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트랑 라비에_Bertrand Lavier


 그는 태도가 분명한 작가 중 한명이다. 작가를 둘러싼 신화와 무한 노동을 거부하며, 그의 아뜰리에를 단지 노란 전화번호부에 등록하기를 바란다. 《프랑스에서 지식인인 척하려면 비관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비극에 빠진 작가가 아닙니다. 또한, 폭력은 나를 즐겁게 할 뿐, 그것이 내게 연극은 아닙니다. 》 익살스러운 그는 뒤샹보다는 피카비아에 가깝다. 1981년 전시 후에 에릭 파브르 갤러리의 그의 작품 중 5점에 그는 아이러니한 제목을 붙였다 : 바로《쉬운 작품》이다. 그것은 밥 라펠슨의 영화 FIve Easy Piece(1971) 의 암시이기도 하다. 작가 스스로도 관객을 자극하려는 경향을 아는 만큼 어떤이는 그에게서 게으름과 가벼움을 느낄 수도 있다. 《우린 그의 복합적 요소를 잘 구성해야 합니다. 내가 쓰는 방법으로는, 더욱 작품에 다가가기 위해 거리를 두는 것이 있습니다. 먹이를 잘 잡기 위해 일단 멀리서 포착하는 새같이 말입니다.》라고 ,라비에는 말한다. 이런 점은 라비에는 무기력한 애호가에 멈추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시가, 페라리, 그리고 산해진미에 대한 애호가로써 그는 급진적인 동시에 명확하고 진지하다. 《그는 작업을 할 떄는 다른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그가 생활인으로 지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둘은 서로 나누어져 있죠. 그래서 우린 그에게 작품과 인생을 동시에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주요 인물》
개념미술에서 그동안 비약적 행보를 밟아 온 팝아트까지 그는 매우 경제적으로, 매체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지적인 유희를 즐긴다. 루이 비통 창립자 수잔 페이지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관계의 섬세함 사이에서 파노라마의 총체를 봅니다. 단번에 모든 관계를 활성화시키는 방법을 압니다. 그는 진정한 경주차이죠. 매우 빠르게 가고 있음에도 속도를 느낄 수 없습니다.》여기에 생 에티엔느 현대 미술관장인 로랑 히기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는 1980-1990년대의 주요 인물입니다. 작가의 개인적 신화의 시대를 거친 이후에, 그의 세대에서 주요한 개념을 세운 사람입니다. 그는 현대적으로 전통을 해체했습니다. 그는 현실에 위험한 접근을 망설이지 않았죠. 하지만 이론적 명제를 구축하기를 바라지도 않았고, 판단을 보류했습니다. 그의 모든 작품이 예술의 현장에 안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
  프로방스 지역의 아들로 그는 예술 교육 이전에 원예 수업을 받았다. 접붙이기에 흥미를 붙이면서 그는 예술가로서 첫 훈련을 한 것이었다. 그가 파리의 다니엘 템플롱 갤러리의 유리창 너머로 예술작품을 본 이래로, 그의 내부에는 예술이란 바이러스가 자라기 시작했다. 1970년 그는 백포도주 병의 상표에 삽입되는 그림을 그렸다. 그 것은 이미 정해진 틀대로 하는 작업이었다. 라비에는 1974년 이면화 뒤코 와 리폴린의 루즈 제라늄[각주:1]으로 예술가로서 첫 발돋움을 하게 된다. 그는 개념미술로 사물과 단어의 불일치로 '해체'를 강조한다. 아이러니라는 개념은 1997년 그의 작품 폴리쉬에도 나타난다. 그는 나무로 된 오브제를 차례대로 프랑스어, 영어, 중국어, 그리고 러시아어 등등으로 번역하어 명명한다. 번역을 거듭하면서 생긴 오류로 오브제는 그 형상이 변한다. 1984년 브란트 쉬흐 하피네 는 페인팅, 조각, 이중 인화를 거쳐서 냉장고와 금고를 결합한다. 그는 전시에서 보다 덜 변형시킨다. 《그는 레디 메이드가 그 힘을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감정의 장으로 다시 돌아와 예술이 회복하기를 바랬습니다. 그것은 개념미술도 아니며 현실을 초월하는 예술도 아닌 레디 메이드의 역사의 전환이었습니다. 》라며, 파리의 현대 미술관의 보존실장인 미쉘 고티에는 회고한다. 이는 하임 스타인바흐[각주:2]와 유사하게 보인다. 《다른 점은 스타인바흐는 가정에서 쓰이는 일상용품이 사용된다는 겁니다. 스타인바흐는 우리의 일상에 의해 영감을 받았으며, 이는 소박한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라비에는 예술적 이론과 지식의 실천적 측면이 강합니다.》로랑 히기는 이렇게 밝힌다.

《모든 것을 의심하다》
 이중적 배열의 원칙과 그의 이미지는 1980년부터 이어진 연작 풍경화에서 잘 나타난다. 원래의 고유색을 바탕으로 채색한 트랜지스터와 이어서 가브리엘 가보Gabriel Gaveau는 피아노를 축소한 모형을 말한다. 이 모두가 이탈리아 트랜스-아방 가르드의 경향에서 구상화로의 회귀를 나타내는 듯하다. 그렇다면 라비에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그는 조각과 페인팅, 오브제와 재현의 방식을 오가며 그를 반영하는 페인팅을 하려 한다.  《그의 원칙은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그는 예술사가 늘 그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지는 것에 반해 절차나 과정을 무시하며 뛰어넘어버립니다. 큐브는 큐브이고, 페인팅은 페인팅입니다. 》미셀 고티에는 이렇게 말한다. 
 훌륭한 회의론자로써 라비에는 순수하게 남아있는 범주를 타락시키며, 엄격한 개념을 뒤흔든다. 프랭크 스텔라의 작업을 재해석하며, 네온을 사용하여 페인팅의 장르를 쇄신한다. 니켈도금화된 아프리카 동상을 제작하며, 독특한 오브제를 연이어 내놓는다. 파리의 그레뱅 미술관의 전시에서는, 하쿠르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모델들의 사진을 선보인다. 두 번의 표현은 서로 상충한다. 밀납 미술관이 보다 유사함을 추구한다면, 이런 유사함은 하쿠는 이런 존재성과 모든 현존성을 제거한다. 《그는 열등한-보잘 것 없는 가치를 추구합니다. 작은 변화가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 사람들을 웃게하는 명징함을 보이도록 하며, 그들로부터 "사실대로 말하자면"이라고 고백케 하려합니다. 그의 전시는 관객들이 작가가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정신성때문에 웃지 않고서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수잔 파제는 말한다. 그가 볼거리를 제공하려할 때에도, 그는 드라마로 남기를 거부한다. 지울레따 Giuletta 는 우연에 의한 사고이며, 그의 열기구 돌리Dolly는 바람이 빠진 상태이다. 역설적으로, 운행이 중단된 파리의 전차노선에 종려나무 형상의 신기루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작업을 하기도 한다. 
 2011년 쥬네브의 현대미술관의 전시에서 라비에는 그의 《작업장》을 개방하는 것을 선택한다. 이런 리메이크는 결국 오브제에 기반한 이중화와 동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시간의 법칙을 무시합니다. 우린 장미의 시대에서 우울의 시대로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은 진보합니다. 우리는 항상 첫번째가 제일 나은 것이라고 믿지만, 그건 틀렸습니다. 2008년 피아노를 채색한 작업물은 1981년도의 그것보다 더 낫습니다. 몬드리안의 초기작보다 만년에 이른 작업이 더 좋습니다. 마찬가지로 1910년도의 낡은 자동차보다 1950년대의 자동차가 더 좋습니다. 나는 10년전에 내가 했던 작업보다, 지금 하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월트 디즈니에 영감을 받은 첫 연작을 시바크롬으로 향상시킨다. 그는 이후에 잉크젯 프린트로 대형 페인팅을 실현하기도 전에, 조각작품으로 확장하기 위해 컴퓨터 3D를 이용하기에 이른다.

《삶의 유형》
 수많은 작가들의 작업에 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라비에는 스위스인 존 암리더[각주:3]와 반대로 그는 교편을 들지 않는다. 《그가 존중하는 작업은 현실에 기반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건의 계통을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라비에는 홀로 남겨지는 자이며, 난 그가 얼마나 팔을 뻗을 지 알 수 없습니다. 》매튜 메시에는 웃으며 말한다. 아믈데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그는 항상 젊은이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습니다. 라비에는 계승하는 것과는 무관합니다 ; 그는 그 자체로 작품이라고 여기면서 거리를 둡니다 다른 이는 그를 새로운 삶의 유형으로 본다. 《내 작업에 미치는 그의 영향은 그의 태도에 관련합니다. 전시의 구성에 있어 늘 차가우면서 진지한 자세를 유지하는 그의 태도말입니다 》라고, 작가 로리 그레오는 밝힌다. 최근에 그는 라비에의 작품을 구입했다. 
 라비에는 프랑스의 예술계에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핵심적인 동시에, 규정지을 수 없고, 동시에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다고도 말할 수 없다. 《내 여정은 사선으로 빗겨나는 것입니다》라고, 그는 즐기듯 말한다. 프랑스와 해외에서 전시를 하는 그는 다니엘 뷔랭[각주:4]만큼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다. 베니스 비엔날레서도 프랑스관의 작가로 그는 선택되지 않았다. 《그는 진정 비엔날레에서 언젠가 한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18세기의 예술사에서 프랑스가 두드러졌듯이, 프랑스인으로 한 역활을 할 것입니다》라고, 수잔 파제는 말한다. 《분명 그의 경력이 시기를 적절하게 만나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 보여진다면, 흥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4년, 혹은 5년이후에 더 흥미가 강해질 수도 있겠죠. 》그는 2012년 퐁피두 센터에서 계획중인 회고전에 보다 감정적으로 고조되어 있다고 말한다. 다중으로 변화하는 작품들간의 일관성을 보여줄, 환영할 만한 기회이다. 작가는 보다 교양있게 나아가기를, 또한 명확하고, 밝게  전진하기를 바란다. 동시에 그의 기쁨을 포기하지 않고 말이다 :  
《난 꼼수를 부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Bertrand Lavier 
1949   코트 도르 샤틸롱 쉬르 센 지역 출생
1988   디죵 콘소시움 전시
1996   토리노, 카스텔로 디 리볼리 전시
2001  《1976-2001 회고전》쥬네브 Mamco
2002   파리 모던아트 뮤지엄 전시
2011   생-에티엔느 모던 아트 뮤지엄 전시
2012   파리, 퐁피두 센터 회고전 (예정)

출처: 34page, LE JOURNAL DES ARTS #338, 2011.01.07-20
기사: Roxana Azimi
번역: zamsoobu
  1. Rouge geranium par Duco et Riploin [본문으로]
  2. Haim Steinbach(1944년 이스라일 출생, 뉴욕 거주) http://www.haimsteinbach.net/ [본문으로]
  3. John Armleder(1948년 제노바 출생); 스위스 행위예술가, 조각가, 비평가, 큐레이터. [본문으로]
  4. Daniel Buren(1938년 프랑스의 불론 쉬흐 쉔 출생) 프랑스 예술가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