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에르하르트 발터 FRANZ ERHARD WALTHER
FRANZ ERHARD WALTHER
1960년대 여러 작가들 중에서도 프란츠 에르하르트 발터는 가장 평가절하된 이들 중의 한명이다. 그의 작품은 다의적이며 도그마에 반하여 지난 50여년간 다양한 미학을 펼쳐보였다. 명상과 행동, 투영행위와 사용행위 사이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그의 모습을 뉴욕의 Dia : Beacon 에서 2월 13일까지 볼 수 있다.
■ 그의 작품을 말하기 전에, 우선 명백한 사실을 밝혀야겠다. 1939년에 태어난 프란츠 에르하르트 발터는 1969년 태도가 형태로 이어질 때 Quand les attitudes deviennet forme 에 참여하며 뉴욕의 MoMA 에서 제니퍼 리히트 Jennifer Licht 의 Spaces 전시가 열리는 같은 해 전시를 하였다. 발터는 1967년 이후 아이너 프리드리히 Heiner Friedrich 가 지지하고, 쾨니히 König 형제가 발굴한 첫 작가이다. 그리고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의 게르하르트 리히터 Gerhard Righter , 지그마 폴케 Sigmar Polke 등에 의해 지지를 받아왔다. 바넷 뉴만 Barnett Newman 과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에게 매료되어 정착한 뉴욕(1967-1973)에서 발터 드 마리아 Walter de Maria , 리차드 아트슈와거 Richard Artschwager, 폴 텍 Paul Thek , 로버트 라이만Robert Ryman 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 발터의 명성은 수그러들었다. 21세기로 돌아서면서 세계적으로 관계의 미학이 대두되면서 그의 보다 스펙타클한 작품을 되살아나revival 고 있다.
시초
대중에 참여를 유도하며 그는 일찍이 독립적인 행보를 이어갔기 때문에, 발터는 청년작가라 할 수 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초기에 그는 이 《태도》로 시작한 주요 작가들 중 한명이다. 그는 생성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생동하는 조각》을 상기시키는 모습과 언어로, 탈물질적인 화법을 구사하며, 관객들이 표현을 뛰어넘어 다른 예술적 맥락을 작품에 투영하도록 하엿다. 발터는 당시에 결정이나 행위, 그리고 영감들을 헤아려보지 않는 첫 예술가였다. 그는 밀어붙였다 : 《작품의 다른 개념》, 1964년과 1967년 사이에, 뒤셀도르프에서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1950년대 말부터 이러한 태도의 작업은 점점 무르익기 시작했다. 황금기에도, 지면에 그려진 작품조차도 확실한 목표의식이란 없었다. 이미 완성된 《정수》에 다다르면 될 뿐.
실현가능한
1962년《망막》에 복종하는 작품에서 《실현가능한》논리로 이어지면서 관객은 여전히 발터의 작품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특히 그가 조작하는 방식에 대해서 그렇다. 작가는 단지 모더니티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로 반하기보다, 《후기-회화》라고 불리는 추상에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프랭크 스텔라 Frank Stella 와 같은 미니멀리즘과는 거리를 두었다. 1963년, opus magnum 의 기폭제로, Weksatz[ 1st Workset ] 은 그의 완숙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969년 완성된 50여개의 조각의 이 작품은 1960년대 예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든 페티시즘을 거부하며 인공물로써, 작품 속의 불안한 요소들을 변환가능한 오브제들로 바꾸어놓았다. 하나. 혹은 여러 관객들이 반응하며 작품을 함께 완성해나갔다. 작가의 첫 약혼자가 만든 직물류 위에 작가들은 시간들이 각각의 의미들을 가지도록 구상하였다.
사용가능한, 하지만 체계적이지 않도록 사용가능한, 것이었다. 발터는 끊임없이 그의 작업이 모든 임시적인 가능성을 열어놓고, 두개의 대척점을 놓고 투영한다는 점을 역설한다(1). 로렌스 바이너 Lawrence Weiner 의 최고의 유명한 말을 빌자면, 발터의 작품은 관객들에 의해 사용되면 안되었지만,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발터는 엉뚱하고 우연한 표현에 의심의 여지없이 선구자였다 : Lageform(la forme stockée) 이 그렇다. Werksatz 는 직물로 된 세포막에 뒤덮어, 그것을 나무로 된 궤짝에 갇혀놓았다. 이러한 방어적인 형상에서 모든 형태들, 직물들은 별로 실현가능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보다 《개념적》으로 보인다- 관객들이 작품에서 다른 점을 기대하므로-. 역설적으로 매우 견고한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결국 심사숙고한 부분은 나타나지 않았다. 작가는 Werksatz의 제작 이후에, 수많은 뎃셍을 구실삼아 종이 위에 드러눕는다( Werkzeichnungen ). 발터는 작품에서 부차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결코 작품에 그의 스타일, 그의 방식이라고 굳혀질 위험이 있는 뎃셍을 하지 않는다. 결코 Werksatz 를 약화시키거나 그의 생각들을 제한하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작품들을 확장시키며, 1960년대 으레 지적되어온 유사한 작품들의 부류에서 멀어지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도날드 저드 Donald Judd, Michael Fried 처럼 말이다. 발터의 작품이 독보적인 것은, 그가 관객의 위치선정 뿐 아니라, 분기점과 확장점까지 고려하여 복합적으로 작품을 발전시키며 간단히 규정지을 수 없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WerkNach 이나, Planzeichnungen(2) 를 보면 불규칙적인 간격을 볼 수 있다.
문턱에서
Werksatz 이후에, 그는 이러한 규칙에 정면으로 맞섰다. 건축적, 공간적, 조각적인 시야를 견지하면서 1970년대 작품들은 대조법을 적극 따르고 있다. 그리고 1980년대 예술가들은 Formations murale 에 매달렸다. 매력적인 자태로, 마지막 작품들은 공공연히 그 가시성을 수용하였다. 《벽체 위 구성》이라고 부르며, 공간에 작품을 구성하였다 :《 현재의 인물들이 그에 마주할 수 있도록 하였다. 바로 인체의 비례에 맞추었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그 앞에 놓인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놓이게 되었다[...]. Formation murale 에서 광학적 경험이 조각적 경험을 유도하도록 경계의 색다른 감각을 느끼도록 하였다. 물론 관객들은 외부에 있으면서 내부의 공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어떤 작품들은 이렇게 가상의 신체적 경험을 표현하며 어떠한 직접적인 신체의 참여를 유도하지 않는다[...]. 경계의 문턱에 있으면서 이러한 신체적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점차적으로 작품에 도달할 수 있다. 작품을 계속 지켜만보는 것은 분명히 불합리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되돌아보며, 작품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외부에서 그것을 응시한다. 내 상상 속의 오브제가 되면서, 동시에 그것을 외부에 투영할 수 있는 것이다(3) 》
그림 소설
이런 경계의 위치선정은 불규칙적인 그의 작품과 정확히 일치한다. 지난 50여년간 이어져온 미학의 범주를 거부하고, 예술가의 권위를 거부하면서 다의적 작품을 해오고 있다. 그는 심사숙고하며 선택하지 않으려는 자신의 의지(Das Neue Alohabet [1990-1996])를 강조한다. 이러한 거부는 우리에게 2009년 발간된 그림 소설을 연상케 한다. 제목은 Sternenstaub (Star Dust) 이다. 이 작품에서는 195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의 미국과 유럽미술의 전개를 발터의 여정에 겹쳐서 말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그는 현대예술에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에게 어떤 확신을 준다. 아주 중요하면서 근원적인 어떤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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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RTPRESS #386. 2012.02
기사 :Erik Verhagen
불한번역 :PLONGEUSE (zamsoobu) 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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