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조셉 구 JEAN-JOSEPH GOUX ⓐ

장-조셉 구 JEAN-JOSEPH GOUX ⓐ

 

예술작품의 터무니 없는 가격과 가치사이에는 어떠한 관계가 있을까? 팔리지 않는 작품의 가치는 얼마인가? 미학적 가치를 굳히려는 구매자들의 욕망은 어떻게 기능하는가? 예술과 자본 사이의 얽힌 실타래를 놓고 철학자 장-조셉 구 Jean-Joseph Goux 가 다른 작품들을 예로 들어 입을 열었다. 그의 최근 에세이,예술과 자본 l'Art et l'argent 에서. 모더니즘과의 단절 La rupture moderniste, 1860-1920( Blusson 출판사) 에서, 그는 예술계가 점점 자본을 따라 가는 현상을 짚었다.

 

인터뷰어 카트린느 프랑블린 Catherine Francblin

 

■ 당신은 수년간 예술과 경제의 상관관계를 연구해왔습니다. 그래서 최근의 저서에서 인상주의 사조의 등장과 함께 미적 가치에 대한 새로운 체계가 생겨났다고 하는데요. 이런 분석은 결국 Zola 에게서 큰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요. 《현대》라고 말 부분이요. 현재 우리는 그와 어떠한 단절을 겪고 있습니까?

 나는 마네 Manet 와 인상주의 화가들이 당대의 작가들, 특히 졸라 émile Zola , 말라르메 Stephane Mallarmé [각주:1], 그리고 미라보 Octave-Henri-Marie Mirbeau [각주:2] , 위스망스 Huysmans [각주:3] 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통찰하는 시선을 지녔던 문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됬습니다. l'OEuvre 라는 독특한 소설에서, 졸라는 시장의 한 유형이 다른 분야로 전이되는 현상을 완벽하게 묘사했죠. 가치나 미적 의미, 그리고 경제까지도 변화하면서 생기는 새로운 시장이 현대의 그것과 매우 닮아있습니다. 증권 시장처럼, 작품의 가치가 고정적이기보다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죠. 구매자와 판매자는 예술가와 개인적 친분이나 취향에 더이상 좌우되지 않습니다 ; 그들은 증권을 매매하듯 경쟁적으로 구매하고 판매하죠. 졸라는 서로 다른 두 경제체게가 어떻게 부합하는 지 정의하였죠. 그는 이러한 현상의 위험요소도 보았어요.  이《거품》이 예술적 실험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죠. 그런 의미에서, 예술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할 수 있어요. 정확한 가치평가의 기준이 상실되고, 아찔한 가격을 목격하고는,《예술가치》란 무엇인가 자문하게 되는 겁니다.

 

 

 

 

갈망하는 자의 주체성

 

당신은 작품에 들이는 노동을 가늠할 수 없는 현재의 작품들의 가치가 유동적이라고 말하는군요. 최근에 폴록 Jackson Pollock 의 작품이 1억4천만 달러에 거래되는 예를 들면서,《노동-가치란 말이 무색하다》라는 걸 말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가치가 노동이나 그 자체의 미학보다 시장가격으로 헤아려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사실 지금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미학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 그리고 작품의 가치 만큼이나 노동-가치의 공식이 논쟁거리가 되고 있죠. 말라르메 Stephane Mallarmé  마네에 관해 영문으로 쓴 에세이에서, 구매자들이 모네 Edouard Monet , 시슬리 Alfred Sisley [각주:4] 피사로Camille Pissaro [각주:5]의 그림을 사지 않으려했는지 짚어보고 있죠. 아주 중요하게, 노동의 문제는 아름답거나 추하거나의문제가 아닌 일순위로 따져볼 요소죠. 인상주의 그림은 평범한 관객들이 보기에 너무 쉽게 그린 것 같았고, 너무 밝은 분위기의 미완성으로 보인 것 같았죠. 인상주의 그림들을 보고《고객》들은 초안 밖에 보지못하죠. 하지만 더욱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아카데미즘으로부터 멀어지길 원했다는 겁니다 : 아카데미는 그림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화가들은 의지를 상실한 노동자였죠. 이러한 도제방식의 울타리 안에서 악착스럽게 수련하는 자가 결국 화가란 직업을 갖게 되었죠. 그래서 화가의 혁명이라는 이면에, 당시 고객들은《상업적 오해》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네와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은 다른 효과를 만들기 원했어요 : 빠른 작업과정, 그리고 일시적 감흥에 의한, 경쾌하면서 미완성의 방법으로 공공 화가들과 고착화된 형식에 대응하였죠.

 

 

 

 

 

 

장-조셉 구 JEAN-JOSEPH GOUX ⓑ 에 이어...

 

 

출처 : ARTPRESS #383. 2012.

기사 : Catherine Francblin

번역 : PLONGEUSE (zamsoobu. plongeur) 2012.06

  1. [1842.3.18~1898.9.9] 요약 19세기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 그의 ‘화요회’에서 20세기 초 활약한 지드, 발레리 등이 배출되었다. 장시 《목신의 오후》(1876),《던져진 주사위》등이 있다. 프랑스 근대시의 최고봉으로 인정 받는다.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시 출생지 프랑스 파리 주요작품 《목신(牧神)의 오후》(1876) 《던져진 주사위》(1897) 본문 파리 출생. 아버지는 재무성 등기관리국(登記管理局)의 관리였다. 5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14세 때 재혼한 아버지의 임지(任地)인 욘 데파르트망(Department) 상스의 중학교 기숙생이 되었으며 이 무렵부터 많은 습작을 했다. 18세 때 바칼로레아(대학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하였다. 한때 상스의 등기소에서 수습직원(修習職員)으로 근무했으나, 20세 때인 1862년에 연상의 연인 마리제랄(나중의 말라르메 부인)과 런던에 건너가, 어려운 생활 속에서 영어교사의 자격을 취득하였다. 다음해에 귀국하여 론강(江) 근처의 지방도시 투르농의 중학교에 부임하였다. 그 후 부장송 ·아비뇽 등의 중학을 돌아다니다가, 1871년 29세 때 파리로 돌아와 퐁탄중학(지금의 리세 콩도르세)에 취임하였으며, 모드 잡지의 편집과 E.A.포 작품의 번역을 하는 한편 C.보들레르의 영향을 깊이 받아 시작(詩作)에 몰두하였다. 그 상징적 시풍(詩風)은 차차 인정을 받게 되어, 젊은 예술가들이 매주 화요일 밤이면 그의 집에 찾아들었다. 후일 이 ‘화요회(火曜會)’에서 20세기 초엽의 문단에서 활약한 H.레니에, P.루이스, A.지드, P.클로델, P.발레리 등이 배출되었다. 《제2차 현대고답시집》(1871)에 발표한 미완성 장시(長詩) 《에로디아드 Hérodiade》, 투르농 시대부터 착수한 걸작 장시 《목신(牧神)의 오후》(1876), 60여 편의 장 ·단시를 수록한 《스테판 말라르메 시집》(1887), 산문시 및 평론집 《디바가시옹》(1897), 장시 《던져진 주사위》(1897) 등이 있다. 포와 보들레르의 전통을 이은 그의 시는 지적(知的)인 유추(類推)에 의존하는 상징적 수법으로 쓰였으며, 언어의 순수성을 존중하는 지극히 난해(難解)한 내용이지만 프랑스 근대시의 최고봉으로 인정받는다 [출처] 스테판 말라르메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
  2. 프랑스의 소설가 ·극작가 ·저널리스트. 풍자잡지 《Les grimaces》를 창간하였으며 다수의 극평 ·미술비평 ·정치평론 등을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하여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세바스천 로크》, 《사업은 사업이다 》등 다수의 소설과 희곡을 남겼다.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프랑스 칼바도스 데파르트망(Department)의 트래비에르 주요저서 《주르 신부(神父)》(1888) 《하녀의 일기》(1900) 본문 칼바도스 데파르트망의 트래비에르 출생. 파리로 나와 신문기자가 되면서 극평(劇評) ·미술비평 ·정치평론 등을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하여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882년 풍자잡지 《Les grimaces》를 창간하였고, 단편집 《누옥(陋屋) 소식》(1885)을 비롯하여 대담하고 에로틱한 묘사로 부르주아 계급의 위선과 인간의 추악상을 폭로한 《십자가의 언덕 Le calvaire》(1886), 《주르 신부(神父)》(1888) 《하녀의 일기 Le Journal d'une femme de chambre》(1900) 등의 장편소설을 발표하였다. 이 외에도 소설 《세바스천 로크》(1890) 《고문(拷問)의 뜰》(1898) 《신경쇠약 환자의 3주간》(1901) 《탱고》(1912) 등이 있으며, 희곡에는 《괘씸한 양치기》(1897) 《역병(疫病)》(1898) 《노부부》(1900) 등이 있는데, 특히 《사업은 사업이다 Les affaires sont les affaires》(1903)는 사업을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을 일체 돌아보지 않는 냉혈한(冷血漢)을 주인공으로 한 풍자 희극으로 근대극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출처] 옥타브 미르보 [Octave-Henri-Marie Mirbeau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
  3. 본명 Charles-Marie-Georges Huysmans. 파리 출생. 초기에는 《마르트, 한 소녀의 이야기 Marthe, histoire d’une fille》(1876)나 《바타르 자매 Les Sœurs Vatard》(1879) 등을 통해서 서민과 소시민의 비참한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그려, 졸라의 자연주의에 동조하였다. 그러나 《역로 À rebours》(1884) 이후로는 위스망스의 독특한 작품세계가 형성됐다. 생활의 추악상과 인생의부정적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데 자연주의의 편협성과 한계가 있다고 느낀 그는 이 작품에서부터 일상생활을 떠난 심미적이며 신비적인 체험에서 출구를 찾으려고 하였다. 이러한 예술과의 만남이 신비의 길로 들어서는 첫 단계였다. 둘째 단계는 《피안 Lá-bas》(1891)에 의해서 대표된다. 이 작품에서는 악마주의 ·주술 ·연금술 등,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야릇한 경험 속에서 구원의 길을 찾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착잡하게 전개되는데, 이 마술의 세계(제2단계)는 마지막에 이르러 가톨릭 예술의 위대성과 정신적 의미의 발견에 의해서 지향된다. 이것이 말하자면 위스망스의 신비주의의 제3단계이며, 《피안》의 끝에서 보여진 이 마지막 단계는 《출발 En route》(1895) 《대성당 La Cathédrale》(1898) 《수도자 L’Oblat》(1903) 등의 말기의 작품에 있어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그의 정신과 작품의 궤적은 전반적으로 합리주의의 세계관이 무너지고 문학 역시 상징적 ·초월적 세계로 지향하려던 19세기 말의 경향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출처] 위스망스 [Huysmans, Joris-Karl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
  4. 프랑스에서 활약한 영국의 화가. 대표적인 인상파화가로 C.모네, 르누아르 등과 친숙하게 지냈다. 인상파 중에서도 특출하게 순수한 풍경화가로서 일 드 프랑스지방(파리를 중심으로 한 주변 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자연을 대상으로 물과 숲의 반짝임을 묘사한 많은 수작을 남겼다. 국적 영국 활동분야 예술 출생지 프랑스 파리 주요작품 《밤나무숲의 오솔길》(1867) 《아르장튀유의 길》(1872) ↑ the road from versailles to louveciennes / 영국의 화가 시슬레의 작품. 본문 파리 출생. 모네, 피사로와 비견되는 대표적인 인상파화가로 평생을 프랑스에서 살아 국적은 영국이지만 프랑스 화가로 통한다. 한때 부친의 권유로 영국으로 건너가 상업에도 종사했지만, 그림을 좋아하여 1862년 파리에 있는 C.글레르의 아틀리에에 들어가 거기서 C.모네, 르누아르 등과 친숙하게 지냈다. 1866년 살롱에 첫 입선하고, 1870년 보불전쟁을 피해 런던으로 갔다. 이때부터 점차 초기의 G.쿠르베나 J.B.코로풍(風)의 작풍을 청산하고, 자연을 외광(外光) 아래서 포착하는 밝은 화풍을 확립하였으며, 1874년 이후는 인상파그룹전 등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는 인상파 중에서도 특출하게 순수한 풍경화가로서 일 드 프랑스지방(파리를 중심으로 한 주변 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자연을 대상으로 물과 숲의 반짝임을 묘사한 많은 수작을 남겼다. 대표작으로 《밤나무숲의 오솔길》(1867) 《아르장튀유의 길》(1872) 《마를리항구의 만조》(1876) 《루브시엔, 겨울》(1874) 《홍수 속의 보트》(1876) 등이 있다. [출처] 알프레드 시슬레 [Alfred Sisley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
  5. 프랑스의 화가ㆍ판화가. 서인도 제도의 상토마스 섬에서 프랑스계 유태인의 아들로 출생. 1955년에 파리에서 화가, 처음 고흐의 감화를 받았으며 마네ㆍ모네의 영향을 받아 인상파의 대표적 화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소박한 전원의 풍경화를 많이 그렸으며, 그 그림은 작은 색의 점으로 칠하여 완성시켰는데, 그 후에 〈점묘파〉를 낳게 하는 바탕이 되었다. 그의 작품은 주로 농부를 진한 색채로서 그렸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