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앙 메렐 Fabien Mérelle

파비앙 메렐 Fabien Mérelle    :     약함에 대한 부드러운 송가

 

초상화와 거울 놀이를 오가면서 파비앙 메렐의 세계가 나타나면서 그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

 

파리 ■ 파비앙 메렐 Fabien Mérelle 은 1981년 생의 젊은 작가이다. 2006년 그는 파리의 보자르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중국 시앙 Xi'an 보자르아카데미 Académie des beaux-arts 에서 머물다가, 스페인의 벨라스케스하우스 Casa de Velàsquez 에서 수학하였다. 최근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도 전에, 작가는 현대 뎃셍 애호가들에게 이미 알려져있었다. 이미 여러차례 수상을 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웨일 뎃셍상prix de dessin David-Weil 은 2003년에, 그리고 2010년 캔숀상 prix Canson 을 수상하였다.  또, 다니엘 에 플로랑스 겔랑 Daniel et Florence Guerlain 현대 예술 재단에 이미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파비앙 메렐 Fabien Mérelle 은 다른 갤러리에 점점 자주 소개되면서, 그 중에 Praz-Delavallade 갤러리에서 그의 처녀 전시를 열게 되었다. 

 잉크와 수채 안료로 그려진 뎃셍의 주제- 대체로 인물이거나 종종 자화상인- 를 보면 매우 방대한 탓에 작가의 모든 것을 알기엔 부족해보인다. 그래서 그가 그리는 고립된 인물들의 자화상을 보며, 전시는 작가의 작업과정을 좇게 된다. 하지만, 그가 그리는 단순한 인물에 비해 빈 여백은 너무  넓어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원칙이 제일 우선하는 건 아니다. 구성은 종종 주제와 상관없이 분산되어 있는 것 같다. 또, 인간이나 어느 일화를 묘사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필연성도 보이지 않고, 단지 우연히 지나가다가 포착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이렇게 뎃셍에 드러나는 섬세함과 뛰어난 기교는 아주 주요하다 ; 거의 드러나지 않는 색채는 바로 파스텔을 아주 신중하게 다룬 탓이다. 파비앙 메렐 Fabien Mérelle 은 작품의 크기나 기법면에서 완서법을 이용하고 있다. 아주 적은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그의 일상에 대한 고찰

 

 그의 작업들을 보다 깊이있게 파고들지는 않겠다 :  그의 주제는 매혹적인 만큼 바로 손에 잡힐 것 같다. 그림 속 여인, 작은 소녀들은 아직 미숙아, 그리고 그의 엄마, 아빠, 그의 언니, 할머니,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이다. 그 집합은 가계의 연대감, 가족스러운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시정에서 벗어나있다. 그리고 분명 주제에서, 등뼈가 굽은 사람들이나 인간의 정상적 조건을 벗어난 사람들을 보면, 싸우기도 전에 미리 패배한 듯, 복종이나 포기를 상징하는 듯하다. 마치 짓뭉개진 것처럼. 인간 존재의 운명과 맞닥뜨린 투쟁의 장이 있다. 파비앙 메렐 Fabien Mérelle 이 이러한 이중의 동물에 몰두하는 동안, 메마른 개 한마리는 넓디넓은 빈 공간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었다. 또는 어떤 이가 발가벗겨져서 굽은 다리로 출구를 못찾고 두려움에 떨면서 아이를 팔에 안고 있다. 이 광경을 보면 젖먹이를 들고 있는 것같지만, 때로는 젖먹이에 의지하는 인상을 준다. 작가는 마치 절망적이거나 개인적인 의미로 그런 듯 손에 라켓을 들고 까마귀를 쫓으려는 듯 투쟁한다. 이렇게 인간의 조건을 잔인하게 비틀면서, 자신의 자화상인 《인간-몸체》를 표현한다. 반-인간, 반-식물로 표현하면서 -부질없이- 인간 조건에 완전히 몰입하거나 다시 재구성하면서 그에 맞서는 것 같다.  한편, 작가는 뎃셍을  초현실주의적으로 조각으로 옮긴다. 저수지 곁에 있는 그의 몸을 보면, 다리가 정확히 통나무처럼 보인다. 그리고, 연약함, 손상, 절단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작가의 주제의식에 견주어보면 다리는 오히려 움직일 수 없음, 또는 상처받기 쉬움을 상징한다 : 분명히 힘있어보이지만, 부러지고 절단되고 마는 것읻. 하지만 이 또한 하나의 피난처가 된다. 도피처가 여기 있다.

 그의 뎃생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물론 가족의 풍경에서 특히 아내가 거의 성녀처럼 입고있는 데 반해, 남편은 발가벗고 무력한 상태로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부러진 다리에, 아내보다 너무 왜소하다 ; 그는 품에 아이를 안고, 아내는 그의 동료와 과실들을 신경쓰느라 여념이 없다. 그리고 그 어꺠 너머로 부인이 그 광경을 부드럽고 자상하게 쳐다보는 걸 상상하고 있다. 바로 영광의 순간인 것이다.  

 

 

 

 

출처 : Le Journal des Arts #367. du 13 au 26 avril 2012.

기사 : Alain Quemin

번역 : PLONGEUSE (zamsoob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