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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6.15 작가와 매춘부

작가와 매춘부

Mémoires de l'inachevé

(1954-1993)

Verticales

 

Jean-Luc Henning

그리셀리디스, 매춘부 Grisélidis , courtisane

Verticales

 

■ 현 시대에 두드러지는 여류 작가들의 목록에서 아마 이 사람들은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콜레트 Colette [각주:1] , 시몬 드 보부아르 Simone de Beauvoir[각주:2] , 아나이스 닌 Anaïs Nin [각주:3], 비올레뜨 뒥 violette leduc[각주:4], 마그리트 뒤라스 Marguerite Duras  , 위니카 Unica Zürn [각주:5], 가브리엘 위트콥 Gabrielle Wittkop [각주:6] ...나는 1974년에 발간된 흑색은 색깔이다 le Noir est une couleur , 그리고 상상의 길목 la Passe imaginaire , 무도회의 기록 Carnet de bal d'une courtisane , 나는 아직 살아있는가? Suis-je encore vivante?, 옥중일기 Journal de prison , 그리셀리디스, 매춘부 Grisélidis , courtisane , 그리고, 1981년에 출간된 Jean-Luc Henning 의 미완의 기억 Mémoires de l'inachevé 을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점이 좋지 않다. 이 중 그리셀리디스, 매춘부 Grisélidis , courtisane 에 는 남창출신의 작가와 장-뤽 헤닝 Jean-Luc Henning 이 제네바에서 가진 긴 담화가 실려있다. 그리고 지금 동일 출판사인 Verticales 에서 같은 편집자에 의해 미완의 기억 Mémoires de l'inachevé 란 제목으로 재발간 되었다.

 이번에 재판된 책에는, 작가가 지인들에게 보낸 서문들을 선별하여 수록하였다. 작가란 모름지기 양질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 뿐 아니라, 작품과 정황을 놓고 그 사이에서 계속하여 쓰기를 멈추지 않아야한다. 과연 플로베르 Flaubert [각주:7]나 셀린 Céline 의 서한은 그들의 작품에 견줄 수 있는가? 그리셀리디스의 이 문서들은 2005년 5월 31일 그녀의 사후 발견 되었다. 제네바의 작은 아파트에서, 4명의 자녀들이 발견하여 이브 파제 Yves Pagès 에 의해 제시되었다. 그의 자서전만큼이나 강한 힘과 폭력, 그리고 어둡고 강렬한 섬광을 지니고 있다.

 《 이집트의 꼬마 악마(그녀의 아버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스위스학교를 운영하였다) 》라고 불리며 문학계에 충격을 불러일으킨 이 사건은 사실 작가가 실제로 매춘부였다는 점에 있다. 화자의 역활은 여기서 주요하다. 그리고 아르토 Artaud [각주:8] , 브레통 Breton [각주:9] , 바타이유 Bataille [각주:10], 쥬네 Genet [각주:11] , 밀러 Miler [각주:12], 베게트 Beckett [각주:13] ,보봐르  Beauvoir [각주:14] , 사르트르 Sartre [각주:15] ...우리는 술에 취한, 광기의, 섹스에 열광하는 한 여성, 무엇보다 한 매춘부에 의해 쓰여진 글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이 매춘부는 마치 고귀한 이름을 말하듯 자신의 상황을 노출한다. 《매춘부 !》.그렇다. 이것은 자신감이다. 게다가 4명의 아이까지 있다니! 보수적인 경찰 입장으로서는 최고의 페미니스트로써 두려운 존재일 것이다. 뭐라고! 자유로운 이 여성이 자발적으로 매춘을 선택했는가? 믿겨지지 않는 일이다!

 그렇다면 왜 그녀는 길거리를 떠난 지 48년 만에 돌아왔는가? 보다 더욱 자유롭기 위해서이다!

 그녀가 보기엔 매춘보다 더욱 억압된 이 사회에서 보다 자유롭기 위해서이다 ; 언제나 비극으로 이어졌던 그녀의 인생에서 보다 자유롭기 위해서이다. Journal d'une courtisane 는 또한 이렇게 시작한다 :《 나는 매춘부이다,/ 나는 과거에, 현재는 아니지만 매춘부였다. 더이상 거기로 돌아가지 않는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좇아가는 삶을 거절한다. 나는 자유다. 내 육신에 대해, 내 행동에 대해, 나의 정신에 대해 자유다. 내가 자초한 투쟁에 대해 자유이다[...] 날 거쳐간 남자들, 내 "고객들"은 마치 형제처럼, 마치 내 아이처럼 내게로 왔다. 반감은 없었다. 어떤 혐오나, 어떤 모욕, 그리고 폭력은 없었다[...] 한밤의 길거리에 나가서 나를 찾는 남자들에게 웃고는 하였다. 나는 그들을 사랑스런 눈빛으로 보았다. 난 남자들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찾기를 원했다. 바로 부드러운 모피 깃과 검은 가죽 외투 아래 가려진 흰 가슴이다. 그들이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을 준다. 바로 부드러움, 애무, 그리고 열락, 마음의 안정이다.》 1975년에 리옹지방 매춘부 연합집단과 파리시민들이 정치적 논쟁을 벌인 사건이 떠오른다. 당시《 혁명적 창녀 》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마음의 평정, 평화, 는 이 격렬한 사랑에 어울리지 않는다.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인 le Noir est une couleur 속 인물인 미국인인 로드웰 Rodwell 을 보면, 스위스에 수감되었음에도 1971년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상황은 이 젊고 아름다운, 교양있으며, 예술과 문학에 열정적인 여인이 여러해 동안 매춘을 했다는 사실 때문 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 매춘일을 하기 시작한 처음, 그리고 그 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친구들의 도움을 받을 떄 에는 지옥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 지옥은 부드러웠다. 그녀를 춤 추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면서 그녀는 이 것을 선택한 것이다. 술에 취하여 정신을 잃은 불량배의 폭력,그리고 밤새 드잡이로 인해 망가진 얼굴, 뽑힌 머리카락 , 욕설, 그리고 모욕 등...이 것은 사랑의 비밀이자, 마조히즘의 숨겨진 얼굴이다. 그렇다. 그녀가 이《 작고 검은 야수 》에게 보낸 타오르는 편지를 보면 이런 지시문구가 있다 :《 날 사랑으로 죽여주오 》, 《나를 묶어주오》, 《 내 마약이 되어, 내 독, 내 단검이 되어주오 》, 《 날 떄려요, 날 망가트려요》...이는 그녀가 가졌던 모든 기대를 충족하는 것 이상이었다. 그녀가 매춘부로 살아온 이래로 가장 크게 입은 손상이었다. 그녀의 애인인 앙리 Henri 는 실망한 채 사랑이 담긴 말투로 그녀에게 이렇게 썼다 :《 내가 욕망의 대상이었던 시간, 내가 사랑받고  내가 창부였던 시간을 후회해. 내가 존중받는 동시에 돈을 받던 시간을 후회해... 》이 단어는 책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단어가 아닌가? 동정심, 관대함, 사랑, 순수함. 장-뤽 헤닝 Jean-Luc Henning 은 Grisélidis, courtisane 의 개정판에 실린 후기를 보면, 《순수한 사랑》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 실제의 Grisélidis 마담 기용 Madame Guyon 인가? 이 이론은 변호가능하다. 그녀는 2009년 3월 9일 이전된 제네바의 국왕 묘지(그의 사후 4년 이전되어다) 앞에서 최후통첩을 말한다. 억눌린 감정, 역설, 열락이 뒤섞인 채 말이다. 제네바, 이 곳은 그가 모욕당하고 억압당했던 도시이다.《인간의 욕망을 거세당한》 칼뱅주의자들이 곳곳에 퍼져있는, 하지만 훌륭한 동반자이자 친구인 작가 보르헤스 Jorge Luis Borges 가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출처        :        artpress. #383. 2012.02

기사        :        jacques henric.

번역        :        PLONGEUSE (zasmoobu 잠수부) 작성일.2012.06.

 

 

 

 

 

 

 

 

 

  1. (1873-1954): 프랑스의 여류 소설가 [본문으로]
  2. [Simone de Beauvoir, 1908.1.9~1986.4.14] 요약 20세기 중반 프랑스의 실존주의 소설가·사상가. 사르트르와의 관계도 유명하다. 작품은《초대 받은 여자》,《타인의 피》,《레 망다랭》(공쿠르상),《처녀시대》등이다. 여성론《제2의 성》은 반향을 일으켰다.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프랑스 파리 주요수상 공쿠르상 주요저서 《초대받은 여자》(1943), 《피뤼스와 시네아》(1944), 《타인의 피》(1944), 《사람은 모두 죽는다》(1947), 《제2의 성》(2권, 1949), 《레 망다랭》(1954), 《처녀시대》(1958), 《여자의 한창때》(1960), 《어떤 전후》(1964) 본문 파리 출생. 소르본대학교 졸업. 1929년에 철학교수의 자격을 얻었다. 그때부터 사귄 사르트르의 영향을 받아 실존주의 철학을 익혔으며, 이를 사상과 행동의 기조로 삼았다. 교사생활을 몇 년 계속한 다음 작가생활에 들어갔으며, 1943년에 소설 《초대받은 여자 L'Invitée》를 내고, 1944년에 에세이 《피뤼스와 시네아 Pyrrhus et Cinéas》를 발표하였다. 이어 《타인의 피 Le Sang des autres》(1944), 《사람은 모두 죽는다 Tous les Hommessont mortels》(1947), 《레 망다랭 Les Mandarins》(1954, 공쿠르상(賞) 수상) 등의 소설을 발표했으며, 그녀의 왕성한 활동은 사르트르 못지않았다. 그후에는 자전적 작품인 《처녀시대 Mémoires d'une jeune fille rangée》(1958), 《여자의 한창때 La Force de l'âge》(1960), 《어떤 전후(戰後)》(1964)를 썼는데, 이들 작품은 프랑스문학에서 문제가 많던 시기의 귀중한 기록으로서 소설작품 이상의 재미를 지니고 있다. 에세이·기행문도 많으며, 특히 개성적인 여성론인 《제2의 성(性) Le Deuxième Sexe》(2권, 1949)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사르트르의 경우처럼, 보부아르의 집요한 논리 추구는 일관된 강점이며, 사상과 행동의 일치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 역시, 그녀의 문학활동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다. 50세를 지나서부터 쓴 작품에 자기반성의 그림자가 짙게 드러워지고 있는 것도 사르트르의 경우와 공통된다. 만년의 저작으로는 《아름다운 영상(映像) Les Belles Images》(1966), 《위기의 여자 La Femme Rompue》(1968), 《노년 La Vieillesse》(1969) 등이 있다. [출처] 시몬 드 보부아르 [Simone de Beauvoir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
  3. Anaïs Nin (Spanish pronunciation: [anaˈiz ˈnin]; born Angela Anaïs Juana Antolina Rosa Edelmira Nin y Culmell, February 21, 1903 – January 14, 1977) was a French-Cuban author, based at first in France and later in the United States, who published her journals, which span more than 60 years, beginning when she was 11 years old and ending shortly before her death, her erotic literature, and short stories. A great deal of her work, including Delta of Venus and Little Birds, was published posthumously. [본문으로]
  4. Violette Leduc (7 April 1907 – 28 May 1972) was a French author. She was born in Arras, Pas de Calais, France, the illegitimate daughter of a servant girl, Berthe. In Valenciennes, the young Violette spent most of her childhood suffering from poor self-esteem, exacerbated by her mother's hostility and overprotectiveness. She developed tender friendships with her grandmother Fideline and her maternal aunt Laure. Her formal education, begun in 1913, was interrupted by World War I. After the war, she went to a boarding school, the Collège de Douai, where she experienced lesbian affairs with a classmate and a music instructor who was fired over the incident.[1] In 1926, Leduc moved to Paris and enrolled in the Lycée Racine. That same year, she failed her baccalaureate exam and began working as a telephone operator and secretary at Plon publishers. In 1942 she met Maurice Sachs and Simone de Beauvoir, who encouraged her to write. Her first novel L'Asphyxie (In the Prison of Her Skin) was published by Albert Camus for Éditions Gallimard and earned her praise from Jean-Paul Sartre, Jean Cocteau and Jean Genet. In 1955, Leduc was forced to remove part of her novel Ravages because of sexually explicit passages describing lesbianism. The censored part was eventually published as a separate novella, Thérèse and Isabelle in 1966. Another novel, Le Taxi caused controversy because of its depiction of incest between a brother and sister. Critic Edith J. Benkov compares this novel with the work of Marguerite Duras and Nathalie Sarraute. [2] Leduc's best-known book, the memoir La Bâtarde, was published in 1964. It nearly won the Prix Goncourt and quickly became a bestseller. She went on to write eight more books, including La Folie en tête (Mad in Pursuit), the second part of her literary autobiography. In 1968 Radley Metzger made a film of Leduc's novel Thérèse and Isabelle. The film was a commercial feature about adolescent lesbian love, starring Essy Persson and Anna Gael. Leduc developed breast cancer and died aged 65 after two operations. She was living at Faucon, Vaucluse at the time of her death.[3] [본문으로]
  5. Unica Zürn, née Nora Berta Unica Ruth Zürn, le 6 juillet 1916 à Berlin-Grunewald, et morte le 19 octobre 1970 à Paris, est une artiste et écrivain allemande. Biographie[modifier] Unica Zürn est le second enfant de Ralph Zürn un journaliste voyageur et d’Helene Pauline Heerdt, issue d’une famille très fortunée. Après des études commerciales, elle est engagée, en 1933, comme sténotypiste aux studios de l’Universum Film AG de Berlin. Sa correspondance montre une existence frivole et pleine d’amitiés et intrigues amoureuses1. De 1936 à 1942, elle travaille comme scénariste et auteur de films publicitaires. Par sa mère qui a épousé Heinrich Doehle, en 1931, alors ministre d’Hindenburg avant de devenir un des hauts dignitaires du IIIe Reich, Unica Zürn est introduite dans la haute société nazie. En 1942, elle épouse Erich Laupenmühlen, un commerçant avec qui elle aura deux enfants2. En 1949, elle divorce et ses enfants sont confiés à la garde du père. Elle écrit des récits et des nouvelles pour les journaux, des contes radiophoniques et fréquente le milieu artistique. En 1953, Unica Zürn rencontre le plasticien Hans Bellmer à l'occasion d'une exposition organisée à Berlin. Elle l'accompagne à Paris où ils vivent dans une chambre rue Mouffetard (5e arr.). Bellmer la présente au groupe surréaliste. Elle commence ses anagrammes et dessins qui seront publiés sous le titre d'Hexentexte3 par la galerie Springer à Berlin. Cette même année, sa première exposition parisienne est organisée à la galerie Le Soleil dans la tête4, suivie d'une autre au même endroit en 19565. « Les dessins qui ont été vendus, ressemblent à peu près à ceci : le 1er était une sorte de lapin, avec des seins sur le buste, avec des os et dans le ventre un fantôme (encre de Chine noire). Le 2e était, comme l’a dit Hans, une sorte de « buffle-punaise » […] Le 3e était une « sole voyageuse » accolée à une pieuvre répugnante […] Le 4e était […] une sorte de gros bourdon, d’où émergeaient d’autres insectes6. » Unica essaie la peinture à l'huile mais abandonne rapidement pour ne se consacrer qu'au dessin. En 1957, elle rencontre Henri Michaux qui lui inspirera le personnage de « L'Homme-Jasmin ». À la suite d'une dépression nerveuse et d'une « crise » schizophrénique, elle fait un séjour à la clinique Wittenau. Elle fait une première tentative de suicide. Pendant une dizaine d'années, les crises alterneront avec des séjours en clinique, à Sainte-Anne à Paris (septembre 1961), à La Rochelle, à Maison-Blanche à Neuilly-sur-Marne (1966, 1969 et 1970). En clinique, elle dessine à l'encre de Chine et peint. En 1959, Unica participe à l'Exposition internationale du surréalisme de la galerie Daniel Cordier à Paris. Des photographies réalisées par Bellmer la montrant nue et ficelée paraissent en couverture de la revue Surréalisme. En 1963-19647, ses dessins sont exposés à la galerie Le Point cardinal. Le catalogue est préfacé par Max Ernst qui a également réalisé les invitations pour le vernissage. Entre 1963 et 1965, elle écrit Der Mann im Jasmin (L'Homme-Jasmin). En 1969, Hans Bellmer devient hémiplégique à la suite d'un accident vasculaire cérébral. Il restera dans un profond mutisme jusqu'à la fin de sa vie. Unica Zürn publie Sombre Printemps et est à nouveau internée à Maison-Blanche. Son état est si critique qu’elle ne peut plus dessiner ni écrire. Au début de 1970, elle est internée une troisième fois à Maison-Blanche. Elle rédige un journal de souvenirs intitulé Crécy et Livre de lecture pour enfants. Le 7 avril, elle écrit une lettre de rupture à Bellmer. Elle achève la rédaction de L’Homme-Jasmin, Vacances à Maison-Blanche, Rencontre avec Hans Bellmer et projette d'écrire L'Homme-Poubelle comme une suite à L’Homme-Jasmin. Autorisée à sortir de la clinique, elle se rend chez Bellmer et se suicide en se jetant par la fenêtre de son appartement. [본문으로]
  6. Gabrielle Wittkop, née Gabrielle Ménardeau1, est une écrivaine française née à Nantes le 27 mai 1920 et morte le 22 décembre 2002 à Francfort-sur-le-Main. Elle est l'auteure d'une littérature dérangeante, macabre, bien souvent au-delà de toute morale. Son style, ainsi que ses centres d'intérêt (thanatos, sexe, identité de genre, étrangeté) apparentent son œuvre à celles du Marquis de Sade, de Villiers de L'Isle Adam, de Lautréamont, d'Edgar Allan Poe, mais aussi de Marcel Schwob. Biographie[modifier] Elle rencontre dans le Paris sous occupation nazie un déserteur allemand homosexuel du nom de Justus Wittkop, âgé de vingt ans de plus qu'elle. Ils se marient à la fin de la guerre, union qu'elle qualifiera d'« alliance intellectuelle », elle-même affichant à diverses reprises son homosexualité affirmée2. Le couple s'installe en Allemagne, à Bad Homburg, puis à Francfort, où Gabrielle Wittkop vivra jusqu'à sa mort. Même si elle continue d'écrire en français, elle collabore à divers journaux allemands, dont entre autres le 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Soutenue et encouragée par son mari, historien et essayiste, elle développe son écriture en langue allemande, et publie plusieurs œuvres en allemand (notamment une biographie de ETA Hoffmann), qui ne sont à ce jour toujours pas traduites en français2. Son mari se suicide en 1986, alors qu'il est atteint de la maladie de Parkinson. Gabrielle Wittkop affirmera « Je l'y ai encouragé. J'ai raconté ça dans Hemlock2 ». Atteinte d'un cancer du poumon1, elle choisit la mort à 82 ans, en se suicidant le 22 décembre 2002. C'est du moins la version la plus répandue car des proches de l'écrivaine expliquent plutôt que la mort a devancé le suicide sans doute programmé. Sur la 4e de couverture des éditions posthumes : « J'ai voulu mourir comme j'ai vécu : en homme libre ». [본문으로]
  7. 플로베르 Gustave ~ (1821-80) ((프랑스의 자연주의 소설가)) [본문으로]
  8. 앙토냉 아르토 [Antonin Artaud, 1896~1948] 요약 프랑스의 극작가·시인·배우. 쉬르레알리슴 운동에 참가했다.《연극과 그 분신》(1938)에서 '잔혹의 연극'의 이론을 밝혔다. 전위극에 큰 영향을 주었고, 언어·예술의 전반에 관계되는 것으로서 높이 평가된다.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문학, 연극 주요저서 《연극과 그 분신》(1938) 본문 1920년 파리로 나가서 쉬르레알리슴(초현실주의) 운동에 참가하였다. 연극·영화계에서 활약하여, 1926년 극단 '알프레드 자리 극장'을 조직하였다. 때때로 엄습해 오는 정신질환으로 시달리면서도 창작 활동을 계속하여, 《연극과 그 분신 Le Théêtre et son double》(1938)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서로 투쟁하는 힘이라고 하여 '잔혹(殘酷)의 연극'의 이론을 밝혀, 연극은 대사뿐만 아니라, 몸짓·광선(조명)·음향 등의 종합적 효과에 의하여 관객을 집단적 흥분 상태에 빠뜨리고 무대와의 사이에 신비적인 일체감을 자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그의 이론은 훗날의 전위극(前衛劇)에 큰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근년에는 언어·예술의 전반에 관계되는 것으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주저로는 평론 《로데즈로부터의 편지 Lettres de Rodez》(1946) 《고흐, 사회적 자살자 Van Gogh ou le suicidé de la société》(1947), 희곡으로 《첸치 일족 Les Cenci》(1956) 등이 있다. [출처] 앙토냉 아르토 [Antonin Artaud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
  9. André Breton in 1924 Born 19 February 1896 Tinchebray, Orne, France Died 28 September 1966 Paris Occupation Writer Nationality French Period 20th century Genres Histories, poetry, essays Literary movement Surrealism Notable work(s) Surrealist Manifesto Spouse(s) Simone Kahn, Jacqueline Lamba, Elisa Claro Children Aube Breton -------------------------------------------------------------------------------- Influences[show] -------------------------------------------------------------------------------- Influenced[show] Surrealism Surrealist Manifesto Surrealist cinema Surrealist music Surrealist techniques André Breton (French pronunciation: [ɑ̃dʁe bʁətɔ̃]; 19 February 1896 – 28 September 1966) was a French writer and poet. He is known best as the founder of Surrealism. His writings include the first Surrealist Manifesto (Manifeste du surréalisme) of 1924, in which he defined surrealism as "pure psychic automatism". [본문으로]
  10. 조르주 바타유 [Georges Bataille, 1897.9.10~1962.7.9] 요약 20세기 중반 프랑스의 작가·사상가. 평생 무신론의 입장에서 인간을 구원할 통일원리는 무엇인가의 사색의 고투를 하였다. 서평 중심, 새로운 형식의 종합잡지《비평》을 창간했다. 작품은 《안구담》(1928),《무신학대전》등이다.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문학 주요저서 《안구담(眼球譚)》(1928) 《무신학대전》(2권, 1943∼1961) 본문 평생 무신론의 입장에서 인간을 구원할 통일원리는 무엇인가 하는 사색의 고투를 하였다. 미셸 레리스를 비롯한 친구들과 사회학연구회를 설립하거나(1936), 서평(書評) 중심의 새로운 형식의 종합잡지 《비평》을 창간한 것도(1946) 모두 이와 같은 입장에서 새로운 정신공동체의 수립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문학 ·철학 ·예술 ·사회학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죽음과 에로티시즘을 중심축으로 깊어져 간 사색은 《안구담(眼球譚)》(1928) 등의 처절한 에로티시즘 소설로, 또는 박력이 넘치는 《무신학대전(無神學大全)》(2권, 1943∼1961) 등으로 결실을 맺었다. [출처] 조르주 바타유 [Georges Bataille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
  11. 주네 [Jean Genet, 1910.12.19~1986.4.15] 요약 프랑스의 소설가·극작가·시인. 다채분방한 언어와 문체로 악과 성성 등의 가치 전환을 표현했으며 전위작가 중에서도 특이한 세계를 확립하였다. 《꽃의 노트르담》, 《발코니》등을 포함한 문제작, 이색작들을 만들었다.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문학 주요저서 《꽃의 노트르담》(1944) 본문 이름을 알 수 없는 아버지와, 가브리엘 주네라고 이름만 알려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공립 산원(産院)에 유기(遺棄)하였기 때문에 일찍부터 빈민 구제시설에서 보육되었다. 7세 때 프랑스 중앙 산악 지대의 북동부 르 모르방 지방 농가의 양자로 입양되었지만, 10세 때 절도죄로 소년원에 수용되었다. 각지의 소년원을 전전하는 사이 탈주하여 외국을 방랑, 독일에서는 남창, 에스파냐에서는 거지,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절도, 네덜란드에서는 마약 밀수를 거드는 등 밑바닥 생활을 하였다. 23세 때부터 여러 번 절도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그때마다 프랑스 국내 여러 형무소에서 복역하면서 시집 《사형수 Le Condamné à mort》(1942), 소설 《꽃의 노트르담 Notre-Dame des Fleurs》(1944)을 비밀 출판하였다. 1947년 절도죄로 종신 유형이 선고되자, 사르트르·보부아르·콕토 등이 대통령에게 청원, 형의 집행이 유예되었다. 1942년경에 작가 생활을 시작한 그는 소설 《장미의 기적 Miracle de la Rose》(1945∼1946), 《장례식 Pompes funèbres》(1947) 《브레스트의 논쟁 Querelle de Brest》(1947), 《도둑일기 Journal du voleur》(1949), 희곡 《하녀들 Les Bonnes》(1947), 《사형수 감시 Haute Surveillance》(1949)를 잇달아 발표하였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신의 경험을 주제로 한 그의 대담한 소설은 초기에는 비밀 출판을 통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다. 화려한 이미지와 웅변적인 서정에 넘친 그의 작품은 악을 찬미하고, 악을 미의 근원으로 삼는 절대적 배덕의 세계이다. 사르트르의 평론 《성 주네, 배우 겸 순교자 Saint Genet, comédien et martyr》(1952)가 간행되자,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그 후에는 《지아코메티의 아틀리에 L’Atelier d’Alberto Giacometti》(1961) 등의 에세이 외에 극작에 전념하고, 《발코니 Le Balcon》(1956) 《검둥이들 Les Nègres》(1958) 《병풍 Les Paravents》(1961) 등 문제작을 발표하였다. 다채분방(多彩奔放)한 언어와 문체로 오욕과 영광, 악과 성성(聖性)의 화려한 가치 전환을 전개하여, 전위작가 중에서도 특이한 세계를 확립하였다. [출처] 주네 [Jean Genet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
  12. 미국의 작가. 뉴욕 주(州) 요크빌 출생. 브루클린에서 자랐다. 부모는 독일계. 뉴욕 시립 대학을 퇴학하여 온갖 직업을 전전하면서 서부를 방랑하고 돌아와 그레니지 빌리지에서 술장사를 하며 작품을 쓰기 시작, 1930년 파리로 가서 10년 동안 가난한 국적 상실자의 생활을 했다. 첫 장편 《북회귀선 Tropic of Cancer(1934)》은 그를 하루 아침에 유명하게 했으나, 대담한 성(性) 묘사 때문에 미국에서의 출판은 근 30년 후인 1961년에야 허락되었다. 다음 장편 《남회귀선 Tropic of Capricorn(1939)》도 첫 장편처럼 미국에서 발매 금지됐고, 해제된 것은 1962년 이다. 후자는 뉴욕의 청년 시대를 다루고 전자에서는 파리의 보헤미안 생활이 다루어졌다. 그의 《회귀선》 소설은 육체적 또는 정신적 위험율 찾아서 편력하는 작가의 면모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1940년에 뉴욕ㆍ1942년에는 캘리포니아의 빅서에 정착, 이후 미국 문명을 비판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성의 세계》ㆍ《냉방 장치가 된 악몽(1945)》ㆍ《추억하기 위하여 기억하라(1947)》 등이 그것이다. 이후의 주요 작은 3부작 《장미빛 십자가》로 제1부는 《색서스(1949)》ㆍ제2부는 《플렉서스(1953)》ㆍ제3부는 《넥거스(1960)》이다. 이것은 《회귀선》 소설을 대규모로 확대한 자전적 소설이지만 대담한 성의 묘사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획일화된 미국의 악몽같은 문명에 억눌린 인간성의 해방을 주장하는 그의 낙천적 문명론을 소설화한 것이 《장미빛 십자가》 3부작이다. 《빅서의 예언자》로서 비트의 문학 운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작품 1936 검은 봄 1941 마로웃시의 신인(-臣人) 1948 사다리 밑의 미소(-微笑) 1952 내가 읽은 책 1956 암살자의 시간 1958 [에세이] 빅서와 헤로니무스 보시의 오렌지 [본문으로]
  13. 사무엘 베케트 [ Samuel Beckett ] 글자크기보통 크기로 보기크게 보기가장 크게 보기 1906∼1989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로 전위적인 소설과 희곡을 발표하였다. 사뮤엘 베케트는 1906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출생해서 더블린의 트리니티칼리지를 졸업하고, 파리의 고등사범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있다가 귀국하여 모교의 프랑스어 교사로 근무하였다. ■ 작품 활동 1938년 이후 프랑스에 머물면서 영문 ·불문의 전위적인 소설과 희곡을 발표하였다. 처음에는 영어로 시집 「호로스코프 Whoroscope」(1930), 에세이 「프루스트론」(1931), 소설 「머피 Murphy」(1938) 등을 발표하였으며, 1945년 이후는 프랑스어로 집필하였다. 3부작의 소설 「몰로이 Molloy」(1951),「말론은 죽다 Malone meurt」(1951) 등을 발표하였으며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En attendant Godot」(1952)의 성공으로 일약 그 이름이 알려졌으며, 앙티테아트르(anti-theater)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리고「이름 붙일 수 없는 것 L’Innommable」(1953)은 누보 로망(nouveau roman)의 선구적 작품이며, 그 외에 희곡 「승부의 끝 Fin de partie」(1957) 「오, 아름다운 나날 Oh! Les beaux jours」(1963) 「연극」(1964), 모노드라마에 「최후의 테이프」(1960), 소설에 「일에 따라 Comment C’est」(1961) 등이 있다. 그는 그의 전 작품을 통해 세계의 부조리와 그 속에서 아무 의미도 없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절망적인 인간을 묘사하였다. [본문으로]
  14. 시몬 드 보부아르 [Simone de Beauvoir, 1908.1.9~1986.4.14] 요약 20세기 중반 프랑스의 실존주의 소설가·사상가. 사르트르와의 관계도 유명하다. 작품은《초대 받은 여자》,《타인의 피》,《레 망다랭》(공쿠르상),《처녀시대》등이다. 여성론《제2의 성》은 반향을 일으켰다.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프랑스 파리 주요수상 공쿠르상 주요저서 《초대받은 여자》(1943), 《피뤼스와 시네아》(1944), 《타인의 피》(1944), 《사람은 모두 죽는다》(1947), 《제2의 성》(2권, 1949), 《레 망다랭》(1954), 《처녀시대》(1958), 《여자의 한창때》(1960), 《어떤 전후》(1964) 본문 파리 출생. 소르본대학교 졸업. 1929년에 철학교수의 자격을 얻었다. 그때부터 사귄 사르트르의 영향을 받아 실존주의 철학을 익혔으며, 이를 사상과 행동의 기조로 삼았다. 교사생활을 몇 년 계속한 다음 작가생활에 들어갔으며, 1943년에 소설 《초대받은 여자 L'Invitée》를 내고, 1944년에 에세이 《피뤼스와 시네아 Pyrrhus et Cinéas》를 발표하였다. 이어 《타인의 피 Le Sang des autres》(1944), 《사람은 모두 죽는다 Tous les Hommessont mortels》(1947), 《레 망다랭 Les Mandarins》(1954, 공쿠르상(賞) 수상) 등의 소설을 발표했으며, 그녀의 왕성한 활동은 사르트르 못지않았다. 그후에는 자전적 작품인 《처녀시대 Mémoires d'une jeune fille rangée》(1958), 《여자의 한창때 La Force de l'âge》(1960), 《어떤 전후(戰後)》(1964)를 썼는데, 이들 작품은 프랑스문학에서 문제가 많던 시기의 귀중한 기록으로서 소설작품 이상의 재미를 지니고 있다. 에세이·기행문도 많으며, 특히 개성적인 여성론인 《제2의 성(性) Le Deuxième Sexe》(2권, 1949)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사르트르의 경우처럼, 보부아르의 집요한 논리 추구는 일관된 강점이며, 사상과 행동의 일치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 역시, 그녀의 문학활동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다. 50세를 지나서부터 쓴 작품에 자기반성의 그림자가 짙게 드러워지고 있는 것도 사르트르의 경우와 공통된다. 만년의 저작으로는 《아름다운 영상(映像) Les Belles Images》(1966), 《위기의 여자 La Femme Rompue》(1968), 《노년 La Vieillesse》(1969) 등이 있다. [출처] 시몬 드 보부아르 [Simone de Beauvoir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
  15. 장 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 1905.6.21~1980.4.15] 요약 프랑스의 작가·사상가. 시몬 드 보부아르와 평생 반려했다. 철학논문 《존재와 무》(1943)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입장에서 전개한 존재론으로,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시대 사조를 대표한다. 노벨 문학상 수상을 거부하였다.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프랑스 파리 주요수상 노벨문학상(1964) 거부 주요저서 《존재와 무》(1943) 본문 1905년 6월 21일 파리에서 출생하였다. 2세 때 아버지와 사별하여 외조부 C.슈바이처의 슬하에서 자랐다. 아프리카에서 나병 환자의 구제사업을 벌여 노벨평화상을 받은 A.슈바이처는 사르트르 어머니의 사촌이다. 파리의 명문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에 다녔는데, 동급생 중에는 M.메를로 퐁티, E.무니에, R.아롱 등이 있었다. 특히 젊어서 극적인 생애를 마친 폴 니장과의 소년시절부터의 교우는 그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평생의 반려자가 된 시몬 드 보부아르와의 해후도 그 때의 일이다. 졸업하고 병역을 마친 후 프랑스 북부의 항구도시 루아브르의 고등학교 철학교사가 되었다. 이 포구는 후일 《구토 La Nausée》(1938)에서 묘사된 부비르라는 도시의 모델이라 한다. 1933년 베를린으로 1년간유학, E.후설과 M.하이데거를 연구하였다. 저서 《자아의 극복 Transcendance de l’Ego》(1934) 《상상력 L’Imagination》(1936)은 당시 사르트르의 현상학에 대한 심취가 낳은 철학논문이다. 1938년에는 소설 《구토》가 간행되었는데, 존재론적인 우연성의 체험을 그대로 기술한 듯한 이 작품의 특수성은 세상의 주목을 끌어 신진작가로서의 기반을 확보하게 되었다. 1939년 9월 참전하였다가 이듬해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으나, 1941년 수용소를 탈출, 파리에 돌아와서 문필활동을 계속하였다. 장편소설 《자유의 길 Les Chemins de la liberté 》(1945∼1949)의 대부분과 《시튀아시옹 Situations》(1947∼1965)에 들어 있는 수많은 독창적인 문예평론도 전시하의 산물이었으나, 특히 1943년에 발표한 대작 철학논문 《존재와 무 L’Ëtre et le Né ant》(1943)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입장에서 전개한 존재론으로서 결정적인 작업이었고, 세계적으로 보아도 제2차 세계대전의 전중부터 전후에 걸친 그 시대의 사조를 대표하는 웅대한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는 노작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메를로 퐁티 등의 협력을 얻어 《레탕모데른 Les Temps Modernes》지(誌)를 창간하여 전후의 문학적 지도자로서 다채로운 활동을 시작하였다. 사르트르의 문학적 주장은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L’Existentialisme est un humanisme》(1946)에서 밝혀 두었는데, 그가 말하는 ‘문학자의 사회 참여’란 그 이전의 《구토》나 《존재와 무》에서 볼 수 있었던 니힐리즘의 그림자가 짙은 세계관과의 사이에 비약을 느끼게 하는 것이어서, 그 사이에는 역시 전쟁의 체험에 따른 사르트르 자신의 주체적 변화가 있었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전후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사르트르의 발자취는 이른바 ‘사회참여’ 사상으로 일관해온 것이라 하겠으나, 특히 1940년대부터 1950년대에 걸쳐 그는 그 때까지의 개인주의적인 실존주의에 의한 사회참여의 한계를 인정함과 동시에 더욱 경향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생 주네 Saint Genet》(1952)는 《도둑 일기》의 작가 주네의 평전(評傳)이다. 《변증법적 이성비판 Critique de la raison dialectique》(1960)은 그의 사상적 발전을 보여 주는 노작인데, 현대의 마르크스주의자가 동맥경화증에 빠져 있는 양상에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자기모순적인 경향성으로 말미암아 오래 전부터 친교를 맺어 왔던 친구들이 계속하여 떠나게 되었고 마지막에는 카뮈와도 절교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사르트르는 전쟁 중에도 많은 극작을 발표하여 호평을 받은 바 있는데, 《파리 Les Mouches》(1943) 《출구 없음 Huis-clos》(1944) 《무덤 없는 사자 Mort san sépulture》(1946) 《더럽혀진 손 Les Mains sales》(1948) 《악마와 신 Le Diable et le Bon Dieu》(1951) 《알토나의 유폐자들 Les Séquestrés d’Altona》(1959) 등은 그 사상의 근원적인 문제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그 때마다 사르트르의 사상을 현상화한 것으로 주목된다.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하였다. [출처] 장 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