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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2.26 돼지의 왕 ; 반反하이틴 무비 잔혹 스릴러

돼지의 왕 ; 반反하이틴 무비 잔혹 스릴러

 애니메이션은 예상을 뛰어넘는 수위였다. 피가 튀는 것, 욕설이 난무하는 것, 폭력이 끊이지 않는 것 등은 그저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작 말하고 있는 것, 그 안의 생각. 품고 있는 사상. 원칙.

 그것은 사실과 다르지 않다. 실제로 종종 뉴스면에서 볼 수 있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집단 따돌림,  학교의 묵인, 그리고 자살...소송 사건 등등...
 나의 중학교 때는 어떠했나. 여자중학교, 그리고 서울 중심가이지만 해방촌이라는 촌스러운 이름 덕분인지, 경사면에 따개비같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가난한 동네의 학교. 그런 폭력은 없었다. 하지만 어느 학교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영화를 보기 전, 나는 한 소설이 생각났다.  소설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1992년 영화화 되기도 하였던 소설이다. 영화에 홍경인의 반항적이며 고독한 눈매가 인상적이다. 그 소설이나 영화에 드러나는 것은 소년들의 계급, 그리고 그 상위에 군림하는 지배자. 독재자. 그리고 거기에 반항하는 저항세력, 체제의 전복, 그러나 다시 계급의 부활, 아이러니 등이다. 어른들의 사회보다 더욱 분명하고 가감없이 드러나는 힘의 원리는 더욱 그렇기에 씁쓸하다. 소설다웁게 문예적으로 순화되기는 하였으나 냉혹한 현실의 생리는 온전히 전해진다.

돼지의 왕은 여기에 보다 싸이코드라마 같은 요소를 섞는다. 애니메이션이란 장르적 특성을 살려, 환상적 이미지...애드거 앨런 포의 고양이가 떠오른다. 그보다는 더 노골적이지만. 적나라함은 이 애니메이션이 가진 미덕이다. 돈이나 권력을 두고 치열하게 그리고 비열하게 아귀다툼할 수 밖에 없는, 죽이지 않으면 죽는, 밟히지 않으면 밟히는 현실을 직설로 내뱉는다.
 그리고 다른 한축으로 공포적 환타지에 크게 차지하고 있다. 인물들의 혼란스러운 심리를 뒤틀린 오브제에 투영하여 드러내는 것이다. 만약 조금 더 비밀스러웠다면 어땠을까...형광등의 사실적 조명이냐  백열등의 몽상적이며 감성적 조명이냐, 영화는 보다 사실에 가까이 가기로 결심한 듯 하다. 하지만 솔직히 너무 뚜렷해서 웃기는, 기이한 장면이 있다.


무엇보다 입이 떡 벌어진 건, 후반부이다. 미리 결말을 말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애니메이션이기에 스릴러라고 해도 큰 기대가 없었던 탓에 방심하던 찰나 강하게 충격을 준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사용한 연출방법이 더욱 놀라웠다. 영화의 카메라무빙을 모사한 듯한, 순간정지화면, 그리고 아웃포커스된 화면이었다. 이후에, 준석이 극단적인 불안을 겪으며 몸을 가누지 못하며 잔상을 남기는 장면은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이 애니메이션을 맛보기에, 배우들의 목소리도 한 몫한다. 조금 덜 다듬어진 듯한 목소리가 거슬린다기보다 오히려 애니메이션 특유의 과장된 목소리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화면이 갑자기 뚝 끊기거나 과거회상장면에서 현실로 넘나드는 맥락에서 "나는..."하고 운을 떼는 종석의 나래이션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현실의 한 일면에 집중하여 극도로 정제되었기에, 너무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겠다. 마치 전적인 피해자의 고백록같은, 뉘앙스의 단조로움이 다소 아쉽다. 하지만,그랬기에, 스토리가 수평적이었기에 스릴러가 자리를 채우고 자리잡기에 좋았을 지도 모른다. 스릴러 장르의 매니아로서 중간중간 드러나는 민망할 정도의 적나라함이 있음에도, 마지막 방으로 애니메이션의, 청소년의 성장 영화에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램이다. 이런 성격의 애니메이션이 진심으로 향후 다수 만들어지길 바란다.

돼지의 왕 The King of Pigs, 2011
감독, 각본 : 연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