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 스커티_예술가의 언어
□프랑크 스커티(1965년 출생) 1은 스트라스 부르 현대미술관에 최근작과 이전작을 동시에 선보인다. 그가 본 지의 기자가 던진 몇가지 질문에 응답을 해주었다.
왜 전시장 입구에 이런 부서진 문을 설치했나요?
난 항상 남겨진 것이나 쓰레기로 작업하지만, 난 그것이 우리 시대의 문화와 태도를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난 잔해 위에 열리는 전시회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각각의 사람들은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이어지는 벽들을 무너뜨려야만 나아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난 나아가려면 벽을 깨뜨려야만 하는 통로를 보여주려고 헀습니다. 이 벽은 그 뒤에 정어리 통조림이 있기 때문에 전시공간으로 열려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뒤샹의 주어진 조건 에 대한 암시입니다. 전시에서 침대는 동시에 커플을 연상케 하죠.
당신의 작업에서 우연적 단계는 어떤 겁니까?
난 전시의 제목을 《기회의 작업》이라 붙였습니다. 왜냐하면 우연은 항상 내 작업의 주요 동인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작업물들이 우연적 만남으로 완성됩니다.
당신은 스트라스부르에서 현 경제 상황에 비판적인 태도로 통로를 설치했습니다. 당신은 현실 참여적인 작가입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과 역사 역시, 내가 다룰 수 있는 작업 분야입니다. 난 내 작업이 권위적으로 읽혀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바가 아닌, 내가 원하는 바를 위해 작업합니다. 만약 내가 이런 정치참여적 운동에 가담한다면, 모든 관람객들이 작품을 쉽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작품의 의미는 문화의 고유한 기능에 관련합니다. 보는 이들 각자의 의견들에 관련하지만, 그것을 견고히 하진 않습니다. 자, 이제 다시 이 무너진 벽으로 되돌아오기로 합시다.
그럼에도 당신의 작업물들에서 정치적 측면은 매우 강하게 나타납니다.
난 《기회의 작업》을 위기의 전시라고 여겼습니다. 난 항상 비판적 순간에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작업에 항상 흥미를 느낍니다. 뭉크의 절규 는 존재의 위기와 연결되어 있고, 공허한 세계 는 사회적 위기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난 관객이 보다 개인화되고 보다 억눌린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자 합니다. 남겨진 것들로 작업하는 것은 감정 을 이용하여 작업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열려있는 채로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난 사람들이 내 작업 앞에서 무언가 배우려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교훈을 주려는 작가는, 또 너무 많이 주려는 작가와 마찬가지로 안좋은 작가입니다.
당신은 에드바르드 뭉크의 절규나 마르쉘 뒤샹의 주어진 조건 대해 말했습니다. 예술사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내 작업 중의 어느 하나도 그 의미에 반하는 것은 없습니다. 난 그것을 절대 《전문가》로 고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난 전문적 예술가는 가장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내 준거들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바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작품에 표식을 남길 때, 그것은 액자의 막대와 가끔 닮아있습니다. 내게 미친 영향은 보다 복잡합니다. 난 조각의 역사, 그리고 그 역사가 가진 수직구조, 미완성과 완성의 것, 단위구조의 확장, 브랑쿠시 2에서 만조니 3에 이르기까지 영역 속에 확장되는 윤곽들을 감춥니다. 다시 말해, 그건 변증법과 관련합니다. 지금은, 일차적으로도 이차적으로도 작업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일차적인 분위기를 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전시는 4번째 사과 조각상으로 마무리됩니다. 왜 불화의 사과인 듯 깨뜨립니까?
이 푸리에의 사과가 불화의 사과인 지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유토피아를 지향했던 과거의 사람들에 대한 오마주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좋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원형을 파괴시켜 마치 그것을 실현시킨 것처럼 노출시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유토피아의 것들은 대단한 것들이 아닙니다.
당신의 작업은 연속적인 터치로 완성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난 자연스럽게, 어떤 표식의 이미지나 특정한 스타일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나의 작업이 스타일에 대한 지식에 기초하지 않기 때문에, 요소들이 다르게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난 스타일 대신에 리듬을 끌어들입니다 ; 리듬을 타면서 나는 형태를 자유로이 만들수 있고, 요소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기회의 작업》전시는 저서 집-길-미술관[현실 지 출반부, 2010] 에 전개했던품들에 대한 분석의 일부분을 시각화하려는 의도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스트라스부르의 전시에서, 작품 간의 관계는 수수께끼같지만, 거기엔 형식에 관한 원칙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가져온 책으로 전시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나의 작업노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존재하느냐구요? 이런 질문은 지금 내게 중요합니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노트를 출간하려 한 것입니다. 하지만 단지 부분적으로 제한했습니다. 왜냐하면 난 비밀도 역시 믿으니까요.
출처 : 15page, Le Journal des Arts #346. 2011.4.29-5.12
기사 : Phillippe Régnier
번역 : PLONGEUR ( zamsoobu )
왜 전시장 입구에 이런 부서진 문을 설치했나요?
난 항상 남겨진 것이나 쓰레기로 작업하지만, 난 그것이 우리 시대의 문화와 태도를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난 잔해 위에 열리는 전시회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각각의 사람들은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이어지는 벽들을 무너뜨려야만 나아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난 나아가려면 벽을 깨뜨려야만 하는 통로를 보여주려고 헀습니다. 이 벽은 그 뒤에 정어리 통조림이 있기 때문에 전시공간으로 열려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뒤샹의 주어진 조건 에 대한 암시입니다. 전시에서 침대는 동시에 커플을 연상케 하죠.
당신의 작업에서 우연적 단계는 어떤 겁니까?
난 전시의 제목을 《기회의 작업》이라 붙였습니다. 왜냐하면 우연은 항상 내 작업의 주요 동인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작업물들이 우연적 만남으로 완성됩니다.
당신은 스트라스부르에서 현 경제 상황에 비판적인 태도로 통로를 설치했습니다. 당신은 현실 참여적인 작가입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과 역사 역시, 내가 다룰 수 있는 작업 분야입니다. 난 내 작업이 권위적으로 읽혀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바가 아닌, 내가 원하는 바를 위해 작업합니다. 만약 내가 이런 정치참여적 운동에 가담한다면, 모든 관람객들이 작품을 쉽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작품의 의미는 문화의 고유한 기능에 관련합니다. 보는 이들 각자의 의견들에 관련하지만, 그것을 견고히 하진 않습니다. 자, 이제 다시 이 무너진 벽으로 되돌아오기로 합시다.
그럼에도 당신의 작업물들에서 정치적 측면은 매우 강하게 나타납니다.
난 《기회의 작업》을 위기의 전시라고 여겼습니다. 난 항상 비판적 순간에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작업에 항상 흥미를 느낍니다. 뭉크의 절규 는 존재의 위기와 연결되어 있고, 공허한 세계 는 사회적 위기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난 관객이 보다 개인화되고 보다 억눌린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자 합니다. 남겨진 것들로 작업하는 것은 감정 을 이용하여 작업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열려있는 채로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난 사람들이 내 작업 앞에서 무언가 배우려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교훈을 주려는 작가는, 또 너무 많이 주려는 작가와 마찬가지로 안좋은 작가입니다.
당신은 에드바르드 뭉크의 절규나 마르쉘 뒤샹의 주어진 조건 대해 말했습니다. 예술사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내 작업 중의 어느 하나도 그 의미에 반하는 것은 없습니다. 난 그것을 절대 《전문가》로 고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난 전문적 예술가는 가장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내 준거들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바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작품에 표식을 남길 때, 그것은 액자의 막대와 가끔 닮아있습니다. 내게 미친 영향은 보다 복잡합니다. 난 조각의 역사, 그리고 그 역사가 가진 수직구조, 미완성과 완성의 것, 단위구조의 확장, 브랑쿠시 2에서 만조니 3에 이르기까지 영역 속에 확장되는 윤곽들을 감춥니다. 다시 말해, 그건 변증법과 관련합니다. 지금은, 일차적으로도 이차적으로도 작업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일차적인 분위기를 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전시는 4번째 사과 조각상으로 마무리됩니다. 왜 불화의 사과인 듯 깨뜨립니까?
이 푸리에의 사과가 불화의 사과인 지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유토피아를 지향했던 과거의 사람들에 대한 오마주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좋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원형을 파괴시켜 마치 그것을 실현시킨 것처럼 노출시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유토피아의 것들은 대단한 것들이 아닙니다.
당신의 작업은 연속적인 터치로 완성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난 자연스럽게, 어떤 표식의 이미지나 특정한 스타일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나의 작업이 스타일에 대한 지식에 기초하지 않기 때문에, 요소들이 다르게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난 스타일 대신에 리듬을 끌어들입니다 ; 리듬을 타면서 나는 형태를 자유로이 만들수 있고, 요소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기회의 작업》전시는 저서 집-길-미술관[현실 지 출반부, 2010] 에 전개했던품들에 대한 분석의 일부분을 시각화하려는 의도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스트라스부르의 전시에서, 작품 간의 관계는 수수께끼같지만, 거기엔 형식에 관한 원칙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가져온 책으로 전시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나의 작업노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존재하느냐구요? 이런 질문은 지금 내게 중요합니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노트를 출간하려 한 것입니다. 하지만 단지 부분적으로 제한했습니다. 왜냐하면 난 비밀도 역시 믿으니까요.
출처 : 15page, Le Journal des Arts #346. 2011.4.29-5.12
기사 : Phillippe Régnier
번역 : PLONGEUR ( zamsoob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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