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 쉬흐마른( Nogent-sur Marne) 경시청에서 물 먹은 날
Maurice Scève v. 모리스 세브 1501-1560
En France, les hommes qui ont perdu leur femme sont tristes, les veuves au contraire gaies et heureuses.
프랑스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경시청에 거주지 신고를 해야 한다. '내가 어디에 살고 있다'라는 사실을 미리 자진 신고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보통 30여일 걸린다는 우편을 50여일을 기다려서 4월 중순에 체류증, 아니 체류 필증을 받았지만, 이제 이사를 하므로 거주지 주소를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 주 전부터 계속 '경시청에 가야지, 가야 되는데,' 미루고 있던 터였다.
경시청은 아침 9시부터 낮 12시까지만 업무를 보는 관계로, 더 바빠지기 전에 나가기로 하였다. 보통 경시청은 외곽에 있기때문에 가는 시간을 여유있기 잡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초행길이라 예상한 시간보다 한 시간 늦었다. 첫 체류증 갱신을 했던 크레테일 경시청보다 최근에 지어진 듯한 건물 외관이다. 아직 광택이 사라지지 않은 리놀륨 바닥에, 유리와 적색 벽돌 벽장식이 눈에 띄고, 안내 데스크에는 땋은 머리로 한껏 멋을 낸 여직원과 노타이 차림의 남직원이 의자에 걸터앉아 여유있게 잡담을 나눈다. 경시청의 지상층에서는 면허관련 업무를 보는 듯, 프랑스 시민들도 많다. 외국인 관련 업무는 지하 1층. 계단을 내려가 코너를 도는 순간, 나를 향해 쏟아지는 무수한 시선에 놀란다. 까만 시선, 혹은 짙은 흑갈색의 시선들, 기다림에 지쳐 무료함을 풀길 없는 가련한 시선들. 종잡아도 서른명은 넘는 듯 하다. 적잖이 놀랐지만, 짐짓 태연하게 빈자리를 찾는 시늉을 하며 고개를 살짝 숙이고 주변을 파악한다. 40평방미터 정도 되는 공간에서 콩나물 시루처럼 빼곡이 앉은 짙은 피부색의 사람들이 흰 눈자위를 굴리며 창구 앞 LED 전광판에 "삐'소리와 함께 바뀌는 번호들을 연신 쳐다본다.
외국인으로서 의무를 다하고자 이 곳에 온 외국인들. 자신의 바쁘고 고단한 일상에서 시간을 쪼개어 이 곳에 앉아, 더디게만 느껴지는 시간 속에서, 번호가 쓰여진 종이 쪼가리를 손가락으로 부여잡고 외국인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절감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도 그 곁에 조신하게 앉아 라디오를 들으며 하염없이 기다린다. 내 옆에 앉은 흑인 아주머니가 자꾸 칭얼대는 아이를 호되게 야단친다. 아이의 어깨를 잡아채어 흔들며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결국 아이는 울음이 터진다.
안 갈 것만 같던 한시간여가 지나고, 내 번호가 전광판에 뜬다. 너무 오래 앉아있었던 탓일까, 내가 원하는 속도대로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는 기분이다. 물 속을 걷는 기분이랄까. 부리나케 창구로 가서, 체류증 주소를 바꾸러 왔다고 한다. 내 여권을 보더니, 체류증 카드가 아니라 여권에 붙여진 필증이라서 바꿀 필요가 없다고 한다. 나는 주택보조금을 신청하려하는데, 주소가 달라도 되냐고 물었고, 직원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기서 이 것을 바꾸진 않는다'는 식으로 같은 말만 반복한다. 이런 불친절과 냉랭한 태도에 속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아쉬운 건 '나'이기 때문에, 어쨌든 재차 물어보며 확인을 하였다. 분명히, 경시청 홈페이지에는 '예외'라는 경우없이, 모든 외국인은 거주지 변경시 신고를 하고, 표기된 주소지를 변경해야 할 의무가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개나리들은 사람을 몇시간이고 기다리게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유감도 가지고 있지 않은 모양이다. 일언지하 부과 설명없이,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한다. '체류 필증은 주소를 바꿀 필요가 없습니다' .
길에서 행여나 부딪힐 세라 'Pardon파흐동 ; 실례합니다'를 연발하며 유난을 떠는 그 모습은 간데없다.
그렇게 허무하게 경시청을 나오는 순간, 나는 쓴 욕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제대로 물 먹이는 구나, 이런 게 여기 유학생들이나 이주민들이 입을 모으는, 이 것 때문에 여기 프랑스 생활에 진저리가 난다라고까지 하소연하는 '경시청 태도' 인가라는 생각에, 덕분에 제대로 물 먹고 갑니다, 라고 인사라도 남기고 올 걸 하고 때늦은 후회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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