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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독립 영화의 새로운 바람16_선댄스에서 아이튠으로

독립 영화계의 전체적 위기 속에서 새로운 경제적 모델이 제시되고 있다. DIY 배급 시대로 온 것을 환영한다.

독립 영화 , 선댄스 영화제에서 아이튠으로

엘리자베스 르케레


 3년전, 데어 윌 비 블러드 There will Be Blood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try for Old Men 가 오스카에서 수상을 했지만 제작사인 파라마운트 밴티지Paramount Vantage 는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타임 워너Time Warner 는 2개의 고유 브랜드를 폐지해야 했다. 뉴라인NewLine 과 워너 인디펜던트 Warner Independent 이다. 폭스 서치라이트 Fox Searchlight 이전에 20여개의 영화를 배급한 데 비해,2008년도에 6편의 필름에 그쳤다. 스튜디오들은 독립 영화계에서 흩어지고 있는 것일까? 확실이, 지난 해 두 편의 필름이 이례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 리사 촐로덴코 Lisa Cholodenko의 에브리바디 올라잇 The Kids Are All Right(2천 4백만 달러) 와 데보라 그래닉Debra Granik 의 윈터스 본 Winter's Bone(6백4십만 달러 ) 이다. 이 성공으로 스튜디오들이 다시 활기를 얻을 지도 모른다. 당장의 이 상승세가 긍정적 발전이나 꾸준한 수익을 창출할 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오랫동안 웨인슈타인-선댄스의 시대에 전문 스튜디오에서 만든 영화가 호평을 받고 수상을 하는 때가 있었다. 그리고 관객들의 줄도 끊이지 않았었다. 폭스가 듈파스 형제의 최신작을 제작할 때, 스튜디오 관계자들은 난색을 표했다. 그리고 몇 주 후에, 이 멈블코어의 개척자들이 만든 Cyrus는 그 해의 가장 성공적인 투자작으로 기록되었다. 7천 5백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헐리우드는 클수록 좋다Bigger is better 라고 말한다. 몇몇 영화들이 잭팟을 터뜨릴 순 있지만, 기본적으로 블록버스터가 돈이 되기 때문이다. SNL Kagan 연구소에 따르면 2004년과 2008년 사이, 1억 달러 이상의 영화가 흥행수익을 보장한다고 한다.
 독립영화의 경쟁무대에서 스튜디오가 출현하면서 이런 영화들의 개봉에 필요한 비용을 올리는 추세이다(소위, P&A : publicity and advertising). 전문 브랜드가 등장하면서, 이런 마케팅 비용은 천만 에서 2천 5백만 달러까지 이른다. 2008년 6월, 로스엔젤로스 페스티발 이후에, 독립영화 프로듀서와 전 미라맥스 책임자인 마크 길 은 종말을 거론했다. 독립 영화들에 대한 지원이 희박한 것에 애조의 제목을 붙이며(《하늘이 바로 우리 머리 위로 무너지고 있다.》)《지난 4년 동안 월스트리트가 헐리우드에 투자한 건 180억 달러에 불과하다. 지난 해 5000여편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이중에 603편만이 배급되었다. 협소한 시장에 400편이 흡수되고, 300편이 개봉되었다. 다른 모든 영화는 모두 소멸했다. 대부분의 영화는 철퍼덕 쓰러졌다. 그들의 배급사 입장에서는 그 돈으로 라스 베거스로 가는 버스를 타는 게 나았을 지도 모르겠다.》
 선댄스의 베테랑인  제오프로이 길모어Geoffrory Gilmore는  9.11사태 이후 맨하탄 남부를 부활시키기 위해 제인 로센탈 Jane Rosenthal[각주:1] 과 로버트 드 니로 Robert De Niro 에 의해 창설된 Tribeca festival 에서 2009년도 부터 운용을 맡고 있다. 《경제적 모데델은 변하고 있다. 내가 일을 시작할 때, 독립 영화가 성공하려면 최소한 백만 달러가 필요했다. 지금은 모든 게 너무도 비싸고 경쟁이 심해서 2천5백만 달러로도 흥행을 확신하지 못한다.》 몇년 간, 독립 영화계는 그 기준이 허물어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4년이 지나는 동안, 600이나 700편의 영화가 있었다. 100여개의 배급사가 존재하지만, 실제로 30여개만이 운용 중이다. 지금 400편만이 개봉되고, 배급사의 3분의 1은 문을 닫고 있다. 극장 관객 수는 서서히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 분명하지는 않다. 2010년에는 9천만명이 줄어들었다.

페스티발 인가 브랜드 인가?
 길모어는 페스티벌이 배급판에서 패를 쥐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더이상 영화를 보여주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어요. 어떻게 페스티벌에서의 관심을 관객으로 전환시킬 것인가? 어떻게 관객을 온라인에서 극장으로 옮길 것인가? 등이 문제입니다》 트리아베카는 그의 인터넷 사이트를 고유 브랜드로 정의하며 무리없이 사업을 진척한다. 다른 많은 사람들도 역시, 뉴욕 영화제에서 온라인으로 기우는 추세이다.
 독립영화계에서 이러한 매체를 가리키는 말이 있다 : 바로 VoD이다. 2009년에 조 스완버그 Joe Swanberg의 최후의 알렉산더Alexander the Last 는 텍사스의 South by Southwest festival 에서 2만5천 건의 판매를 이뤄냈다. 그리고 여전히 쏟아지는 호평에 많은 관객이 모였다. 그리고 여기에 개척자인, IFC 가 도입한 day-and-date 시스템이 있다. 프랑스보다 유연한 미국의 언론들은, 같은 날 Vod와 극장에 동시 개봉하는 이러한 실험이 무리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고 말한다.
 두 젊은 배우 커스틴 던스트 Kirsten Dunst 와 라이언 고슬링Ryan Gosling 이 연기한 경찰 영화 올 굿 씽스(All Good Things, 2010)가 폭스서치라이트나 파라마운트 밴티지가 제작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앤드류 재러키의 이 영화는 그라운즈웰 이 최소한의 예산으로 제작한 것이다. 매그놀리아에 의해 VoD로 공급되면서 이 영화는 4백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그리고 35여개 관에서 개봉 한 지 몇개월만에 박스 오피스에서 2백만 달러의 추가 수익을 기록했다.
 《선댄스에서 일을 시작할 때는, 많은 영화사가 생겨났었습니다 : 미라맥스, 웨인스타인, 마이클 베이커와 소니 픽쳐스 클래식, 이라 도이치맨, 파인 라인 피쳐 등이죠. 그들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영화를 보여주겠다고 호언했어요. 70년대와는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말이죠.》길모어의 말이다. 누가 바꿀 것인가? 현재 독립 영화계에서 주축이 되는 것은 아이튠, Vudu[각주:2], Hulu[각주:3], Amazon, Microsoft Box 등 이다...Filmyard 는 2010년 미라맥스를 인수했다. 하지만 미라맥스 소유의 펄프픽션 Pulp Fiction, 굿 윌 헌팅 Will Hunting, 셰익스피어 인 러브 Shakespeare in Love Chicago 을 놓고 유투브YouTube와 넷플릭스NetFlix와 벌인 협상은 성사되지 못했다.
 넷플릭스는 1999년 처음으로 혁신적인 시스템으로 나타났다. 평균적으로 저렴한 월간지로서, 미국식의 all-you-cant-eat 개념의 광고 카달로그에 지면을 할애했었다. 2월에, 넷플릭스-어쨌든 가장 주요한 디지털 플랫폼으로 성장한- 는 구독자가 거의 2천명을 넘어섰다. 2008년 말에는 9백만에 불과했다. 어떤 면에서 필름야드는 넷플렉스와의 협상으로 5년 안에 1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릴 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소니 측에서는 몇 달간의 대대적인 미디어 정비를 통해 그들의 영화를 인터넷으로 실시간 재생하려고 하고 있다. 배급사나 극장을 거치지 않고 각 가정에 직접적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다. Warner는 올해 말을 기점으로 《프리미엄》VoD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이 서비스로 개봉과 동시에 60일 동안 영화를 볼 수 있다. 페이스 북에 부합하는 영화는 어떤가? 이 소셜 네트워크의 이용자는 7억5천만에서 내년에 10억으로 증가할 예정이다. The Dark Knight 는 이미 4백만의 팬을 보유한 상태이다.

DIY 배급 Distribution의 시대
 앞으로 당신은 미국내 영화제에서 독립이란 문구가 쓰인 삼각모를 쓴 사람들과 지나칠 지 모른다. 세로운 세계를, 모든 영화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제작되어 배급되는 에덴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안녕, 고리타분한 배급이여, 《신종 배급》에 축배를 들자.
 신종? 2000년대 초기에 피터 브로데릭 Peter Broderick 이 처음 사용한 단어이다. 이 전직 배급자는 종속적인 판매(케이블 티비 나 DVD)가  급격히 감속하는 데에 반해서, 실무자들의 지나치게 위축된 태도를 지적했다. 보다 큰 우려는 이것이다 : 2008년 가을 공황사태이후로, 메이저급 회사들이 시장을 포기한 것이다. 눈 앞의 사실은 : 영화를 만들기도, 또 그것을 배급하기도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브로데릭의 신세계는 이상적이다. 영화인들이 오직 가장자리에서 지휘하는 역을 맡는다. DIY세기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고로, 팔방미인이 탄생한 것이다. 단지 프로듀서-배급사-판매측이 아닌, 광고, 기금 모집, 웹마스터까지 도맡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직접 판권(DVD나 VoD)을 가진 웹사이트에서 티셔츠(커스텀한)나 사진(헌정된) 등을 파는 형식이다.
 구 세계에서, 영화감독은 팬을 보유한다. 신세계에서, 그들은 친구를 얻는다. 페이스북을 통해. 신세기의 영화감독은 언론보다 PMD(producer of marketing and distribution ) 과 가깝게 거래한다. 여기엔 배급사는 없지만,  수당을 조건으로하는 거래 서비스 회사service deal company가 있다. 감독이 그들에게 맡기는 지의 여부는 어디까지나 선택사항이다. 브로데릭은 그의 사이트에서 DIY 의 주요한 10가지 키포인트를 덧붙인다.
《대중을 목표로 할 것》과 《직접 연결》이 그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걸맞는 말도 잊지 않는다 : 《중요한 권한을 파트너에게 양도하지 말 것. 상대가 DVD 판매를 밀어붙인다면, 판권을 줄 것. 하지만 VoD는 남겨둘 것. 단, 상대가 거기에 관한 경험이 없다면.》 아니면 이렇게 충고한다 : 《DVD판매를 감독이 직접 할 경우, 시장을 통해 하는 것보다 7-8배 더 높은 이윤을 남길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05년, 앤드류 뷰달스키는 Mutual Appreciation을 DVD로 직접 판매하였고, 그로부터 일년 후 데이비드 린치David Linch 는 Inland Empire 의 미국 내 배급망을 직접 구성하였다. 그리고 최근 뉴욕타임즈 New York Times의 마놀라 다지스Manohla Dargis 가 지적한 바와 같이, 70년대에 이미 nerd barbu가 영화의 판권을 주장하는 바람에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그로부터 30년 이후에, 조지 루카스는 이미 제다이와 츄바카인형으로 몇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신세계는 신화이자 사업이다. 제임스와 머린 캐슬 터스티James and Maureen Castle Tusty 는 The Singing Revolution(2006)는 5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이 영화는 에스토니아 혁명을 다룬 다튜멘터리로 DVD,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음반 CD,도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상업화되었다. 한편, 로버트 그린발드 Robert Greenvald 는 Irag for Sale 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10일만에 38만5천 달러를 수집하였다. 그리고, 2005년 두명의 비디오작가 애린 컴레이와 수잔 비스는 Four Eyed Monsters라는 그들의 영화를 YouTube와 MySpace에 무료로 배포하였다. 마린스는 광고지면을 판매함으로 수익을 창출했다. 이후에, 웨인 왕같은 다른 영화작가들은 cap 2.0을 거쳐갔다. La Princesse du Nebraska 를 유투브 스크리닝 룸에서 상영한 것이다. 이제는, DIY로 페스티발도 가능하다. 선댄스 협회는 기금모집( crowfunding )을 전문으로 하는 Kickstarter와 협력하여 인터넷 분야에 뛰어든다. 매튜 레스네르Matthew Lessner 나 이번 해 수혜자로 선정되었다 : 이 감독은 거기에서 그의 신작 In The Woods 의 포스트프로덕션을 위한 1만 달러를 모을 수 있었다. 
 모든 사업이 그렇듯이, 신세계에도 고문역이 있다. 피터 브로데릭 Peter Broderick, 토마스 메이 Thomas Mai, 존 라이스Jon Reiss[각주:4] , 리차드 아브라모비츠 Richard Abramowitz는 파트너와 조언자를 자처하면서, 정글 2.0에서 길을 잃은 영화인들에게 손을(경제적인 면으로) 내민다. 배급망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하면서 말이다. 비상업적 배급( 미술관, 대학 )에 대한 면을 잃지 않도록 하면서 개봉과 동시에 DVD 판매를 할 수있도록 하면서 말이다.       
 브로데릭의 시적인 선언문은 권위적인 마케팅 법칙을 따른다. 집단이 바로 그 열쇠이다. 그것은 정체성을 부여하고, 구성하고, 확산시키기에 모든 수단이 가능하다. 폭주족들이 무리지어 다니듯이 잠재적인 관객들을 인터넷 사이트로 끌어들여 티셔츠나 BO의 구매를 유도하는 것도 가능하다. 《2003년에, 모터사이틀 경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인 Faster 의 작가가 내게 왔습니다. 그들은 칸에서 작품을 보인 적이 있죠. 축제에서, 우린 몬테카를로 경기에 참여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참가자들에게 크루아제뜨로 행렬을 이끌자고 했죠. 오토바이족들이 크루아제뜨로 도착했을 때, 35명의 사진기자들과 텔레비전 방송팀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나서, 개봉을 하게 됬죠 : 로스엔젤로스에서, 1만3천 달러 어치의 티켓을 3일안에 팔았어요. 어떤 홍보도 하지 않았어요 : 팬들에게 이메일을 보냈고, 그리고 그들은 바이크를 타고 영화를 보러왔죠.》   
  Faster 사건 이후로, 브로데릭은 변종 배급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인터넷으로 1만3천 개의 DVD를 3달 동안 팔았습니다. 난 이 영화를 거절했던 배급사측에 가서 기회를 날려버린 거라고 이야기했죠. 하지만 이게 대중만을 목표로 하는 건 아니라고 설명했어요. 그들은 5만천개의 DVD를 팔았고, 우리쪽에서는 800개 이상을 판매했어요.》
 2007년 브로데릭은 벤 닐스Ben Niles 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그는 Steinway피아노를 만드는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Note by Note 의 감독이다. 이 영화는 뉴욕의 필름 포럼에 특별관에서 상영되었다. 그리고 평단의 좋은 반응이 입소문을 타고 배급사 아르고 픽쳐 Argot Picture를 설득하였고, 한 주에 20여개의 극장에서 상영되었다. 50여개의 다른 도시에서는 한 번만 상영되었다. 영화 상영이후, 대중은 DVD를 대량으로 구입했다. 《그리고 나서, 우린 New Video 라는 좋은 파트너를 찾았죠. VoD서비스와 텔레비전 방송을 위해서였죠》성공담인 것인가? 그렇다, 하지만 이렇게 VRP위탁판매의 협조를 바라는 감독들의 수는 매우 적다. 
 불가침의 영역이었던 audience connection을 이용하는 DIY 에 관한 참고사례가 풍부하다면, 분명 효과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미네트 루이 Mynette Louie는 스스로 투자금을 유치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Children of Invention 의 제작을 위해 인터넷으로 3분의 1의 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우리 제작진들이 애초에 예상한 5000달러에 비해 1430 달러 정도 모을 수 있단 걸 알고 짐을 던 것 같았어요. 그 다음달부터 사인한 티셔트나 대형포스터를 팔아야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죠. 》■
 
 




출처 : 94 - 97쪽, cahiers du cinéma Nº 2011.9
기사 : Stéphane Delorme & Nicholas Elliott
불한번역 : Plongeur ( zamsoobu )
  1. Jane Rosenthal (born 21 September 1956) is an American film producer. Rosenthal was born in Denver, Colorado and raised in Providence, Rhode Island;[citation needed] she attended both Brown and New York University. Early in her career she helped to develop and produce more than 70 movies for television while working at CBS in Los Angeles, California. In 1989, Rosenthal co-founded the Tribeca Productions film studio in the lower Manhattan neighborhood of TriBeCa with actor Robert De Niro. Rosenthal and De Niro co-produced the dramatic television anthology series TriBeCa in 1993 and, in 2002, co-organized the first annual TriBeCa Film Festival which has dramatically grown in popularity each year since. Rosenthal is also co-founder and co-chair of the board of the not-for-profit Tribeca Film Institute.[1] Rosenthal is married to Craig Hatkoff with two children; they live in New York City. [본문으로]
  2. Vudu(Vudu, Inc)는 미디어 테크놀로지 기업이다. P2PTV(P2P에 기반한 미디어 스트리밍)기술을 기반으로 완전한길이의 영화를 공유하는 쌍방향 미디어 디바이스인 부두 복스(Vudu box)가 Vudu 사의 주력 제품이다. [본문으로]
  3. NBC방송과 폭스가 합작으로 설립한 동영상 서비스 사이트로 인기 드라마와 영화 등 전문가 제작 콘텐츠를 풀타임 버전과 5분 이내 편집 버전 등으로 제공해 높은 인기를 끌면서 아마추어가 만든 유튜브와 비교되고 있다. [본문으로]
  4. Jon Reiss is an award-winning producer and director, named one of "10 Digital Directors to Watch" by Daily Variety. His work has screened at prestigious film festivals around the world, including Sundance, Toronto, Berlin, Tribeca, Los Angeles, Rotterdam, Seattle, New Directors/New Films, and Sao Paulo, among others. As a result of this success, Reiss has built a dedicated global film audience.[citation needed]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