영화 속에서 그는 유일하게 우리가 '일상'이라고 부르는 것을 대변한다. 수현도 아닌, 살해범도 아닌, 주변인이 바로 현실을 맡고 있는 것이다. 대신, 비정상적 광기를 수현과 살해범이 재현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색이라는 설정은, 다른 영화에서 가끔 드러나는 테마이다. 하지만 <악마를 보았다>영화가 차별화되는 이유는 보다 손에 잡힐 것 같은 우리의 일상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탓에, 보다 가까이 그런 주제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수현이 살해범의 본거지를 찾아 수색하는 장면이다. 어떤 사람이 궁금하다면 그 사람의 방에서 실마리를 찾아보듯, 살해범의 악행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이는 그 이유가 설명되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장면은 더 궁금증을 자아낸다. 벽에 달린 사물함과 서랍함에는 자물쇠가 달려있다. 그가 가해자들에게서 앗은 구두, 가방, 악세사리등등을 수집해놓은 곳이다. 하지만 저 수현의 뒤에 있던 의자에 있는 곰인형은 무엇인가? 지나치게 유의해서 본 탓일지는 모른다.


회색콘크리트도로, 녹색의 밭도, 저 멀리 적갈색의 지붕도  모두 빛에 잠겨있다. 뒤편의 멀어지는 도로를 따라 점처럼 불빛이 보인다. 마지막 장면, 수현은 내내 차갑게 눌러왔던 슬픔을 한꺼번에 터트린다. 그의 주변에 이른 새벽의 파르스름한 빛이 마치 공기가 아닌, 물 속과도 같다. 결국, 그 악마를 처치하고 남은 그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지.    

감독의 전작인 <장화,홍련(2003)>과 같은 맥락으로 놓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 더 현실에 발붙인 듯 보이는 것은 우리의 익숙한 공간인 골목, 평온한 시골, 대낮의 도로 등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이야기의 연결고리는 훨씬 어둡고 정체가 불분명하다. 이유가 없는 악. 순수한 악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