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s Rousse 조르쥬 루스_
조르쥬 루스의 밀도있는 작품을 볼 기회가 찾아왔다. 세련되고 강렬하게 이어지는 그의 작품이 알베르의 지휘 아래 펼쳐진다.
■ 《나는 작업을 미니멀아트의 척도로 보기보다, 르네상스 시대의 사고로 보고자 한다(1) 1》 조르쥬 루스가 자신의 작품을 평가하는 말이다. 그의 사진작은 사실 15세기의 회화들에 대한 분석으로 이뤄져있다 : 4각형의 이미지들, 건물 내부로의 개방(가상의 정입방면체는 15세기 표현방식의 기준이었음 ), 단초점 구성, 평면과 입면의 환영 등이 그 특징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가 공간을 유사하게 가장하려했다면, 조르쥬 루스의 작품은 반대의 환영을 조작한다 : 사진은 즉각적으로 볼륨을 인식케하며, 이미지의 중심에서 형태의 위치가 이상한 점을 발견케 한다. 그의 각각의 사진에서, 공통적으로 우리를 사로잡는 점이 있다 : 우리가 비록 그것이 건축설계 3D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형상임을 알지만 어떻게 이 기하학적인 형상을 중심에 위치시켜서 우리가 그것을 편평하게 보도록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수수께끼이다. 그 해결책은 역사나 왜곡된 상에 대한 인지감각과 관련있다. 유르기스 2에 따르면, 왜곡된 상은 《그 스스로를 벗어나는 투영이다. 한정된 시점을 다시 바꾸도록 한다(2) 3》라고 한다. 시점은 조르쥬 루스에게 핵심주제이다. 《그의 작업은 시점에 따라 공간을 해체하고 다시 구축하면서 완성되어간다(3) 4 》 프레이밍, 시점, 단초점 시야, 평면과 부피의 유희가 모두 존재한다 ; 오직 유일하게 사진매체만이 알베르티 시대와 동떨어져 회화를 구성한다.
이미지의 기초토대
조르쥬 루스는 말한다 : 《나는 시를 엄청 많이 읽어요. 앙드레 부쉐 6를 좋아하죠. 백지 위에 몇몇의 단어는 우리에게 완벽한 세계를 선사합니다. 그리고 나는 예술가가, 시인이 그러한 것처럼, 효과적일 수 있을 지 자문합니다. 최소한의 방법으로 말이죠.(4) 7 》
알베르티는 이렇게 말한다 : 《나는 화가들에게 시인들과 교류하라고 재촉한다. 그리고 수사학자들, 철자를 다루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페이디아스 8 는 호르메스와 교류했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는 쥬피터를 그렸다(5) 9》
우리는 시대를 초월하여 이 이미지들이 집중되는 형상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예술은 불변의 것이 아니다 : 15세기의 예술은 그 시대의 정신을 고려하게 한다. 마치 현대예술이 현 시대정신에 대해 회의하듯이. 이 두 예술적 견해 사이에 시대착오적인 점은 없는걸까? 바로 사진이 이런 시대착오의 증거가 아닐까?
대조적 사진술
작가는 르네상스시대에 지앙바티스타 델라 포르타 11 가 실험하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카메라 옵스큐라 원칙에 따라, 사진을 이용한다. 이런 이미지들의 특이한 점은 암실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진의 계수도 상관하지 않는다(즉, 이는 공간을 현실의 흔적으로 여기며 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조르쥬 루스의 작품은 이렇게 정의내려지기도 한다: 《부피를 표현하는 이미지에 편평한 형태를 부여한다.》 즉, 이 말은 알베르티가 제안한 바와 정확히 반대된다: 《사람들은 편평한 회화가 볼륨감있는 조각처럼 보이길 원한다(8)>, 회화는 정신의 노동이다, 즉, 화가는 생각할 줄 알아야한다." height=14 valign="top"> 12 원칙에 순응하면서. 어쨌든, 이런 방대한 규모의 회기작용에서, 그는 14세기에서 19세기까지 주요동인이었던 것을 놓치고 있다 : 바로 신체이다. 알베르티는 이 신체가 표면으로, 움직인다고 하였다. 회화의 주제란 바로 그런 것이다.
역사의 시점
작가가 1980년대 구상을 거부하면서, 이 역사는 시작된 듯하다. 하지만, 이 글의 처음에 제기했던 의문점은 여전히 우리를 음화사진에서 두드러지는 평면성의 베일을 벗기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가 왕래를 반복하며 열중하는 작업의 현장을 상상케 한다. 투명하게 임시로 그림을 그리며 그것이 벽의 흔적들과 일치하도록 애쓰면서 말이다. 받침대 위에서 이렇게 왕복으로 움직이며 천 위에 붓질을 한다. 이 작업을 위해 작가를 돕는 팀원들이 공간을 움직이는 셈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신체는 유령이다. 유일하게 한 명의 고집스러운 사람이 그가 흘리는 색을 좇을 뿐-사진또한 그가 오마주하는 회화의 흔적일 뿐-이다.
편집된 이미지는 진정한 과거(과거엔 그러했던)를 상기시키는 매개체(사진)로써, 서양 이미지(회화)의 역사에 깊이 침투한다. 하지만 동시에, 뒤샹이전까지 영원하리라 생각했던 성상화와 단절된 현대예술가들과의 관계도 재정립한다. 그는 현실을 물질로서 다루며 이러한 지침과 계보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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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작업을 미니멀아트의 척도로 보기보다, 르네상스 시대의 사고로 보고자 한다(1) 1》 조르쥬 루스가 자신의 작품을 평가하는 말이다. 그의 사진작은 사실 15세기의 회화들에 대한 분석으로 이뤄져있다 : 4각형의 이미지들, 건물 내부로의 개방(가상의 정입방면체는 15세기 표현방식의 기준이었음 ), 단초점 구성, 평면과 입면의 환영 등이 그 특징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가 공간을 유사하게 가장하려했다면, 조르쥬 루스의 작품은 반대의 환영을 조작한다 : 사진은 즉각적으로 볼륨을 인식케하며, 이미지의 중심에서 형태의 위치가 이상한 점을 발견케 한다. 그의 각각의 사진에서, 공통적으로 우리를 사로잡는 점이 있다 : 우리가 비록 그것이 건축설계 3D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형상임을 알지만 어떻게 이 기하학적인 형상을 중심에 위치시켜서 우리가 그것을 편평하게 보도록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수수께끼이다. 그 해결책은 역사나 왜곡된 상에 대한 인지감각과 관련있다. 유르기스 2에 따르면, 왜곡된 상은 《그 스스로를 벗어나는 투영이다. 한정된 시점을 다시 바꾸도록 한다(2) 3》라고 한다. 시점은 조르쥬 루스에게 핵심주제이다. 《그의 작업은 시점에 따라 공간을 해체하고 다시 구축하면서 완성되어간다(3) 4 》 프레이밍, 시점, 단초점 시야, 평면과 부피의 유희가 모두 존재한다 ; 오직 유일하게 사진매체만이 알베르티 시대와 동떨어져 회화를 구성한다.
이미지의 기초토대
알베르티 5의 1435년도 저서 회화De Pictura 를 보면, 당시 단지 지저분한 활동으로 여겨지던 회화에 지적 타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자유로운 예술에 수사학과 수학이라는 원칙을 제공한 것이다. 알베르티는 수학적으로 한 기초로 기울어지는 세개의 창문에 그의 특징을 써내려갔다(기초 골격에 대한 연구 이후에 기하학적 관점을 연구함- 점, 선, 그리고 형태와 그 둘레, 원이나 사각형 등) ; 그리고 (도형의 둘레를 알파벳 철자로 여기며 가르쳤다. 그리고 그 구성을 마치 서문의 단어들처럼 여겼다. 회화가 텍스트처럼 읽히도록 하려했기때문이다 ) ; 결국, 세번째 부분에서, 그는 회화의 감정이 고양되는 걸 보인다. 운문과 비교하면서. 어떻게 알베르티와 조르쥬 루스의 관계를 알아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의 최신작은 기하학과 광학을 이용하고 있다(이를 위해 작가는 특수하게 사진기를 고안했다) 어느정도까지 왜곡될 수있는지 가능성을 보면서 단초점의 관점을 가진다. 그러면 어떻게 이토록 단어- 공간안에 그려지거나 사진기의 시점에 따라 쓰여진- 에 공을 들이며 형태들을 제시하는 데에 응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이토록 가능한 한 정확하게 시정에 바탕한 두 명의 작가에게 대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르쥬 루스는 말한다 : 《나는 시를 엄청 많이 읽어요. 앙드레 부쉐 6를 좋아하죠. 백지 위에 몇몇의 단어는 우리에게 완벽한 세계를 선사합니다. 그리고 나는 예술가가, 시인이 그러한 것처럼, 효과적일 수 있을 지 자문합니다. 최소한의 방법으로 말이죠.(4) 7 》
알베르티는 이렇게 말한다 : 《나는 화가들에게 시인들과 교류하라고 재촉한다. 그리고 수사학자들, 철자를 다루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페이디아스 8 는 호르메스와 교류했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는 쥬피터를 그렸다(5) 9》
우리는 시대를 초월하여 이 이미지들이 집중되는 형상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예술은 불변의 것이 아니다 : 15세기의 예술은 그 시대의 정신을 고려하게 한다. 마치 현대예술이 현 시대정신에 대해 회의하듯이. 이 두 예술적 견해 사이에 시대착오적인 점은 없는걸까? 바로 사진이 이런 시대착오의 증거가 아닐까?
대조적 사진술
분명한 관점과 설치된 사진기사이에 작가는 트레이싱페이퍼를 파인더에 놓는다. 그리고 그 트레이싱 페이퍼를 통해 기하학적 형태가 비춰진다. 이 장치로 벽에 뎃셍을 하고, 이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런 투명성은 알베르티가 이미 천을 이용하여 고안한 것이다(《친구들끼리 중매인이라고 부르곤 했던 이 천은 피라미드처럼 하여 그 사이로 사람의 신체가 비춰지도록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법칙을 생각한다 : 《시점이란, 매끈하고 투명한 유리 뒤편의 것을 보이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 유리의 표면에, 뒤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나타나는 것이다(6) 10》. 이런 장치를 이용하여 조르쥬 루스는 15세기를 지배했던 개념과 현재의 광학을 잇는다 ; 하지만 원추형의 공간은 이미지로서 처리한다.
작가는 르네상스시대에 지앙바티스타 델라 포르타 11 가 실험하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카메라 옵스큐라 원칙에 따라, 사진을 이용한다. 이런 이미지들의 특이한 점은 암실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진의 계수도 상관하지 않는다(즉, 이는 공간을 현실의 흔적으로 여기며 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조르쥬 루스의 작품은 이렇게 정의내려지기도 한다: 《부피를 표현하는 이미지에 편평한 형태를 부여한다.》 즉, 이 말은 알베르티가 제안한 바와 정확히 반대된다: 《사람들은 편평한 회화가 볼륨감있는 조각처럼 보이길 원한다(8)>, 회화는 정신의 노동이다, 즉, 화가는 생각할 줄 알아야한다." height=14 valign="top"> 12 원칙에 순응하면서. 어쨌든, 이런 방대한 규모의 회기작용에서, 그는 14세기에서 19세기까지 주요동인이었던 것을 놓치고 있다 : 바로 신체이다. 알베르티는 이 신체가 표면으로, 움직인다고 하였다. 회화의 주제란 바로 그런 것이다.
역사의 시점
작가가 1980년대 구상을 거부하면서, 이 역사는 시작된 듯하다. 하지만, 이 글의 처음에 제기했던 의문점은 여전히 우리를 음화사진에서 두드러지는 평면성의 베일을 벗기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가 왕래를 반복하며 열중하는 작업의 현장을 상상케 한다. 투명하게 임시로 그림을 그리며 그것이 벽의 흔적들과 일치하도록 애쓰면서 말이다. 받침대 위에서 이렇게 왕복으로 움직이며 천 위에 붓질을 한다. 이 작업을 위해 작가를 돕는 팀원들이 공간을 움직이는 셈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신체는 유령이다. 유일하게 한 명의 고집스러운 사람이 그가 흘리는 색을 좇을 뿐-사진또한 그가 오마주하는 회화의 흔적일 뿐-이다.
편집된 이미지는 진정한 과거(과거엔 그러했던)를 상기시키는 매개체(사진)로써, 서양 이미지(회화)의 역사에 깊이 침투한다. 하지만 동시에, 뒤샹이전까지 영원하리라 생각했던 성상화와 단절된 현대예술가들과의 관계도 재정립한다. 그는 현실을 물질로서 다루며 이러한 지침과 계보를 강조한다.
이러한 제안이 가지는 힘- 회화의 계보에 관한 시점-은 그가 표현하는 대조법으로 배가된다(편평한 표면에 왜곡된 이미지를 보이는, 즉 뒤바뀐 시점). 또, 우리와 멀어졌던 역설을 예리하게 파해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역설은 동시에 의미가 된다(10)>Logique du sens, Minuit,1969. 96-97쪽'>>, 13 . 이렇게 비속함 속의 낯선 감각은 우리로 하여금 평범함을 높이 평가하는 것처럼 부추긴다(11)> la Transfiguration du banal, Seuil 1989.'>>, 14. 사진 위에 덧칠한 것같은 채색된 표면은 사실 이미지의 심도에 따라 현장에서 칠한 것이다. 이런 심도는 동일하게 예술사에도 적용되고 있다. ■
조르쥬 루스
1947 파리 출생.
개인전/그룹전
2010 Château des Alpilles, Saint-Ré my-de-Provence
Chapelle Saint-Charles, Avignon ; Galerie RX, Paris ;
Galerie Catherine Putman, Paris ; Muse des beaux-arts, Vernon et Clermont -Ferrand ; CAB Burgos ;
Thétre de la photographie et musée des Beaux-arts, Nice
2011 CAD, Bruxelle(5 월) ; Ramallah +expe itinérante en Palestine et Israel ; Rio Photo , Rio ; Château de Chambord(2011 말.)
1947 파리 출생.
개인전/그룹전
2010 Château des Alpilles, Saint-Ré my-de-Provence
Chapelle Saint-Charles, Avignon ; Galerie RX, Paris ;
Galerie Catherine Putman, Paris ; Muse des beaux-arts, Vernon et Clermont -Ferrand ; CAB Burgos ;
Thétre de la photographie et musée des Beaux-arts, Nice
2011 CAD, Bruxelle(5 월) ; Ramallah +expe itinérante en Palestine et Israel ; Rio Photo , Rio ; Château de Chambord(2011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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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40- page, ARTPRESS # 380
기사 : Ange-Henri Pieraggi> in Concepts, HS < 15>, n.2, Sils Maris 출판사 , 2003 ; <<롤랑 바르트가 쓸 때 ; N.de Stael 은 세잔의 3센티미터 안에 있었다. Roland Barthes écrt ; N. de Stael est dans 3cm2 de Cézan>>, La voix du Regard출판사, n.17, 2004-2005 ; <<의미의 경계에 선 데이비드 린치 David Lynch aux confins du sens>>, ositif n.555, mai 2007 ; <<화가 뷰이알의 동인 Les motifs de Vuillard>>, chimetres, n.72, 2011.2월" valign="top">
번역 : PLONGEUR (zamsoobu)
기사 : Ange-Henri Pieraggi> in Concepts, HS < 15
번역 : PLONGEUR (zamsoobu)
- (1) 조르쥬 루스, 인터뷰, 필립 피게Philippe Piguet, Musée de Chateauroux, Joca seria출판사. 2003, 38쪽 [본문으로]
- Jurgis Baltrušaitis (May 2, 1873 – January 3, 1944) was a Lithuanian Symbolist poet and translator, who wrote his works in Lithuanian and Russian. In addition to his important contributions to Lithuanian literature, he was noted as a political activist and diplomat. Himself one of the foremost exponents of iconology [본문으로]
- (2)Jurgis Baltrusatis, Anamorphoses, Les perspectives dépravées 2, Flammarion.1996.7쪽 [본문으로]
- (3)조르쥬 루스, M.Mutashar 와의 인터뷰. Actes Sud. 57쪽 [본문으로]
- Leon Battista(1404-72): 이탈리아의 건축가·화가·음악가·시인. [본문으로]
- Born in Paris, he lived in France until 1941, when his family left occupied Europe for the United States. He studied at Amherst College and then at Harvard University (in comparative literature). After teaching for a year, he returned to France. He became friends with the poets Pierre Reverdy, René Char, Francis Ponge and the painters Pierre Tal-Coat and Alberto Giacometti. Du Bouchet was one of the precursors of what would come to be called "poésie blanche" or "white poetry" (in 1956 he published a collection of poems intitled Le Moteur blanc or "The White Motor"). He was one of the founders, in 1966, with (among others) Yves Bonnefoy, Jacques Dupin, Louis-René des Forêts and Gaëtan Picon, of the poetry revue L'Ephémère (twenty issues were published from 1966 to 1973). In 1961, Du Bouchet's first major poetry collection, Dans la chaleur vacante, was published to critical acclaim and he won the Critic's prize for that year. He also wrote art criticism, most notably on Nicolas Poussin, Hercules Seghers, Tal-Coat, Bram van Velde and Giacometti, and translated works by Paul Celan, Hölderlin, Osip Mandelstam, Boris Pasternak, Laura Riding, William Faulkner, Shakespeare and James Joyce. In 1983, he won the National Poetry Prize or "Prix national de la poésie". André du Bouchet died in 2001 at the age of 76, in Truinas, Drôme. [본문으로]
- (4)조르쥬 루스, M.Mutashar와의 인터뷰.op. cit. [본문으로]
- Phidias 페이디아스(500?-432? B.C.) ((그리스의 조각가)) [본문으로]
- (5)알베르티, De Pictura, Macula-Dédale, 1992. 54 [본문으로]
- (6)Léonard de Vinci, Carnet T2, Gallimard, 1942.369쪽 [본문으로]
- Giambattista della Porta (1535?[2] – 4 February 1615), also known as Giovanni Battista Della Porta and John Baptist Porta,[3] was an Italian scholar, polymath and playwright who lived in Naples at the time of the Scientific Revolution and Reformation. Giambattista della Porta spent the majority of his life on scientific endeavors. He benefited from an informal education of tutors and visits from renowned scholars. His most famous work, first published in 1558, was entitled Magiae Naturalis (Natural Magic). In this book he covered a variety of the subjects he had investigated, including the study of: occult philosophy, astrology, alchemy, mathematics, meteorology, and natural philosophy. He was also referred to as "professor of secrets".[4] [본문으로]
- [/footnote]》. 그래서 이러한 전복이 울림을 가지며, 고유의 영역을 가지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사진은 그 계수를 잃었다. 사진은 빛에 의해 그려진 그림이란 인식이 약해진 것이다. 그보다는 오브제로 그려진 것, 재-구성된 무한 픽셀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이러핳게 새로운 맥락에서, 조르쥬 루스의 사진은 새로운 혼동을 불러일으킨다 : 컴퓨터의 간단한 조작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편평한 형태는 바닥과 천장사이의 주변 둘레에서 튀어나와 방법적인 실현을 드러낸다. 이런 사진은 이중의 역설을 지닌다 : 고전적 이미지로서는, 회화는 공간의 심도를 표현하려한다- 하지만 여기 조르쥬 루스의 사진에서는 편평해보인다; 새로운 이미지-가상 이미지-로 판단해보자면, 수치를 더 확실히 하고자 하며 방법을 굳히려하고 있다.
자 여기에 15세기 회화의 영향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작가가 있다. 코사 멘탈 cosa mentale[footnote]"<<회화론 [본문으로] - '"(10) [본문으로]
- '"(11)아서 [본문으로]
- "앙쥬-앙리 [본문으로]
'★자료.번역(;Recherche > 예술가(;les artist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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