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퀼레 François Curlet_인터뷰

《난 항상 필리우의 영적 정신성에 귀기울인다》
프랑수아 퀼레(1967년 生)의 작품이 파리의 넬슨 프리만 갤러리의 전시기획자에 의해 대중에게 선보였다. 로버트 필리우[각주:1]의 선별에 따라 가벼움과 심오함 사이에서 대화를 주도하는 다른 작품들과 함께 어우러졌다.

당신은 《밥과 아침식사 . 로버트 필리우와 그의 초대작품 전시》를 기획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동기는 무엇이며, 로버트 필리우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나요?
 이 기획을 하도록 한것은 바로 넬슨-프리만 갤러리였습니다. 다른 작가들과 함께 일하기를 제안했죠. 난 필리우에 관심이 있었고, 10여년 전부터 아카이브를 기꺼이 구축하였습니다. 가장 두드러지며 복잡한 면모를 가진 콜렉션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난 동시에 필립 넬슨과 오랜기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필리우의 영적 정신성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난 항상 그것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왜냐하면 우린 그의 행동과 정신적 증후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게 시각적으로 더 혹은 덜 드러나든 말이죠. 그의 영향력이나 계보문제에 있어서, 난 보자르의 학생시절 부터 그의 어떤 한가지에 끌렸습니다. 생전에, 파리의 ARC에서 열린 그의 마지막 회고전의 카달로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건 뉴욕의 어느 길위에 군중을 가르고 걷고 있는 이미지입니다. 설명문은 이렇습니다 : 《필리우의 세대에는 군중 속에서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하나의 프로젝트였다.》 그 문구는 내게 각인되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정신적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필리우와 당신의 작업을 보면, 유머와 급진적 개념미술을 뒤섞는 방식이 보입니다. 여기에 동의하시나요?
 난 급진성이란 언어와 응답의 가장 기초적인 바탕에 다가가는 한 방법이라고 봅니다. 우린 1960년대와 단절되었고, 난 1980년대와의 단절을 재해석하고자 합니다 ; 이 시대에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난 개념미술에 많은 영감을 받긴 했지만, 팝아트만큼은 아닙니다. 물론 올덴버그의 유기적 오브제를 구성하는 재능을 제외하곤 말이죠. 어떤 개념미술가들은 그들의 급진적 면모보다 자유에의 강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내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러한 자유에의 의지는 기술에 의한 침식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호가 가진 언어의 기초에 매우 집중하며 긴장감을 유지하는 의식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죠. 하지만 그건 내가 작품에 유머를 배치하고, 그와 거리를 유지하는 데에 방해요소가 되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위험신호를 알릴 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는 것 뿐 아니라 동시에 우리 자신에 대해 집중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해석과 집중은 우리를 풍자의 영역으로 이끕니다. 난 그래서 우리 주변의 기호를 다시 해석함으로써 코믹한 면을 발견하곤 합니다.

 전시에서, 다양한 세대에 걸쳐 필리우와의 관계를 밝히고 있습니다. 장-피에르 베르트랑, 블링키 팔레르모, 드워& 지켈이나 켄 럼 [각주:2]의 경우와 같이 말입니다...이 과정에서 당신의 원칙이 있었나요?
 처음엔 다소 즉흥적이었습니다. 우선 《영적 정신성의 특징》을 가진, 그래서 단지 정신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가를 선정하였습니다. 가끔 팔레르모의 사진( Projektion ,1971) 의 예처럼, 필리우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 오브제에 울리는 여운같은 것입니다. 난 자유화의 형태가 낮이든 밤이든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 요소가 모두 해체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팔레르모가 견고하고 개념적인 형태를 취했지만, 그가 동시에 약탈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난 파리의 유적지에 화려하게 채색된 모자를 연결한 것을 봤습니다. 팔레르모의 사진은 독일 실내정원에 슬라이드필름을 영사하는 것과 관련있습니다. 기념비적 유적지와 관련한 이야기가 아니라, 관경과 건축을 물들이는 것을 상상하는 방법과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이는 충분히 형식적이면서, 사회적으로 급격히 변천해가는 이야기이죠. 위계질서의 현상에서 벗어나는 한 요소와 다른 요소 간의 관계를 밝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당신은 형식의 이동이나 형식의 변천과정, 혹은 오브제의 의미가 변하는 문제에 종종 천착합니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기호들과 오브제들의 해석을 유도하는 새로운 속도감을 기호화하고 재해석하는 문제와 관련합니다. 재해석을 하면서 기호들과 오브제들 사이에 새로운 리듬을 주는 것입니다. 변화는 해석을 유도합니다. 모든 경우에 작가들은 현실을 해석하기 마련이니까요.

                                                                                   인터뷰
                                                     프레데릭 보네 Frédéric Bonnet


출처 : 16page,  LE JOURNAL DES ARTS #344. 2011.4.1-14

번역 : PLONGEUR (ZAMSOOBU)



  1. Robert Filliou (1927.1.17-1987.12.2) 프랑스 플럭서스의 대표 작가. 'Action poet'란 단어를 만들었으며, 조각, 영화, 해프닝의 거장. 출처: 위키페디아 [본문으로]
  2. Jean-Pierre Bertrand Blinky Palermo(1943-1977) 라이프치히 출생. 독일 추상 회화작가 Dewar & Gicquel Ken Lum (1956- ) 캐나다 작가.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