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독립영화의 새로운 바람_4_조쉬 앤 베니 사프디Josh & Benny Safdie_(1)
브로드웨이에 있는 사프디 형제의 스튜디오에서 그들을 만났을 때, 다음 작품 언컷 정스 Uncut Gens 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중이었다. 이 시나리오를 후원자들에게 보내야 했다.《그들은 샅샅이 훝어보기 때문에, 가장자리에까지 신경을 쓰고 있어요.》 사프디형제는 2008년부터(조쉬 사프디는 The Pleasure of Being Robbed, 베니 사프디는 단편 The Acquaintances of a Lonely John) 계속 작업을 거듭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신선함을 유지하고 있다. 천진함, 우아함과 지성을 모두 아우른다. 그들이 미국 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변하였다 : Lenny and the Kids(2009) 는 L.A에서 열린 Film Independent Spirit Awards 에서 Jhon-Cassavetes 존 카사베츠상을 수상하고 상금으로 50만 달러를 받았다. 미국 독립영화계의 태풍의 눈이 된 것이다. 그들은 보다 이제 큰 예산으로, 스타를 기용하여 영화를 만들려 한다. 물론, 자유로움을 잃지 않고. 빈센트 갈로가 그들에게 합류할 예정이다.
그들의 스튜디오(좁은 의미로 스튜디오임 : 단칸방)은 온갖 잡동사니로 넘쳐난다 : 벽에는 우디 알렌의 Zelig 가, 천장에는 Lenny and the Kids 의 아이가 Pleasure of Being Robbed 의 곰과 맞붙어있다. 조쉬는 미술관을 개방할 프로젝트를 말했다. 그리고 또 다른 프로젝트, 종이상자를 뚫고 나온 철로 된 묘목을 설치(마치 도로 청소부의 빗자루같아 보이는)하려 한다. 한편, 9월 11일 비행 중에 재난을 당한 비행기의 날개를 전시할 계획이다. 행인들을 위한 포토존photo shoot이었다가 이후에 Lenny and the Kids의 DVD판에 보너스로 확인할 수 있다. 이제 곧, 회오리가 몰려온다.
●Red Bucket Films 제작사를 언제 차리셨나요?
Benny Safdie : 고등학교 때, 내 친구인 알렉스 칼만 Alex Kalman과 함께 차렸을 땐, 회사가 아니었다. 웹사이트에 몇 영화들의 목록만을 올리고 있었죠. 우리 침실이나 자주가던 아지트에서 촬영한 영화를 《배급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어요. 학교 친구들이 함께 했죠. 우린 후원자가 필요하단 걸 알았어요.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우린 서로 역활분담을 했어요.
●첫 단편은 개인자금으로 찍었나요?
B.S : 네, 저축한 게 좀 있었죠. 지난 해 찍은 John's Gone 도 마찬가지예요. 영수증 처리가 남겠지만, 적어도 자유가 있으니까요. 우리가 유일한 주인이죠. 사람들은 왜 우리가 후원자를 찾지 않는지 물었죠. 우리가 자란 동네 퀸스에서 John's Gone 을 찍었어요. 물론 그러고싶죠. 퀸스 거리를 비비원숭이와 함께 걸어다녔어요. Lenny and the Kids에서 종이 회오리바람도 그렇죠 : 행인들은 이런 모습들을 도시의 일부로 받아들였었죠. 길 위에서 찍는 건 아주 쉬웠어요.
●조쉬, The Pleasure of Being Robbed 를 찍을 당시 뉴욕 영화계는 어땠나요? 혼자라고 느꼈나요?
Josh Safdie : 난 뉴욕 영화계에 대해 잘 알지 못했어요. 그리고 고등학교나 단과대학에서 만난 3,4명의 친구들과 늘 영화를 찍었기 때문에 혼자라고 느끼지 않았죠. 앤디 스페이드Andy Spade 가 자금을 댔죠. 촬영 전에, 영화제에서 로니 브론슈타인을 만났어요. 그가 감독인 걸 미처 몰랐죠. 그의 얼굴에 단박에 빠져버렸어요. 그는 동영상 박물관의 영사기사 일을 하고 있었죠. 난 그에게 영화를 찍을 건데, 잘 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죠. 그는 내게 아주 중요합니다. 브론슈타인은 내게 인물들의 감정에 대해 너무 확신하지 않는게 좋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사람들을 대할 때 모든 반대되는 감정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죠. 그는 첫 편집에서 아주 쓴 소리를 했어요. 저로선 좋았죠.
왜냐하면 영화를 많이 보면서, 같은 생각을 하거든요. 숀 윌리암스Sean Williams 와 알렉스 페리 Alex Perry[카메라감독 과 The Colour Wheel ,2011 의 감독 ] 는 킴스의 비디오가게에서 일하고 있었죠. 엘레노어 헨드릭스 Eléonore Hendricks [ The Pleasure of Being Robbed 과 Lenny and the Kids 의 여배우] 은 시네마 놀리타 Cinema Nolita 에서 일했죠. 킴스의 비디오클럽이 문을 닫자 손님들이 다 거기로 갔죠. 나중에 우리도 거기서 일했죠. 숀 Sean, 제시카 오렉Jessica Oreck 의 동료들도 같이요. 그들은 나중에 Beetle Queen Conquers Tokyo(2009) 란 제목의 멋진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어요.
●현재 뉴욕의 젊은 영화감독 집단이 있단 걸 아시나요?
J.S : 난 시네마 놀리타에서 일하면서 집단에 대한 낭만주의적 생각에 회의적이었습니다. 가게에 늘 같은 사람들이 왔었죠. 아벨 페라라는 가끔 오구요. 일요일에 모두가 거기에서 내가 안 본 영화들을 보았죠. Go Go Tales (Abel Ferrara, 2007)의 편집본을 처음 보았죠. 로니는 가까운 친구가 되었죠. 우린 Lenny and the Kids 에서 함께 일했고, 그도 John's Gone 때에 우리를 도왔죠. 제이크 펠랭 Jake Perlin이 브룩클린에서 BAM-cinemaFest 를 조직했죠. 그는 이상주의자로써, 뉴욕의 영화인들을 모으길 좋아했죠. 피터 보그다노비치 1 의 tout le monde riait 같은 영화를 찍은 외지의 영화인들을 모두 초대하는 마술을 부렸죠. 거기에 Frownland의 카메라감독인 숀 윌리암스도 있었죠. 2만 편의 영화를 찍은 사람이죠.
이 공동체는 영화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감상적 그룹입니다. Two Lovers(James Gray, 2008) 처럼요. 영화를 보는 사람들을 촬영할 때마다 내가 알고있는 사람들이 생각나죠. 우린 대중이나 평단에서 저버린 모든 영화를 좋아했었어요. 멜로드라마죠. 창의적이기 때문에 영화를만든다, 아닙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팀으로 영화를 만들어요.
B.S : 소규모 팀으로 일하는 모든 이들이 아주 가깝다는 건 쉽게 이해가 가요. 하지만 우린 영화를 위해 각자 거리가 필요했죠. 각자가 중요한 가치가 있잖아요. 비슷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1,2명 이외엔 필요하지 않죠.
●영화 속 장면은 음악이나 조형예술과 관련이 있나요?
B.S : 깊게는 아니예요. 음악적 장면은 영화적 장면과 거리가 있지만, 거기엔 상호작용이 있죠. 예를 들어, 내 친구 후안이 The Beets 그룸에 그가 계획한 공연에서 스탠드업을 한다고 초대했어요. 난 그게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아리어니한 파티장면 같을 거라 생각하고 갔어요. 하지만 스탠드 업을 본 사람들은 내가 완전히 미쳐서 돌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날 싫어하더군요. 난 머리에 포마드기름을 바르고, 양복차림에 두개의 보따리를 지고 있었죠. 그리고 향수를 과하게 뿌리고, 농담처럼 말하지 않았어요 : 분위기가 싸늘해질 만한 질문을 했고, 거기에 진지하게 대답했죠. 사람들은 웃을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난 그들을 당황케하는 게 목표였어요. 어떤 공모나 관련이 없이 상황에 충실해서요.
뉴욕은 예술적 장면들이 개별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어보일 정도로 충분히 거대한 도시예요. 거기에서 우리는 방문객으로써 하고 싶을 때 다시 떠나면 되죠.
●당신의 작업에서 인터넷의 역활은 어떤 겁니까?
J.S : 너무 방대하죠. 내가 대학에서 Neistat 형제를 만나지 못했다면, 자금부족으로 두 장편을 만들지 못했을 겁니다. 텔레비전에 의해 영감을 받아 영화를 만들었죠. Holland Tunnel[맨하튼과 뉴저지를 잇는 긴 터널]에서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지나기 쉽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촬영을 했죠. 앤디 스페이스Andy Spage 같은 우리의 주요한 투자처를 소개해주었죠. 모든게 인터넷을 통해서입니다. 우리 웹사이트에서 일을 분담하는 셈이죠. buttons버튼을 클릭하면, 우리 작업노트를 모두가 볼 수 있죠. 지금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어요 : 인터넷은 영구적 도서관입니다. 하지만 소셜 네트워크는 안해요.《마이스페이스 시네마》를 하면 좋겠지만, 별로 할 이야기가 없어서요.
●앤디 스페이스가 Lenny and the Kids 의 주요투자자인가요?
B.S: 2명의 미국인 투자자가 있었어요. 톰 스캇 Tom Scott 과 앤디 스페이스 였죠. 소피 듈락Sophie Dulac도 역시 투자했어요. 우린 35mm로 바꾸기 위해 돈이 좀 필요했거든요. Lenny and the Kids는 보기보다 돈이 많이 들었어요. 자연스러운 분위기 연출하기 위해 많이 애썼거든요. 예를 들어 수상스키 시퀀스에서죠. 우린 수상스키를 타면서 노래를 부르는 이미지를 원했어요. 플로리다로 가서 배를 사고 등록하고, 흑인의 스키어를 찾았죠. 모든게 영화의 30초를 위해서였어요! 또 아기나 원숭이를 위해 비싼 몸값을 치렀지만, 그때문에 영화는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었죠. 비현실적 환상과 현실적 특징들 사이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가능한 평범하게 접근해야 했습니다.
<뉴욕의 새로운 바람-5 에 계속>
출처 : 71- page, cahiers du cinéma 2011.9
기사 : Stéphane Delorme & Nicholas Elliott
번역 : Plongeur ( zamsoobu )
기사 : Stéphane Delorme & Nicholas Elliott
번역 : Plongeur ( zamsoobu )
- [Peter Bogdanovich, 1939.7.30~] [출처] 피터 보그다노비치 [Peter Bogdanovich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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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4. 16.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