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란 무엇인가?-(1)

세계화? 국제화 ? 부정적인가? 긍정적인가?
20여년 동안, 현대예술계는 이 현상을 피할 수 없었다. 여기에 6인의 예술계 종사자들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 이 큰 바닷뱀을 놓고 진지한 답변들을 싣는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전문을 읽을 수 있음. artpress.com ) 

【1】당신에게 예술계에서《세계화》란 단어는 어떤 의미인가? (문명의 귀결인가? 상업적 수요인가?) 어떤 지역적 한계가 있을 수 있을까?
【2】세계화는 긍정적 효과를 불러오는가, 아니면 부정적 효과를 불러오는가?
【3】세계화로 인해 당신이 작업하는 방식이 달라졌는가, 어떤 영감을 불러오는가? 
【4】세계화로 인해 독특한 작가들이나 작품들이 나타나는가 아니면 국가별 문화를 모사하는 것인가?  

니콜라 부리오 Nicolas Bourriaud
전시기획자. 비평가 (RADICANT, 2010, Denoël )

 

【1】세계화는 《현 시대》가 꼭 필요로 하는 정치적-경제적 분할의 움직임이다. 달리 말해 우선적 가치와 자본의 논-스톱으로 순환하는 현재 필수적인 것이다. 나라나 지역에서 점선으로 나눠지는 지리적 한계는 일시적이다. 세계화는 마르크스가 가리킨 상품교환에 대한 약한 저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무엇보다 경제적인 움직임이다. 여기에서 정치세력계층은 탈세계화(지역화)를 꿈꾸고 있다. 이런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나며 나름의 미학을 구축하고 있다 : 문화적 네트워크와  통로 구축, 실험집단, 연구협회 등등. 세계화의 상상은 현대화의 그것처럼 대륙간과 상관이 있다 : 단일화와 조직화, 블록화는 그 기준들을 견고히 하고 있다.

 더 이상 포스트모더니즘적으로 이항으로 나눌 수 없게, 일회성, 형태, 이야기들은 이러한 문화적 《토양》에서 복사되거나 부정되거나 한다. 그것은 이제 독특한 민족주의의 얼굴로 자유롭게 《문화적 정체성》을 뛰어넘고 모든 모더니티의 향수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나는 이러한 현상을 내 저서 RADICANT 에서《모던화의 분신》이라고 언급한바 있다.

 【2】1988-198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비-서양의》(당시에 상황적으로 일본이나 중앙아메리카나 남아메리카 보다 덜 알려진 )예술가들이 소개되고, 예술계에 세계화가 처음 태동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Magiciens de la Terre 에서 극동지방의 자유 교류의 문이 열렸다. 이로써 예술계에서 제 2의 포스트모던( 《신》운동이라던가 트랜스-아방가르드 라던가 )의 시대가 오고 단지 지리적으로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사라졌다. 
 미학적 영역에서 후기-식민주의, 달리 말해  이념의《해빙기》가 오면서 몇가지 이로운 효과가 나타나긴 하였다. 그러나 이역시 오늘날 미학적 상황을 유동적으로 재배치하는 것 이상의 효과는 없었다. 작가들을 보면, 그들의 《다름》을 무기로 20여년 간에 걸쳐 두각을 나타냈다. 즉, 그들의 위상을 민속적으로 보도록 하면서이다. 이국적인 컨셉의 마케팅은 이제 예술시장에서 주요 전략이 되었다. 본질적으로 우리가 어떻게든 맞서야 하는 움직임인 것이다.

【3】Magiciens de la Terre 을 기획하면서 그 때 artpress지에, 그리고 Mash Art 지에 대단한 성과를 바라진 않는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세계화의 현상들을 이론화시킬 수는 없다. 단지 객관적인 비평적 시선을 유지할 뿐이다. 그리고 브루노 라투흐[각주:1] 《반- 대칭구조의 관계성》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세계화의 대한 대안으로 모더니티가 급부상할 수도 있다. 또는 세계적으로 사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재분할 효과로 포스트 모더니티의 종말을 부를 수 있다 : 소작농/ 소유주, 북쪽/남쪽, 등등. 이러한 모더니티의 가설은 20세기 초기에 나타난 서양의 《진보》에 대한 신화에 반대된다. 그리고 이 가설은 시-공간의 복합성을 가리킨다 ; 중심 이미지가 다중화되거나, 다양한 형태와 질문들이 오늘날의 주요한 형식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반反-대칭》의 생각은 모든 것을 동일 선상에 놓고 보는 것으로 단일화된 세계와 정체성에 대한 저항이다. 작가들은 이에 흥미로워하며, 그래서 나는 RADICANT 를 쓰게 된 것이다 : 그들은 고정된 인종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인종으로 속하도록 창조하며, 방법적으로 전진해나간다. 그들은 태생적 토대에서 인간과 한 예술가로써 생각한다. 즉, 작가들에게 세계화는 《문화적 정체성》이나 그의《출신》, 혹은 그의 혈통이기 이전에, 각 나라 특유의 모습이나 형태를 떠날 수 있는 포스트 모더니티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4】나는 예술을 어느 지역에서 구성된 조직이 아니라, 하나의 포탄으로 여기는 것이 좋다 ; 비평가로써, 나는 작가들의 국적보다 작업에 있어서 그 행보를 따르는 편이다. 탄도학 전문가로써, 나는 작품들을 좇으며, 그들이 아우르는 풍경을 본다. 모든 작품들은 분기점이 있다 : 그의 연대기에서 대척되는 부분이 있다. 모든  《문화주의자》. 《문화적》표현을 예술의 주제로 삼는 현상들을 보며 나는 다양함을 위해 투쟁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내가 진짜 묻고 싶은 게 있다 : 우리는 동일성으로 후퇴한 개념인 시민의 개념을 바라는가? 그리고 보다 폭넓게, 예술적 실험은 작가들의 고유성에서 유래한 것인가, 반대로 정체성을 위해 그의 상황을 글로벌하게 바꾼 것인가?

예카테리나 드고 EKATERINA DEGOT
비평가, 2001 베니스 비엔날레 러시아관 큐레이터

【1】 현대 예술계에서, 세계화는 수출-수입-세계적 전시로 유명해진 신진작가의 등장, 신흥 시장으로 인한 예술 체계의 확장(비엔날레 같은)으로 상징된다. 이런 과정이 최근에 대규모로 이뤄지면서 전통적 예술전시의 흐름을 급격히 바꾸어놓았지만, 이 것이 자본의 세계화에 대한 합리적 대안이라고는 할 수 없다. 또, 우리는 이 것이 신자유주의의 이동을 지지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과정은 선택한 예술작품의 목록에서 검토 사항 이상이 아니다. 아프리카나 오세아니아 작가들도 순전히 서양의 범주- 조형적 일관성, 《비평적》태도의 유지, 에 속한다. 그리고 민속적 표현을 유지하면서도 그들의 개인 출신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모더니즘을 지엽적으로 확장시키려고 해도, 《세계 예술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그리스-로마 기독교  미학의 전통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이는 감상자가 작품들을 질적인 면에서 다르게 보도록-오브제가 아닌 공간에 주요 역점을 둔, 조형적 가치보다 그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리고 저자의 개념이 아니라 작자 미상의 것으로 남겨두는  -한다. 나는 그래서 이런 미학적 한계를 지리적 한계( 주로 시장에서 결정되는 ) 보다 우선시한다. 왜냐하면  《다름의 인식》은 현재까지도 19세기의 이국풍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2】 긍정적 효과는 분명히 드러난다 : 작가들에게 보다 기회가 많아진 것이다 ; 정형화된《다양성》의 개념으로 탄생한 《세계적》전시들은 부정적인 효과를 낳았다. 문제는 이 《다양성》의 문제가 현재 반 사회적- 시장과 연관해서 내부적으로- 인 슬로건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때문에 일반 대중 속 《내부 소비자》의 입지를 강화시키게 되었다. 장-위베르 마탱Jean-Hubert Matin 가 기획하고, Against Exclusion 이라고 이름붙인 제3회 모스코 비엔날레에서는 러시아 사회가 관용을  받아들이기를 기도하였다. 이 비엔날레에서는 타인이란 개념-《타인의 또 다른 것》-을 거부하였다. 《러시아의 다름》과는 매우 다른 프랑스의 다름(혹은 유러피안)을 받아들이도록, 그리고 그동안 전시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던 작가군(코카서스의 소수, 구 소련 연방국, 우크라이나 등등. )들을 부른 것이다.
  
【3】세계적 비엔날레에서 나는 10-15여년간 유럽적이지 않은 수많은 흥미로운 작가들을 발굴하였다. 특히, 중동지방, 북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지방의 작가군들에 매혹되었었다. 또, 동부유럽과 구 소련연방국 의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의 작품 속에서 정치적, 문화적 맥락은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처럼 그렇게 드러나지 않았었다. 이런 연유로 이러한 지역들과 모스코바 사이의 끊임없는 비평적 대화(예를 들어 인터넷 잡지에 내 글을 기고함 )의 물꼬를 트는데 힘썼다. 그리고 역사로 예술의 기준을 한정짓는 데에 맞섰다. 모스코바는 세계화의 첫 도시이다. 잃어버린 세계성은 이러한 관계에서 찾을 가능성은 아주 크다. 나는 이 것이 예술가들이 매료되는 《다양성》이나 《다름》을 재확인하는 작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관심사는 이렇다 : 아주 개인적인 반응, 슬프거나 기쁜, 《모더니즘화의 실패》적인 형태들이다. 아마 그 안에 러시아 적인 게 있지 않을까? 아니면 유대인적인 것? 무엇이든, 나는 그 장대한 물결을 타고 있다. 

【4】예술 시장은 이런 민족적이면서 지역문화의 전형성을 원하고, 미술관들은 그 반대다 ; 어떤 진보적 정치세력들은 이러한 국가정체성의 신화를 강조하는 데 반해. 현실에서, 모든건 바뀌고 있다. 역사적 구실도 다시 재정의 되고 있다. 세계적 맥락에서 개인을 받아들이는 현상은 비 유럽지역의 작가들과 전시기획자들에게서 나타난다. 이런 조건과 상황-독재정부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으로 인해 그들은 자신들의 조국을 떠나기도 한다. ■
                                                                                    프랑스어 번역 : Stéphane Ro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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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55-64 쪽, ARTPRESS 379.
번역 : PLONGEUR (zamsoobu )
  1. (1947.7.22-)프랑스 사회학자이자 인류학자.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