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MAGE _ 크리스 마커 Chris Marker ⓓ ; 돌격하다

HOMMAGE _ 크리스 마커 Chris Marker ⓓ ; 돌격하다

 

소르본느를 자르고 그 자리에 크리스 마커 Chris Marker 를 앉혀야 된다.》

(앙리 미쇼 Henri Michaux )

 

돌격하다

 

《혁명가들을 개혁해야 한다!》이는 크리스 마커 Chris Marker 의 강령이 아니다. 하지만 루디 두취케 Rudi Dutschke 의 강령이다. 공기의 밑바닥은 붉다 Le fond de l'air est rouge 에서, 1977년 영화 대부분이 가졌던 야망을 정의하고 있다. 《혁명》이란 단어, 정치와 지형학적 이중 의미에 항상 집중했던 것이다 : 분명히 정치적인 격돌 역시 우주의 순환 논리이다. 영화가 상영되는 3시간 동안,끓어오르는 행성의 통행자들은  20여년의 이야기와 그 감정들은 가진다. 그들은 360도의 파노라마를 목격한 사람이며, 눈부시며 커다란 멜랑콜리의 소용돌이 내부의 이미지들을 재구성하며, 항의의 목소리를 내는 집집마다 둘러본 이들이다. 영화

가 시간에 경계를 세웠다면(베트남전 초기부터 독일 분쟁에까지 ), 그는 당시에 추상화에 머무를 수 있는 환상을 역동적으로 만들면서 동시에 역사의 순환에 동참했다는 인상을 남긴다.   크리스 마커 Chris Marker 적인 열기와 열망은 재배열된 이미지들에 고유의 자유 속도를 부여한다. 여기에서 더이상 역사적 진실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보다 멀리 간다. 이미지는 순수한 리듬이나 움직이는 요소가 된다. 음악적으로, 혁명에 이별을 고하거나 오히려 혁명의 환상으로 영원히 돌아오도록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순환의 끝이거나 귀환에의 약속일까? 또 다시, 나는 바란다 À bientôt, j'espère 는 이미 1967년 3월 가 한 말이다. 68년 5월 혁명보다 일년여전, 가장 두드러진 흔적( 발언의 자유, 생활 방식에 대한 회의, 공장의 점유 점거 등)은 브장송의 로듐 공장의 파업 노동자들의 생에서 비정하게 드러났다. 프랑스 사회를 뒤흔드는 사건을 주시하면서, 크리스 마커 Chris Marker 는 시정과 해체할 수 없는 환멸감을 느꼈다. 마치 같은 메달을 보는 두 개의 다른 시선처럼 말이다. 불꽃과 시정은 논리적인 목소리를 필요로 한다. 이미 1953년, 동상도 소멸하다 Les statues meurent aussi ( 알랭 르네 Alain Renais 와 공동 연출 ) 에서. 현재와 불멸을 고찰한다. 특히 그는 여기에서 반식민주의자의 팜플렛을 비교적 온건한 다큐멘터리, 인류박물관의 컬렉션에 엮는다.

 어떻게 크리스 마커 Chris Marker 는 평범한 이미지에 정치적 무게를 실어 더 강력하게 만드는 것일까? 이중의 의미가 대립하는 그의 영화를 보자 : 《현재와 지금 ici et maintenant 》을 보면 시공간을 넘어 항상 이동하고 있다.

 시간을 뛰어 넘는다. 1984년, 조합의 자유에 관한 왈덱-루소 Waldeck-Rousseau 법령이 발휘 된 이래 100주년을 맞아 크리스 마커 Chris Marker 는 추가된 시대를 뛰어넘으며, 2084년의 조합의 미래를 상상한다. 이러한 행위는 영화( Level Five 의 첫주형과 닮은 얼굴을 영상으로 보여주면서 )로 최소한으로 예상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다른 시간보다 후대에서 과거를 추억하기 위해, 혁명이라  부르는》것을 피하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말 (《조합주의의 것보다는 적은》)은 미래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현재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 아이디어를 만든다. 설령 미래의 약속을 한다하더라도.

 공간을 뛰어넘는다. 1973년, 크리스 마커 Chris Marker 는 허구와 실제로 방향을 바꾼다. 바로 쿠데타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대사관 L'Ambassade 에 피신해 있던 지성인들과 둔인들에 포커스를 맞춘다. 보이스 오프된 사실에 근거한 코멘터리가 있는 슈퍼 8mm로 촬영한 20여분의 영상은, 유부브 영상보다 35년 앞서 있긴 하지만, 가족영화와 예고편 영상의 경계선에선《질 낮은 영상》이다. 이 영화는 칠리에서 같은 해 일어났던 피노체트 Pinochet 무장 폭동을 다뤘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해방되었다고 알려진 마을》의 창문은 수평선의 에펠탑...앞의 투쟁자가 망명 생활을 시작한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형학적으로 다른 곳으로 선회하면서(거리감을 무시하고 의식을 깨우기 위해 파리에서 산티아고를 훙내내는), 영화는 여전히 모호하다. 저항의 마지막 순간까지, 세계와 행동들로부터 분리되는 불안함, 감옥에서 살아야 한다는 불안함, 그래서 세계와 단절되는, 또 더이상 에 대해 말한다. 이런 점에서 음소거된 슈퍼8mm은 냉혹한 도구처럼 보인다. 이렇게 어조가 드러나지 않는 방법으로, 집회 상황을 보여준다. 그 곳의 피로와 의혹의 시선, 그리고 모든 맥락과 담론들이 추상적으로 흐르는 투쟁자의 행동을 보여준다. 이렇게 순수한 시(항상 생동하는 투쟁)가 그저그런 평범함으로 전락하는 일보다 더 쓰라린 것이 있을까?

 《공적으로 노출되지 않도록》 아주 작게 쓰고 있다. 편집의 조화나 씨네-트랙, 단편들이 간섭하거나 총체적 영화에서, 크리스 마커 Chris Marker 는 반대를 전달한다 : 보다 파도를 잘 타기 위해서 이미지의 바다로 스스로 던져지는 것, 그리고 그가 모든 매체를 이용하는 방식은 우리의 현재를 다시 발견하고 미래를 아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출처 : Le Cahiers du Cinéma. 2012. 09.

기사 : CYRIL BÉGHIN

번역 : 잠수부 PLONGEUSE ( zamsoob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