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번역(;Recherche/매거진①까이에 뒤 시네마②ArtPress③BeauxArtsMagazine'에 해당되는 글 195건

  1. 2010.12.12 그레고르 슈나이더-폐허에 건축 Gregor Schneider-l'architecture du désastre

그레고르 슈나이더-폐허에 건축 Gregor Schneider-l'architecture du désastre

집은 그레고르 슈나이더의 주된 테마이다. 하지만 그는 하모니와 평온함을 꿈꾸지 않는다; 대신, 그에게 집이란 항상 변화하는 불안한 공간이다. 그 곳안에서 그는 영감을 받고, 그의 집착, 유머 등을 섞는다. 마침내 그 안에서 살 수 없을 지경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무게를 늘리고 독특한 공간을 만든다; 2001년 베니스, 그는 Tote Haus u r을 고안한다:  공간은 서로 겹치고, 방문객들은 서로 몸을 비튼다; 2004년 런던, 각각의 문제를 가진 두 가정 살고 있는 집을 설치한다. 그리고 2007년 뒤셀도르프, 집-연옥은 이 둘을 동시에 그리고 따로 설치한다. 관람객이 어둠으로 나아가는 그곳에서, 가려진 창문, 과도함이 사라진 백색 감옥, Weisse Folter였다. 2008년 파리의 메종 루즈에서 2월 22일에서 5월 11까지 특별한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아마 우리는 거기서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 그것은 역사, 건축, 정치이거나 혹은 단순한 도발하는 취향일지도.

어떤 설치작품은 현실적, 내러티브, 세기종말을 향한 건축으로 관람객을 안내한다. 작품의 영구한 보존을 위해 사진을 찍고 각기 다른 경험에 대해 서로 이야기한다. 2001년 베니스비엔나레에서 독일관을 건립했다. 거기서 라이트Rheydt에서 구체화되었던 건축적 비전을 되살린다. 사고가 일어난
후의 상황처럼, 관람객은 계단을 기어오르고, 세면대 아래를 지나, 행운의 계단을 내려가 어두운 방안에 들어가 두 벽사이를 돌아다닌다. 이 작품은 작가의 시선이 현 세대에 부합하도록 하는 작업을 집에서부터 시작됨을 알린다. 

지난 해, 작가는 집을 세우고 다시 세웠다. 새로운 공간을 배열하고, 벽, 천장, 구멍뚫린 통로와 다양한 기능공간을 배치한다. 단지, 거기서 사람이 살고 싶지 않을 뿐-작가 자신을 제외한-분명한 건축물임에 틀림없다. 증식하는 집,  목적도 없는 그것은 끝이 없어보인다. 그래서 작가는 이 너무나도 무거운, 개인적 이야기로 무거워진 공간을 버리기로 한다.그래서 이 로맨티스트는 그곳에 은폐되어 그와 함께 소멸하기로 한다. 아니면, 다르게 말해서 그곳을 파괴하거나 폐허로 남겨두기로 한다. 라 셀-생-클루에 있는 그의 작품과 장-피에르-레이노Jean-Pierre-Raynaud에게 바쳐진 완벽한 묘사이다. 독일 라이트에서 1969년 태어나 그곳에서 계속 작업하는 그는 프랑스의 레이노와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그가 홀로 작업한다는 것도 그러하다. 그가 레이노의 작업을 알지 못할 것이다. 단순히, 이 두 작가는 창조에 재창조를 거듭하며, ([각주:1]오르뜨리브의 페르디낭 슈발Hauterive Ferdinand Cheval, 혼돈의 집 Demeure du Chaos의 [각주:2]띠에리 에르만Thierry Ehrmann) 주거지 속 개인공간,일상에의 발견, 내면의 이야기을 그들의 영감, 혹은 정신으로 삼는다.

내 집은 나의 성

그레고르 슈나이더 집의 미학은 흑백 타일의 페티시나 치유하는 성격에 있지 않다. 이 독일인은 집의 슬픔, 일상성, 흔해빠짐에 시선을 멈춘다. 파리 외곽지역에 있는 그것처럼 보다 더러움으로 가득 찬 작은 집이다. 반면, 베니스에서는 보다 신고전주의적인 분위기이다. 출입문은 갈색유리로 되어있고, 라인강 저편에 벨로 전형적인 색깔을 띈다. 그리고, 내부 장식은 데리다의 감시자를 연상시킨다. 특히, 작가는 기존의 공간을 재건축하면서 카오스적인 요소를 결합시킨다. 안과 밖을 계속 드나들며, 관람객을 그의 정신세계, 혹은 광기로 이끈다.
어느날, 그는 둥지를 떠나 집을 지키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이때, 상징적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앞장서 진두지휘를 했다. 그는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며, 수만관객에게 그가 자리한 새로운 미학을 선사했다. 그는 덩어리로 관람객의 주의를 끌며, 그들이 무례하게 돌아다닐 수록 발자국으로 더럽혀지도록 했다. 이 순간, 그는 보다 정확하게 그가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를 제시한다. 그것은 새로운 지평을 여는 동시에 그것을 떠나며, 파괴, 정치, 폭력이 가득한 현 시대에 던지는 그의 시선인 것이다.

이중 혹은 복제

장면은 유명하다. 불투명커튼 뒤로 여자가 샤워를 하고 있다. 바이올린이 울리는 동안 한 손은 칼에 가까워진다. 이 흑백영화는 마치 한 사이코영화처럼 혼란스럽다.2004년, 그는 그의 《가족》을 런던에 전시한다. Die Familie Schneider 이다. 월든14번가에 있던 그작품은 《외부》세계로의 입구이자《라이트 집의 출구》였다. 독특한 두개의 집, 독특한 두개의 배열, 두 가정은 매 순간을 독특하도록 규정했다.관람객은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가고, 모호한 간격을 두고 같은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부엌의 여자, 샤워기 아래 남자,침대 옆 거은 천 아래의 존재. 사실 비밀은 단순할지도: 모두 쌍둥이였다.
이중의 문제는 그레고르 슈나이더의 핵심이다. 오랫동안 그는 그의 집을 해체해왔고, 원본과 카피를 동시에 보였다. 그리고 이 유명한 샤워신도 칼을 잡는 남자의 상황으로 또 달리 재현한다.
이중의 놀이, 
Hannelore Reuen의 형상을 고안한다. 그가 동상으로 혹은 살아있도록 재현하든 그것은 갤러리 바닥에 눕혀져있다. 꽁꽁 매여진 시체는 Haus u r의 게시판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보다 예술사를 상기시킨다.(John De Andrea존 드 안드레아 ,듀안 한슨,Duane Hanson 혹은 더 최근에 티노 세갈Tino Sehgal)그러나, 그는 그레고르 슈나이더,자신의 알터에고:분신으로 적합한 존재를 복제하는 것이다.

여름날, 독일

관람객이 보다 감각적인 경험을 하도록 공간을 넘나들며 돌아다니도록 한 설치는 다소 유령열차처럼 관광용으로 전락할 위험요소가 있었다. 2007년 여름, 슈나이더는 원대한 계획아래 새로운 공간을 짓는다. 백색 고문Weisse Folter(Torture Blanche)은 뒤셀도르프 K21동굴에 감옥이다. 창문은 차단되고, 흰 복도로 이어진 그곳은 감옥의 모든 것을 제한하는 듯하다. 사람들이 겨우 나아갈 수 있을 정도로 검은 그 공간은 (어떤 조명도 없이 시야는 이 갑작스런 암흑에 적응할 수 없다), 처음 출발했던 그곳으로 올때까지 이어진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의 공간을 빙 둘러왔는지, 두개의 공간을 이어 왔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는지 알지 못한채, 나아간다. 문이 닫혀있는 이래로, 손잡이도 달려있지 않다. 미술관 앞 녹색의 이 호수의 경계를 벗어나기 위해 달리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 백색 고문은 《시민》국가에 의해 사용되는 방법이다. 이것은 가장 적은 신체적 고문을 하는 것과 동시에 인위적 조명의 조작, 거친 분위기, 완전한 고립으로 야기되는 정신을 이용한다. 그리고, 슈나이더는 몇 분간 만이라도 관람객이 이 고립상태에 놓이며 살아있기를 바란다. 추상적 건축공간으로 들어가기를 바란다. 라이트 집의 재반복이라기보다
건축의 합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그리고 이 괴이한 공간은 토마스 디맨드 Thomas Demand 의 사진으로도 그가 가진 건축의 분위기와 일반적 미학이 드러난다.우리는 그에게 보다 정화된 이 세계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그의 정신성과 폭력성을 잃은 것은 아닌지 묻는다. 이 물음은 모든 설치물에 해당하는 것이다: 기록하는 모든 이미지는 완벽해야된다. 그것이 유일하게 작품으로 남아 의미를 추적할 수 있는 단서이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슈나이더에게 재건축과 원본사이에서 발생한 7가지 실수로 유희를 하도록 하고, 거기에 우리를 이끈다. 

관타나모의 그늘

우리는 관타나모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슈나이더는 인터넷에서 그 감옥이미지를 발견하고 그에 기초하여 건축물에 실현한다.)백색고문Weisse Folter이 실현되기 30여년 전,슈트트가르트의 엄중한 감시를 하는 감옥에 홍군의 분파 일원이 수감되어 있었다. 그리고, 1977년 안드레아 바더, 구드런 엔슬린, 장-칼 랍스는 자살한 채로 발견되었다. 독일인이 그들의 침울한 과거사를 되새기는 것만큼, 슈나이더가 과거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은 이상하다.  현 세대와 미국은 모두 이 독일의 역사에 관심이 쏠렸다. 바로 Haus u r의 원천이기도 한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갇혀서》작업을 한 그 곳을 떠나면서, 이 수용소를 세계에 공개하기로 결정한다. 예술가가 소유한 스캔들에 의해 정치적인 성격을 띄었다. 또한, 베니스와 베를린의 공공기관과의 《논쟁》에 불필요하게 연루되었다. 결국, 그는 흑색 큐브, 말레비치에 대한 오마쥬(Schwarze Quadrat, Hommage an Malewitch)를 함부르그에 세운다. 영적인 기운으로 가득한 그것은 장식이 배제되어있다; 그는 먼지들을 모아 종교적인 암시를 보이도록 설치한다.2007년 오스트랄리아 해변에서, 그는 여전히 관타나모를 암시하는 수용소의 상황을 재현한다. 샤워를 하는 사람 앞에 창살을 같이 배치한다.수많은 관객이 관람하며, 19-20:30UHR31.05.2007이란 비-설치물의 분노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깥은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안정한 공간은 집이다. 하지만,그곳에서 우리는 쉽게 즐거워지기도, 편하게 쉴수도 없을 것이다. 

출처: 31p,Thibaut de Ruyter, Artpress.N˚342.2008.2
번역:zamsoobu
  1. 우체부 페르디낭 슈발은 43세 되던 해, 1879년 편지를 배달하던 길에 우연히 발견한 돌을 보며 궁전을 짓게 되었다. 그는 시멘트, 나무, 철을 제외한 모든 건축가능한 재료를 모두 다 사용했다. 단, 한번도 전문기술을 배우지 않았지만, 13세까지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궁전은 그가 76세 되던 해, 완성되었다. [본문으로]
  2. 프랑스 서남부 생로맹 오 몽도르시에 위치한 예술작품인 혼돈의 저택. 조각가이자 예술가인 티에르 에르만이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혼란에 사람들이 무관심해지는 것을 보고 1999년부터 약 90여명의 예술가와 함께 혼돈의 저택을 만들었다. 그곳에는 약 3,000여점의 21세기 혼란을 대표하는 조형물로 가득하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