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독립 영화의 새로운 바람18_아벨 페라라Abel Ferrara_인터뷰(1)

 Little Italy 레스토랑의 지하에서 신작의 편집 작업 중인 뉴욕 독립 영화의 신화와 만났다.

미국에서, 감독이란,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아벨 페라라 와 편집감독인 안토니 레드맨 과의 인터뷰


아벨 페라라와 만나지 않고 뉴욕을 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벨 페라라는 이제껏 만나온 젊은 감독 들이 태어나기도 이전에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는 여전히 동시대인이다. 그는 이 뉴욕이란 도시만큼이나 날 것의 거칠고 광기어린, 그리고 생생한 영화들을 만드는 데 두려움이 없었다. 다른 이들처럼, 그도 매번의 영화를 만들 때마다 필요한 돈을 위해 묘책을 생각해내야했다. 하지만, 아벨 페라라는 여전하다 ; 젊은 영화감독들 중에 아벨 페라라를 만나지 않았거나 그와의 일화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현재 그는 큰 수확을 앞두고 있다 : 4:44 Last Day on Earth 로 뉴욕과 베니스에서 선정된 것이다. 여기에서 윌렘 데포가 배역을, 켄 켈쉬는 카메라 감독을, 안토니 레드맨은 편집감독을 맡았다. 안토니 레드맨은 그의 다른 십여편의 영화, 킹 뉴욕King of New York(1990), 악질경찰 Bad Lieutenant(1992), 뉴 로즈 호텔New Rose Hotel(1998) 의 편집을 맡았었다. 현재 페라라와 레드맨은 영화 막바지 작업을 위해 밤을 지새운다. 페라라는 카이에 지를 《이 현장》에 초대한다. 이 곳은 열정적인 시네필을 자처하는 Little Italy레스토랑 지하 동굴에 마련된 그들의 편집실이다. 페라라는 외바퀴 손수레를 거머쥔 채 걱정스러운 자세를 취한다.다행히도 편집실은 나무로 된 벽채와 가천장으로 인해 고립된 곳이다. 페라라는 사방으로 서성거리며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은 채, 레드맨이 오기를 기다리며 그의 어시스턴트가 지정한 시퀀스를 찾아내기를 주시하고 있다. 영상이 분출되는 대목에서 명확히 멈추었다.
 4:44 는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아파트에서 세상의 종말에 대해 말한다. 그 시퀀스에서 페라라는 티비 사회자가 작별을 고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윌렘 데포와 그 친구(Natasha Lyonne )가 있는 아파트에서 사회자가 떠난 빈 화면을 보여주며 종말로 치닫는 세계의 이미지들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페라라가 애착을 가지는 성스러운 이미지들에 의해 카오스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며, 서로 혼합되고 프레임 내부를 채운다. 데포는 지붕으로 나온다. 그 밑 Delancey Street 에는 평범한 광경이 있을 뿐이다 : 오가는 택시, 반짝이는 네온사인ㅇ들. 하지만 갑자기 허공으로 한 실루엣이 나오더니 몸을 던진다. 그리고 시퀀스는 빠르게 도시의 침묵으로 빠져들면서 텔레비전 이미지가 깜빡인다. 데포는 깊은 소용돌이와 긴 침묵으로 이끈다. 아름다운 이미지들의 여운을 간직한 채, Marcello의 레스토랑으로 다시 올라갔다. 그리고 뉴욕 영화들에 관한 대화를 이어갔다. 페라라는 가지요리를 우리에게 권했다. 다음은 뉴욕 영화에 관한 이야기이다. S.D & N.E.

    안토니 레드맨 Anthony Redman : 뉴욕 영화요? 아벨 페라라 만이 유일하게 뉴욕의     영화  를 만들 수 있어요.
    아벨 페라라 Abel Ferrara : 아니예요. 난 뉴욕 영화들은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말하고 싶군요. 그들은 인터넷에서 움직여요. 내가 하고 싶은 것도 거기에 있죠. 내가 그 영화를 제작한다하더라도 그들의 이름이 아니라 얼굴을 보고 알아볼 수 있죠. 잊고 있었는데, 그들이 4번이나 제목을 바꿨더군요.

Safdie 형제의 Lenny and the Kids 는 어땠나요?
아벨 페라라 Abel Ferrara  : 네, 당신도 그 친구들을 아나요? 코엔 형제의 어린 시절 같아요. 그들의 아버지는 케이블 채널에서 Forest Whitaker 와 함께 방송을 제작했죠. Newark 에서요. 거의 매주마다 방송되는 다큐멘터리였어요.. 가끔 우린 학교에가서 이야기했죠. 항상 그들에게 계획이 뭐냐고 물었어요. 하지만 계획같은 게 있다기보다, 인디애나나 스코세지처럼 되기를 원했죠. 우리 카메라 감독인 켄[Ken Kelsch ; 아벨 페라라와 함께 다년간 공동작업, 드릴러 킬러THe Driller Killer(1979), Bad Lieutenant(1992), 어딕션The Addiction(1995), 크리스마스 Christmas (2001), ndlr. ]와 함께 NYU에서 만났을 때, 졸업작품을 위해 20여명이 같이 있더군요. 이후에 뉴저지 한복판 Montclair Sate에 있는 학교에 가서, 50여명의 학생들이 부모님돈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걸 봤죠. 나 스스로도 내 아이들을 위해 교육비를 내기 때문에 부모님들에 대해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죠. 대체 무엇을 위해 공부합니까? 연출공부를 하는 건 마치 대장장이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거와 같아요. 그들은 하나같이 샤말란이나 스코세지를 꿈꿉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해요 :《남들은 블록버스터 영화를 찍겠지만, 나한텐 천재적 아이디어가 있어. 모두가 내 영화를 보고 얼마나 뛰어난 작품인지 알게 될 거야. 그리고 난 여기서 탈출하는 거지.》 그들은 600억 달러로 성공한 작품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이해를 못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업에서 어떤 전략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그럴려면 치과의사가 되는 편이 낫겠죠.
안토니 레드맨 Anthony Redman : 내가 말하고 싶은 게 그거야.
아벨 페라라 Abel Ferrara : 글쎼, 사람들이 나한테 조언을 구하려고 오면 이렇게 말해요 : 치과의사가 되세요! 당신에게 영화가 의미가 있기때문에, 그것에 미쳐있고, 반드시 해야만 하기에 영화감독인 겁니다. 각각의 시대는 모두 달라요. Massacre à la tronçonneuse나 포르노를 찍을 수 있는 시대에 대해 말하는 겁니다. 내가 젊었을 때, 내 아버지의 친구분이 제작자이자 프랭크 시나트라의 매니저인 제리 웨인트럽 Jerry Weintraub 의 어시스턴트가 되라고 제안하더군요. 아주 괜찮은 자리라고 하면서, 일주일에 500달러의 페이를 지급한다기에 안 할 수가 없었어요. 난 그 사내를 따라가고 싶진 않지만, 영화를 찍기위해선 돈이 필요하다고 대답했죠. 난 내가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어요 : 2만5천달러가 필요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4:44 를 준비할 때에도, 돈이 들거란 걸 알았어요. 항상 돈이 문제죠. 어떤 작품이라도. 영화란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고고 테일즈Go Go Tales(2007) 은 마시모 가티에 의해 아주 특별하게 -아주 낭만적으로-만들어졌어요. 그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고 5백만 유로를 투자했어요. Mary(2005) Roberto De Nigris 가 2백만 유로를 투자했죠. 어느 쪽도 영화에는 존재하지 않아요. 돈을 움켜쥔 사람들이 존재하죠. 이 둘 중 한명은 식도암이 걸려서 살아갈 시간이 얼마 없죠. 물론그는 Mary를 선택하고, 다른 한명은 아마추어 사진가인 로메오Roméo, 천하의 난봉꾼을 선택했어요. 그래서 완벽한 고고 테일즈Go Go Tales가 완성된 겁니다. 각자가 자기 몫을 가지게 됬죠. 그 다음엔 그들에게 무엇을 약속할 수 있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영화들, 심지어 헐리우드 영화들조차도,이 단한번의 투자와 홍보로 수익을 올릴 수 있겠습니까? 아주 드물죠. 하지만 난 이런 비지니스세계에 있지 않아요. 영화에 투자하는 건 부동산 투기와는 다르죠. 이런 투자자들에게 무엇을 판매할 것인가? 여기에 인터넷에 대해 말해야겠군요. 우리의 영화를 보고싶어하는 사람들이 있고 충분하다면, 그런 걸로 영화 제작의 준비를 할 이유는 된 거죠. 그게 이상적인가죠, 아닌가요?

●어떤 이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아이라 잭스 Ira Sachs [각주:1](Forty Shades of Blue , 2005)는 킥스타터 Kickstarter 에 자신의 신작을 등록하고 10여명의 소규모 투자자를 찾았습니다.
아벨 페라라 Abel Ferrara
 : 로카르노에서 말한 적이 있지만, 난 나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요구하고 싶지 않습니다. 1990년 이후로, 사람들이 내게 인터넷에 대해 돈을 벌어다 줄 것이라고 말한건 처음이었습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안토니 레드맨 Anthony Redman   : 우리는 동시에 얼마의 돈을 벌었어요. 십시일반해서 모은 돈이었죠.
아벨 페라라 Abel Ferrara : 하지만 여전히 입에 오르내린다고 하더군요. 우린 단지 시작하는 단계에요. 안토니와의 대화를 인터넷 사이트에 업데이트했어요. 더이상 우리의 대화를 이용해먹는 거에 넌덜머리가 났었거든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중요하겠군요. 블로그들을 통해,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는 지는 모르지만, 마치 조지 워싱턴이나 천재라도 된 것 마냥 글을 씁니다. 어쨌든 거기엔 안토니와 나눈 최근의 대화가 있죠.
 우린 인터넷 영화도 찍었습니다. VBS.TV 사이트에 올릴 이란 Pizza Connection 이란 제목의 영화였죠. 브루클린에 있는 매거진 Vice의 웹사이트죠. 그들은 정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요. 아프가니스칸의 해군들에 관한 영상을 안토니에게 보여줬죠. 그 전쟁에서, 그들이 연극단원의 기자단을 대피시키는 지가 극적으로 보여졌기 때문이예요. 베트남에서조차도,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의 사진만큼은 보지 못했어요. VBS.TV는 정말 좋은 내용이 많아요. 그들은 군대에 대항하여 마약들을 거래하는 탈레반에 관한 다큐도 가지고 있어요. 하모니 코린  Harmony Korine 은 그들을 위해 좋은 영화를 찍었어요. 사이트를 통해서, 알게되는 건,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느라 4분동안 뭔가를 바라본다는 겁니다. 우리가 네티즌들에게 바라는  최선이죠. 그래서 우린 일주일에 4분을 찍어요. 거리의 사람들, 배우들과 함께 다큐멘터리인 Mulberry Street (2010) 를 찍었죠. 20년 전에, 시실리아인들이 피자가게를 통해 헤로인을 퍼뜨린 사건을 다룬 것이었습니다. 그걸로 1년 반동안 효과가 있었어요. 최초의 3번째 에피소드를 찍어서 보여줄 겁니다. 사람들이 보고 도움을 주거나, 아니거나 하겠죠. 그들이 인터넷을 통해 홍보를 맡을 겁니다.
 고고 테일즈Go Go Tales 보다는 나을 겁니다. 그 제작자의 부인이 배우중 한명의 모자를 맘에 들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급되지 않았고, 영화에 담긴 내 진심과 영혼은 전해질 수 없었죠. 악몽이자 지옥같았어요. L.A.에서는 일어날 법한 일이죠.
안토니 레드맨 Anthony Redman : L.A.에 있는 모두는 각각 할 말이 있더군요.
아벨 페라라 Abel Ferrara : 물론 우린 다 그 말을 들어줬어요! 이웃의 13살짜리 꼬마가 뭐라고 해도, 들었죠. 마치 테스트-상영같은 거였습니다. 우린 삶과 죽음에 관한 질문을 던졌어요. 내가 주의를 충분히 쓴 것같지 않다고 사람들이 욕을 해댔죠. Body Snatchers (1993 ) 은 2천만 달러가 들었는데 테스트-상영이후에 8.9명이 남아있더군요. 나는 기록을 하려고 했어요. 모든 영화의 테스트-상영에 기록을 남겼죠 : 도망자 Le Fugitif 는 90, 우리는 30. 스튜디오 책임자가 보도는 더이상 말을 안하더군요. 영화를 끝내긴 했지만 스튜디오는 좋았을까요? 영화는 철퍼덕 엎어졌어요. 하지만 그런 실패로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어요! 우리가 90을 가지면, 온갖 이류의 아첨꾼들이 그걸 시험하려 했을 겁니다. 농담이예요. 누가 그런 영화를 할 수 있겠어요?
 워너브라더스에 있을 때, 올리버 스톤이나 스파이크 리도 있었죠. 우연히도 스파이크가 말콤 엑스 Malcom X 를 찍을 때, 동시에 JFK를 올리버가 찍고 있었죠. 난 더이상 뉴욕 감독들과 일하지 않겠다는 스튜디오의 입장을 받아들였죠. 미국에서 우리가 한 일들이나 방식을 보면, 감독이란 그저 귀찮은 존재일 뿐인 거죠. 그들이 하는 방식으론 과잉되게 보일 겁니다. 그래서 우린 L.A.를 떠났죠. 1995년이었어요. 1997년부터 더이상 바뀐 게 없어요. 내가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 제목을 읊을 수 있겠어요? 아직도 할리우드에 대해 말하는 겁니까? 내가 Cahiers 를 읽기 시작할 때, 헐리우드는 그냥 그랬어요. 카이에 사람들은 감독들에게 관대했죠. 사람들은 그에 대해 전혀 몰랐었는데. 그들이 고다르나 그 무리들을 유명한 스타로 만들었어요. 우린 단순한 인간들이예요. 단지 영화를 하고 싶을 뿐이예요. 하지만 난 먹고살아야하는 문제가 있었죠. 영화를 찍고, 다른 사람들을 돕고, 가족을 부자로 만들고 싶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교황이 오기를 기다려야했어요. 르네상스 시대에는 모든 돈이 교회로부터 나왔죠. 난 지금 이탈리에서 계속 일하고 있어요. 국가가 내게 영화찍을 돈을 한푼이라도 주는 건 너무 웃긴 일이예요. 전혀 적응할 수 없는 이상한 일입니다. 베를루스코니 Berlusconi [각주:2]가 관여하면 좋은 영화를 찍을 수 없는 겁니다. 하지만 독일의 젊은 감독들은 국가에 의해 지원을 받습니다. 어떻게 그들이 영화를 찍을 것 같습니까? 인터넷에서는 모두가 평등한 위치에 있을 뿐입니다.
 디지털 영화를 찍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단점이나 장점이 동시에 있죠. 오래된 책상 위의 컴퓨터들을 놓고 봅니다. 모든 게 중요하진 않아요. 필요한 건 가위 하나와 천장의 전구를 갈아줄 사람 뿐이죠.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영화들은 필름으로 된 것들입니다. 가끔 디지털 영화는 당신을 쉬게 할 만큼 충분히 빠른 점에서 멋진 것이죠. 음화된 이미지들과는 또 다른 걸 보여주죠. 하지만 모든 당신이 이용하는 디지털 영화들은 결국 당신을 소멸시킬 겁니다.  

뉴욕 독립 영화의 새로운 바람19_아벨 페라라Abel Ferrara_인터뷰(2)에 계속...


출처 : 99-101 쪽, cahiers du cinéma Nº 2011.9
기사 : Stéphane Delorme & Nicholas Elliott
불한번역 : Plongeur ( zamsoobu )


  1. Ira Sachs (b. November 21, 1965 in Memphis, Tennessee) is an American filmmaker. His first film was the acclaimed short Lady (1993). He directed Sundance Film Festival selection The Delta (1997) and directed Sundance Film Festival Grand Prize winning Forty Shades of Blue (2005). His latest film is Married Life, starring Chris Cooper and Pierce Brosnan. [본문으로]
  2. 언론사, 프로축구단 'AC 밀란' 등을 보유한 이탈리아 최대 재벌의 총수이다. 두 번 총리직에 올랐으나 뇌물수수, 불법 정치자금 운영 등으로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출처 : 네이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