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영화 ㉡ ; 미술관이 영화를 만들다

예술과 영화

영화에서도 예술계에서 그러하듯 예술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이번 해 질 부르도 Gilles Bourdos 의 르누아르 Renoir 는 칸 페스티발 Festival de Cannes 의 《주목할 만한 시선 Un certain regard 》부문에 폐막작으로 선정되었다. 영화는 5월 16일 개봉한다. 예술은 영화계에 영감을 주기도, 또는 영화작가들을 불편하게도 한다. 때로 내러티브적인 회화작품이 생각의 장으로 이끌기도 한다. 한편, 미술관이나 호화로운 장소의 장식들은 영화제작현장에 버금가는 스케일로 관객을 압도한다.

그렇다면 왜 조형예술과 영화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이 긴밀한 관계는 이전의 사례없이 보다 은밀해졌다 : 작가들은 영화작가가 되기도 하고, 그 반대로 되기도 한다. 어떤 제도화의 결과로, 이러한 보전과 현실화의 문제는 보다 절실해졌다. 제 7의 예술이란 그 자체로 미술관으로 입성할 자격이 없는 것일까?

 

예술과 영화 ㉠ ; 프레임을 넘어 에 이어 ...

 

예술과 영화 ㉡ ; 미술관이 영화를 만들다

 

팀버튼 TIm Burton 은 대중을 사로잡는다. 씨네마테크 프랑세즈 Cinémathèque français 를 보면 알겠지만 단지 극장에서만이 아니라, 전시실에서도 그는 인기다. MoMA ( Museum of Modern Art ) 에서 열린 그의 회고전(2012.4.13, JDA n.367 참조 )에 이어 파리시청은 그를 위한 공간을 마련한다. 이 회고전에는 십만관객이 찾았다. 전시를 들여다보면 그의 뎃셍과 영화적으로 어떻게 구현이 되었는지 그래픽 작업과정들이 나타나있다. 이런 과정을 보면, 씨네마테크에서 새로운 관객을 유인하고 있는 것 같다. 극장이란 장소에 한정되는 씨네필 이 꼭 아니더라도.

영화 제작의 비밀을 밝히며, 영화를《노출시키는》이 과정으로 창조행위에 대해 보다 넓게 사고하도록 하며 그는 미술관 내부에 입성하며, 관객에게 특별하면서 복합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는 아주 상이한 특성들(고정이미지, 혹은 움직이는 이미지, 아카이브, 회화, 오브제, 뎃셍 등)끼리 부딪히면서 영화를 설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것을 깎아내리지 않으면서 말이다. 씨네마테크 프랑세즈 Cinémathèque français 의 총책임자인 마티유 오르레앙 Matthieu Orléan 이 강조하듯, 영화와 미술관의 통로는 아직 모호하다 : 《영화는 "미술관화"할 우선대상이 아니다. 마치 자연을 장식으로 굳히면서, 추출의 형식으로 영화를 축소시키거나, 작품을 여기저기 뜯어고쳐 요약집을 만드는 것같다. 이 두 분야에는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봐야할 요소들이 명확히 존재한다. 그 요소들끼리 화해가 필요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이 《화해》를 몇몇 현대작가들은 훌륭히 해내는 듯 하다. 바로 도미니크 곤잘레스-포레스터 Dominique Gonzalez-Foerster , 필립 파레노 Philippe Parreno , 피에르 위게 Pierre Huyghe , 더글라스 고든 Douglas Gordon , 타키타 딘 Tacita Dean 등이다.

종종 공공기관들은 영화작가, 그리고 조형예술가, 또는 사진가들에게 요구한다. 《씨네마테크는 프로젝트들의 중심에 서서 그들을 격려해야한다. 여러 창작 분야들은 서로 통로가 막혀있다. 1936년부터, 이 장소는 가능한 보든 예술장르와 복합적 개방의 장소로 여겨지고 있다.》 마티유 오를레앙의 말이다. 그의 공동창립자, 앙리 랑글루아 Henri Langlois 는 초창기부터 영화는 예술이다고 주장한다 ; 그리고 동시에 예술가들의 영화를 수집하면서 매체를 이용하여 더욱 그 여운을 남기려 하고 있다. MoMA 에 1935년부터 영화부를 만든 것도 그 예가 되겠지만, 그는 영화와 미술관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의도가 다분하죠 : 영화도 역시 예술의 일부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라고, 마티유 오를레앙은 말한다. 여기에 씨네마테크 프랑세즈 Cinémathèque français 는 정기적으로 작가들을 초청한다. 베르시가에 정착한 이래로, 조형예술의 장이 아니라 영화의 장으로서 말이다. 주요한 소장품과 부수적인 소장 계획 이외에도 이 공공기관은 단순한 전시를 보다 복합적으로 보여주고자(《멜리에스 Méliès 》《 자크 타티 Jacques Tati 》《 알모도바르 Almodovar 》《 데니스 호퍼 Dennis Hopper 》) 한다. 또는 머리카락에 대해(2010)《  갈색-금발 Brune-Blonde》이란 테마로 바르셀로나의 현대문화센터, 그리고 멜버른의 Acmi (Australian Centre for the Moving Image ) 와 협력하여 실험정신을 공유한다. 어느 장소에서는 영화와 다른 창작분야와의 이러한 협력이 보다 특별하게 나타난다. 드물게 영화에 헌신적인 기관들은 단지  영화를 《이루는》 장식이나 방법들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미술관은 종종 전시 공간을 빌기도 한다. 2001년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히치콕과 예술》처럼 말이다.

 리옹의 뤼미에르 협회Institute Lumière 제 7의 예술의 요람으로써 자리잡고자 한다. 2003년 개혁이 대대적으로 이뤄진 이후로 협회는 영화, 책, 사진, 그리고 영화장비들을 전시하면서 이 예술을 탄생시킨 장본인인 뤼미에르 형제의 행보를 좇고 있다.

 

 

 

전시회에서 상영하기

 

해외에서 역시 많은 기관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영화에 관한 상설전시나 영화상영을 하려하고 있다. 브뤼셀에 Cinemtek 나 2009년 2월 재정비한 팔레 데 보자르 Palais des beaux-arts 에서, 그리고 이탈리아 토리노의 국립영화미술관 Musée national du cinéma 에서 소장품들이 대형전시실에서 관객들에게 영화적 경험을 선사한다. 한편, 베를린의 말렌-디트리히 궁전과 가까이 있는 영화관 Maison du Cinéma 에서 매년 영화 비엔날레가 열린다. 포츠다머 플라츠 Potsdamer Platz 의 소니센터 Sony Center 에서도 영화미술관과 독일 씨네마테크의 아카이브와 베를린 텔레비전 채널을 수용할 계획이다.  

 한편, 1988년 설립된 뉴욕에 있는 미국 동영상미술관 The American Museum of the Moving Image 은 최근 확장 하였고, 베이징의 영화미술관 Musée du cinéma 에서도 중국의 제7예술에 전념하여 거대한 전시복합단지를 구성할 계획이다. 그리고 현재, 4월 4일 비엔나출신의 Delugan Meissl Associated Architects 에 의해 구상된 미래주의적 건물이 암스텔담에 세워질 것이다. 바로 도시의 북부에 세워질 영화미술관이다. 개막전인 《 Found Footage 》은, 1200평방미터되는 공간에서 영화적 실험을 추구하며 보다 넓은 가능성의 영역을 열게 될 것이다...

 

 

예술과 영화 ㉢ ; 영화 효과 에 계속...

 

출처 : Le Journal des Arts. #369. 2012.05.11-24.

기사 : Daphné Bétard

번역 : PLONGEUSE (잠수부 zamsoob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