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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15 이브 미쇼 Yves Michaud

이브 미쇼 Yves Michaud

 이브 미쇼는《왕성한 식욕》을 가진 다양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철학은 미학을 심화시키기 위해 사용된다. 또 그는 철학자 Ferran Adria 를 존경한다. 화학의 식도락을 가진 그는 예술과 요리라는 전시테마로 도큐멘타 카셀 Documenta de Cassel (2007)에 초대된 유일한 쉐프였다. 직업의 경계를 넘어,《예술가》이기를 주창하며 카탈로니아의 황폐한 해안가에 식탁을 차려놓고, 음향적 경험을 유도한다.

 자, 이브 미쇼가 관심을 두는 것은 현재의 예술을《경험》의 일종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개념, 간섭, 태도, 그리고 분위기등이 섞여 시각적으로 작품을 더욱 격정적으로 보이게 한다. 《식도락은 예술이다, 오랫동안 부당하게 평가절하된 분야이다》라는 말로 충분히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이는 또한《예술의 증발》의 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엔 비평적 시선이 있으며, 또 이는 《일상을 구성하는 총체적 경험》중에서도 미각적 경험같아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히포크라테스의 물은 목욕탕의 수증기로 변한다. 또, 건축, 디자인, 광고, 문신, 빛, 음향, 대중적 관광 등의 모든 것이 쾌락설을 사고하는 데 계기가 된다 : 《예술은 어디에나 있다》라고 주창하며, 그는 루소에 의해 정형화된《모든 감각의 각성》을 꾀하는 것 뿐이다. 3월 Nil출판사에서 다음 도서의 출간에 앞서, 그는 미학적 인류학을 다룬  Ibiza 의 한밤의 생애 에 헌신하고 있다 : 거대한 무도회장, 테크노(작가는 이전부터 DJ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엑스타시와 섹스의 흔적들- 그리고 일시적인 예술들...

 

신체의 미학

 이브 미쇼에게는 밝은 얼굴, 반짝반짝 빛나는 눈, 전염성의 웃음, 명석한 논쟁이 있다. 볕에 그을린 자국, 그리고 건강한 신체의 실루엣, 금발의 머릿카락 등의 외모로 라탱지구의 한 교수같은 외양을 가지고 있다. 분명히, 그는 자신의 건강한 몸을 위해 체육관을 다니고 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나는 우선적으로 예술애호가이고, 표준화된 미학을 혐오합니다. 나는 "거품상태"같은 예술의 개념을 오랫동안 만들어내려했습니다. 나는 굴절을 거듭하며 작업하기를 원합니다. 카탈로니아 관광을 다룬 여럿 심포지움에 4-5년간 응답을 해왔습니다. 경험을 만드는 것에 대한 문제였지요. 나는 그런 공식을 찾는데 시간을 들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예술을 예술적 경험으로 다루는 데 관심을 두고 있죠. 》

《뒤샹 Duchamp 은 이런 것을 예술적 행위로 도달하는 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행위를 보편화시켰죠. 예술가들이 값비싼 재료들을 이용하려고 할 정도로요. 데미안 허스트는 해골에 다이아몬드를 쓰면서 뒤샹의 변기에 반대했죠. 사실적으로, 다른 건 없습니다. 모든 것은 점차적으로 모든 오브제들은 설득력을 가지고 있죠. 모든 세상은 레디 메이드죠. 》또한, 우리의 현대 도시를 구성하는 것은《분산된 감각들》일 수 있다. 보다 이론적인 작품으로, 너무나《취약한》활동이 위기로 무너지지 않도록 하면서, 그는 천칠백억 유로를 누적하는 데 이르렀다. 그리고 수천억대도 마찬가지로,《경험》의 범주로, 그리고《패킹》의 범주로 끌어들이고 있다. 재료가 없는 예술은  J.-K.Huysmans 의 반대 À rebours 의 활기없는 미학,  장 데 에센트 Jean Des Esseintes 의 기상천외한 유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상징하지 않는다. 철학, 미학적 오브제는 반-의지에서 나타날 수 있다. 그는 개념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잘 알고 있다. 무수한 현상을 포용하면서,《정의하기 어려운》것을 제기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효과들을 탐색하면서, 시적 은유에 도달하면서, 그리고 제일 안좋게하더라도 《애매하게》하면서.

 바바라 크루거 Babara Kruger 는 《판매 중인 창작가다》. 마르세이유 출신인 Decaux 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작가지.》그는 퐁피두 센터 앞 무용수이다. 센터 내부의 공연들보다도 더 감동을 주는 연기를 펼치는 그이다. 생-쥘리엥 Saint-Julien 의 음유시인의 정신을 이어가며, 그는 단호히 거절한다 : 《나는 예술가가 아니다. 나는 요술쟁이이다!》 미쇼는 《공간을 신성화하는》방법을 이용한다. 그래서《법적으로 공식화하며》역사란 분야를 넘나든다. 퐁피두 센터는《양로원》으로 평가한다. 현재는,《미술관은 관광 코스로 이용된다》라고 그는 말한다.

 

 

 

 

 

 

   앎의 즐거움

  그는 도구를 단순화시키는 것을 존중하며, 영화적이면서 추상적인 점을 취향으로 가진다. 어렵지 않게,안 베로니카 얀센 Ann Veronica Janssens 의 빛의 물결을 찾을 수 있다. 프란시스 알리스 Francis Alÿs[각주:1] 는 복합적형상의 파편들을 이동시킨다. 테레사 마르고예스 Teresa Margolles 은 멕시코식 건방진 태도로 작업을 하며, 여분의 시체의 다룬다. 또, 더불어 알랭 클레멍 Alin Clément , 토니 그랜드 Toni Grand , 블라디미르 Vladimir Velikovitch , 클로드 비알라 Claude Viallat , 그리고 색채에 빠져있는 여럿 작가들을 언급하며 남부의 태양과 연결짓곤 한다. 《맞다, 난 1970년 중반에 현대예술을 발견했다. 쉬포르-쉬르파스 Supports-Surfaces[각주:2] 의 화가들에게서 말이다. 나는 색을 사랑한다. 나는 또한, 간단명료한 예술을 사랑한다. 마티스의 잘라진 종이들이 감동을 주던 시기에 있던 그들이다.》 보디아트가 덕을 본게 있다면, 그건 퍼포먼스와 무용의 영향일 것이다.

 모든 것은 극적인 자유로움과 호기심을 지닌다. 고등미술학교 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 arts[Ensba] 에서 그는 명망있는 감독이었다. 작가이자 전직 교수였던 Jan Voss 는 이렇게 회고한다.《내가 그에대해 쓸때면, 그는 곧바로 응답을 해오곤 했고, 우린 계속 교류했었습니다. 다른 대부분의 예술사학자들이 우리에게 소우주의 개념을 잘 설명하지 않는 데 반해, 그는 모든 것에 이런 개념을 도입하려했죠. 난해한 스타일로 키워나가는 다른 이들과는 반대로 현대예술을 보다 , 쉽게 모두가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다. 》 이는, 피에르 레스타니 Pierre Restany 의 이미지를 두고《예술 비평》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모든 것을 보는 것, 전체적으로 보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이브 미쇼는 또한 좌파적 활동에 참여하였다. 그의 블로그에는, 《패거리》에 가까운 사르코지의《움직임》에 신랄한 독설을 남긴다. Ségolène Royal 당파에 참여하며 그는 프랑수아 올랑드 François Hollande [각주:3] 의 말마따나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는 Nouvel Obs. 의 거짓정보를 믿지 않는다. François Fillon 나 Valérie Pécresse 를 평가절하하지는 않는다. 혹은 Bertrand Delanoë 의 도시 정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프레데릭 미테랑 Frédéric Mitterand 에게서 그는《매력》을 느끼긴 하지만, 거의 신경쓰지는 않는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고등미술학교Ensba의 니콜라 부리오 Nicolas Bourriaud 의 지지와 메디치의 Éric de Chassey 가 명명한 데에 축하를 받고 있다. 여기에서 문화 기술의《무능》을 말하기에는 단어가 충분치 않다. 그리고 《예술적 생애의 아카데미》도 마찬가지이다. 해외에서 프랑스 작가들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그리고 수다스럽고 세속적인 예술등이 문제로 남긴 하지만.《내가 보기엔, 소피 칼 Sophie Calle 이 시적인 정서를 가지지 못하고 그저 진열로만 그친다면, 그건 완벽한 두려움이다》. 어쨌든, 그는 말한다. 《국가란, 끝을 맺었다. 진정한 원천은 각각의 개인이다. 문화소비로 5백억을 투자하는 가정이 있는 반면에, 국가가 일년에 문화분야에 측정하는 예산은 70억에 불과한다》.

 이브 미쇼는 규정되지 않는 이미지를 위해 투쟁한다. 그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Piero Della Francesca 의 수태한 마리아에 매료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많은 예술애호가들과 토스칸의 젊은이들에게 추앙을 받아왔다. 프레스코화는 Monterchi 묘지의 교회에서 분리되어 있다. 《그의 은신처에서 나와》, 폐쇄된 교내의 보호용 유리벽 뒤에 자리를 잡았다. 이를 두고, 《앞일을 조심하다가, 과거의 단순명료함을 잃었다》고 말한다. 이 상징적인 눈사태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의 한 사건과 닮아있다. 역사학자 마크 푸마롤리 Marc Fumaroli 는 《현대의 종교》라고 고발한, 또는 장 클레어 Jean Clair 가 《문화의 혹한기》라고 상징적으로 비유하였다. 이 분리된 영역들은 이브 미쇼가 보기에는, 최종적으로는 비관주의나 낙관주의로 흘러갈 것이다. 얀 보스 Jan Voss 는 말한다 : 《그는 매우 즐겁게 예술을 취한다. 그가 앎의 즐거움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Yve Michaud 이브 미쇼

 

1944    리옹 출생.레지스탕스 가문.

1964    고등사범학교 école normale supérieure 졸업, 프랑스에서 교수역임. 버클리로 이주

1972    알랭 클레멍 Alin Clément 과 쉬포르-쉬르파스 Supports-Surfaces 작가들과의 교류

1986    현대 국립 미술관 지침 Cahiers du Musée nationale d'art moderne(1990년까지)  의 편집장

1989    국립고등미술학교 총장

1997    현대예술의 위기 La Crise de l'art contemporain (출판사. PUF)

2003     프랑스 대학협회 Institut universitaire de France 일원(2009년까지).

           도서, 기체상태의 예술 L'Art à l'état gazeux ,

            미학의 승리에 대한 시론 essai sur le triomphe de l'esthétique 출간.(출판사 Stock)

 

 

출처         : LE JOURNAL DES ARTS. #363. 2012.02.17-03.01

기사         : Vincent Noce  《》  《》  《》 

불한번역   : PLONGEUSE (zamsoobu)

 

  1. http://www.francisalys.com/ [본문으로]
  2. 1970년대에 프랑스에서 결성된 전위적 미술단체, 때로는 그 기법을 가리키기도 한다. 주요 작가들로는 데바드Marc Devade, 칸Louis Cane, 비울레Vincent Bioulès, 드죄즈Daniel Dezeuze, 비알라Claude Viallat, 세이투르Patrick Saytour 등이며, 비평가 플레네Marcelin Pleynet가 이론적으로 뒷받침하였다. 쉬포르는 ‘버팀(支柱)’ 즉 회화에서의 지지체를 뜻하고, ‘표면’이라는 말인 쉬르파스는 화면을 지칭하는 것으로 회화 캔버스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들은 ‘그림 그리는 것은 아직도 가능하다. 다만 회화적 방법의 개조가 필요할 뿐이다’라고 강조하면서 구조에의 새로운 탐구, 신사실주의와 같은 반예술적인 전위주의의 추방, 모든 미술이 파리에 집중되는 경향의 분쇄 등을 구체적인 목표로 내세워 회화로 실천하고 있다. 회화를 인식의 대상으로 대하기 이전에 먼저 회화를 둘러싸고 있는 상업적 또는 회화에 개입된 불순한 요소들을 제거하려고 노력하였다. “회화를 혁신하고 혁명을 그리는 것”이라는 데바드의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이들은 마르크시즘과 모택동의 유물론적 변증법까지 원용하여 회화에서 정치, 경제적 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1968년 프랑스 5월혁명 전후의 사상적 동향(마르크스와 프로이트로의 회귀)에 대한 예민한 반응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회화를 신화화하는 서명, 제작일자, 제목 등도 일체 포기해 화포의 중성적인 성격을 오브제화하고 있다. 이들은 캔버스의 나무틀을 떼내어 버림으로써 종래의 화포에 대한 고정 관념을 바꾸었다. 한 장의 물질적인 천이 지지체인 동시에 표면임을 확인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틀이 없는 물질로서의 화포를 장대로 받치거나 상 위에 펼치거나 직물처럼 접어서 개어 놓음으로써 회화와 직물 도안과의 구별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특히 비알라의 경우에는 섬유의 종사와 횡사의 틈 사이가 확대된 망을 사용한다든지 혹은 그 구성요소인 실의 차원으로까지 해체시켜 천의 물질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쉬포르 쉬르파스가 미술 오브제를 회복시켜 놓은 것은 개념미술에 대한 반동이라 할 수 있으며, 정치적 편향성을 지닌 작가들이 미술작품 대신 선전 선동(demonstration)으로 치우치는 것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쉬포르 쉬르파스의 이론이 복잡한 것에 비해 작품은 비정치적이고, 단순하며 온화하고 장식적인 추상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술작품을 화랑과 미술관에서 안이하게 관찰하는 ‘고고학적 태도’에서부터 시대와 장소의 상황에 밀착하여 보는 ‘보편적 위상 수학’으로 옮길 것을 주장하면서 사회적 현실을 이야기하고, 다른 한편으로 회화 요소의 물질성을 강조하는 두 입장은 결과적으로 이 그룹의 이론적 대립을 심화시켰고, <쉬포르 쉬르파스>라는 명칭의 전시회가 1972년 제4회를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된 원인이 되었다. 유물론에 의한 급속한 이론화를 추진했던 칸, 데바드, 드죄즈의 성향과 비알라, 세이투르 등의 반이데올로기적 태도가 필연적인 분열을 야기한 것이다. 이들은 마르크시즘적 입장으로부터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의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이해가 표면적일 뿐 아니라, 이들이 계급투쟁의 직접적인 기치가 될 예술작품을 제작하기보다 무계층 미술이라는 부르주아 이념 하에 활동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작업은 물질적 형태로의 환원을 기도한다는 점에서 회화의 시각적 형태로의 환원이라는 미국의 형식주의적 강령을 거역한다는 일단의 특징을 찾을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미니멀 아트의 프랑스적 전개의 한 양상으로 볼 수도 있다. [본문으로]
  3. François Gérard Georges Hollande (French pronunciation: [fʁɑ̃swa ɔlɑ̃d]; born 12 August 1954) is a French politician who was the First Secretary of the French Socialist Party from 1997 to 2008. He has also been a Deputy of the National Assembly of France for Corrèze's 1st Constituency since 1997, and previously represented that seat from 1988 to 1993. He was the Mayor of Tulle from 2001 to 2008, and has been the President of the General Council of Corrèze since 2008. On 16 October 2011, Hollande was nominated to be the Socialist and Left Radical Party candidate in the 2012 presidential election. His main opponent is incumbent President Nicolas Sarkozy.[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