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독립영화의 새로운 바람_2 ; Ronald Bronstein 로날드 브론슈타인(1)

 그와의 긴 대화 동안, 나는 그의 이름 석자를 계속 되뇌었다 : 로날드 브론슈타인. 37살의 그는 Frownland(2007) 으로 첫 장편 데뷔를 마쳤다. 거의 홍보가 되지 않았음에도, 그 흔적을 뚜렷이 남겼다. 브론슈타인이 사프디의 영화 레니 앤 더 키즈 Lenny and the Kids 에서 아버지 레니를 연기한 건 우연이 아니다. Frowland 는 견디기 어렵고, 혼랍스러우며 매순간 공격적인 영화이지만 늘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 아주 독특한 경험이다(cahiers n#637) 배우 키스 손탁은 초조하게 말을 더듬으며 그의 까다로운 공동 세입자들에게 자신의 인생에 대해 끊임없이 떠벌댄다. 그의 방황은 뉴욕에서 벌어진다 : 눈쌀을 찌푸릴 수 밖에 없는 나라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베니 사프디는 브론슈타인의 다음 영화에서 연기를 할 것이라고 한다. 이미 촬영(16mm)한 것에서 흘륭한 첫 씬을 완성한 상태이다. 하지만 자금은 늘 넉넉치않다. 브론슈타인은 그 점이 늘 걱정이다. 그리고 인터뷰하기에 적절한 시기인지도 확신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링컨 센터에서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영사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곳에서, 리스본의 미스테리  Mystère de Lisbonne의 1회 상영 바로 전까지 그는 망설임없이, 그리고 쉼없이 영화에 대한 열정을 말했다.
 
감독님은 두번째 영화를 제작중이신데요. 어떻게 제작하시는 건가요?
  비상업적 영화를 지원받기 위한 후원을 받을 자신이 정말 없었어요. 그래서 일단 무한정으로 연기했죠. 카메라 빛도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기한이 지나서 무너지는 걸로 끝나는 것이었어요 ; 프로젝트의 어떤 부분에 만족하는 제작자라도 너무 위험하다고 말하곤 했어요. 또, 다른 후원하겠다는 사람도 내가 바라지 않는 걸 요구했기 때문에 거절했죠. 실망했었죠.

프로운랜드 frowland 는 누가 제작했나요?
 내 친구인 Mar [Raybin]입니다. 그가 제작비를 냈지만, 나중에 갚았어요. 지금 빈털터리가 됬어도 괜찮아요. 직업적 경험을 살려서 스웨덴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했었어요. 거기서 영화 자금을 위해 필요한 만큼 벌었죠. 그리고 영사기사로도 계속 일했구요. 월급으로 한 장면 한 장면 진행해나갔죠. 가끔 비정상적으로 반복할 때도 있었어요. 6-7주를 한장면을 위해 반복했었죠. 나는 비전문적이고 인간적인 것들로 구조가 이뤄지길 바랬어요. 인물들이 그 다음을 결정하는 장면을 원했죠.

마치 데이비드 린치 의 Inland Empire 처럼 말인가요?
 네, 난 초월적 사고를 이용하지만 이야기에 붙여진 몽상이나 사고의 논리적 접근은 아니예요. 그저 복잡하고 어려운 인물에 집중하면서 그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려 할 뿐이죠.

그러면 어디로 가는 지 모른다는 건가요?
  총합에 대한 생각은 있을 뿐, 내가 사고하지 않는 다는 것 이외엔 모릅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한계를 가지고 있고, 우리는 인물들이 따라가는 조건들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걸 알게 됩니다. 나는 특별히 초조와 스트레스에 집중하기에, 그것들이 결말에 이르기 위한 최소한의 단계이죠. 이런 영화의 영향력은 아주 소소해요. 그리고 그 한정범위 안에서는 폭발적이죠.
  
●어떻게 장기간 투자가능한 협력자를 찾으셨나요?

 우선, 내 배우들은 전문배우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의 내면에 보다 침잠할 수 있었죠. 그들은 출세를 원하지 않았어요. 단점은 그들 각자가 작품에 기여한다는 의미를 두고 있는데 반해, 출세하고자 하려는 욕망이 영화에 도움이 된다는 점이었어요. 내 경우에, 내면세계, 그리고 변하는 사람들의 동기가 언제나 창작의 동인인 셈이예요...그래서 지휘자가 되는 건 관계를 깨뜨릴 여지가 있죠. 많은 걸 느끼게 하면서요. 이런 감정들과 타협하려다가, 신체적으로 많은 위협을 느낍니다. 해결책을 찾지 목했죠. 내가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은 길 위에서 찾았어요. 부랑아집단(SDF)에서가 아니죠. 그들은 군중 앞에서 현명하게도 어떻게 움직일 지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들은 이 작업에서 실존주의적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떄문에 그들을 잘 알아야만 했어요. 알아내기 아주 어려운 것이지만요.

베니 사프디는 감독님의 새 영화에서 나오나요?
 네, 난 그의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죠. 그리고 고맙게도 그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더군요. 그가 작업하는 방식이 나와 비슷하기 때문에, 복잡해요. 그와 있으면 《관리》에 있어 모든 게 자유롭죠. 프로젝트 진행이 느리기 때문에 그의 역활에 대해 더 말할 수 없어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레니 앤 더 키즈 프로운랜드, 끝났다고 생각할 수 없어요. 단지 목표를 향해 나아갈 뿐입니다.    

Lenny and the kids 에서 배우로서 어떤 걸 느꼈나요?
 그건 아주...스포츠같았어요. 사프디 형제는 전쟁의 한 복판으로 나를 끌어들이기 위해 이해를 시켰죠. 내가 확신을 갖지 못해서였어요. 당신이 본, 그리고 내가 말하려는 암흑 속 면도를 하는 장면에서요. 촬영된 걸 보고, 곧바로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 《맙소사, 이건 내가 아니야. 이게 나라고?》 얼굴은 고깃덩어리같았고, 촬영한 순간의 내 상태나 내면세계를 보여줄 뿐이었어요.
 그래서 나 스스로를 오브제로 바라보는 경험을 했죠. 하지만 더이상 다른 영화를 망치고 싶진 않았어요! 그리고 다른 기술이 없기 때문에, 내 인생의 경험에 비춰서 연기할 수 밖에 없었어요. 이런 류의 결정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자극이 지나가는 대로, 내 뇌 속에서 시냅스가 순간의 자극에 반응하여 입 밖으로 나오도록 했어요. 나 스스로 투명인간이 된 거죠. 그래서 카메라로 촬영하기 이전이나 이후, 그리고 중간시간 동안 공포에 떨었죠. 사파디 형제는 같은 시간에 자극과 충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내게 충분한 자극을 주려했어요. 하지만 그것때문에 내 연기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거나 연기의 노하우를 알 수는 없었죠 : 다시 할 순 없을 겁니다.

Lenny and the kids 에서 인상적인 연기로, 다른 역활 제의를 받지 않았나요?
 내가 받은 시나리오는 별로 재미가 없었어요. 그런 영화에서 연기를 할 순 없었죠. 사람들이 미학적 정신적 가치라 부를 만한게 없기 때문에, 우린 점점 세상과 소통할 영화를 만들길 원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오만한 태도를 버릴 만큼의 돈을 제시하진 않더군요.

●카사베츠처럼, 당신의 가치와 맞지 않는 역활을 고려해본 적이 있나요?
 아주 로맨틱한 질문이군요. 하지만 카사베츠는 연기수업을 받았었습니다. 나한테는 그게 없다는 걸-불행히도-, 로스앤젤로스의 Spirit Awards 의 의식에서 크게 깨달앗습니다. 벤 스틸러와 함께 노미네이트도었었죠. 거기에 수영장이 딸린 큰 저택에서 살고 있는 친구네에서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걸 봤죠. 갑자기, 이런 삶의 방식에 적응할 수 있을지 자문했죠. 어떤 것이라도 반짝거리게 하는 데에는 돈이 안들어요.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끌어올릴 돈을 충분히 벌 수 있다고 속일 수 있죠. 그래서 거기에 15일간 머무르면서, 계속 거기에 남아서 작업에 필요한 돈을 벌까 구상했었죠. 나 스스로 보다 나은 생활을 살기 위해서요. 하지만 모든게 판타지에 불과했고, 난 뉴욕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이후에 어떤 연락도 없었죠. 난  회색의 덥수룩한 머리를 가진 37세의, 그리고 L.A 은행대출창구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인 거예요...거기 가기 전까지 상상치도 않았던 인생을 꿈꾸며 공상했었어요. 별로 즐겁지 않은 경헙이었어요. 결국 난 정신적으로 노 맨스 랜드 에 살고 있는 겁니다.
 
 ●모두가 Frownland 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2008년 개봉 당시에도 그랬나요? 어떤 반응이었나요?
 250여개 좌석 이상의 극장에서 상영된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질문은 의미가 없네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사람들이 아주 끔찍하게 생각했다는 겁니다. 내가 답할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이예요. 나 스스로에 대한 비천한 증오와 오만이 동시에 있었고, 타인에게 그걸 전달할 최소한의 구실만 필요했어요. 그래서 그걸 사람들이 느낀 겁니다. 아닌가요? 어떤 Frownland 에서 어떤 감정이 있습니까? 잔혹한 자기 부정, 공격성, 냉혹함 등이죠. 인물들은 자존감이 결핍되어 있는 걸 알았고, 그만큼 어떤 열정도 보이지 않았어요.

●감독님은 매우 고립되어 보이지만, 최근 다른이들과의 대화에서 자주 언급됩니다. 그런면에서, Frownland 는 다른 이들에게 아주 중요한 듯해요. 스스로 다른 감독들에게 영향력있다고 느끼지 않으시나요?
 아뇨. 난 집단적 성격의 사람이 아니예요. 무리 속에서 더 일을 잘 할 수 없어요. 난 혐오인으로 비춰지기도 싫지만 모두의 이목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더 잘 만들 수 있습니다. 아주 자신만만해 하는 사람들의 영화를 보지 않을 겁니다. 다른 영화감독들과 스칠 때마다, 마치 하수인같이 느껴집니다. 모두에게 허리를 굽혀햐 할 것처럼요. 돈이 없어서 군중에게 영화촬영을 양해받을 때 처럼 말이죠.
 사프디 형제와의 관계는 갈라파고스의 작은 섬과 같아요. 어떠한 사소한 것도 집단 속에 연결되어 있죠. 한번 더 말하지만, 나는 비열하게 살아왔어요. 하지만 지금은, 말했듯이 스스로를 많이 의심하게 되었어요. 돈문제가 아니예요. 개인돈을 끌어써야 한다면, 시간이 걸릴 뿐입니다. 다른 사람의 돈을 쓰는 것보다 더 맘이 편해요. 하지만 많은 미학적 회의를 가지게 되죠. Frownland 에서, 내 목표와 균형을 잘 잡았죠. 현재에까지 그런 동기를 유지한다는 건 어려워졌어요. 
 뉴욕 독립 영화계에서, 어떤 특별한 영향력이 없어요. 내가 분류되는 영화감독의 부류는 보다 퍼포먼스적이고 즉흥적인 영화더군요. 영상의 특징상, 카메라를 키고 나면, 정신적으로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걸, 한계가 있단 걸 알게 될 겁니다. 카메라는 당신의 대뇌라기 보다 당신의 두 눈이 될 겁니다. 로셀리니는 카메라가 저능하다고 이야기했죠. 그리고 난 여기에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결국,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나의 내면을 포착하고 나 스스로를 투영하는 거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촬영이란 제한된 시간동안, 사람들에 기대어, 정확히 당신이 보는 것과 같이 카메라 앞에 펼쳐지는 세계에 만족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떤 표현주의적 사고도 내면을 포착하는 방법으로 나타날 수 없는 매체에 의해 영화가 현실화되는 겁니다. 거기에 공상, 초자연, 파토스가 끼어들 어떤 자리도 없죠. 모든 게 순수하게 표면에 겉돌 뿐입니다. 난 단순히 행동거지가 이야기를 구성하는 학파의 모든 영화를 봤어요. 카메라는 마치 두 눈처럼 다뤄지죠. 많은 영화들을 보았지만, 어떤 것도 뇌리에 와닿는 것은 없었어요.
 
●2009년 Lenny and the Kids 로 칸에 왔을 때, Antichrist 를 아주 좋아한다고 밝혔는데요.

 왜냐하면 반대 방향으로 멀리 갔기 때문이죠. 폰 트리에 는 이미지를 방대하게 사용하는 감독이죠.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아주 거칠고 표현주의적으로 말이죠. 표면의 질감, 배우의 연기에서 놓칠 게 하나도 없었죠. 모든게 초자연적이고 근본적인 것들에 정착해있죠. 그건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과는 다르죠. 거의 중세의 토너먼트같은 거죠.

<뉴욕의 새로운 바람-3 에 계속>

출처 : 66- page, cahiers du cinéma
기사 : Stéphane Delorme & Nicholas Elliott
번역 : Plongeur ( zamsoob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