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리엥 가이야르 Cyprien Gaillard_낭만적 파괴자
거대 단지의 현대 건축에서 나타나는 파괴, 해체...이는 스프리엥 가이야르의 작품에 드러나는 가진 소리없는 폭력성이다. 2010년 마르셀 뒤상 상을 수여(카밀 헨로, 안-마리 슈나이더, 셀레스트 부시에-모그노 1 와 공동수상한 )한 그는 루브르의 광장에서 열리는 Fiac( 세계 현대예술 시장)에 참가하였다. 미술박물관(프랑크푸르트/만)에서 전시(2010/9/4- 10/24)이후에, 허시혼 미술관(워싱턴 D.C)에서 전시(2010.11.10- 2011.3.27 )를 열게되었다. 이후에 2011 부가다&카그넬 (파리) 갤러리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젊은 프랑스 작가가 국민들에게 알려진 후,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작가는 스위스 폐허Swiss Ruins(2005) 으로 현대 건축의 폐허에 불안한 부분을 드러낸다. 또, 그는 불신시대의 믿음 Belief in the Age of Disbelief(2003)에서는 냉담하고 단조로운 분위기 속에 문화적, 역사적 충격을 거칠게 드러낸다. 마치 17세기의 네덜란드 풍경 판화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처럼. 어떤 상징적 폭력이 없이, 얀 하카르트 2과 렘브란트의 목가적 풍경이 바로 부동산 중개업자의 영역으로 바뀌었다. 고전적 회화는 그가 꿈꾸지 못했던 악몽들에 의해 방해를 받는다 : 콘크리트와 강철 막대로 말이다. 이 두 개의 주제-걱정거리-는 작가의 작품을 서로 연합하게 한다 : 그리고 최종적으로 현대건축의 결여, 건축이 제시하는 유토피아의 결여이다. 아마, 이런 《거대 담론》은 리오타르 3가 분석한 결정적인 슬픔일 것이다. 또한 우린 흰 단면의 그림을 빠르게 뒤덮는 풍경화를 발견할 수 있다. 새로운 풍경The New Picturesque (2008) 이란 제목의 연작은, 위베르 로베르 4의 그림에 나오는 폐허에의 울림, 목가적 감성, 거칠고 돌발적인 요소 등등, 18세기에《그릴 만한 것들》이 표현되기를 기대하여온 《풍경》적 요소란 개념과 관련되어 있다. 같은 맥락으로, 가일라드는 그의 작업에 새로운 풍경을 도입한다 : 풍경의 새로운 발명, 그것은 그림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그의 작업 전반에 드러난다- 액션, 설치, 비디오와 영화 ; 풍경은 충동적으로 매혹하며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한편, 그는 허구적 전쟁의 남은 진실Real Remnants of Fictive Wars (2004) 에서, 작품의 중심에 파괴를 놓으며, 흰 눈보라의 황폐하고 퇴락한 분위기의 풍경이 보인다.
또한, 가이야르는 현대건축의 결여를 지속적으로 드러낸다. 특혜를 입은 듯 풍요로운 도시인 파리 지역에서 불쾌한 지대를 구분짓는 바리게이트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진에서도 같은 여정을 보이며, 이데올로기적으로 이를 고발한다 : 지리학적 분석들(2008) 에서, 로버트 스미스슨 5에 영향을 받아 침식과 해체하는 과정 중인 장소를 강조하며, 엔트로피적 풍경의 문제를 다룬다. 또, 무덤 (2008)에서는 글래스고의 HLM타워의 철거-비참하고 죽음을 연상시키는 것들, 콘크리트판, 건설현상의 폐기물들, 금속막대, 청동기의 무덤과는 거리가 먼 경사면 등등- 이후에, 촬영하여 대형판으로 출력한 인상적인 연작이다. 가이야르는 종종 가장 옛것과 최신의 것을 뒤섞는다. 결국 보다 완곡하게, 보다 신중하게, 긴급상황에서의 작업Working in a State of Emergency (Glasgow) [2007] 은 늘 글래스고-모더니즘의 몰락의 여파를 지닌-지나간 유토피아의 휴우증-다음 철거지역으로 예정된 보호시설을 흑백조로 촬영하여, 영리하게 프레임한다.
매장의 문법
사진-행위 는 사진-기념, 여기서 기념이 지닌 의미는 엄연한 의미로 를 상기시킨다 : 오리온 성으로 난 큰 길(2008) 에서, 너무도 장엄하고, 너무도 평화로운 사진 속 풍경은 낯설다 : 뒤셀도르프 학파의 객관주의적 입장으로서, 이미지는 전면에 나서며. 냉담하며, 모든 주관성으로부터 배제되어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아름다운 성으로의 난 길은 뒤세브르 지역의 평화로운 공원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씨레뮬리노 타워의 철거가 발표되고 작가가 엄청난 양의 폐기물을 흘려보낸 후 이런 평화로움이 사라진다. 이렇게, 분명히 아름다운 장소가 모더니즘의 새로운 폐허로 나타나는 것이다. 관객에게 이제 오리옹 성곽은 개발의 타격을 피하지 못한 상징적 장소로 남는다. 그리고 지금은, 작가가 세상의 힘을 빌어 실현한 《폐허의 공원》이 되었다.
그곳에서, 매장의 문법, 현대와 고고학의 문법이 있다 : 맞은 편에 리버포드 12번가의 묘지, 폴록쉐, 글래스고Cenotaph to 12 Rivertford Road, Pollockshaw, Glasgow(2008), 듄팍Dunepark (2009) 이 있다 ;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보그르넬 운하(2008) 은 이에 대응하여 역설적이다. 버포드12번가의 묘지, 폴록쉐, 글래스고에서 가이야르는 이동을 꾀한다 ; 바로 15여톤의 재활용 콘크리트를 움직이는 것이다. 글래스고 지역-글래스고는 2014년 공공상업지역 건설계획 지역이다-의 임대아파트는 철거 이후, 오벨리스트 형태로 바뀔예정이다. 현대의 환상은 고고학적 건축형태, 바로 묘지의 그것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자연의 스펙타클화
듄팍은 가이야르의 작품에서 유일하게 작가의 행동이 드러난다 : 스케브닝겐(네덜란드)의 해안가에 앞부분이 돌출한 모래언덕 아래 만든 독일 지하벙커에서 빠져나오면서, 작가는 폴 비릴로 6가 언급한 벙커의 건축학 을 상기시킨다. 그것은《잔인한》건축의 종류로, 동시에 그의 역사에서 다시-매장될 운명에 처한 하나의 조각인 것이다. 벙커는 우리가 다시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과거의 실수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도시 계획인 것이다...익살스럽고, 우울하고 역설적인 작품인, 보그르넬 운하는 파리 15구의 지역이다. 이 곳은 1980년대 상업이 번성하였던 곳이다. 작가는 이 지역을 2008년 베를린으로 옮겨와 제 5회 비엔날레에서 이 청동의 흉물스럽고 무거운 조각을 현대의 오류를 상징하는 새로운 것으로 제시한다. 조각의 거대한 날개는 그가 도약을 하기에 너무 고통스러워보인다.
현대의 결여와 파괴라는 모티브는 독특하게 이 두 비디오 영상을 연결짓는다 : 금과 거울의 도시Cities of Gold and Mirrors(2009), Desniansky Raion(2007)가 그렇다. 멕시코의 유카타지역의 완전히 인위적인 이 도시는 부유한 관광객과 선사시대-콜롬비아 지역을 흉내내는 피라미드식의 저택을 지으려는 건축가들만이 찾는다. 영상을 보면 유흥을 즐기기 위해 오는 피서객들을 조소하는 듯하다. 또한 가이야르는 봄방학 -일종의 마시며 즐기기위한 떠들썩한 한 주를 보낸다-을 맞는 젊은 백인 미국인들을 촬영한다. 멕시코의 부서지는 햇빛 아래에서, 우리는 그 지역의 심오한 역사적인 배경을 무시한 채, 데킬라를 병째로 마시는 젊은 미국인들을 볼 수 있다. 지상최고의 어리석은 서양인, 그들에게 잔인하게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그리고 그것이 가이야르 작업의 모호함 중의 하나이다-작가의 작품에는 어떠한 도덕적 판단이 부재한다. 신체는 죽음으로 위험해질 때까지에 취한다 : 그것은 1970년대에 호화스러운 현대건물을 세웠던 명목처럼, 마야의 사원들 짓고, 바로 폐허를 짓는 것이다. 더도 아닌, 덜도 아닌, 같은 방법으로, 다른 비디오 시퀀스에서 미국 갱조직 블러드의 우두머리를 몽롱한 방식으로 촬영한다. 전부 붉게 차려입고, 얼굴은 마스크를 쓰며, 엘 레이의 마야 유적지에서 춤을 추는 것이다. 우린 그가 진정한 소통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 그것은 하이 앤 로우 컬처 사이의 대립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 영화가 황금의 도시에서 그의 제목을 빌려왔다면-콘키스타도르(정복자란 뜻으로 16세기 초 멕시코. 페루를 점령한 에스파냐인들을 가리킴)-작가의 어린 시절 보았던 프랑스-일본 애니메이션의 한 단편을 차용하기도 하였다. 거기에서 음악적 테마를 합성하기도 한 것이다. 고의적으로 따로 주변으로 분리시켜 촬영한 그것은 피라미드를 암시하는 구조의 나이트클럽에서 하나의 영상으로 완성된다.
신체의 폭력은 이미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금과 거울의 도시 에서 천천히 분출되곤 한다. Desniansky Raion(2007)에서 백색의 냉담한 폭력은 훌리건 전쟁으로 얼룩진 나라의 겨울을 나타낸다. 공포와 매혹이 뒤섞여 있는 것이다.
첫 번째 그림은 얼어있다 : 벨그라드 입구의 눈에 띄는 승리의 기념문이다. 그리고 생-페테스부르그 외곽지역의 도시주차장, 두 무리의 훌리건들, 한 편은 푸르게, 다른 한편은 붉게 차려입고 정면으로 맞서려 하고 있다. 일촉즉발의 순간이다. 갑자기, 몸이 바닥에 떨어지고, 폭력이 충격적으로 펼쳐진다 : 그곳에서 더이상 가이야르는 판단하지 않는다. 그는 마치 역사화의 한 장면처럼, 어떤 현대의 무용수의 움직임을 기록하듯 진행되며, 영상에는 쿠드람Koudlam 7의 음악이 흐른다. 이 소리는 콜드웨이브 신시사이저에 아즈텍의 플룻소리를 섞어, 반복적이며 매혹적이다. 곧이어 충돌은 다시 시작되며, 마찬가지로 환각적인 다음 시퀀스가 이어진다 : 파리 외곽지역의 영세민 임대아파트의 울타리로 화염이 일어나는 광경이다. 이 모더니즘의 죽음을 가리키기 위한 연출로 인해 건물이 급격히 무너지며 먼지폭풍에 의해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 경량비행기의 이륙처럼, 키에브 외곽의 눈으로 뒤덮인 지역인 Desniansky Raion을 불쑥 내보인다. 이 추하고 못생긴 회색조의 건물은 지형학적으로 무미건조했지만 스톤헨지 유적지의 거석들이 만들어낸 완벽한 원형의 형태를 연상시키기에 이른다.
파괴와 카오스의 심오함처럼 Pruitt Igoe-Falls(2009) 는 보다 상징적이다. 아마 이런 두 이유 때문일 것이다 : 하나는, 미국의 생-루이 지역의 철거를 목격하게 되는데, 이 곳은 퇴락과 침체로 인해 삶의 주기가 20년이 채 되지 않은 곳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 곳이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쌍둥이 빌딩의 건축가 미노루 야카사키가 세운 건축물이란 것이다. 어떻게 이 특정 철거가 역사적 파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는가, 정치적, 민족적, 종교적, 세계적 분쟁에 메아리치는 것인가. 찰스 젠크스 8라면 이 파괴현장에서 모던 건축의 죽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표식은 이것이다 : 섬세하게 융합-연결되어, 회색 기둥의 폭발은 놀랍게도 한밤중에 떨어지는 나이아가라 폭포-무지개색의 키치적 스펙타클-를 연상케 한다. 이런 로우 컬쳐의 키치적 단계에서, 가이야르는 사실 아무것도 조롱하지 않는다. 젊은 미국인들이 알코올을 마시며 거칠어지는 것도, 성-페테스부르그 러시아 훌리건의 폭력성향에 대해서 비판하지 않는다. 낙하현상의 거품은 회색기둥의 폭발에서 생기는 먼지로 메아리친다 : 나이아가라의 빛나는 낙하를 동경하는 사람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약속하며 철거되는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던 사람과 같은 사람인 것인가...
스미스슨에 대한 오마주
이런 예술.문화 파괴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면서-국가의 파괴, 예술가의 파괴- 현대 유토피아의 추락과 자연의 스펙타클화에 대해 가이야르는 로버트 스미슨의 고 엔트로피의 개념을 반영하고 있다. 미친 말Crazy Horse(2008) 에서는 블랙힐 산에서 인디언 추장 미친 말의 기념비를 세우는 과정을 보인다. 블랙힐 국립공원에 북미 인디언족의 유명한 추장 미친 말의 모습을 돌에 새기기 위해 바위의 침식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풍경의 예술》의 이런 조각의 아름다움은 대지미술의 경우처럼. 그 보이는 외관에 대립적으로은 폭력을 굳건히 하며, 전혀 환경적이지 않은 것이다.
맨하튼의 뉴저지 강의 더 스미슨The Smithsons(2005) 으로, Real Remnants of Fictive War VI 에서 작가는 스미스슨에 대한 오마주를 표현한다. 작가는 자욱한 연기를 가로지르는 나선형 방파제Spiral Jetty 를 걷는다. Real Remnants of Fictive War VI 에서는 필립 글라스의 배경 음악으로 베트남의 숲에서, 정돈된 고전적 공원에서, 시골지방에서, 철로의 터널 입구에서, 타워의 밑에서 산업용 소화기를 이용하여 흰 연기폭풍을 일으킨다. 가끔, 폭풍은 도시 게릴라전에서, 나폴레옹 전쟁에서, 베트남 나팜전에서 나타난다. 가끔 무겁게, 가끔 느리게 진행된다. 때로 그 반대로 갑작스럽게 폭탄처럼 폭발한다. 그리고 때로 폭발적인 화덕은 서로 닮아 있다. 매번, 대지 미술은 이런 기대효과를 이용한다 :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 폭풍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어디까지어날 것인가? 폭발 과정은 매우 느리고, 꽤 긴시간 동안 침략과 후퇴라는 이중의 움직임을 가진다. 폭풍이 사라지면서 풍경이 그 제 모습을 찾아가고 피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도달하기에 이른다...목격자는 안개와 흰빛의 움직이는-그림에 의해 매료되는 것이다. 파괴는 가깝게 느껴지지만, 그렇지 않다. 백색의 폭발 이후에, 장소는 안정을 되찾는다. 폭풍은 공격적 위협의 상징이며, 다가올 죽음을 암시한다-아마도 그렇다. 하지만 그 죽음을 기다릴 것이다.
스프리앵 가이야르는 낭만적 파괴주의자이다. ■
■젊은 프랑스 작가가 국민들에게 알려진 후,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작가는 스위스 폐허Swiss Ruins(2005) 으로 현대 건축의 폐허에 불안한 부분을 드러낸다. 또, 그는 불신시대의 믿음 Belief in the Age of Disbelief(2003)에서는 냉담하고 단조로운 분위기 속에 문화적, 역사적 충격을 거칠게 드러낸다. 마치 17세기의 네덜란드 풍경 판화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처럼. 어떤 상징적 폭력이 없이, 얀 하카르트 2과 렘브란트의 목가적 풍경이 바로 부동산 중개업자의 영역으로 바뀌었다. 고전적 회화는 그가 꿈꾸지 못했던 악몽들에 의해 방해를 받는다 : 콘크리트와 강철 막대로 말이다. 이 두 개의 주제-걱정거리-는 작가의 작품을 서로 연합하게 한다 : 그리고 최종적으로 현대건축의 결여, 건축이 제시하는 유토피아의 결여이다. 아마, 이런 《거대 담론》은 리오타르 3가 분석한 결정적인 슬픔일 것이다. 또한 우린 흰 단면의 그림을 빠르게 뒤덮는 풍경화를 발견할 수 있다. 새로운 풍경The New Picturesque (2008) 이란 제목의 연작은, 위베르 로베르 4의 그림에 나오는 폐허에의 울림, 목가적 감성, 거칠고 돌발적인 요소 등등, 18세기에《그릴 만한 것들》이 표현되기를 기대하여온 《풍경》적 요소란 개념과 관련되어 있다. 같은 맥락으로, 가일라드는 그의 작업에 새로운 풍경을 도입한다 : 풍경의 새로운 발명, 그것은 그림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그의 작업 전반에 드러난다- 액션, 설치, 비디오와 영화 ; 풍경은 충동적으로 매혹하며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한편, 그는 허구적 전쟁의 남은 진실Real Remnants of Fictive Wars (2004) 에서, 작품의 중심에 파괴를 놓으며, 흰 눈보라의 황폐하고 퇴락한 분위기의 풍경이 보인다.
또한, 가이야르는 현대건축의 결여를 지속적으로 드러낸다. 특혜를 입은 듯 풍요로운 도시인 파리 지역에서 불쾌한 지대를 구분짓는 바리게이트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진에서도 같은 여정을 보이며, 이데올로기적으로 이를 고발한다 : 지리학적 분석들(2008) 에서, 로버트 스미스슨 5에 영향을 받아 침식과 해체하는 과정 중인 장소를 강조하며, 엔트로피적 풍경의 문제를 다룬다. 또, 무덤 (2008)에서는 글래스고의 HLM타워의 철거-비참하고 죽음을 연상시키는 것들, 콘크리트판, 건설현상의 폐기물들, 금속막대, 청동기의 무덤과는 거리가 먼 경사면 등등- 이후에, 촬영하여 대형판으로 출력한 인상적인 연작이다. 가이야르는 종종 가장 옛것과 최신의 것을 뒤섞는다. 결국 보다 완곡하게, 보다 신중하게, 긴급상황에서의 작업Working in a State of Emergency (Glasgow) [2007] 은 늘 글래스고-모더니즘의 몰락의 여파를 지닌-지나간 유토피아의 휴우증-다음 철거지역으로 예정된 보호시설을 흑백조로 촬영하여, 영리하게 프레임한다.
매장의 문법
사진-행위 는 사진-기념, 여기서 기념이 지닌 의미는 엄연한 의미로 를 상기시킨다 : 오리온 성으로 난 큰 길(2008) 에서, 너무도 장엄하고, 너무도 평화로운 사진 속 풍경은 낯설다 : 뒤셀도르프 학파의 객관주의적 입장으로서, 이미지는 전면에 나서며. 냉담하며, 모든 주관성으로부터 배제되어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아름다운 성으로의 난 길은 뒤세브르 지역의 평화로운 공원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씨레뮬리노 타워의 철거가 발표되고 작가가 엄청난 양의 폐기물을 흘려보낸 후 이런 평화로움이 사라진다. 이렇게, 분명히 아름다운 장소가 모더니즘의 새로운 폐허로 나타나는 것이다. 관객에게 이제 오리옹 성곽은 개발의 타격을 피하지 못한 상징적 장소로 남는다. 그리고 지금은, 작가가 세상의 힘을 빌어 실현한 《폐허의 공원》이 되었다.
그곳에서, 매장의 문법, 현대와 고고학의 문법이 있다 : 맞은 편에 리버포드 12번가의 묘지, 폴록쉐, 글래스고Cenotaph to 12 Rivertford Road, Pollockshaw, Glasgow(2008), 듄팍Dunepark (2009) 이 있다 ;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보그르넬 운하(2008) 은 이에 대응하여 역설적이다. 버포드12번가의 묘지, 폴록쉐, 글래스고에서 가이야르는 이동을 꾀한다 ; 바로 15여톤의 재활용 콘크리트를 움직이는 것이다. 글래스고 지역-글래스고는 2014년 공공상업지역 건설계획 지역이다-의 임대아파트는 철거 이후, 오벨리스트 형태로 바뀔예정이다. 현대의 환상은 고고학적 건축형태, 바로 묘지의 그것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자연의 스펙타클화
듄팍은 가이야르의 작품에서 유일하게 작가의 행동이 드러난다 : 스케브닝겐(네덜란드)의 해안가에 앞부분이 돌출한 모래언덕 아래 만든 독일 지하벙커에서 빠져나오면서, 작가는 폴 비릴로 6가 언급한 벙커의 건축학 을 상기시킨다. 그것은《잔인한》건축의 종류로, 동시에 그의 역사에서 다시-매장될 운명에 처한 하나의 조각인 것이다. 벙커는 우리가 다시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과거의 실수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도시 계획인 것이다...익살스럽고, 우울하고 역설적인 작품인, 보그르넬 운하는 파리 15구의 지역이다. 이 곳은 1980년대 상업이 번성하였던 곳이다. 작가는 이 지역을 2008년 베를린으로 옮겨와 제 5회 비엔날레에서 이 청동의 흉물스럽고 무거운 조각을 현대의 오류를 상징하는 새로운 것으로 제시한다. 조각의 거대한 날개는 그가 도약을 하기에 너무 고통스러워보인다.
현대의 결여와 파괴라는 모티브는 독특하게 이 두 비디오 영상을 연결짓는다 : 금과 거울의 도시Cities of Gold and Mirrors(2009), Desniansky Raion(2007)가 그렇다. 멕시코의 유카타지역의 완전히 인위적인 이 도시는 부유한 관광객과 선사시대-콜롬비아 지역을 흉내내는 피라미드식의 저택을 지으려는 건축가들만이 찾는다. 영상을 보면 유흥을 즐기기 위해 오는 피서객들을 조소하는 듯하다. 또한 가이야르는 봄방학 -일종의 마시며 즐기기위한 떠들썩한 한 주를 보낸다-을 맞는 젊은 백인 미국인들을 촬영한다. 멕시코의 부서지는 햇빛 아래에서, 우리는 그 지역의 심오한 역사적인 배경을 무시한 채, 데킬라를 병째로 마시는 젊은 미국인들을 볼 수 있다. 지상최고의 어리석은 서양인, 그들에게 잔인하게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그리고 그것이 가이야르 작업의 모호함 중의 하나이다-작가의 작품에는 어떠한 도덕적 판단이 부재한다. 신체는 죽음으로 위험해질 때까지에 취한다 : 그것은 1970년대에 호화스러운 현대건물을 세웠던 명목처럼, 마야의 사원들 짓고, 바로 폐허를 짓는 것이다. 더도 아닌, 덜도 아닌, 같은 방법으로, 다른 비디오 시퀀스에서 미국 갱조직 블러드의 우두머리를 몽롱한 방식으로 촬영한다. 전부 붉게 차려입고, 얼굴은 마스크를 쓰며, 엘 레이의 마야 유적지에서 춤을 추는 것이다. 우린 그가 진정한 소통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 그것은 하이 앤 로우 컬처 사이의 대립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 영화가 황금의 도시에서 그의 제목을 빌려왔다면-콘키스타도르(정복자란 뜻으로 16세기 초 멕시코. 페루를 점령한 에스파냐인들을 가리킴)-작가의 어린 시절 보았던 프랑스-일본 애니메이션의 한 단편을 차용하기도 하였다. 거기에서 음악적 테마를 합성하기도 한 것이다. 고의적으로 따로 주변으로 분리시켜 촬영한 그것은 피라미드를 암시하는 구조의 나이트클럽에서 하나의 영상으로 완성된다.
신체의 폭력은 이미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금과 거울의 도시 에서 천천히 분출되곤 한다. Desniansky Raion(2007)에서 백색의 냉담한 폭력은 훌리건 전쟁으로 얼룩진 나라의 겨울을 나타낸다. 공포와 매혹이 뒤섞여 있는 것이다.
첫 번째 그림은 얼어있다 : 벨그라드 입구의 눈에 띄는 승리의 기념문이다. 그리고 생-페테스부르그 외곽지역의 도시주차장, 두 무리의 훌리건들, 한 편은 푸르게, 다른 한편은 붉게 차려입고 정면으로 맞서려 하고 있다. 일촉즉발의 순간이다. 갑자기, 몸이 바닥에 떨어지고, 폭력이 충격적으로 펼쳐진다 : 그곳에서 더이상 가이야르는 판단하지 않는다. 그는 마치 역사화의 한 장면처럼, 어떤 현대의 무용수의 움직임을 기록하듯 진행되며, 영상에는 쿠드람Koudlam 7의 음악이 흐른다. 이 소리는 콜드웨이브 신시사이저에 아즈텍의 플룻소리를 섞어, 반복적이며 매혹적이다. 곧이어 충돌은 다시 시작되며, 마찬가지로 환각적인 다음 시퀀스가 이어진다 : 파리 외곽지역의 영세민 임대아파트의 울타리로 화염이 일어나는 광경이다. 이 모더니즘의 죽음을 가리키기 위한 연출로 인해 건물이 급격히 무너지며 먼지폭풍에 의해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 경량비행기의 이륙처럼, 키에브 외곽의 눈으로 뒤덮인 지역인 Desniansky Raion을 불쑥 내보인다. 이 추하고 못생긴 회색조의 건물은 지형학적으로 무미건조했지만 스톤헨지 유적지의 거석들이 만들어낸 완벽한 원형의 형태를 연상시키기에 이른다.
파괴와 카오스의 심오함처럼 Pruitt Igoe-Falls(2009) 는 보다 상징적이다. 아마 이런 두 이유 때문일 것이다 : 하나는, 미국의 생-루이 지역의 철거를 목격하게 되는데, 이 곳은 퇴락과 침체로 인해 삶의 주기가 20년이 채 되지 않은 곳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 곳이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쌍둥이 빌딩의 건축가 미노루 야카사키가 세운 건축물이란 것이다. 어떻게 이 특정 철거가 역사적 파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는가, 정치적, 민족적, 종교적, 세계적 분쟁에 메아리치는 것인가. 찰스 젠크스 8라면 이 파괴현장에서 모던 건축의 죽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표식은 이것이다 : 섬세하게 융합-연결되어, 회색 기둥의 폭발은 놀랍게도 한밤중에 떨어지는 나이아가라 폭포-무지개색의 키치적 스펙타클-를 연상케 한다. 이런 로우 컬쳐의 키치적 단계에서, 가이야르는 사실 아무것도 조롱하지 않는다. 젊은 미국인들이 알코올을 마시며 거칠어지는 것도, 성-페테스부르그 러시아 훌리건의 폭력성향에 대해서 비판하지 않는다. 낙하현상의 거품은 회색기둥의 폭발에서 생기는 먼지로 메아리친다 : 나이아가라의 빛나는 낙하를 동경하는 사람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약속하며 철거되는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던 사람과 같은 사람인 것인가...
스미스슨에 대한 오마주
이런 예술.문화 파괴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면서-국가의 파괴, 예술가의 파괴- 현대 유토피아의 추락과 자연의 스펙타클화에 대해 가이야르는 로버트 스미슨의 고 엔트로피의 개념을 반영하고 있다. 미친 말Crazy Horse(2008) 에서는 블랙힐 산에서 인디언 추장 미친 말의 기념비를 세우는 과정을 보인다. 블랙힐 국립공원에 북미 인디언족의 유명한 추장 미친 말의 모습을 돌에 새기기 위해 바위의 침식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풍경의 예술》의 이런 조각의 아름다움은 대지미술의 경우처럼. 그 보이는 외관에 대립적으로은 폭력을 굳건히 하며, 전혀 환경적이지 않은 것이다.
맨하튼의 뉴저지 강의 더 스미슨The Smithsons(2005) 으로, Real Remnants of Fictive War VI 에서 작가는 스미스슨에 대한 오마주를 표현한다. 작가는 자욱한 연기를 가로지르는 나선형 방파제Spiral Jetty 를 걷는다. Real Remnants of Fictive War VI 에서는 필립 글라스의 배경 음악으로 베트남의 숲에서, 정돈된 고전적 공원에서, 시골지방에서, 철로의 터널 입구에서, 타워의 밑에서 산업용 소화기를 이용하여 흰 연기폭풍을 일으킨다. 가끔, 폭풍은 도시 게릴라전에서, 나폴레옹 전쟁에서, 베트남 나팜전에서 나타난다. 가끔 무겁게, 가끔 느리게 진행된다. 때로 그 반대로 갑작스럽게 폭탄처럼 폭발한다. 그리고 때로 폭발적인 화덕은 서로 닮아 있다. 매번, 대지 미술은 이런 기대효과를 이용한다 :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 폭풍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어디까지어날 것인가? 폭발 과정은 매우 느리고, 꽤 긴시간 동안 침략과 후퇴라는 이중의 움직임을 가진다. 폭풍이 사라지면서 풍경이 그 제 모습을 찾아가고 피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도달하기에 이른다...목격자는 안개와 흰빛의 움직이는-그림에 의해 매료되는 것이다. 파괴는 가깝게 느껴지지만, 그렇지 않다. 백색의 폭발 이후에, 장소는 안정을 되찾는다. 폭풍은 공격적 위협의 상징이며, 다가올 죽음을 암시한다-아마도 그렇다. 하지만 그 죽음을 기다릴 것이다.
스프리앵 가이야르는 낭만적 파괴주의자이다. ■
스프리앵 가이야르
1980 파리 출생.
파리에서 거주하며 작업을 함.
개인전
2007 바시비에르섬 풍경과 예술의 중심 ; 부가다& 카그넬 (코스믹 갤러리), 파리
2008 산타 마리아 델라 스칼라 미술관 단지, 시엔 ; 헤이워드 갤러리, 런던
2009 스프루스 마제, 베를린 ; Museo de Arte Contemparaneo de Castilla y Leon, Leon ; Proyectos Monclova, Mexico ; Frac Champagne Ardenne, Reims ; Beton Belvedere, Stroom, La Haye ; Kunsthalle Fridericianum, Cassel
2010 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 Washington ; Museum fur Moderne Kunst, Francfort(-2010. 10. 24) ; Malta Contemporary Art, La Vallette; Kunsthalle Basel ; Wexner Center for the Arts, Columbus ; Projet pour le prix Marcel Duchamp, Fiac, Cour Carree du Louvre(21-24 octobre)
2011 부가다 & 카그넬 갤러리Bugada & Cargnel , 파리
1980 파리 출생.
파리에서 거주하며 작업을 함.
개인전
2007 바시비에르섬 풍경과 예술의 중심 ; 부가다& 카그넬 (코스믹 갤러리), 파리
2008 산타 마리아 델라 스칼라 미술관 단지, 시엔 ; 헤이워드 갤러리, 런던
2009 스프루스 마제, 베를린 ; Museo de Arte Contemparaneo de Castilla y Leon, Leon ; Proyectos Monclova, Mexico ; Frac Champagne Ardenne, Reims ; Beton Belvedere, Stroom, La Haye ; Kunsthalle Fridericianum, Cassel
2010 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 Washington ; Museum fur Moderne Kunst, Francfort(-2010. 10. 24) ; Malta Contemporary Art, La Vallette; Kunsthalle Basel ; Wexner Center for the Arts, Columbus ; Projet pour le prix Marcel Duchamp, Fiac, Cour Carree du Louvre(21-24 octobre)
2011 부가다 & 카그넬 갤러리Bugada & Cargnel , 파리
- Camille Henrot ;그의 작품과 노트는 사이트 참조. http://www.camillehenrot.fr/fr/work Anne-Marie Schneider Céleste Boursier-Mougenot 1961년생. 음악가이자 예술가. [본문으로]
- Jan Hackaert(1628-1685)네덜란드 회화 전성기의 화가. [본문으로]
- 리오타르(J.-F. Lyotard)는 철학, 미학, 문화 비판등의 영역에서 지금도 활발한 학문적 활동을 하고있는 현대 프랑스의 철학자이다. 훗설의 현상학에 관해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한 그는 자신의 동료들인 푸코, 데리다, 라캉, 들뢰즈등과 더불어 ‘회의의 대가’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의 사상적 전통속에서 사유의 단초를 발견하고 있다. 그 누구보다도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포스트모더니티에 대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눈길을 보내고 있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출처와 목표를 나름대로 규정하고, 왜 그것이 지금 여기에서 문제로 되는 지를 자신의 철학적 활동으로 삼고 있다. 고대의 소피스트적 전통에서 니체 및 프로이트로 이어지는 이런 사유의 길이 도달되는 지점은 리어타르에 따르면 억압되고 소외된 것의 복권이고, 감추어져 있는 것의 드러냄이며, 알려지지 않은 것의 창안이다. 이런 것을 위해 인간의 죽음이나 주체의 해체 혹은 철학의 종말과 같은 과격한 용어들을 자신의 이론 속에 도입하고, 이로써 보편적 이성의 분산, 사변적 주체의 해체, 형이상학적 철학의 분해를 시도한다. 리오타르는 근대적 정신에게는 절망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이런 시도를 철학의 언어적 혹은 미학적 전환이라는 방식을 통해 수행하고 있다.리오타르는 미국의 사회학자 및 비평가들의 견해를 수용하여 “포스트모던(postmoderne)이란 메타 이야기(métarécit)에 대한 불신”으로 단언하고, ‘모던’(moderne)을 메타 이야기 혹은 거대 이야기(grand récit)라는 정당화 담론(discours de légitimation)에 의해 자신을 정당화하는 사유 및 행위 양식으로 규정한다.. 리오타르 J.-F. Lyotard, ꡔ포스트모던적 조건 La condition postmoderneꡕ, 이현복 역, 서광사, 1992, 13-14쪽 참조.출처: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1&docId=58974992&qb=66as7Jik7YOA66W0&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gQ/zSwoi5UlssuqSLrKsss--221163&sid=Tf-zV53R-00AACqVE9U [본문으로]
- Hubert Robert(1733-1868)프랑스 풍경 화가 [본문으로]
- Robert Smithson(1938-1973)미국 대지미술 작가. [본문으로]
- Paul Virilo(1932년 파리 출생)프랑스 수필학자. 도시학자. [본문으로]
- 프랑스 작곡가. 그래피스트.http://koudlam.com/ [본문으로]
- charles jencks(1939미국 볼티모어 출생)건축이론가.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비평. [본문으로]
- 도미니크 바케는 사진 비평가, 철학자, 대학교수이다. 저서로,[ 현재의 두려움. 폭력의 형상](플라마리옹 출판사, 2009) 이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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