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와 흑조, 그리고 회색 인간

Black Swan , 2011
감독 : Darren Aronofsky
각본 : Mark Heyman, Andres Heinz, John J.McLaughlin
출연: Natalie Portman, Mila Kunis ,Vincent Cassel , Winona Ryder , Barbara Hershey, Benjamin Millepied...
 
 영화는 우선 너무나 ('너무나' 라고 한 것은, 영화가 남기는 강한 여운에 비해 극의 내러티브적 구조는 더욱 대조적으로) 단순하다. 이전에도 비슷한 여러가지 예가 있었다. 모짜르트와 살리예르(아마데우스, 1984),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주인 집 아기를 탐하는 보모(The Hand That Rocks The Cradle, 1992), 한국식으로라면 전교 2등을 시기하는 전교 1등의 복수와 살해 시도(여고괴담 시리즈) 등등이 해당한다. 모두 자신의 멈출 수 없는 욕구에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블랙 스완이 조금 다른 점은 2등이 바라본 1등이 아니라, 1등이 바라본 2등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더 올라갈 목표가 없다. 하지만 그 자리에 이르도록 한 추진력은 수그러들지 않고, 관성에 따라 통제할 수 없을 정도다. 2등으로서는 1등만 없으면 그 자리가 내 것이 되리라 생각하지만, 1등은 그 화살을 자신한테 꽂는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여기에 흑과 백을 넘나드는 여인이 있다. 무엇이 치명적 매혹이고 무엇이 절대적 순수인지 모호한 경계를 그녀는 넘나든다. 그것은 자유롭다고 하기엔 고통에 가깝다. 그녀는 비극의 주인공인이다. 

흑은 어둠과 악, 백은 광명과 선으로 간단히 공식화되고, 이야기는 거침없이 더욱 빠르게 전개된다. 오히려 그 전개가 너무 거침이 없어 의심조차 하지 못한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게임 전에 룰을 정하고 최선을 다하듯, 영화는 분명한 명제를 세우고 그에 맞춰 모든 요소들을 조율한다. 그래서 관객은 상상하는 것 대신, 영화 곳곳에 계획된 타이밍에 맞추어 놀라고, 비명을 지르며, 계획에 따라 긴장을 하며, 계획에 따라 동정심이나 연민을 느끼게 된다. 보다 공통된 감성을 향해 같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질주한다. 무엇보다 여기엔 공포영화의 전형적 요소가 도처에 있기 때문에, 왠만한 강심장이 아닌 이상 놀라기 마련이다. 

( 나도 사전정보가 거의 없이 본 탓에 공포영화 낌새가 감지될 때마다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아름다움과 공포는 공존하고 있다. 특히 나탈리 포트만의 깊고 담담한 눈매는 감성에 충실한 동시에 보다 이성적이고, 여성스러운 동시에 보다 중성적이다. 그녀가 탄탄한 골격과 근육들을 움직여 발레 특유의 곧으면서도 우아한 동작들을 소화하는 것을 보라!  
 

카메라는 줄곧 이 니나의 바로 뒤에서 그녀를 따르며, 시선의 방향은 같지만, 또 다른 인물이 등 뒤에 따라다닌다는 암시다. 니나의 시점샷이 아니라, 그녀의 뒤에 존재하는 것의 시점샷인 것이다. 그래서 현장감은 살리되, 이질감도 동시에 생성된다. 카메라로 촬영한 후에, 촬영한 카메라도 같이 사진에 찍히는 기묘한 심령 사진의 예처럼 말이다. 

어쨌든 이 발레는 공포영화와 궁합이 잘 맞는듯 하다. 동화에서 저주에 걸려 죽을 때까지 춤을 추었던 이야기처럼, 스토리텔링에서 종종 사용되는 조합이다. 춤이 선사하는 절정과 생의 마지막 클라이맥스는 그 상승곡선 후에 급격히 추락한 다는 점이 닮아있다. 또, 발레 특유의 다소 경직되게 제한적인 틀 안에서 펼쳐지는 고결함과 우아함은 상충되는 요소와 함께 있을 때 더욱 강조되며 이야기거리가 풍성해진다. 딱딱 끊어지며 유려하게 이어지는 발놀림을 보라. 

실상 발레를 하는 무용수나 그 계통 사람들이 보면 조금 우스운 영화가 될 것이다. 그 내막은 당사자들만이 아는 것...과장되고 극적이로 조성되어 인위적이라고 느끼겠지만, 외부인의 입장에서 '인간 보편적인 욕망'과 결부해서 보면 공감이 가는 면이 크다. 

그래도 아직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위노나 라이더는 정말 자해를 해서 죽은 것일까? 아니면 니나가 그녀 스스로 자해를 하는 환상을 품은 것일 뿐, 다른 이유로 죽은 것이 아닐까? 그녀의 어머니는 왜 그토록 우울한 딸의 초상을 그리면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뿐, 상황을 낫게 하려고 나서지 않은 것일까? (물론, 상황이 안좋아질 수록 영화는 이야깃거리가 많아지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