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앙 페드로 로드리게즈_<<조류학자의 은밀한 모험>>











성인 조류학자

 



어떻게 이 영화를 처음 구상하게 되었나요?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나요?

 

 

 내가 마지막 본 마카오 (2011) 를 만들 때 였어요. 2011년도에 첫번째 버전을 썼죠. 아주 개인적인 영화예요. 내가 누구이고, 어떻게 된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었죠. 이후에, 영화가 어떻게 나왔는가는...여전히 미스테리예요. 어렸을 때 진짜 조류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난 고독한 아이였고, 자연으로 새들을 관찰하러 가는 걸 좋아했어요, 나중에 포르투칼 신화를 재해석 하고 싶어졌죠. 이미 킹스 바디 (2013)서 성인 앙투안 단편을 찍었으니까요. 조류학자의 은밀한 모험 은 버드 보티커 의 서부영화처럼 가벼운 모험영화예요. 하지만 개인적으론 좀 무거운 영화죠. 왜냐하면 내 이야기를 섞었거든요. 나 스스로를 찍는 건,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예요. 불편하니까요. 그래서 촬영을 두번씩 했는데, 한번은 나 없이, 다른 한번은 폴 헤미 paul hamy 와 함께한 다음에, 편집 할 때 선택했죠. 폴 목소리로 더빙을 하는 건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죠 : 그가 우선 포르투칼어로 텍스트를 배우긴 했는데, 악센트에서 힘들어했죠. 그래서 내 목소리로 더빙하기도 했어요. 마치 내 목소리에 그의 몸이 합쳐진 것 처럼요.

 


왜 프랑스 배우를 선택하셨나요?


영화 촬영 시에 캐스팅하고 싶은 포르투칼 배우가 없었어요. 란돌프 스콧 Randolph Scott의 영화속 인물같은 배우를 찾고 있었어요. 프랑스 영화에서 폴을 발견했고, 그의 연기하는 방식이 맘에 들었죠. 절반은 미국인인데, 프랑스 배우와 아주 다르게 움직여요. 촬영은 포르투칼 북부에서 했는데, 그 장소들이 폴 때문에 명소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프랑코-포르투칼 공동 제작이란 이유도 있었죠. 웨스턴 무비를 많이 생각했어요 : 대자연 속에서 혼자 남은 인간, 동물과의 조우, 인디언이거나, 왜냐하면 이 영화의 인물들이 다소 인디언처럼 옷을 입었으니까요.

 


이전 영화와 비교해보면, 각자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거나, 아주 구체적인 인물들이었던 반면에: 이 영화에서는 다소 수동적인 인물이란 인상을 주는데요.

 

오 판타스마 의 인물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 뭔가 주변을 감시하고 살피면서 갈 길이 어딘지 보는 사람이죠. 이 영화는 아주 간단해요 : 내셔널 지오그래픽 의 다큐멘터리 같은 형식에서 시작한 거예요. 그 다음에, 사건이 일어나고, 주인공이 뭔가 길을 찾으려는 이야기죠. 조금은 {{성인의 삶}} 같은 거예요 : 장식화나 만화같이 작은 그림들이 이어지는 것 같아요. 앙투안은 리스본에서 태어났고, 부유한 환경에서 양식을 배우며 자랐지만 성프란체스코회의 가 도래한 이래로 혼란에 빠지게 되었죠. 그래서 기독교로 개종하기 위해서 모로코로 떠나죠. 쫓기는 상황에서 배를 탔지만 태풍을 만나고, 결국 이탈리아 근해에서 붙잡히죠. 영화에서는, 그의 인생의 한 에피소드를 다시 해석했어요. 태풍을 다른 요소로 바꾼거죠, 그리고 나만의 신화를 넣은 겁니다.

 



이 영화에선 숨겨진 상징들이 많아서 조금 난해하고 비의적으로 보이는 데요, 세바스티앙 왕의 신화를 주제로 한 올리비에라의 마노엘 같은 다른 예시가 떠오릅니다.

 

나는 관객들이 상징주의적 시선에 멈추지를 않기 바랍니다. 그 것이 너무 무겁기 때문이죠. 우리가 아는 것도 있고, 모르는 것도 있는 데 중요한것은 그게 아닙니다. 물론 상징이 있긴 하지만 그건 골조, 그니까 영화의 음역 같은 겁니다. 그래서 모든 걸 해석할 필요는 없어요. 성 안투안의 이야기를 아는 건, 부차적인 거죠;  [[성인 조류학자]]의 이야기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성 안투안의 이야기가 아니라요. 물론 포르투칼 사람들은 성 안투안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죠, 많이 소개되었으니까요. 아기 예수를 팔에 안고 있는 성화는 모든 교회에서 많이 볼 수 있죠. 이 성화는 정숙한 면과 동시에 에로틱한 면도 같이 있어요. 내가 관심있어 하는 부분은 세속적인 것과 성스러움 사이의 불화입니다. 이런 점은 목동이 나오는 신에서 나타나요. 살라자의 독재에 의해 이 인물은 왕위를 찬탈 당합니다. 그는 지지세력의 수단으로 종교를 이용하죠. 성 안투안은 도덕, 가족 등의 가치 등의 반대점으로 상징됩니다. 이전에 프란체스코회의 속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일종의 변절이죠. 왜냐하면 그는 인간의 고독, 자연으로의 회귀 등을 찬양했으니까요.그래서 나는 이 인물을 재조명하고 싶었어요. 내 방식대로요. 하지만 무언가 현실적이며 땅에 발붙인 신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내가 직접 보는 것들에 의해 말하고 싶었어요. 나의 것은 올리비에와는 완전히 다른 종교관이죠. 그는 신을 믿고, 그래서 그의 영화에는 그런 도덕적 정신이 깃들어 있어요. 그의 영화가 그토록 아름답고 한편으로 불안한 퇴폐가 공존하는 것은 그런 이유죠. 마치 성서처럼, 모호합니다. 나는 전혀 종교에 발담그고 있지 않지만, 그림으로 거기에 접근해요 : 어떻게 이미지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종교화는 종종 아주 에로틱합니다. 미켈란 젤로나 카라바죠 의 그림은 스캔들을 불러일으켰고, 내게도 뭔가 영감을 줬어요. 왜냐하면 몸을 찍는 것은 뭔가 항상 욕망하는 것이며, 그 욕망을 정화시키는 거죠. 전혀 신성모독의 의도는 없어요. 영화 속에 우상파괴의 의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영화의 시작이 너무 훌륭한데요, 인물이 바라보는 것 밖에 하지 않는, 또 그 인물이 바라보는 것들을 보여주는 것에 족하는 연출은 아주 드문듯 합니다.

 

나는 새들을 관찰하는 걸 좋아해요. 영화보는 것 처럼 고독하면서 재밌는 일이예요...2014년에 처음 촬영에 들어갔죠. 적은 인원으로 먼저 새들을 찍었어요. 그 다음에 촬영한 이미지에 맞추어서 시나리오를 다시 쓰고, 그 다음에 배우와 촬영을 했죠. 우리를 향한 자연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새의 시선으로 본 공중씬을 원했어요. 어렸을 때 새들을 보면서 그들도 우리를 볼 까하고 생각했죠. 동물의 시선은 수수께끼 같은 거예요. 영화에서 인물들이 변하는 데, 그들 스스로의 자각이 없이, 또 관객도 마찬가지로 의식하지 못한 채 일어나죠. 고프로 카메라로 촬영하기도 하고 드론 을 이용하기도 했어요. 날고 있는 새를 찍고 있는 유일한 방법은 드론 밖에 없었어요. 닥치는 대로 사용되는 기기에 대해 반대하는 방법 중의 하나였다고 생각해요. 드론의 시선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 드론으로 촬영하면서 가질 수 있었던 유일한 장점은 새의 시선을 얻었다는 겁니다...아니면 신이거나. 사실 나는 드론이나 고프로를 혐오예요. 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이용하는 걸 즐기는 면도 있죠. 이 영화에서, 어쩔 수 없이 예산 때문에 디지털로 촬영을 했어요. 새로운 기술에 저항하지만, 동시에 그것들을 이용하는 것에 흥미가 있어요. 문제는 뭐냐면, 그것들이 언제든지 어떻게든,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이유로 사용된다는 겁니다. 나는 그 것들을 사용하면서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어요. 내 아이디어는 프레임이나 편집에 대해 치우치지 않아요. 내가 모르는 방법으로 만들어지는 영화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스테디캠으로만 찍는 영화도 있죠. 개인적으로는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는 편을 선호하고, 설령 카메라를 움직일 때는 레일 위에 일정한 거리를 가지도록 하죠. 그건 윤리적인 문제예요. 하지만 그건 단지 내가 호기심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예요.  언젠가는 스테디캠을 사용할 수도 있겠죠. 고프로도 마찬가지예요 : 끔찍한 수준의 렌즈이긴 하지만 어느정도 조류의 아이맥스 시선과 일치하죠. 이번 영화는 내 첫 디지털 픽션이기 때문에 아주 조심하면서 진행했어요. 하지만, 나란 사람은 항상 궁금증이 많은 사람이죠. 알렉사 카메라의 러쉬 필름이 보정 전에는 형편없었지만, 결국 익숙해졌죠. 내 루이 포카스 Rui poças. 메인 오퍼레이터 디지털에 아주 강했죠. 디지털에 노출이나 위장된 부분을 잘 조절했죠.

 


 스코프로 문제없이 촬영을 하셨나요?

 

, 아나모피크 스코프 ;왜상 카메라_로 촬영하고 싶었어요. 인간의 신체와 주변 환경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조류학자의 은밀한 모험 은 대자연 속의 홀로 남겨진 인간의 모험 이야기예요. 현재 많은 영화들이 장초점으로 촬영되거나, 뒷배경은 흐릿하죠. 내가 관심있는 건, 그 반대예요. 자연 앞에 인간을 위치시키는 거죠. 기념비 같은 인상을 주는 거예요.

 

관건은 엄밀하게 말하면 신테나 피부, 현신의 문제 같은데요.

 

내가 관심있는 부분은 영상과 신체의 물질성입니다. 신화적 존재의 현신에 대해 말하는 거죠. 그게 중요해요. 어떻게 성인을 영화로 찍을 것인가? 상이 왜곡되는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은 샷을 나눌 때 거듭 생각하게 하죠. 원경샷에서 배우를 가까이 잡고 싶을 때 씬을 나누는 것이 어렵거든요. 그래서 아마 서부 영화에서는 상대적으로 씬이 나눠지는 게 적은 이유일 거입니다. 스코프 카메라로 촬영하면 프레임의 바깥에서 안으로 가는 게 쉽지 않아요.

다른 한편으로, 디지털의 문제는 너무 잘 보인다는 겁니다. 너무나 많은 디테일이 보인다는 점이죠. 해상도의 강박적 집착으로 보여요...예를 들면 4케이나 그밖에 등등...,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요. 본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볼 필요는 없어요. 물론 안경이 없으면 잘 안보이긴 하지만, 그런 면에서는 시선도 노화되는 것 같아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선택적으로 보는거죠.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줍니다. 모든 영화에 관심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을 명명하게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강해질 수록, 우리는 관점을 잃게 되요. 그게 가장 중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원시나 신화, 그리고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위험한 일 아닐까요? 다소 작가주의 영화가 보여주는 공통분모 같은데요...

 

 내가 바라는 건, 원시성이나 신화 같은 담론이 아니예요. 뭔가 유행을 따른다거나 하는 것도 바라지 않아요...어떻게 다르게 말할 지 모르겠군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내게 아주 자연스러운 것들이고, 내 안에 늘 있었던 부분이예요. 조류학자에 대한 어릴 적 열망, 새를 관찰하는 즐거움에서 나온 영화예요. 단순히 내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싶었고, 내가 사는 세상, 내가 보는 것들을 말하고 싶었던 거죠. , 바보같아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제일 중요한 부분입니다.


 

 

최근 지난 해 동안, 주로 단편들을 만드셨는데요...영화작가로 장편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 있는 위험요소가 있지 않나요?

 

 물론이죠. 거리를 둬야 해요. 하지만 어쨌든 작가들이 작품을 하고 싶어하는 건 이해야 합니다! 내 경우엔, 제안에 의해서 한 거지 내가 원해서 한건 아니예요. 내가 원하는 건 영화를 찍는 겁니다. 아무 거나 하진 않죠. 거절도 할 수 있구요. 내게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제안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지 않죠.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영화적으로 접근하죠. 단편은 내가 스트레스 받지 않는 한에서, 최대한 시간을 잘 활용하도록 합니다. 예산 때문에 빨리 촬영하는 건 할 수 없어요. 내가 빠른 편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단편을 할 때마다, 늘 영화 수업을 하는 마음가짐이 되고, 다른 방법을 시도하게 됩니다. 할리우드 비급 영화 작가들의 위치에서 일하는 걸 좋아해요. 일년에 한 작품 하는 방식이요 : 시나리오는 네 것이 아니야, 너는 투자자들에게 돈을 요구할 필요도 없어. 그냥 빨리 영화를 찍기만 하면 돼. 뭐 이런거요. 내 영화가 예술작품으로 여겨지는 건 반갑지 않아요. 영화를 찍을 땐, 이전에 했던 영화를 잊어요. 반복은 강박관념에 불과해요. 계속 같은 영화를 찍는 다른 감독들을 이해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내가 하는 것들에 대한 믿음과 순수성을 지키고 싶어요. 그게 내 영화와 픽션의 기본의 기본 바탕입니다.

 

 

장 필립 트쎄

파리, 2016.10.03


번역; 잠수부 

 

 

 


 

 

카이에 뒤 시네마

201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