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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12 어느 날 기차가 연착되던 날

어느 날 기차가 연착되던 날

 

 

 

 중앙선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회기역에 서있던 오후 12시 즈음.

영하의 날씨에 모두들 기차 꽁무니라도 보일까 연신 플랫폼 저너머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모두 약속 시간을 놓칠 까 조바심이 나서가 아니라, 기차 안의 텁텁하지만 따뜻한 온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듯 했다.

 

십여분이 지나자 안내방송이 나왔다.

"성북 역 에서 사상 사고가 있으므로 기차가 연착되겠습니다. 승객분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밖으로 내뱉진 않았지만, 사람들의 짜증 섞인 불만이 들리는 듯하면서도, 문득 '사상사고'라는 말에 궁금증과 불안 따위가 생겼다.

 

 

이리저리 핸드폰을 만지느라, 시간이 30여분이 지난 지도 몰랐는데 기차가 왔고, 사람들은 뒷꿈치를 누가 채가기라도 할 듯 얼른 차량에 올랐다.

 

손잡이를 잡고 다시 핸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려는 찰나, 앞 자리의 할머니들이 자신들이 본 사상사고를 말하는 듯했다. 아주 격앙된 목소리로.

이 추운데 자신들을 몇십분이나 밖에서 떨게 했다면서. 얼마나 민폐냐며 전화기에 누군가에게 불만에 가까운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초면인 듯한 옆자리의 할머니와 자신들이 겪은 30여분의 불편으로 몇십년지기보다 가까운 사이가 된 듯 하였다.

 

그 '사상 사고'는 자살 사건인 듯하였다. '들것'이란 단어가 그런 심증을 확실히 굳혀주었다.

 그 '사상자'는 이 할머니들의 불편을 고려해서 1호선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지 않고, 도심으로부터 떨어진 벼랑을 수소문 해서 꾸역꾸역 찾아간 다음에, 그 위에서 떨어져야 했을까. '치사율이 높은 거리의 벼랑', '자살 바위' 란 검색어로 위치를 알아서 찾아가야 했을까. 아니면 조용히 집에서 허리띠에 목을 매거나, 손수 지핀 연탄가스를 마셔야 했을까.

누군가에게는 몇십분의 민폐이겠지만, 그 사람에게는 인생을 마감하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자신이 억울하다고 말이라도 내뱉겠지만, 그 사람은 이제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할머니가 남들은 속으로 삼키는 말들을 자신이 겪은 불편함에 대한 호소가 너무나 정당하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듯, 계속, 끊이지 않고, 더 큰 목소리로 전화를 하는 통에 몇 십분 추위에 시달린 것보다 나는, 더한 역증이 일었다.

 

집에 와서 검색을 해보니, '그 사상자'는 50대 남성이었으며, 짧은 몇 줄의 기사가 났을 뿐이었다. 연예인이 방송에서 한 마디라도 하면, 몇 페이지의 기사가 줄줄이 쏟아지는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