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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4.14 인터뷰 라스 폰 트리에 Lars von Trier _ ⓐ

인터뷰 라스 폰 트리에 Lars von Trier _ ⓐ

모든 예상을 뒤엎는 이 영화감독과의 만남을 항상 고대해왔다. 그는 그의 영화를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고 고백할 지 모를 일이다. 라스 폰 트리에 Lars von Trier의 멜랑콜리아 Melancholia,라는 걸작을 보면 당황하는 동시에 영화를 지지하느라 말이 많아지게 된다.
 멜랑콜리아는 일부 덴마크에서 만들어진 영화로, 예상치 못하게 무거우며 설명을 필요로 한다. 첫 인상으로는, 침묵이 주제에 가까이 간 것인지, 또 영화 속 사각때문에 풍자가 살지 않았는지- 혹은 라스 폰 트리에가 우울한 이 영화를 낭만주의적으로 만들기 위해 성공적으로 변신했는지, 즉 다시 말해, 다른 영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차기작 : 포르노 영화)- 알기 어렵다.  처음 동기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결과가 곧 보일 것이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 어떻게 될 것인가?
 코펜하겐 공항에서 15분 거리의 Zentropa의 오래된 군사지역(참고. 스튜디오 방문은 Cahiers n'651참조.)에,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자택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스튜디오 가운데, 트로피가 진열된 벽을 뒤로 하고 모두 함께 오찬을 즐기는 공간이 마련되있었다. 다소 어지러운 가운데, 칸느의 황금종려상과 다양한 과거의 흔적과 함께, 킹덤The Kingdom 속 포르말린병이나 안티크라이스 Antichrist에 쓰였던 샤를로트 갱스부르Charlotte Gainsbourg의 욕조 주형틀도 있다. 모든 것들이 대혼란속의 분위기속에 매달려있다. 
 그 주변인들은 힘들게 작업한다 : 수잔느 비에 Susanne Bier [각주:1]는 그의 새 영화를 촬영중이다. 다른 영화프로젝트는 믹싱 중이거나 편집 중이다. 젠트로파Zentropa는 덴마크에서 가장 유명한 스튜디오다. 그러나 니콜 키드만 Nicole Kidman이 도그빌 Dogville의 촬영기간 동안 이 곳을 배회했다는 상상을 하기는 어렵다. 이 곳이 자급자족 체제를 갖추고 통신수단을 갖추었다고 보기에도 힘들다.
 감독은 어디에 자리잡은 것인가? 결국 그곳은 나무들 곁에 작은 방갈로이다. 그곳은 고요하며, 아무도 그를 찾지 않는다. 곰들이 동굴을 찾을 뿐. 바로 인근 오두막에서 토마스 빈터베르그Thomas Vinterberg[각주:2]의 사무실이 있다. 장소가 유난히 조용하다고 말하자, 폰 트리에가 웃는다 : 《아직 계단을 내려갈 힘은 있어요.》인근 건물안 목욕시설에 검은 상자형 구조가 눈에 띈다. 사우나시설인가? 전혀 아니다. 《Ken Russell[각주:3]상태 개조 Altered States(1980) William Hurt[각주:4]가 상자형 구조에 갇혔다가 원초적 인간으로 추락하는 것을 기억하나요? 난 항상 방음이 되는 상자형 구조를 사는 꿈을 꿨습니다. 거기에 7시간 동안 갇혀있었죠. 그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환영을 보게 되는 거죠. 》자, 여기 우울증이 있다. 그리고 감독은 그것을 현실과 분리시켜서 보다 무겁게 나타낼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모든 이야기는 이러한 확신에 찬 상태에서 이어졌다. 라스 폰 트리에는 무정하고 의심에 찬 눈초리를 가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감동적인 감독임이 확신하다. 그가 차기작에 배경음악으로 사용할 예정인 바흐의 일부를 언급하면 :《당신에게 그걸 들려줘야하는데!》그래서 음악을 조금 듣고나면, 상황은 반전된다. 그는 긴 시간 동안 분석하려는 것처럼 등받이 없는 긴 의자에 편하게 앉았다. 그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감정을 끌어내고 나눌 수 있었다.
 칸에서, 《벙커 안에 히틀러를 이해한다》라고 말하기 위해, 그는 영화제가 사랑하는 아이로써 굴욕적인 결정, persona non grata가 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가 28세에 만든 초기 영화 범죄의 요소 The Element of Crime(1984)가 경쟁부분에 올랐다.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그는 멜랑콜리아Melancholia를 좋아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아마 거기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큰 감흥을 주는 이 영화만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드리는 바이다.

영화를 언급한 기사에서, 감독님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
 네, 맞아요. 스스로를 돌아보면 우울증환자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정도의 차이가 있겠죠. 재미있는 건, 내가 좋아하는 예술, 내가 순수한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런 정신 상황에 연관이있다는 겁니다 : 재즈, 가스펠, 블루스예요. 영감이 아주 풍부한 분야죠. 난 우울증을 겪으면서 우울증[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melancholy》를 말했다기보다, 라틴어로 《멜랑콜리아 melancholia : 우울증 》말한 것이다]이 가진 긍정적인 면을 생각해요.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우울증에서 그렇게 멀리 가지 않았죠.

그렇게 멀리 가지 않았다구요? 감독님은 우울증의 무신론을 표현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작품 중에 가장 어두운 영화예요.
 어렵네요. 낭만주의를 코드로 사용하긴 했죠. 당신이 보았듯이 그런 의도였습니다. 하지만 두렵기도 했어요...영화가 너무 단순해질까봐요! 지금은 다른 작품을 쓰고 있어요. 아주 무질서하게 동시에 여러가지가 나타나면서, 일관성있는 내러티브가 없으니 이상할 겁니다.

멜랑콜리아 Melancholia 에서 무엇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잘 모르겠군요. 감정같아요. 영화가 무미건조한 것 같아요. 영화를 볼 땐 좋은데, 그게...내가 말하긴 어렵데요. 왜냐하면 영화를 끝내면서 극한까지 밀어붙이면서 청산해버렸거든요. 그래도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같은 것을 느끼고 통하는 사람들은 좋아할 거라는 건 압니다. 그게 중요한 거죠.

● 멜랑콜리아 Melancholia 는 이전 영화와 다른가요?
 네, 보다 진실된 영화이고, 누군가 다른 이가 할 수 있을 영화죠.

이상하군요...영화가 단순하다고 말하지만, 우울증은 단순하면서 전체적이죠. 우울증은 모든 것을 파괴하려 합니다.
 그래요,그래서 난 이 파괴를 표현할 방법을 찾아야했죠. 하지만 파괴는 보다 부드러워야했죠. 저스틴이 행성을 부르고, 그것이 다가오죠. 재난이 가진 부드러움이 있어요. 고통 속의 부드러움, 우울증의 하나의 상황이죠. 모든 것을 풀어놓으면서 모든 것을 파괴하죠. 톰 크리스텐슨Tom Kristensen 의 이런 시구가 있죠 : 《 우리에겐 조난, 대학살, 잔인한 죽음을 바라는 욕망이 있다》[두려움, 1930]. 그 시구를 완전히 이해합니다. 

덴마크적인가요?
바로 그래요! 덴마크는 무미건조한 나라입니다. 무슨 일이 벌어져야해요! 우울증은 재앙을 원하죠. 온화한 재앙이죠. 내 치료사 중의 한명이 우울증환자들은 재앙이 닥칠 때 매우 침착하게 행동한다고 하더군요. 왜냐하면 그런 종류의 상황을 늘 겪기 때문에 익숙하기 때문이죠.  

● 왜 우울증을 표현하기 위해 독일식 낭만주의를 다시 끌어들였나요?
 낭만주의와 우울증은 아주 다른 것입니다. 영화에서 이 두 요소가 충돌하는 걸 볼 수 있죠. 난 왜 바그너가 그토록 끌리는 지 잘 모르겠어요. 아시다시피, 내 영화들은 점점 아이들이 자신들 방에서 하는 것, 나무나 돌멩이조각을 이리저리 늘어놓는 것과 비슷해요 : 난 점점 내 영화들이 작은 전시회같아진다는 걸 느낍니다. 바그너 Wagner 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Tristan and Isolde 오페라는 항상 내 선반에 있어요.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프루스트Proust 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를 읽고나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주곡이《최극점의 예술작품》이란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연출을 할 때, 이 낭만주의와 영화에 영감을 받은 거죠 : 특별히 비스콘티가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이탈리아쪽보다는 독일에 가깝죠. 각각의 영화는 낭만적이고, 우울증의 완곡한 표현이예요. 난 그 둘을 분명히 다르게 했죠. 내 영화에선 음악이 거의 쓰이지 않는데, 바그너의 테마는 몽환적으로 하려는 의도로 사용하고 있어요 : 그의 음악은 아주 독특한 신체적 감각을 일깨워요. 마치 되돌아오는 파도처럼요.

테렌스 멜릭 Terrence Malick감독의 뉴월드 Le Nouveau Monde 를 보셨나요? 그 영화는 영국식 낭만주의에 영감을 받았지만, 프롤로그에 바그너의 린강의 황금 을 사용했던데요?
 네. 그 당시에 봤어요. 재미있더군요. 낭만주의는 주류 영화를 벗어나 과도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주의깊게 봐야해요. 그래서 겉치레가 심하게 되곤 하죠.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주 일반적이죠.

● 무대 장식도 낭만주의적입니다. 성은 마치 셰익스피어를 연상케하구요. 어떻게 바다를 마주한 거대한 공간에 플랫한 장식을 하기로 하신건가요, 행성이 충돌한 후에 파괴되는 모습을 더욱 효과적으로 담기 위한 것이었나요?
 모두 다른 영화들에서 차용한 겁니다. 해안지대 만에 있는 성은 안토니오니 Antonioni [각주:5]  의 밤 La Nuit(1961)에서 참고한 거죠. 훔친 게 다지만, 그렇게 작품이 만들어지는 거니까요. 요리를 할 때도 마찬가지죠 : 바그너 조금, 독일식 낭만주의에 안토니오니를 섞는 겁니다. 그 요소들이 직접적인 관련은 없어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니까요.
 내가 어려웠던 점은 부르주아지의 결혼장면을 찍는 거였어요. 헐리우드 상업영화같았죠. 다행히, 이야기는 상업적이지 않았지만. 난 항상 타인이 단순하게 하는 어떤 것들에 반대하려 해요. 그게 내 이론이죠. 그래서 상업적인 면이 있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야기가 시작되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니까요.

감독님은 장르를 넘나듭니다 : 첫 부분은 로맨틱 코미디였다고 두번째 부분은 재난 영화로서요.
 맞아요! 나도 알고 있어요. 팝아트에서부터 무언가 다른 것으로 바꾸어놓곤 하죠. 그래서 다음 영화인 I Am a Nymphomaniac 에서는 색채가 아주 강한 작품이 될 겁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생각할 수도 있죠. 얼마나 재미있을지! 재미있을거예요! 한 여성의 성생활사인데, 탄생에서부터 50세까지 다룰 예정이죠.
 지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를 읽고 있어요.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도. 이 작품들은 내러티브를 따라 쓰여진 이야기가 아니란 점에서 아주 독보적입니다. 특히 프루스트가 그래요. 324쪽에, 게르망트가의 곂에서 Le côtés  du Guermantes 에서, 같은 저녁에 두번의 초대가 충돌하다가 두 페이지가 넘어가면, 또 그 충돌이 사라지죠. 꿈을 꾼 것처럼요! 장 으슈타슈 Jean Eustache [각주:6]엄마와 창녀 La Maman et la Putain 을 다시 봤어요. 바로 그런 스타일의 영화죠. 아마 난 실수한 걸겁니다. 많은 영화를 본 건 아니란 걸 고백해야겠군요. 사람들은 모두가 내러티브를 따라야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아름다움은 이러한 내러티브가 있을 때 멀어져가는 겁니다. 나중에야 생길 수 있겠죠. 토마스 만 Thomas Mann 은 중요한 인물이 2주 먼조 죽으면, 독자는 읽기를 멈추면서 이렇게 말한다고 했어요 : 뭐야? 영화로 만드는 게 더 낫겠는데. 난 내 남은 생에 동안 그것을 파헤칠 생각입니다. 지금은 장편영화를 하고싶어요. 8시간 러닝타임의 영화를 만들겠다고 할지도 모르죠. 독서에 취미를 붙이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멜랑콜리아 Melancholia 는 어떤 책에서 영감을 받은 겁니까?
 아무것도요. 동안 술을 많이 마셨어요. 그리고 멈췄죠. 더이상은 불가능해보였어요. 그래서 술을 마시지 않는 밤은 굉장히 길었는데, 다시 책을 들고 읽기 시작했죠! 차기작은 하드 포르노hard porn 넌센스nonsens 가 가득한 하드 필로소피 hard philosophy 가 될 겁니다. 크로키수첩에 적어놨죠. 멜랑콜리아 Melancholia 은 가장 나 다운 영화일 겁니다 ; 차기작은 가장 퇴폐적일 것이구요. 
 실제로 창부와 만나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죠. 재미있더군요! 모두 내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 위험은 섹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위험과 금기요. 신작에 대해 말하지 못해서 유감이군요. 하지만 내 진수는 그런 겁니다! 말할 수 있는 건, 에 완전히 전념하고 있다는 겁니다. 낭만주의자로 사는 건 행복한 일이예요. 거품 위의 거품이죠 ; 아마도 그렇기에 기쁨이 넘쳐나는 걸겁니다.

● 이건, 변태적 성욕인가요!
 네 , 다행히!


                                                           --------------------------#ⓑ에 계속

멜랑콜리아 MELANCHOLIA
프랑스, 덴마크, 스웨덴, 독일, 2011
연출, 각본 : 라스 폰 트리에 Lars von Trier
촬영 : Manuel Arlberto Claro
Molly M.Stensgaard
Kierten Dunst, Charlotte Gainsbourg, Kiefier Sutherland, John Hurt,
Charlotte Rampling, Alexander Skarsgard, Stellan Skarsgard
Zentropa, Slot Machine
Les Films du Losange
2h12
2011.10.10



출처  :  CAHIERS DU CINéMA
기사  :  Stéphane delorme
번역  :PLONGEUSE ( 잠수부 )
  1. Susanne Bier est une réalisatrice danoise née à Copenhague, Danemark le 15 avril 1960. [본문으로]
  2. Thomas Vinterberg, né le 19 mai 1969 à Copenhague, est un réalisateur, scénariste et producteur de cinéma danois.Il est l'un des promoteurs du Dogme95. [본문으로]
  3. Ken Russell, né le 3 juillet 1927 à Southampton et mort le 27 novembre 20111, est un réalisateur, scénariste, acteur, producteur, monteur et directeur de la photographie britannique. [본문으로]
  4. William Hurt, né le 20 mars 1950 à Washington D.C., est un acteur américain. [본문으로]
  5.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Michelangelo Antonioni, 1912.9.29~] 요약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인간의 정신적 교류의 불확실성과 고독감 등을 주제로 하여 작품을 만들었으며 이탈리아영화의 신경향을 대표하는 제1인자가 되었으며 1960년대 전반의 세계영화를 이끌었다. 《정사》, 《밤》, 《태양은 외로워》등의 3부작을 연출했다. 국적 이탈리아 활동분야 영화 출생지 이탈리아 페라라 주요작품 《정사》 《밤》 《태양은 외로워》 본문 페라라 출생. 볼로냐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R.로셀리니 감독 작품 《비행사 돌아오다》(1942)의 시나리오에 협력하여 영화계에 투신하였다. 1943년 프랑스의 M.카르네 감독 작품 《악마는 밤에 오다》의 조감독을 지낸 뒤 돌아와 단편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1950년부터 장편영화 첫작품 《어느 사랑의 기록》에서 개성을 보여 주었다. 1953년 《동백꽃을 가지지 않은 부인》, 1957년 《유랑(流浪) Ilgrido》을 비롯하여 《정사(情事)》(1959), 《밤 La Notte》(1961), 《태양은 외로워 L'éclipse》(1962) 등 3부작을 연출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인간 상호의 정신적 교류의 불확실성, 사랑의 불안정성, 고독감 등을 공통 주제로 하여 독특한 스타일을 전개함으로써 작품마다 성가(聲價)를 높여 이탈리아영화의 신경향을 대표하는 제1인자가 되었고 1960년대 전반(前半)의 세계 영화를 이끌어갔다. 1964년 《붉은 사막 Il Deserto Rosso》으로 첫 색채영화를 만들었고, 그 밖의 작품으로 영국에서 제작한 《욕망 Blowup》(1966), 《사구(砂丘) Zabriskie Point》(1970) 등이 있다. [출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Michelangelo Antonioni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
  6. Jean Eustache, 1938.11.30~1981.11.3] 요약 1960~70년대 프랑스의 영화감독으로 누벨바그 이후 프랑스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으로 꼽힌다. 주요 작품은《나쁜 친구들》,《산타클로스는 파란 눈을 가졌다》,《페삭의 처녀》등이다. 대표작 《엄마와 창녀》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영화(감독) 출생지 프랑스 아키텐주(州) 지롱드 데파르트망(Department) 페삭 주요수상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1973) 주요작품 《나쁜 친구들》(1963), 《산타클로스는 파란 눈을 가졌다》(1966), 《페삭의 처녀》(1968·1979), 《엄마와 창녀》(1973) 본문 1938년 11월 30일 프랑스 아키텐주(州) 지롱드 데파르트망(Department) 페삭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초 고다르(Jean-Luc Godard) 밑에서 조감독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오랫동안 파리 젊은이들의 삶과 관련된 영화를 만드는 데 주력하였다.1963년 첫 중편영화 《로빈슨의 집》을 감독하고, 같은 해 《나쁜 친구들 Bad Company》로 제목을 바꾸어 개봉해 여성을 유혹하는 두 젊은이의 이야기를 통해 누벨바그 세대의 새로운 미학적인 감독으로 떠올랐다. 1966년 파리 시내를 배회하는 젊은이들의 일상을 개인적인 시선으로 그린 《산타클로스는 파란 눈을 가졌다 Santa Claus Has Blue Eyes》에 이어 1968년과 1979년에는 《페삭의 처녀 The Virgin Pessac》 다큐멘터리 연작을 발표해 가장 고결한 처녀의 선발과정을 미학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대표작으로 꼽히는 《엄마와 창녀 The Mother and the Whore》는 1973년에 개봉되었는데, 68혁명 이후 프랑스 젊은이들의 허탈과 절망을 성과 예술에 대비시켜 표현한 영화로, 같은 해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작품이다.17년 동안 장편영화는 단 2편 만들었지만, 누벨바그 이후 프랑스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고집하면서 개인적인 작업을 주로 해 오던 중 1981년 갑작스런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밖의 대표작으로 《나의 작은 연인들 My Little Lovers》(1974), 《불쾌한 이야기 A Dirty Story》(1977)와 마지막 작품인 《알릭스의 사진 The Photos of Alix》(1980) 등이 있다. 2003년 8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장편·단편을 포함한 7편의 영화가 특별전으로 상영된 바 있다.[출처] 외스타슈 [Jean Eustache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