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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30 초대_ 알랭 바디우 Alain Badiou_ 인터뷰

초대_ 알랭 바디우 Alain Badiou_ 인터뷰


 

1957년부터 2010년까지 원고를 합한 문집
영화 의 출간을 맞아 철학자 알랭 바디우와 인터뷰를 가졌다.

총칭의 제목인 영화 는 영화에 관한 알랭 바디우의 50여년간의 사고를 집대성하여 보여준다. 그의 처녀 원고인 《영화적 문화》(1957)에서는 불순한 영화를 말한 바쟁의 사고를 부분차용하며, 작가의 정치참여에 반대하고 오직 영화에만 집중하도록 하였다. 그는 사고의 변천과 진실을 주제로 한 영화를 말한다. 말 그대로 《초대》하듯, 영화에 존재하고 지나치는 사고들을 어떻게 분석하는 가에 대한 문제를 말한다. 이 시초의 텍스트는 영화에서 인간의 존재를 시각화시키려는 사고를 보여주며 소설의 과업을 이루었다. 콘래드가 정의하듯이 말이다 : 《올바른 시지각계로 만들다》
 이 개념은 다양한 접근으로 시대의 중심에서 침투하며 존재해 왔다. 영화에서 알랭 바디우의 이야기는 보다 유동적이고 변화무쌍하다. 70년대에 마오이스트 집단에 의해 창간된,하루살이 앵파르나시엥 이나 벼락맞은 종이 같은 리뷰지에서는 영화의 투쟁적인 판단과 개입을 하였다. 특별히 《수정주의》영화에 반대하며 《좌파》적인 영화에 반대하였다. 미테랑 집권시대에 바디우는 앵무새 를 출간하였다. 거기에서 영화를 세계의 상황을 주제로 말하는 것이라며

 

방랑자다운 비평을 하였다 : 폴커 슐렌도르프
[각주:1]밀고자(1961) 나 피에르 뷔쇼의 파괴된 시간 의 경우에 그렇다. 90년대 후반에 드니스 레비와 함께 창간한 리뷰 영화 예술지에서, 영화에 보다 공식적인 접근을 하였다. 매그놀리아, 매트릭스 완벽한 세계 같은 미국 신고전주의 영화에 관해서였다. 
 노바출판사에서의 이 문집을 출간하며 알랭 바디우는 1998년부터 중단된 접속을 다시 시작하였다. 그리고 68혁명의 카이에 뒤 시네마 시리즈 이외에 전반적으로 오늘날 영화에 대해서 말이다. 

● 익히 알고 있는 영화 예술 의 텍스트를 보면 50년대부터 그렇게 빨리 시작했다는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앙투안 드 베크와의 인터뷰를 보면 시네필에 속하기를 거부했다고 하는데, 당시에 까이에 뒤 시네마를 읽었습니까?
 

내가 기억하는 한, 가끔 읽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다닌 고등 사범 학교 근처의 울름가에 시네마테크가 있었습니다. 난 가까스로 파리에 가곤 했습니다. 난 까이에의 진정한 독자라기 보다 이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까이에에서 나쁜 프랑스 영화 코너나 논쟁의 장 코너만을 보았습니다. 항상 영화에 자유롭고 기분이 내키는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한번도 충실히 읽은 적이 없고 내가 썼던 어떠한 리뷰 잡지도 꾸준히 읽은 적은 없습니다. 그것은 아주 중요한 점입니다. 영화에 대한 시선은 매우 강렬하고 존재감이 강하며 무정부적이지만, 동시에 거의 구조적이지 않은 특별함이 있었습니다. 난 여전히 영화를 보러갑니다.

●당신 세대의 경향이었나요?
 당시엔 예술계만큼이나 영화계에 학구적인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품위있는 지성인들들이 말하듯 영화는 아주 중요하다고 투쟁하는 것은 정당하고 필요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난 거기에 참여했습니다. 아주 강력한 열의에 찬 사람들이 있었고, 거의 투쟁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1957년의 텍스트《영화 문화》를 보면 트뤼포의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과 같이 일종의 선언같습니다.
 난 그 텍스트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난 사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일종의 침착함과 교훈이 있었습니다. 《문화》란 용어에 의해 정의되고, 그런 의미에서 현재 쓰고 있지 않습니다. 다른 예술만큼이나 영화도 존엄하다고 단지 말로 하고 싶은 것입니다.

●거기엔 동시에 인간의 존재를 위해 투쟁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초대》의 형태로 말입니다. 어떻게 이론적으로 사고를 구축하였습니까?
 사실 이 선언 이후에 어떤 지름길이 있었습니다. 전적으로 다양하지는 않지만, 베르그송이 말하듯 철학을 가능케하는 것이었습니다. 난 영화에 한가지 방식 밖에 없었씁니다. 이 텍스트는 연작의 첫 시작이었습니다. 초기 이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고 두 가지로 방식이 생겼습니다. 전자는 영화는 증언한다는 것입니다. 르포타주의 의미가 아니라 미학적으로 밀도있게 구성된 증언인 것입니다. 증언으로서의 현대 예술은 초기부터 늘 있었던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영화의 일회성이란 개념입니다. 영화는 시각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동시에 현실의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치를 입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영화는 예외적으로 일회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력적이지도 않고 보이지 않는 현실에 어떤 것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합니다. 영화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그 존재를 구성하고 실존하게 한 것입니다.  난 때로 그것을 영광으로 부릅니다. 내 텍스트에서 영화에 대해 종교가 아닌 일회성이란 용어를 쓰면서 스스로 놀랐습니다. 인간의 사고로 시작된 것입니다. 당시에 난 사르트르에 심취한 인본주의자였고 인간이 부재한, 점차 사라지거나 거의 중요치 않은 영화에 대해 맞서곤 했습니다.
 하지만 텍스트 이면에 철학적으로 접근해보면, 점점 영화는 지각하기 힘든 부재가 있는 현대를 증언하고 있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린 영화가 볼 수 없는 세계를 볼 수 있게끔 하는 일종의 책임감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이 생각은 점점 진전되고, 유기적으로 구성되며, 지지되며, 변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일시적으로 세계를 시각화합니다. 초대는 구현되거나 그렇지 않지만요.
 그렇습니다. 그것은 현존이 아닙니다. 흘러가는 세계를 보이는 것입니다. 아마도 가장 제약을 받지 않고 항상 일시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혹은 모든 연결부에서 예외적으로 심도있게 보여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의 총체성은 영화의 알파와 오메가가 아닙니다. 물론, 구조적으로 뛰어난 영화, 편집이나 총체적으로 뛰어난 영화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난 보다 시각적인 요소에 민감하고, 특별히 그것이 어떻게 산술되는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가끔 제작사나 감독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나쁜 영화에서조차도 훌륭한 영화적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아직까지 주장하는 바죠. 나쁜 영화는 아마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후에 때늦게 와닿곤 합니다. 그건 완전히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영화가 가능한 한 낮은 곳에 위치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나쁜 영화 속에서 어떤 부분을 말하는 것인가요?

아마 호세 베나제라의 60년대 영화로 기억합니다.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주 긴 상영시간의 것으로 상대적으로 지루했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힘이 있었습니다. 그게 아마 쌓기 장면이었는데, 밤 씬이었습니다. 청색의 상투적인 공간에서 갑자기 여성이 나팔을 불며 사람들을 깨웠습니다. 아마 무심히 지나갈 수도 있는 순간이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주 이색적이었습니다. 영화인들에 의해 추적되고 연구된 장면입니다. 전형적 예로, 로셀리니의 이탈리아 여향의 마지막 신에서 언어의 영적인 힘이 가진 어떤 기적을 보여줍니다. 왜냐면 영상은 현실의 것으로 평범하고 길은 일상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린 보여진 이미지의 어떤 요소가 반드시 완전히 보여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것들을 우린 초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영화의 완벽한 순간인 것입니다.   

영화의 개념은 현대의 증언처럼 당신의 저서에서 주요합니다. 이 두 텍스트는 한편으로 현대에 대한 사고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거의 역사를 아우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 1999년에 영화나 혹은 다른 분야에 등장하는 현대성의 한 지류입니다. 왜 영화는 현대에 연관되어 있는 겁니까? 우린 현대의 시선으로 이 장르를 이뤄갈 수 있을까요?
 가끔 가정을 하며 일종의 모험을 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아방가르드 영화보다 신고전주의에서 중요한 영화에 대해 말합니다. 혹은 그러한 장르는 여타의 분야에 참고가 되는 유형으로 느껴집니다. 오늘날 내게 중요한 것은 다큐멘터리에 관한 조사을 시도하며 그것을 공식화하는 것입니다. 난 곧 개봉할 도착한 사람 (클로드 보리와 파트리스 샹나 )나 경찰서 (이안 클리퍼와 브질 베르니에)에 대해 상상합니다. 

이 두 영화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난 형식적으로 급진적인 결함이 있거나 아직 방법을 찾지 못한 것같이 보입니다. 이 재능있는 감독은 도처에 이래저래 학술적 견해가 많지만사람들을 어떻게 찰영하는 지를 압니다 : 그는 세상 이야기, 우리가 말해온 존재효과를 영상의 시퀀스에 침잠하여 보여줍니다. 마치 그가 작업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듯합니다. 사람들은 긴장감이 덜한 지는 몰라도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알 수 있도록 긴 영상 시퀀스가 있습니다. 그게 좋은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편집을 거부한다는 일종의 암시가 있습니다. 감독이 영화를 증언으로 다루는 것을 잘 볼 수 있습니다. 비록 보이진 않지만 나래이션으로 이루어진 증언으로 말입니다. 우리가 다루지 않은 무언가가 분명히 있습니다.  
 경찰서 의 감독은 경찰을 보여주려 했지만 텔레비전시리즈처럼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일상을 존경심없이 보여줍니다. 경찰도 역시 시민과 같으며, 마찬가지로 내부에 불균형이 있다고 말합니다. 항상 다른 한 편을 보여주는 겁니다. 우리는 다뤄지지 않은 어떤 것을 보게 되는 거죠. 사람들은 항상 그들의 삶에 대해 무기력함이나 절망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지만, 이런 말은 항상 기호화가 될 준비가 되어 있기때문에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난 불균형의 비대칭을 약하게 드러내는 시퀀스를 생각했습니다. 비록 영화가 비대칭을 항상 보여주려하지만, 난 영화가 새로운 수단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그 수단으로 현실과 허구에서 상충하는 요소를 결말지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며, 현실로 구성된 허구나, 허구로 구성된 현실의 것들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예술장르처럼, 신 고전주의의 표현아래 새로운 것을 보여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런 현실과 허구 간의 새로운 시도는 분명히 신고전주의의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새로운 형식을 연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당

신이 10여년간 성과 특수효과, 폭력, 그리고 커플의 내면과 노동자를 둘러싼 사회적 멜로드라마의 요소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것은 본격적으로 비평가들에 의해 언급되진 않았지만, 프랑스 주요 영화감독들에 의해 다뤄진 것입니다. 특별히 커플들의 내면이나 인물의 사회적 멜로드라마에 대해서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그것은 새로울 것 없이 점차 개발되었습니다. 누벨 바그 세대들은 프랑스 영화의 질에 대해 반대하였지만 매우 강인한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누벨바그로 인해 프랑스 영화는 이전에 매우 강력하게 연극과 멀어지며 현대적으로 변천하며 개발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30년대나 50년대의 영광스러운 때 영화조차도 어떤 특정한 사회적 드라마와 커플의 역사가 교차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카르네[각주:2]의 영화에서 마찬가지로, 천국의 아이들(Les enfants du paradis, 1945), 새벽 (Le jour se leve,1935)을 보면 새로운 점이 있습니다. 영화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두드러진 이 특징은 항상 프랑스 영화에서 이중으로 존재해왔습니다 : 사회적 운명을 가진 인물과 그 인물이 가지는 감정이나 사랑과 성적 감각이 변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프랑스 영화의 이러한 요소가 불멸하도록 애쓰는 세대가 없다고 하더라도 우린 그 것을 찾을 것입니다. 난 항상 트뤼포에게서 지워지지 않는 여운을 발견합니다. 우리가 결별을 알릴 때 조차도, 우린 깨드리고자 하는 것에 항상 의지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들뢰즈에 반대하며, 당신은 1999년 발표한 텍스트에서 흥미로운 영화는 비유가 싹튼다고 했습니다. 영상은 비유에 반대하지 않지만 그 비유에서부터 유래한다고 말입니다. 
 난 항상 그것이 도래한다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적 장르는 비유들을 구성한 것입니다. 웨스턴 무비도 비유이며 동시에 이미지화된 이데올로기에 접근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웨스턴 영화를 찍으면, 그는 보다 그럴 듯하게 보이도록 이미지를 초대하며 비유를 할 것입니다. 영화적 매체의 오염으로 요약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작업의 일부분 정화과정을 거칩니다. 영화는, 항상 정신적 타락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일종의 쓰레기 처리장이죠. 여기엔 아주 복잡하고 고도로 단련된 솜씨로만 분류할 수 있는 쓰레기들이 많습니다. 물론 아무것도 아닌 쓰레기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난  이런 뺄셈의, 네가티브적 방법이 비유를 하기에 좋은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나는 전문적 정화를 일삼는 , 로베르 브레송에 의해 영화에 사로잡힌 적이 있습니다. 당나귀 발타자르[각주:3]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당나귀를 통해 인간의 모순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진정한 인간의 조건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다. " valign="top">(원제 : Au hasard Balthazar, 1966) 에서 경이로운 것은 당대 누아르 영화에서 흔히 보였던 매체와의 긴밀성이었습니다. 그의 영화 전반에 보이는 인민주의의 비유와 조금 비장한 흑백의 사용, 그리고 부랑자의 등장등이 그러했다. 그의 연출을 본 이후에 난 영화가 이미지의 범람속에서 현대적 매체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요약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매체로 작업을 한다는 사실도 함께 말입니다. 모든 요소, 사건의 등장 인물등은 가상적 비유에 의해 점차 구성되는 것일까? 난 가상 이미지와 첨단기술이 실내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졌던 인위적인 스튜디오의 방식으로 새로운 영화의 시대를 열지 않을 까 자문합니다. 야외 촬영을 많이 할 때는 마치 인상주의화풍처럼 작업대가 바깥에 있었죠. 너무 과장해서 말하는게 아닌 가 싶지만 영화의 인위성을 재적응시키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뤼미에르의 시대가 오래 이어진 후에 멜리에스의 시대가 새로이 도래한 것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아바타 를 보셨습니까?
 네. 마치 아이처럼 흥분되기를 바랬죠. 이념적 도구는 더이상 현실에서 상투적입니다. 세계는 더욱 인공적이며, 통제되고, 허구적 요소에 보다 개방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런 흥미로운 현상이 있죠. 아마 새로운 실험이나 편집, 구성, 연출등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전의 50-60년대 영화와 비슷해보이더라도 현재의 경향을 따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증언하는 영화로써 사회의 중심에 카메라를 놓아두고,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며 공공의 이득을 실현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해야한다면, 매체와 별개로 더욱 복잡해지는 포퓰리즘의 한 부분에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 다른 한 부분은 반대로 영화는 국지적으로 흩어져있는 현대의 모습을 보다 온화하게 밝히거나 그 스스로에게 집중할 것입니다. 

●당신의 저서로 다시 돌아와서, 고다르가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걸어온 행보가 그와 상당히 유사하며, 영화 자체가 매우 사회를 반영하는 정치적 영화의 개념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고다르는 라 시누아즈에서 당신의 텍스트를 언급했습니다) 있습니다(후설[각주:4]의 강연 도중 청중에게 사회주의 영화 범주에서 당신이 소개되었습니다 ). 
 맞는것 같습니다. 우린 동일한 역사적 다리를 건너고, 근접한 세대입니다. 숨이 가쁜 은 니힐리즘과 조금 가까운 현대 낭만주의의 한 종류이며, 실존주의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우선 비극의 도처에 깔린 인본주의의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봅니다. 68혁명과 정치적 행위가 빈번했던 80년대를 아울러 고다르는 이전의 세대가 교체되는 거대한 시기를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한번에 정치적 시퀀스를 구성하면서 동시에 주제에 대한 고민을 드러내겠습니까? 열정 ,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영화에 대한 오랜 사색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나 역시 영화와 관련해서 이런 여정을 밟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고다르고, 그가 영화를 하고 내가 바로 그 뒤를 좇는 셈이죠. 나와 그가 다른점은-그가  단지 목격자가 아니라 예술가인 사실을 말하지 않더라도-결말부에 드러나는 그의 이론에 내가 동참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영화는 20세기에 잘 부합하고, 그는 이 위치에서 최후까지 남아 증언을 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난 영화가 아직 무궁무진하기에 영화의 종말을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다른 점은 이런 영화에 대한 선언이 이미지의 존재에 대해서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지란 무엇입니까? 고다르라면 이미지가 단순히 우리가 보통 인지하는 것들의 총합이라고 보는 대신, 찰나의 순간에 이미지간에 연결되어 나타나는 것이라 이야기 할 것입니다. 그는 진실된 이미지란 혼성된 순간에 찰나를 붙잡는 것이라 이야기 할 것입니다. 우린 양립불가능한 상황에 놓인 러시아 군인과 독일군인을 본다고 가정합시다. 이미지는 매우 강렬하면서 양립불가능한 구성의 이미지일 것입니다.  난 이 것이 이미지의 유형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반대로 난 이미지가 보이지 않는 조화에 의해 생성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이미지의 내부적 요소로 인해 내재하는 조화가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고다르의 행보는 나의 것과 같지만, 같은 결론에 도달하진 않습니다. 아마 정치적 경험이 각각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 고다르식의 정치참여는 항상 니힐리즘적 측면을 함축하고 있고 동시에 급진적입니다. 그건 정치적이었던 당대 가장 급진적인 영화 모두 괜찮아(Tout va bien ) 에서도 알 수 있죠. 갑자기, 이 정치참여의 시대가 종합적으로 평가할 가능성을 모두 차단하진 않았는지 의문점이 드는군요. 그에게 불변의 요소만 찾으면서 말입니다. 요컨대  그건 신비적입니다. 궁극의 진실이란, 푸른 하늘, 그리고 아이들이나 동물들보다 세상에 나은 것은 없다는 생각이죠. 이러한 주제는 내가 아니라 그가 가진 것입니다. 내가 정치참여를 하며 이룬 것은 아이러니가 보다 덜 드러납니다. 그리고 나 스스로 발언할 권리를 주장하는 만큼, 보다 이해가 쉽습니다.

● 당신이 영화의 종말에 대한 선언에 찬성하지 않다 하더라도, 당신의 텍스트를 보면 더이상 상위로 진보하며 나아가지 않을 거라 이야기합니다.
 그건 다른 문제입니다. 난 영화가 가능한 모든 것을 생산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에 두고 볼 일이겠죠. 영화는 중요한 것을 만들지만 난 아직 무언가 더 남아있다고 늘 회의합니다. 현존하는 시대의 척도로 판단하는 것은 어떠한 다른 예술장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다르 주의가 가속화한 역사 속에서 그의 가설을 완수한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고 전 속력으로 달린 끝에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를 굳힌 영화 사 속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난 아직 동의하지 않습니다. 바로  현대의 어떤 요소나 기술이 그의 가능성 전부를 펼쳐보이려면 아직 멀었다는 주장에 말입니다. 난 속도가 빠르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새로운 범주들을 아주 빠르게 쌓아올렸습니다. 우린 무성의 흑백영화에서, 채색영화로, 대형스크린으로, 디지털화에까지 이렀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자원을 증폭시켰습니다. 예술적 발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당연한 것입니다. 아직 상위로 쌓아올릴 범주가 있으며, 자원이 있고 무한한 기술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술적으로 완벽해지면, 예술적 원동력에 힘입어 더욱 자유자재로 수단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의미로, 유화의 기술이 최고점에 이른 시기는 19세기의 옛 화풍일 것입니다. 하지만 당장 우린 인색한 추상주의회화에 반대하곤 하지 않습니까. 이미 영화는 도달했지만 계속 나아갈 것입니다. 기술적 확장과 압도적인 연출 사이(그리피스의 인톨레런스,1916)엔 어떤 리듬이 있고 때로 영화가 퇴보한다면 그 스스로 보다 중립적인 위치, 현실의 낮은 곳(로셀리니)로 갈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색상 면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색상이 중요한 영화가 있지만 대작에서 조차도 그 것은 통합에서 한 부분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우린 영화에 튀는 색을 잘 볼 수 있습니다. 그 색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죠. 그건 페인팅의 경우와 다릅니다. 페인팅에서 색이 칠해지려면 작가가 붓을 들어 칠해야 합니다. 영화에서는 단순히 그 색이 그 곳에 있기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린 한 부분을 통제하지만 아직 구조적으로 고안해 낼 요소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말레비치처럼 색상을 더는 끔찍한 방식으로 되돌아갈수도 있겠죠. 사실 난 고다르의 주장과 완전히 반대로 생각해봅니다 : 영화는 아마 그의 시초에 지나지 않는다, 그 앞에 긴 행로가 있을 뿐이다. 난 그 보다 그리스 비극에 대해 생각합니다. 소포클이나 아이스퀼로스의 비극 역시 그 초반부에 기막히게 놀라운 것을 보여주죠. 로마 시대를 지나며 연극이 재등장하기 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여전히 그것은 계속되었고, 아직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계보인 영화를 제작할 것이라는 사실을 텍스트에서 보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흐메드 4부작(섬세한 아흐메드 , 철학가 아흐메드, 아흐메드 화나다, 머리)이란 연극을 연출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 플라톤의 일생을 다룬 영화를 구상 중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흰 영화보다 연극을 연출할 거라 생각했었습니다만.
 둘 다 같습니다. 내가 궁금한 건 철학이 글의 시녀에 머무를 건지 다르게 나아갈 건지 아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재미를 주는 철학을 할 수 있을까요? 혹은 철학 영화는요? 철학과 영화 간의 이야기는 아주 복잡합니다. 우선, 내가 철학이 주가 되는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지 자문합니다. 학술적인 것이 아니라-로셀리니는 소크라테스, 파스칼에 관한 영화를 그런 시도로 찍었습니다-, 또 영화 중간에 철학강좌가 나오는 것 없이 말입니다. 그러면 우린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가능한 영화가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게 낫겠죠 : 바로 그의 일생입니다. 또한 고대 사극이나 그리스 사회겠죠. 난 옛날과 현대의 통로에 그것을 놓을 수 있을 지 자문했습니다. 왜냐하면 철학의 특징상 그것이 이천년여년간 시대에 걸쳐있지만, 거의 한 세기에만 집중되어 나타나있기 때문입니다. 철학사에서만 드러나는 특징입니다. 그래서 우린 현대와 플라톤의 시대 사시에 소통하는 바를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난 파리의 15지구에 이민자 가정이 몰려있는 플라톤거리 에서 생각하곤 했습니다. 거기 플라톤이 하루일과를 계획했을 지도 모른 곳에는 아프리카 이주민 주거집단이 있었습니다. 우린 플라톤을 세입자로 다루었습니다. 영화의 초반부를 파솔리니의 오이디푸스 왕 과 비슷하게 하도록 구상했죠.   


플라톤은 현대에 살도록 설정하지 않을 것인가요?
 네, 그는 그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우린 현대인들이 옛날에 존재한 그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와 아테네식 민주주의의 상속을 받았는가에 대해 보여줄 겁니다. 플라톤의 일생에서 현실과 신화가 뒤섞인 많은 무용담이 있습니다. 영화는 보다 쉽게 그것을 떠들 수 있죠. 그래서 우린 그가 알제리 해적들에 의해 시실리의 노예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적에 의해 사로잡힌 플라톤을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또한 고대사극에서처럼 고대 유적의 이미지로 구성하여 영화를 찍을 수도 있을 겁니다 : 쥬피터신, 전투, 이륜마차 경주 등등의 이미지들이 되겠죠. 플라톤의 일생을 다룬다면, 이전에 말했듯이 이런 이미지를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린 반대로 이런 비유들에 맞설 것이며, 그것을 버리면서 어떤 다른 이미지들이 생길지를 볼 것입니다. 정말로 왕래하는 요소들 말입니다 : 그것은 텍스트입니다. 

직접 연출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지금 대본을 쓰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연출을 해볼 생각입니다. 다른 문제에 직면하겠죠. 영화예써 항상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어쩄든 예산이 많이 필요합니다. 적은 예산으로도 찍을 수 있겠지만, 초라하게 영화를 찍고 싶진 않습니다. 난 라스베거스에도 자주 가고, 내 안에 괴짜같은 면이 있음을 인정하겠습니다. 플라톤 역에 난 브래드 피트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내 심오한 영화에 나오는 것도 우스갯거리가 될 겁니다. 난 영화가 평가받거나 위대해지기 위해 그 부분에서 따로 떨어뜨리는 입장이 아닙니다. 결말부에 이제껏 보지 못한 것이 나타나거나, 해체되는 요소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좋고 나쁜지에 미리 정해놓은 것은 없습니다. 플라톤의 생에 대해 헐리우드식 영화방식을 고려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소형카메라와 적어도 3명의 보조자가 있어야겠죠. 결국 영화의 상업적 측면은 내게 계약일 뿐입니다. 그것은 수치스러운 게 아니죠. 영화는 그렇게 이뤄지는 거 아닙니까, 항상 자본의 요구대로 움직이는 사업체처럼 시작되는 겁니다.  

●당신의 저서 말미에, 철학에 희망의 교훈을 준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건 내가 바라는 바입니다. 영화는 고집센 예술입니다. 바로 관념에 의해 세상이 버려지진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린 세상에서 의미가 있는 것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세계가 의미에 찼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어떠한 상황에서도 추출해낼 수 있는 요소가 있다는 겁니다. 인도의 농부나, 중세 일본인, 혹은 파리의 현대 중산층의 어떠한 상황이든, 거기엔 일반적인 요소가 있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그 요소를 모두가 흥미로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그 작업을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심지오 회의에 찬 시기에도 말이죠. 그래서 팔짱낀 채 방관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철학도 같은 방법으로 진행됩니다. 공통적인 인간의 경험을 추출합니다. 영화는 완전히 비판적이거나 무신론적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체로 현대의 매체이기 때문에, 다른 현대의 매체를 써야 하고, 무언가 확언을 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한 영화가 아주 위대하거나 강렬하다면, 그것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어떤 가능성이나 언급되지 않은 시각성, 그리고 혐오해왔던 어떤 존재를 가리키는 것일 겁니다. 영화 경찰서 로 돌아와서, 거기엔 존엄성의 회복이 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이 모두 나락으로 떨어지는 중이죠. 거의 모두 알콜중독자, 막다른 길에 몰린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시간동안 우린 그 사람들과 교류하고, 상황과 대화합니다. 영화는 그들이 존재하며, 인간적 존재의 어떤 요소를 증명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거기에 관심있는 게 정상입니다. 바로 경찰들이 그들을 그렇게 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대하지 않는 순간을 보는게 말입니다. 여긴 평등에 대한 교훈이 있습니다. 존엄성이나, 여타 가치있는 무언가요. 영화는 무언가를 하고 있죠. 그건 영화적 의무입니다 ; 그렇지 않다면 영화는 시야를 넓히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무엇이겠죠. 

●당신의 초대 란 개념에서, 종교적 어휘가 나올 때조차도 일종의 수동적인 게 느껴집니다. 당신은 70년대에 영화에 대해 작성한 원고를 현재의 것에 적용시켰습니까? 그리고 예측컨대 누가 이 현실의 창조에 대해 언급했습니까?
 난 그것이 완전히 대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에 도발이라고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 무엇이 영화의 수단이 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영화의 수단은 단지 이러한 가능성을 열고, 이전시키며, 일으키도록 하는 역활을 합니다. 단지 문제는 재현이나 설명하거나 보여지는 것에만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린 놀랍게도 초대의 개념으로 되돌아옵니다. 전쟁의 시대에, 우린 영화에 어떤 일시적인 개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허망하게 흘러가버렸죠. 우리가 믿는 바와 반대로, 영화에 대한 논쟁은 지루할 만큼 길고 힘들었습니다. 영화가 진보적인가 아닌가를 결정짓는 가가 전부였던 시기였습니다. 우린 단지 영화가 어떤 결말을 맺는지, 그리고 단순히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보려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과 맞지 않았죠. 난 진보주의자에 의해 바쳐진 미국 노동자 파업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조차 논쟁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거기엔 노동자들을 촬영하는 연출이 필요했죠. 도착자들 은 피난민들의 인권을 주장하며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거기엔 말을 그대로 대사로 쓰더군요. 이 영화는 모든 피난민들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영화를 평가하기엔 부족합니다. 보다 소말리아인들의 말하는 습관 이전에 그들이 정부에게나 그들 스스로 나타내는 바를 포착하는 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건 영화의 문제입니다.      

●게디귀앙[각주:5]의 인물들에 대해 사회적 멜로를 드러내는 노동자라고  쓴 것과 비참한 사람들 이라고 제목을 붙인 다음 영화로 되돌아가보죠. 알릭스 들라포트(Alix Delaporte)의 다음 영화, 앙젤과 토니 (Angèle et Tony)란 제목이 우연히 선택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비평할 여지가 있는 유형을 보여줍니다.
 난 거기에 완전히 설득되었습니다. 일반적 인물로, 사회적 인물에 적당한 감정이 이입된 전형적 프랑스인이 나오는 좌파적 영화입니다. 또, 완고한 배우들과 프로방스풍의 도시가 나오죠. 모든 요소들을 열거할 수 있습니다.  
 


●파리전망을 보면 프랑스의 사회적 멜로드라마의 전형이 이어집니다 : 《작은 시골 마을의 상처한 교사》말입니다...
 네. 그건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죠. 사회상을 배경으로 감적적 멜로를 펼치는 것은 지치지 않는 공식이죠. 그건 30년대에 뒤비비에(Duvivier)의 좋은 콤비(La Belle équipe ,1936
)
새벽(Le Jour se lève ,1938,감독: Yeuh Peng) 에서 등장했습니다. 분명히 그 영화들은 프랑스 역사와 연결되있고, 특별히 프랑스 좌파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현대에는, 후최나 투쟁의 기반에 대해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아마 분명히 가능할 것입니다.  

●당신은 자크 드미(Jacque Demy)의 영화 도시의 방(Une Chambre en ville, 1982) 에 아주 신랄하게 말했습니다.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드미에게 늘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은 아닙니다. 드미는 프랑스 코미디 뮤지컬 방식에 흥미를 가지고 시도를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진실된 요점이 없이 좌파들이 부르는 동요같았습니다. 그의 영화에서 드러나는 좌파 영화적 전통은 어떤 의미에서 그가 항상 뛰어난 영화를 만들었다는 면에서 특별합니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의 시기에 프랑스인들의 사회적 멜로 소설을 구축했다는 것입니다. 그 뒷 배경에는 프랑스 누아르 영화가 있었죠. 내 철학적 용어를 쓰자면, 프랑스식 초월성이라고 부르고 싶군요. 그것은 단순히 영화에서 그치지 않는 프랑스 예술의 유기적 인물입니다. 소설속에도 등장하고, 이후 공산주의자들에 점령된 미술계에서도 해방이후에 등장하는 요소입니다. 항상 야심찬 예술에 의해 정의된 거대한 역사입니다. 그것은 범속한 연작이 아니었습니다. 보다 급진적인 의식을 가지고 훌륭하게 나아간 겁니다. 프랑스의 진짜 문제는 정치적, 사회적 회의점에 대해 현실적으로 결단을 내리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건 프랑스 역사의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또한 프랑스 공산주자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 그의 문제는 소비에트 연방이나 스탈린에 대해 충성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분야에 혁신적인 선언을 하지 못했기 떄문입니다. 노조활동을 하거나 의회선거에 참여한 것 이외엔 하지 않았습니다. 프로방스 지역과 교외거주자들의 태도였습니다. 프랑스공산당PCE(Parti communiste français )와 유사한 프랑스 영화의 부류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르누아르의 영화, 삶은 우리의 것이다(La Vie est à nous ,1936)와 마르세이유사람(Marseillaise,1937) 이 있죠.
 
●하지만 어떻게 프랑스 영화에서 사회적 정치적 오류가 생겼다는 겁니까?
 영화가 사회에 대한 암시를 한다는 정치적 이론이 가진 급진적인 특징은 다시 말해 우리에게 영화가 대중사회에서 뿌리를 잃은 사람들의 용감함이 드러나는 여정을 보여준다는 말입니다. 이론은 사회적 차원에 도달하는 정치적 급진주의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사회적 차원은 일종의 보증수표로, 영화에 산재한 현실의 급진주의적 측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어떤 명백한 것은 없습니다. 우린 대중적 차원이 무엇보다 확실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마치 대중적 반동주의가 큰 반향을 일으키듯 말이죠. 정치적 문제는 사회적 문제로 단순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건 어떻게 방향을 정하느냐와 구성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이런 프랑스 혁명좌파의 유래가 무정부주의자-노조활동의 편에 있다는 것은 오해입니다. PCF은 규율을 준수하는 프랑스 무정부주의자들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온건한 태도는 강력하게 조직된 조합과 대중에게 보다 개방적이었죠. 영화에서 이런 사회적 비유들이 상기시키는 것은 정말 그것을 평가절하하거나 가치있게 다루는 차원이 아니라, 단지 민속적 측면을 되살린 것 뿐입니다. 그리고 급진주의 자체도 겉치레였습니다. 카르네[각주:6]의 영화를 보세요 : 인물 주변에 점철된 고통들에도 불구하고 용감한 사람이 나옵니다. 계속해서 사회 비유가 드러나면서 인물은 과감히 나갑니다. 아멜리 풀랭(Le Fabuleux Destin d'Amélie Poulain, 2001 ,감독 : 장 피에르 쥬네 )을 보면 견딜 수가 없더군요. 그건 사회로부터 상승한 이미지가 아니라, 겉치레뿐인 이미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관습은 그것이 스타일로 굳어지더라도, 여전히 겉치레일 뿐입니다. 영화를 완전히 망가뜨릴 뿐이죠.

●소-시민 코미디는 프랑스 영화가 또다르게 《초월적 프랑스》를 보여준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합니다. 내가 프랑스 내면주의라고 일찍이 불렀죠. 가장 기본적인 가족과 연인들의 역사입니다. 연인의 드라마, 가족의 드라마는 정신적으로 불편함과 동시에 사회적으론 불편하진 않죠. 두번째로 사회로 영입되기 이전이며 인물의 첫 환경이자 매우 연극적입니다. 러브 코미디 장르의 창시자는 19세기 말의 보드빌(가벼운 희극)에서 시작하였습니다. 그 이후에 페이도와 라비쉬에 의해 이어졌죠. 이후에 솔직한 웃음을 주도록 연출되거나, 진지한 분위기로, 혹은 더 혹은 덜 진정되어 나타났습니다. 한정된 비유는 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집중하게 하죠.  


당신은 역사가 전속력으로 탈중심화되면서 이런 비유가 더이상 의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부부나 가족의 상황과 더이상 연결되어 있지 않고, 촬영하는 주변에만 머무르는 요소는 힘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죠. 라비쉬의 이탈리아 밀집모자 (Un Chapeau de paille d'Italie )가 그 모태가 될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보며 웃을 수 있는 것은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가족이나 연인의 드르마에서 드러나는 사람들의 정신상태인 나르시스즘에서 벗어나있기 때문입니다. 타티[각주:7]의 영화 윌로씨의 휴가(Les Vacances de Monsieur Hulot) 를 보면, 그가 바캉스영화를 주제로 삼은 것도 그렇지만, 늘 해체적 시점과 동시에 유사한 시점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윌로씨는 늘 사고뭉치에, 실수가 많고, 역설적인 인물입니다. 그런 특징이 잘 통하는 겁니다. 윌로씨는 고정된 요소이지만, 동시에 무질서적인 요소로 상황을 해체시킵니다. 만약 반대로 늘 해체적인 요소가 고정적으로 있다면, 그건 재미없을 겁니다. 

프랑스 영화가 초월적인 측면에서 벗어나 보다 광대하게 영역을 넓혀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앞으로도 새로운 것들이 있을 까요?
 네. 그렇습니다. 우선 선험적인 측면의 개발이 이뤄졌던 시대를 생각하면, 그것은 항상 그 자신을 초월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특징은 늘 흥미롭죠. 30-40년대 영화에는 항상 개발하려는 면이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노동자의 등장은 진정한 개발이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으로 노동자를 세운 것-카르네가 한 것처럼-은  《시적 사실주의》와 같은 어떤 명암을 창조해낸 것입니다. 진정한 희극을 향해 한 걸음 성공적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 바로 그건 타티입니다. 마리보나 뮈세 계통의 언어에 관한 뿌리에서 시작해 감성적 에피소드까지 추론해나간 것입니다. 아마 그 예는 로메르[각주:8]가 될 것입니다. 철학교수나 포도주농장이 나오면서 프랑스 영화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감정의 흐름을 보여주죠. 우리가 가진 불변의 조건 속에서 그는 그것에 대해 급진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 《내가 내 문체를 떠나서, 뭐가 되겠습니까?》 그것은 기술된 영화인 것이다. 사람들은 복잡하고 인위적이고 극도로 인위적인 언어에 대해 말합니다. 영상은 이런 텍스트에 가담하지만 그 스스로 마무리됩니다. 또 영화는 점점 앞을 예견할 수 없도록 복잡한 미로를 향해 궤도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난 프랑스 영화가 불모의 영역이거나 아무것도 개발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고안하는 것들이 고정적 요소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초월적 측면을 지엽적으로 비판되고, 급진적으로 거부하고 있다는 겁니다. 가쁜 숨(A bout de souffle, 1960, Jean-Luc Godard) 를 보면 프랑스 누아르 영화의 선험적인 정신상태와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죽음의 행렬을 보며 강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죠. 그게 다른 요소들때문에 움직이더라도 말입니다. 이런 활성화는 항상 초월적 비유들과 가까운 요소들을 한정적으로 다루면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사회주의 영화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신이 고다르의 영화를 보았으면 좋겠군요. 그의 최근의 영화들의 결론이 비록 혼란스럽지만 말입니다. 그 자신이 아니라, 말하려고 하는 바를 예로 들면 이렇습니다 : 기존의 사회적 인물에 겹쳐지는 것, 친숙한 것을 알고자 하는 것은 독자적으로 의미를 가지진 않습니다. 구분에 관한 영화인 것입니다. 영화의 진정한 주제는 이것입니다 : 연이은 것들 사이에 보여지지 않고 감춰져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래서 고다르에게서는 이런 구성들이 복잡하게 얽혀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화를 두번 보고나서 난 혼란스러웠습니다. 난 그의 영화에서 그를 먼저 봅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영상을 보는 관점에 의해 파악된 것, 그리고 따로 분리된 순수한 천성의 가치 말입니다. 그건 신화적 주제이기도 합니다. 바다, 자연, 동물, 라마가 등장하는 이국적 풍경들도 나오며 보다 열린 도상들이 나옵니다. 그게 영화의 진정한 주제이죠. 그러나 난 질식할 것 같은 미궁을 보기도 합니다. 그가 궁극적으로 현실에서 세계의 빛이 어디있는 지를 알려한다면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단순화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관객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모호한 요소들에 의해 더욱 흥미를 가질 겁니다. 이런 점에서, 이차적 부분인 가족적 부분은 아마 전자보다 훨씬 성공적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말할 수 없는 상징을 제목이 대신하도록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난 고다르에게 《사회주의》에 대해 말하라고 요청하하곤 했습니다. 거기에 그는 《관대함》을 말하고 싶다곤 했습니다. 그래서 난 그를 내버려두었죠. 난 그가 최고 권위자임에도 늘 그만의 복잡하게 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고 생각합니다 : 음향적 차원, 연속적 영상, 기준들, 편집, 자막 들에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난 그에게 단순화시키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는 늘 그렇듯이 핑계를 대며 빠져나갔죠 : 《알다시피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복잡한 겁니다.》 그래서 난 여전히 그를 내버려두고 있다. ■     





출처 : CAHIERS DU CINEMA. 2011.01 
기사 : Nicolas Azalbert
번역 : PLONGEUR ( ZAMSOOBU )
  1. Volker Schlondorff (1939 독일 출생) 대표작 ; 양철북(1979) [본문으로]
  2. Marcel Carne(1909 프랑스 출생,)영화감독 [본문으로]
  3. "브레송 [본문으로]
  4. Edmund Husserl-현상학(現象學/phenomenology)이란 현상을 중요하게 여기는 현대 철학사조로 살아있는 인간 경험을 연구하려는 철학적 접근이고 연구이다. Husserl 현상학은 사물 그 자체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며,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경험의 본질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즉, 현상학은 ‘스스로를 드러냄’ 또는 ‘스스로 드러내는 대로 그 자체를 볼 수 있도록 해줌’을 말한다. 현상학은 어떤 선입견이나 이론의 개념들에 의해 방해 받지 않고 경험세계에 기초하여 본질을 밝히는 것이다. 퐁티는 언제나 ‘어떤 것의 본질이나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뜻에서 ‘본질에 대한 연구’라고 현상학을 정의했다. -후설의 현상학-후설은 의식의 자발성, 발전성, 형식성의 성격으로 소통 가능성의 의도, 의도된 행위 자체에 내재한 인식에의 바람으로 사적인 것으로 우리 정신은 그 사적 체험을 소통시키고자 하는 의지 이 의사소통의 의도로 ‘무엇에 관한 의식’인 지향성을 노에시스Noesis(‘사유’라는 뜻을 가진 희랍어로 의식 행위의 본질적인 구조)라고 불렀으며, 초월자아의 소산인 ‘무엇’을 노에마Noema(‘사유된 것’을 말하며 행위에 대응하는 개관적인 것)로 지칭했다. 노에마는 의식의 내용적 성격으로 의식을 향하고 결정하는 것은 노에마(의식내용)이고, 노에마가 없다면 의식대상도 없다. 주체는 내용 파악을 통해서 존재(사물)를 인식하며, 따라서 내용은 인식대상(인식목표)으로 가는 경로·지도이다. 사고내용이 없다면, 어떤 생각도, 표상도 불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이것을 ‘노에시스-노에마 상관관계라 하며 다음 세 가지가 있다.첫째, 각기 다른 대상에는 각각의 본질 구조를 가진 노에시스가 있으므로 서로 다른 노에시스-노에마 상관관계가 있다. 따라서 특정 대상 영역과 관련한 노에시스-노에마 상관관계의 구조 해명을 통해서 그 대상 영역에 고유한 존재 원리 및 인식 원리의 해명을 위한 실마리를 획득할 수 있다. 둘째, 노에시스-노에마 상관관계는 모든 영역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감각을 통해서는 직접 파악되지 않은 본질적 대상과 내재적 반성을 통해서만 대상화될 수 있는 의식의 지향성이 있다. 셋째, 현상학은 경험 과학이 아니라 현상의 본질 구조를 탐구하는 본질학이므로 노에시스-노에마 상관관계는 불변적이며 초월적 시간이다. 이렇게 노에시스가 노에마와 상관관계를 가지면서 형성시켜가는 과정을 후설은 구성(konstruktion)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모든 대상과 존재는 주관에 의해 구성된 존재로 의미가 파악되어 존재타당성을 획득하게 된다. 현상학은 인간의 문제를 탐구하는 대부분의 개별학문들에게 인간 중심주의의 학문 방법적인 틀을 제공해서 큰 영향을 끼쳤다.-출처: http://readersnews.com/sub_read.html?uid=12048§ion=sc1 [본문으로]
  5. Robert Guédiguian 1953.마르세이유 출생.영화감독. [본문으로]
  6. Marcel Carné (1906-1996)프랑스 영화감독 [본문으로]
  7. Jacque Tati (1907-1982) 프랑스 영화감독, 배우 [본문으로]
  8. Éric Rohmer (1920-2010)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