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_인터뷰

데이비드 호크니는 1999년 퐁피두 센터에서 회고전을 마지막으로 파리에서 전시를 가지지 않았다. 2010년 10월 20일에서 2011년 1월 30일까지, 피에르 베르제-이브 생 로랑 재단
[각주:1](파리)에서 그의 작품 싱싱한 꽃(전시기획 : 찰리 쉐입Charile Scheips)을 선보였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채색된 작품이다. 프랑수와 용케François Jonquet가 그의 모국인 영국, 요크셔에 그를 찾아갔다. 항상 신기술(팩스, 사진...)에 빠르게 적응하는 호크니는 이번에도 이를 작품에 이용하였다. 여기에 호크니의 세계로의 여정을 이야기한다.


브리들링턴에 가기 위해, 킹스 크로스역까지 가서 요크셔까지 기타를 타고 간 후, 밭 사이를 가로지르며 서행하는 지방열차로 갈아타야 한다. 짧은 풀이 자라는 산야에서 지방열차를 갈아탄다 ; 목적지는 그렇게 멀지 않다. 북해와 맞닿은 곳, 고색창연한 멋이 있는 해안역에서 그를 만났다. 데이비드는 그의 모친상을 치른 지 10년이 지났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가려주신 오래된 작은 저택, 몇개의 방이 있는 그 저택에서 살고 있다. 그의 측근과 방문하곤 하는 지인이 머물기에 충분히 넓다 : 그는 고독을 즐기지만, 여러 무리속에 있는 것 또한 좋아한다. 그의 세계를 보면 열정의 한계점 까지 가는 듯 하다 : 《호크니에게 일요일이란 없다!》, 이들 중 하나는 이렇게 말한다. 호크니는 로스엔젤로스 언덕에서의 모든 열락을 이곳, 이 저택에서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우린 현재 브리들링턴에 위치해있다》라고 말한다 : 새로운 시도의 일환으로,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룬 영화는 헐리우드가 아닌 곳에서 일회적으로 찰영되었다. 《내 노년은 캘리포니아에서 보낼 것입니다》라고, 이 73세의 남자가 웃으며 말한다. 이렇게 그가 태어난 안개 낀  요크셔 대지를 말하는 것이 그의 새로운 주제이다. 작은 골짜기들에선 품위있는 나무들로 시야가 가려진다. 마치 미국 대지의 복제판같다. 브리들링턴과 작가의 곁을 오가며, 광적인 희망과 슬픔을 나눈 작가의 베스트프렌드 조나단 실버[각주:2]가 지난 달에 왔었다고 한다. 그는 관찰한 바를 그대로 그리는 편이 아니기때문에, 그가 밭을 가로지르는 길 위에 캔버스를 돌연 가져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의 벗이 1997년 떠난 후에 그린 풍경에는 어두움이 서려있다. 그리고 엑소시즘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가 1999년 가졌던 대형 전시에서는 이런 광기가 관객에게 뜻밖의 기쁨을 선사했다. 이후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된 이 작품은 현대 쾌락주의의 아이콘으로 전세계스터 가게를 뒤덮다시피 하다가 결국 거대한 유통구조의 순환 속에서 사라져갔다.


순수한 기쁨
 비가 내리는 7월의 월요일은 그의 남자친구인 존의 생일이었다. 식당에서는 파티음식을 즐기고 있었고, 데이비드의 누이인 마가레트의 아이폰에 일행들이 몰려있었다. 까칠한 성격의 그녀는 얼굴을 변형시키는 애플리케이션을 찾았다. 젊었을 때 호크니는 코르뷔지에의 안경을 쓰고 장난스러운 터치로 다가서긴 했다. 그 희생자는 웃으며 전화기를 휘두르며 다음 캐리커쳐될 차례는 나라고 우겼다.《도미에 [각주:3]같은데!》 . 그의 웃음은 그의 명확한 이미지만큼이나 천진난만하다. 그의 주변에 있는 오브제-신문, 예술도서, 그리고 지금은 아이패드-들을 손에 쥐고, 마치 코너에 몰린 복서의 그것처럼 어깨에 간신히 그의 얼굴이 걸려있는  인상이다. 그는 아이패드로 이미지를 구상하는 중에 있다. 그 이미지는 그의 추론, 이론, 집착을 뒷받침하는 볼펜 끝으로 완성이 된다.
  그는 아이패드를 잘 관찰하기 위해 내려놓았다가 다시 집곤하였다. 비스듬히 컷팅된 유리 한줌이 왼편에, 오른편에 손잡이가 있다. 오늘 아침 그가 일어나서 제일 처음 한 일은 그림에 물과 꽃을 채워넣는 일이었다. 바로 그의 아이폰으로 말이다. 최근작은 휴대용 크로키 수첩처럼 그의 삶과 가까이 있다. 브러쉬기능은 한번에 채색 재료, 크레용, 붓끝을 대신한다. 20여개의 꽃으로 이뤄진 부케는, 바로 부드러움으로 가득찬 작품 신선한 꽃들 이다. 그는 종일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그의 유머-우울과 해 지는 녘의 노을, 굉음-를 작품에 반영시킨다. 마주치는 모든 것에 거의 아이와도 같이 동등하게 그리고 꾸미지 않고 대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 여기서 오래된 주제는 절대 고갈되지 않는다. 그것이 현대성의 시각으로 비추어봤을 때 낡고 하찮아 보일지 몰라도. 호크니는 타고난 순응주의자는 아니지만, 지난 과거와 끊임없이 대화하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이 너무도 비천하고, 오만하며 충분히 자유롭게 보지 않는다고 조소하고 있다. 《여기선 속도를 빠르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보시다시피, 붓질이 두껍게 되어버리거든요. 압력을 조절하는 것이 어렵습니다(그는 유리를 두드리고 있다)터치스크린에 엄지를 대며 그는 말한다. 여기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색이 있습니다. 색면 위로 다시 돌아올 수 없고, 층을 구성하며 그릴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손가락 기술에 의해 창조되죠 : 아이폰의 엄지로 아이폰 구석구석까지 닿을 수 있으며 완전히 새로운 매체입니다. 회화의 회귀에 영향을 미치는 매체죠. 뎃셍을 메일로 보내는 것은 순수한 기쁨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인지 알지 못하죠. 소더비는 20여 명의 사람들이 약 350개의 뎃셍을 다운로드 받은 사실 밖에 알지 못할 것입니다. 더이상의 갤러리는 없죠. 빛으로 인식가능한, 그리고 빛을 가로지르는 이미지들은 채색유리와 꽤 비슷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좋은 인상을 가지진 않습니다(1). 그것은 사변의 반대편에 있는 기쁨입니다. 누가 전화기가 뎃셍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나요? 모든 작품에 그렇듯, 품은 관련되어 있을 뿐, 여기에 결여되어 있습니다. 난 조지 & 길버트와 데미언 허스트와 다소 격렬한 대화를 가진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더이상 인간의 손길, 작가의 품에 흥미를 잃었다고 했죠. 피카소, 그는 품의 역사입니다, 아닌가요? 뎃셍 수업을 포기하면서, 사람들은 바라보는 법을 배우기를 거부합니다. 》
그는 오래전부터 이렇게 자신있게 말했다 : 《난 예술가로써의 고독감을 조금 느낍니다. 왜냐면 내 방식으로 하는 작업은 거의 없고, 나 자신보다 내 구상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입니다(2). 》
 저녁 식사는 편안하고, 즐거웠다. 모두가 괴상했던 호크니의 일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어떤 사람이 새로 들어오면 지나치게 웃으며 인사하곤 했다. 어쩌면 그의 귀가 잘 안들려서 일지도 모른다...30년대에 그 첫 증상이 나타났다. 그는 세상과 동떨어진 공간과 회화에 대한 이야기에 민감하게 파고 들어갔다. 그의 어지러운 오페라 장식은 무음으로 처리되었다. :  사랑하는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는 수호신처럼 온종일 주위를 보살폈다 : 아버지의 곁에는 더이상 아름답지 않은 어머니가 있다 : 나의 부모님, 이란 유명한 페인팅은 주방에 걸려있다. 원본은 현재 영국 테이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지만, 높은 해상도로 출력하여 액자에 끼운 것이다. 이 거의 완벽에 가까운 복사본은 회화적 섬광을 발휘하고 있다. 이 복사본으로 인해 어머니가 줄담배를 피우거나 잘 구워진 거위요리를 맛보는 호크니를 강하게 말리는 순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진 않는다고 한다고 그의 아버지는 생각한다.


이미지의 대혼란

 산타 모니카 대로변의 집 안 면면들이 그림에 스며들어 있다. 소란스러운 색깔의 향연으로, 뼈대가 없는 듯한 형태로, 자줏빛의 양탄자위의 검푸른 쇼파, 벽난로의 정면장식인 듯한 철망, 해안가로 난 테라스위의 다홍빛 의자, 그랜드 피아노의 그림자, 그리고 저 아래 있는 작은 수영장 : 이 화음은 삶의 품위와 즐거움을 찬양하고 있다. 브리들링턴에서 회고전이 열리는 것이다. 중앙 광장의 공간은 유명한 Mr and Mrs Clark and Perry,  Henry Geldzahler and Christopher Scott 이 차지했다; 밑에는, 잉크젯으로 프린팅된 섹시한 유니폼을 입은 선원이 (다시 말하면, 이 선원은 벌거벗었다) 관객을 맞이한다. 각각의 작품, 초상화, 자화상, 풍경화, 포토 플래쉬백 작품들은 어떠한 위계질서없이 긴장감있게 전개된다.
 오늘 아침 발견한 담황색의 옷을 입은 사빌 로우는 요즘 느슨하게 풀어져있다. 그는 부엌에서 신문을 읽는다. 주요 사건은 인근 숲에서 촬영된 비디오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왕립 아카데미에서 전시될 예정(2012년 초)이다. 영국으로의 거창한 귀한이 될 것이다. 작가는 눈 앞의 아틀리에에서 그는 전력을 다해 준비중이다.
 버려진 헛간에 잘 감춰진 이 거대한 공간(1000 제곱미터)는 클로드 로랜의 종교화 산야에서의 기도 를 연상시키는 타피세리로 뒤덮여 있다. 이 그림은 뉴욕에 위치한 프릭 컬렉션에 속해있다가 화재로 손실되었었다. 이후 촬영을 마친 후, 조나단 윌킨슨의 도움으로 복원되었다. 새로운 기술이 전문가인 셈이다. 증기로 쐰 층에 디지털로 처리하는 방법을 따랐다. 호크니의 사진작품은 21세기의 유산이며, 큐비즘, 포비즘, 그리고 호크니의 전 시대에 걸쳐 경이롭게 아우른다...세 번째 만남 에선 록키산 정상에 예수가 있는 것을 순박한 터치와 눈에 띄는 색깔로 완성한 그림은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우린 보다 위대한 메시지로부터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전시의 제목은 A Bigger Picture 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아마 현재에 더 큰 그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러면 그 메시지란 무엇인가요?
-위를 보세요 ; 그러면 알 겁니다.
-그럼 작가는 메신저입니까?
그의 작품에 보다 몰두하면서, 그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 그는 가끔 안들리는 척 하였다. 그러나 대화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자 여기 예술계의 주변에서 모험을 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 난 더 잘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끔 내게 묻습니다. 왜 20명의 친구에게 싱싱한 꽃 을 보내지 않고 500명의 사람들을 내쫓지 않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다수의 관중은 내 관심 밖입니다. 관중으로 한명이면 족합니다. 난 내게 중요한 것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을 때, 한살 더 나이를 먹습니다. 재미있는 일이죠. 이건 이미지와 그에 관련한 권력의 게임의 혁명입니다. 내가 역사를 보는 방식으로 당신이 이 현상을 본다면 현재가 더 낫다는 사실을 이해할 겁니다 : 교회는 500여년 동안 이미지를 통제하면서 사회를 통치했습니다. 매스미디어의 광고는 그 힘을 급격히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잡지회사가 제멋대로 이미지를 내보내는 것이고, 헐리우드가 세상을 점령하려 하는 것입니다. 이제 새로이 이미지의 대혼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바로 신문과 텔레비전의 세대는 지는 것이죠 : 사람들은 그것을 향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는 아이패드를 가리켰다]. 이미지의 독재시대는 불꽃 속에 사라졌습니다. 난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을 무료로 배포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는 또한 사진의 위상이 변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의 저서, 은밀한 사실(3) 에서, 종이는 화학적으로 발전이 되어왔다고 증명하였었습니다. 예술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그림의 내부로 침투하여 그것을 열심히 관찰한 덕분입니다. 왜 카라바조[각주:4]는 헐리우드식의 조명을 고안했을까요? 왜냐하면 그는 모든 광학적 효과, 카메라 옵스큐라, 오목거울 등 얼굴과 오브제를 캔버스에 투영하는 것들을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베르메르, 얀 반 에이크, 카날레토, 샤르뎅이나 앵그르[각주:5]는 보다 더 나아갔습니다. 1837년 사진기의 발명으로 이 종위위에 투영된 바를 고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160년 동안 지속되다가 끝난 것입니다. 이제 디지털 포토의 시대입니다. 이미지를 조작하고, 자르고, 노동력의 재귀환인 것입니다. 사진이 현실을 가장 잘 묘사한다는 생각은 이미 구식이 되었습니다. 영국에서, 어떤 네거티브 사진은 가지고 있거나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구속이 될 수 있죠. 난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 어떻게 이러한 사진들 만으로 그안에 현실이 어우러져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우리끼리 합의한 부분이 있나요? 아닙니다. 예술계에 의해서 정의되는 것인가요? 아닐 겁니다. 사람들은 세계가 사진과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기로 세계의 광학적 영상을 투영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사진은 세계를 풍경으로 보도록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심리적으로 경험하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물론 사진의 장점은, 그림의 경우처럼 환상으로 사로잡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좋은 그림은 사람들이 결코 알아내지 못하는 모호함이 가려져 있습니다. 바로 그런 점때문에 작품이 훌륭한 것입니다. 한 때, 나는 밤낮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큐비즘을 토대로 대상에서 진수를 나타내기 까지 포토 콜라주를 하였습니다. 이후에 난 그 작업을 그만두었습니다. 회화의 죽음에 대한 논쟁은 관심이 없습니다. 회화는 항상 사진보다 우위에 있었습니다 : 시간보다 우위에 있었습니다. 순간 순간을 중첩시키며 위대한 걸작은 심오하며 풍부하고 모호하게 전개됩니다. 사람들은 오직 표면만을 생각합니다. 예술의 마법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을 늘어놓은 것이죠. 마술은 정의내리지 않는 부분입니다. 난 예술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은 한계가 없기 때문이죠. 우리가 그것을 뒤엎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미지의 강화과 콜라주



 아마 세상의 가장 첫 아침이 될 것이다. 태양이 비현실적인 밝기로 빛나며 떠오르고 있었다. 물이 차오르고 자연이 다시 일어나고 있었다. 안개 장막이 마치 프루스트의 확대경처럼 세상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움직인다. 모든 새싹이 삶을 찬양한다. 홍색, 백색, 황색의 꽃들, 이끼의 부드러운 초록빛 등의 모든 색채가 상큼하게 흩어져있다. 아주 잘 보기 위해 과도하게 순수해져버린 이 요정은 모든 것을 낚고 있는 것이다 ; 사람들은 어딜 봐야할 지 모른다. 꿈에서 모든 것이 움직이듯이 미터마다 무한함을 상기시킨다. 
 봄의 이른 아침에, 데이비드 호크니와 만났다. 로마의 오래 된 옛 길에 주차해놓은 하이-데프 카메라의 배터리가 장착된 차량 안에서였다. 풍경을 각각의 브라크로 촬영하였다. 그를 아침에 찾아온 것은 내가 처음이었다. 그는 결과물을 보고 있었다. 9개의 모니터에서 차량이 차츰 나아가는 것을 따라 카메라가 촬영한 이미지들이 보였다. 뒤러의 대초원 의 현대 버전은 새로이 진화하며, 탐구적이며 명확하다. 폴라로이드로 촬영한 후 각각의 네거티브는 주제를 구성한다. 프레임 안에서 모자이크의 형태로, 광경을 구성한다. 옛날 서로 분리된셍을 조합하여 구성한 회화 이후에, 현재 다시 공간에 깊이감과 현실감을 부여한다. 이제 신기술로써 이미지의 강화로써 콜라주에의 집념을 공식화 되어가는 것이다. 
 오선지처럼 작곡된 24시간은 계속 이동 중에 있는 것같다. 옛 작품으로 우회하면서, 브리들링턴의 장미는 예술의 완성으로 보인다 : 이 예측불가능한 이미지는 순진무구한 원시의 환영을 불러일으킨다.

 


(1)http://www.fondation-pb-ysi.net/fr/Accueil-FondationPierre-Berge-Yves-Saint-Laurent-471.html
주소 5 avenue Marceau, 75116 Paris
(2)
(3)
프랑스아 용케

출처 : ART PRESS #372. 2010.11
기사 : François Jonquet
번역 : PLONGEUR ( zamsoobu ) 
  1. Fondation Pierre Bergé-Yves Saint Laurent [본문으로]
  2. Jonathan Silver(1950-)영국 프로그레시브 락그룹제네시스Genesis 의 멤버 [본문으로]
  3. Honore Daumier오노레 도미에(1808.2.26마르세이유 출생-1879)프랑스 대표 풍자화가. [본문으로]
  4. Caravage(1571-1610) [본문으로]
  5. Johanesse Yan Vermer(1632-1675)Yan Van Eyck(1390-1417)Canaletto (1697-1768)Jean Chardin(1643-1713)Jean Dominique Ingres(1780-1867)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