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라스, 쓰기라는 질병 Marguerite Duras ⓐ
뒤라스, 쓰기라는 질병 Marguerite Duras ⓐ ⓑ
Marguerite Duras , OEuvres complètes , t.1
et t.2, biblothèque de la Pléiade , Gallimard
■ 뒤라스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물론, 문학이면서 작가 스스로 품고 있는 생각일 것이다. 여느 다른 작가들처럼. 스스로에 대해서. 뒤라스도 그러하듯 모두가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쓰고자 한다. 문학이라는 범주라면, 여기에서 조금 더 진지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두고, 조금 더 과장하여 말한 것을 그녀의 저서를 통틀어보면, 찾을 수 있다. 《 사람들은 이걸 쓰기라는 질병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뒤라스는 말한다. 사람들이 뭐라 하든 상관없이 뒤라스를 말할 때에는 우선 이 말이 생각날 것이다. 나머지는 완전히 부차적이다. 사람들의 준거로만 남을 뿐.
뒤라스의 신화
명망 높은 이 플레이야드 서재에 뒤라스가 있는 건 일종의 헌정의 의미에 가깝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오랫동안 추앙받아왔다. 그리고 이번에 출판될 두 권의 책도 역시 작가의 사후에도 이어지는 그녀의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 증거란 이렇다 : 뒤라스는 하나의 신화이다. 그리고 다른 경우처럼, 이 신화는 숭배를 강조하는 면이 있으며, 동시에 타인을 경멸시하는 면도 있다. 모순되는 두 태도에서 어느 한편에도 치우치 않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숭배자와 신성모독자 모두의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Lol V.의 황홀 Ravissement de Lol V. 스타인 Stein, 부영사 le Vice-Consul , 연인 l'Amant , 그리고 특히 고통 Douleur 같은 저서들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해야하겠다. 뒤라스가 마지막으로 준비하였거나, 그녀의 작품 전반에 혼재되어 있는 인물들을 어떻게 배치하는 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 히로시마 내 사랑 Hiroshima mon amour 뿐 아니라,파괴하라 그녀는 말한다 Détruire dit-elle 라는 작품으로 내밀한 감성을 볼 수 있다. 한편, 다소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놀라운 영화, 인디아송 India Song 은 관객들을 감정의 소용돌이에 밀어넣으며, 그녀가 창조한 인물들보다 정신적으로 더욱 고양시키려 한다.
그렇다 : 뒤라스는 신화이다. 하지만 어떤 신화인가? 바로 문학의 신화이다. 물론, 그녀는 프루스트 이후의 어떠한 다른 프랑스 작가와 비견하여, 그 이상을 보여준다. 그러면 한 발 더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자문해야 할까 : 어떤 문학 분야에서 뒤라스가 신화가 된 것인가?
거의 항상 : 언어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문학을 대한다. 일상적인 단어들을 인물들 간의 섬세한 운율로 바꾸며, 그 속에서 해체와 구성을 반복하며 삶의 한 멜로디가 되게 한다. 질 필립 Gilles Philippe 는 그의 책 서문에 뒤라스가《산문의 새로운 예술》을 발명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기술하였다.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확실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진정한 작가가 뒤라스 뿐만이 아닌 것도 확실하다. 게다가 : 어떠한 특정 효과를 염두에 두고 추진해온 작가도 뒤라스 뿐만이 아니다. 특별히 : 뒤라스인 것.
쓰기와 반-쓰기
그녀 스스로 창조한 스타일은 쉽게 드러나면서 모방가능하다. 뒤라스 는 그 점에 대해 이렇게 적절하게 정의하였다 : 《쓰기와 반 쓰기...문법에 어긋나는 짧은 쓰기는 단지 단어들의 유희이다. 문법을 벗어난 단어를 지지한다. 정신나간 단어. 거기서 쓰기가 생긴다. 그리고 그 직후에 떠나라.》
왜냐하면 그녀에게 필수적인 문학을 종결짓고, 순수한 쓰기로써 어떠한 성스러움을 탐구하며 재구축하려는 신화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플로베르 Flaubert 와 뒤라스 Duras 는 매우 닮아있다. 왜냐하면 스타일의 문제에 천착하였기 때문이다 : 작품에 깃든 익살스러운 파토스, 그리고 불가능의 극복, 더불어 완전한 고독과 극한의 고통 속에서 만들어낸 소설들, 또 받아들이고 감내해야 할 희생적인 소명, 마치 성인이나 순교자처럼 말이다. 물론, 이런 우화를 맹목적으로 쫓거나 그 녀 앞에 무릎을 꿇을 필요는 없겠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스타일이 있다. 하지만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le Temps retrouvé 에서 이렇게 말한다 : 스타일은 아무 것도 아니다. 만약 그것으로 인해 세계를 보는 방법을 바꾸고, 다르게 볼 수 없다면, 또한 나아가 과학과 철학의 논쟁을 이끌어내면서 인지감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새로운 표현법을 나타내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 플로베르 만큼이나 뒤라스도 그러했다. 프루스트는 그 것이 《 혁신적이며 사적인 관습에 따라 한정적으로, 무한정적으로 현재에 참여하는 인간이다. 또한 대명사와 전치사들을 바꾸면서 범주를 넘나들며 칸트 Kant 만큼이나 외부세계에 대한 현실과 이론들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
(뒤라스, 쓰기라는 질병 Marguerite Duras ⓑ에 계속)
출처 : artpress #385.2012.04
기사 : Philippe Forest
번역 : PLONGEUSE ( zamsoobu )작성일 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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