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솔레르 PHILIPPE SOLLERS ⒜

필립 솔레르 PHILIPPE SOLLERS ⒜

 

안개가 걷힌 일시적 순간

 

 

일찍이, 필립 솔레르 PHILIPPE SOLLERS 는 2006년 출판된 신의 인생 Une vie divine 에서

 화자는 이렇게 묻는다 : 《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 그리고 그 다음 소설인 , les Voyageurs du temps 의 첫 문장을 보면, 그에 대한 대답인 듯 이렇게 쓰여있다 : 시공간에 던져진 주제는 무엇인가? 《존재의 몸, 고요, 그리고 작품에 감사하라.》어쨌든 몸이며, 《작품》이다. 그것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이 몸은 장소를 뛰어넘어 시간을 여행한다. 그리고 영원한 삶을 얻는다. 이 근본적인 정신성은 필립 솔레르 Philippe sollers 에게 항상 진정한 주제였다. 100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도서에는 형이상학적 모험이, 소설 속 소설의 형식으로 깔려있다. 그는 수수께끼같은 미지의 영역으로 천사의 말을 인용하여 가정한다 : 《존재가 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 그래왔고 그럴 것이므로.》

 l'Éclaircie 에서, 신체로의 돌입은 부풀어오른 아이, 그리고 다른 아기들에서부터 시작된다. 남매인 안과 필립은 이어서 다른 여인, 루시로 나타나지만 시간을 여행하는 데에는 실패한다. 오직 신만이 그것이 가능하다는 하이데거 Heidegger 의 말처럼 : 《일시적으로 안개가 걷히는 것은 마주하고 있을 때에만 일어난다. 》이후로, 다른 여성들, 메리 Méry , 베르트 Berthe , 빅토린 Victorine , 에바 Eva  는 보다 멀리 화가의 그림과 인생에서 나온 인물들이다. 동시대인들이 마네와 피카소가 《그리스 신적》인 존재였음을 알지 못하였지만. 이제 어떻게 이 터질 듯한 볼을 가진 아기가 안개 속 여명을 뚫고, 시간여행을 떠나는 지 볼 것. 그리고 만남이 이어지며, 어떻게 이 여명의 신비로운 힘을 지니고 하녀로써 살아가는지, 그리고 어떻게 ㄷ글을 쓰게 되는지 볼 것이다.

 

J.H.

 

■ 필자가 소설 속 화자의 누이라는 인물을 소개하기는 처음이다. 사진의 전반적 부분이다 : 화자는 2살이고 그보다 6살 위인 누나가 있다. 잿더미 위에 동물처럼 있는 이들은 나무 아래에서, 안개로 살짝 가려져있다. 비밀스런 분위기의 누나, 안느 Anne 는 갑작스레 찾아온 죽음으로 인해 그 존재감이 강하게 드러난다. 이 누나와 동생의 근친상간적 행동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누군가 내게 말한다 : 《 무질 Musil[각주:1] 특성없는 남자 l"Homme sans qualité 에서 아가테 Agathe와 울리히 Ulrich 처럼 ... 》 난 동의했다. 하지만 무질같은 잔인성과 강렬함은 없다고 덧붙였다. 금기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벌어지며 회자되는 것이 문학에서 나오는게 아닌가? 아마 이렇게 진행되는 소설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나는 Folies français 에서, 이미 보았지만, 그 때는 부녀간의 관계였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누나와 남동생의 관계이다. 인생은 가끔 마술과 같다. 여기 이 부유하고 젊은 보르도 귀족을 닮은 누이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카사노바의 수사본이 도착한 날에 만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루씨 Lucie 이다. 나는 거기에 있었고, 장면이 생각난다. 이 수사본이 오고난 후에 손상된 것을 알고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이 원고는 아주 섬세하고 아름다운 글씨로 쓰여져있었다. Brockhaus 이 몰락하면서, 독일은 이 원고를 소유하고 있었다.  카메라감독과 사진사가  프랑스어 버전의 원고를 촬영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장비 이외에는 원고에 관심이 없었다. 익명의 후원자가 건넨 수표, 750만 유로가 테이블 위에 있었다. 문화부장관이 그것을 보고 기쁨에 차 이렇게 말했다 : Brockhaus 의 손자가 있듯이, 카사노바에게도 손자가 있는 모양이라고. 그날 저녁, 식사자리에 초대를 받았다. 거기에서 누이 안느가 생각나서 날 혼란스럽게 하였다. 이 여인은 분명 보다 생기있어보이지만, 정체성이 모호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내 누이를 닮지 않았나요 라고 물었다. -아 네, 근데 누나가 있으세요? -그녀는 죽어가고 있어요. 그리고 딸깍 소리가 났다. 난 당신도 동시에 기죽어있다고 말하고 싶네요. 우리가 번개의 습격이라고 하는 것들, 어떤 암흑, 그리고 내가 밤의 습격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들이 있어요. 밤의 습격은 번개와는 다르죠. 번개는 섬광을 내면서 참기힘든 잔여물들을 쓸어없애는 것 같죠. 하지만 밤이란 건 그 반대예요. 보다 심연의 것들을 품으면서 파리의 레지스탕스들에게 자리를 남겨두죠. 인생을 절감하기 위해 이런 밤의 습격의 사례들을 찾는 게 아닐까?

 

 

두 명의 화가

 

내게 두명의 화가가 떠오른다. 자연스럽게. 난 이 두 명의 화가가 같은 것을 경험하였다는 걸 안다. 그리고 서로를 알고 있었다. 마네 Manet 와 피카소 Picasso 이다. 1872년작인,  제비 장식을 한 베르트 모리조 Berthe Morrisot 를 보면, 아주 아름다운 베르트가 파리 코뮨의 소멸을 애도하는 것 같다. 마네의 다른 모든 그림에서처럼 이 그림에선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 피카소는 자문한다. 1919년에, 유명한 그림인, 연인들 les Amoureux 에서 보면 이렇게 오른쪽 높이 쓰여있다 : 마네 Manet 라고. 아무도 1919년에 더 이상 마네를 말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미《현대》라는 물결 속에 완전히 잊혀진 지 오래였다.

 완전히 잘못된 일이었다. 회화에서 현대성을 발견하기보다 마네는 단순히 스캔들을 일으켰다. 그리고,  벨라스케스 Vélasquez, 고야 Goya , 티티엔 Titien 이 그러했듯이보다 근본적인 예술을 소생시킨다...이렇게 반대되는 해석들이 난무하면서, 얼마나 여성적 매체나 소재에 적합한 지를 보는 것이 아니다. 베르트 모리소 Berthe Morisot , 메리 로랑 Méry Laurent , 빅토린 뮈렝 Victorine Meurent 을 너머 마네, 그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여성을 파악하는 남성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여성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하는 것을 화가가 느끼게 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우선, 베르트 모리소 Berthe Morisot ,빅토린 뮈렝 Victorine Meurent 를 보라... 베르트 모리조 Berthe Morisot 는 그의 남자형제와 맺어졌으므로, Berthe Manet 가 된다. 그리고 메리 로랑 Méry Laurent 역시, 그의 아틀리에에서 화장을 고친다. 마네는 대체 누구인가? 마네, 말라르메 Malarmé 는 그를 가리켜《목신》이라고 불렀다. 확실히 그는 마네가 호색한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1860년 마네는 그의 모델과 빠져있었다. 아주 은밀하게, 그의 아틀리에에는 여성들이 작업이 끝난 후에도 남아 화가에게 안식처를 제공하였었다. 나는 자신을 좋아한 홀란드출신의 피아노 교사와 약혼한 사람이 생각난다 : 그는 바로 하이든 Hayden 이다. 마네는 귀족출신의 부르주아, 그리고 무정부주의자였다. 그는 거리에서 벌어지는 총살과 코뮌의 대학살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막시밀리안의 처형 L'exécution de Maximilien 을 그렸다. 이런 화가가 어디 있겠는가! 그가 다룬 것은,  바타이유 Bataille 였다. 바타이유 Bataille는 1955년 Manet 에서, 어떻게 시공간을 너머 마네와 라스코 Lascaux 벽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자문하고 있다. 필자가 art press의 칼럼에 우리가 말하는 다른 예술의 시대가 있다고, 나쁘게 말할 것 같은가? 내가 관심있어하는 것은 마네가 《현대성》의 선구자로 불리고 있다는 엄청난 역설이다. 마네의 그림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여성들을 보라. 모네는 훌륭한 화가이다. 멋진 풍경사이를 걸어다니는 저 형상들을 보라. 하지만 거기에 원근감은 없다 그런 점은 세잔 Cézanne 과 같다. 자, 세잔 부인을 보라. 거기엔 경직된 태도의 여성이 있다. 마찬가지로, 마티스 Matisse 는 1906년  마네, 피카소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마티스는 앵그르 Ingres 를 좋아한다고 하였다. 피카소 Picasso 는 이렇게 말했다, 《마네는 거물이야!》

 마네의 그림에 어떤 수수께끼가 있는지, 어떤 것이 스캔들을 일으키며 혼동을 만드는가? 아방가르드는 과장되었다. 그건 카바넬[각주:2] 이었다. 당시, 부르주아들과 중산층들은 이미 시대 전반적으로 확산되고 있었고, 그들은 키치 kitsch 장르에 열광했다. 마네는 확실히, 바타이유 George Bataille 가《극도의 무관심》이라고 부르는 것과 다른 무언가에 다다렀다. 그건 스캔들을 일으키려는 의도가 아니다. 마네에게는 의도가 없다. 마네는 그의 그림을 둘러싼 적의들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혐오감에, 신문을 읽기도 힘들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인가? 내가 보기엔, 근친상간의 무엇이다. 베르트 모리조 Berthe Morisot 는 마네의 누이였다. 이복동생이라하더라도 상황이 바뀌는 건 없었다.

 피카소의 경우에, 왜 항상 그는 작품활동이 어려울 때, 그리고 동력이 되었던 섹스를 할 때, 마네로 돌아왔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마네로 돌아가서, 풀밭 위의 점심 le Déjeuner sur l'herbe 를 보자. 이 회화의 힘은 무엇인가? 여기에,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이 그림이 매우 소설적이라는 점이다. 마네 Manet, 피카소 Picasso 는 이야기를 눈으로 썼다. 그들의 그림에서 말하는 건,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살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단지 아름다움, 시정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구체적인 것, 현실의 것, 어떤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세탁선ㅇ서 당신은 페르낭드를 가졌다. 그리고 에바, 아주 독특한 인물을 가져다. 에바 구엘 Eva Gouel 은 1915년 사망했다. 그녀는 피카소에 열광했다. 편지들이 이를 말하고 있다. 그녀는 치료 차 간 병원에, 그리고 지하철에 있었다. 그녀는 그림 광대l'Arlequin 을 보게 되었다. 일종의 죽음과 질병의 승리이자, 위대한 사랑을 향한 죽음의 승리였다. 에바의 초상은, 피카소의 야심이 실려있다. 그는 그녀를 사진으로 찍었었다. 그는 바이올린을 입체파적 방법으로 그렸고, 이를 가리켜 《귀여운 에바》라고 이름 붙였다. 《에바를 좋아해》...

피카소, 그는 죽음에 이르러서 이렇게 말했다 : 그래, 나한테 아주 큰 발견의 순간이 있었지. 특히 게르니카 Guerinica 에서였지. 하지만 신체의, 형이하학의 변형에 비해서, 에바의 초상에서 보다시피, 거의 드러나지 않는 점이 있다 : 바로 음악을 하는 피카소 Picasso (Manet)라는 점이다.

 

 악기의 구조를 그리 속에서 나타내거나, 직접 들고 있는 자신의 사진을 찍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벽이 내 앞에서 열리는 지금, 사진을 찍는다. 나는 죽을 수 있다》라고 그는 말했다. 당시는 마리화나를 빈번히 피웠었고, 그 것이 마약으로 여겨지기 보다는 존재의 다른 방식으로 생각되었다. 거리의 모델들도, 조르쥬 브라크 George Braque 도, 마네 Manet의 모델들도 거기에 불평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놀라운 상상과 인생에 대한 자유가 있었고, 은밀하게 그들의 존재를 입증하고 있었다. 파블로 피카소가 30세에 에바에게 말했다. 마네가 점심 le Déjeuner 를 그릴 나이였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 그들이 돌아왔어! 본성을 드러냈다고!

 

 

 

 

 

 

필립 솔레르 PHILIPPE SOLLERS  ⒝에 이어...

 

 

출처 : ARTPRESS #386. 2012.02

기사 : Jacques Henric

번역 : PLONGEUSE (zamsoobu) 2012.05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1. 로베르트 무질 [Robert Musil, 1880.11.6~1942.4.15] 요약 오스트리아의 소설가로 처녀작 《사관후보생 퇴를레스의 망설임》으로 호평을 받은 후, 클라이스트상을 받은 희곡 《열광자들》 등을 발표하였다. 에세이적 ·분석적이면서 날카로운 풍자로 현실과 비현실의 2중성적 세계를 구축하였다. 국적 오스트리아 활동분야 소설 출생지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 주요수상 클라이스트상(1921) 주요저서 《사관후보생 퇴를레스의 망설임》(1906) 《열광자들》(1921) 본문 클라겐푸르트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육군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도중에 아버지가 공학교수로 있는 브륀공업대학으로 전학하여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이어 베를린대학에서 논리학 ·심리학을 연구하였다. 베를린대학에서 실험심리학을 배우면서 발표한 소설 《사관후보생 퇴를레스의 망설임 Die Verwirrungen des Zöglings Törless》(1906)은 처녀작이었으나 호평을 받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작가로서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 기간 중 장교로서 종군하였으며, 이 시기를 전후하여 단편집 《화합 Die Vereinigungen》(1911) 《3인의 여인》(1924)과 클라이스트상(Kleist 賞) 수상작인 희곡 《열광자들 Die Schwärmer》(1921) 등을 발표하였다. 그의 생애의 태반은 이미 대학 시절부터 구상하였던 대장편소설 《특성 없는 남자 Der Mann ohne Eigenschaften》(1930∼1933, 미완성)의 완성에 소비하였으나, 경제적으로 불운하였고, 1938년에는 나치스를 피하여 스위스로 망명하였기 때문에 결국 완성하지 못한 채 제네바에서 죽었다. 그의 문학 작풍은 매우 치밀하여 서술에 있어 극히 정밀하고 상세하였으며, 에세이적·분석적이면서 날카로운 풍자로 가득찬 문체에 의해서 현실과 비현실의 2중성적 세계를 구축하였다. [출처] 로베르트 무질 [Robert Musil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
  2. 카바넬 [Alexandre Cabanel, 1823~1889] 요약 프랑스의 화가. 고전주의적 작풍으로 역사화·풍속화·초상화로 명성을 떨쳤고 제2제정시대의 관료화가로서 오랫동안 아카데미 원장의 영예를 누렸다. 대표작으로 《비너스의 탄생》이 있다. [출처] 카바넬 [Alexandre Cabanel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