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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30 모니카 소노브스카( Monika Sosnowska) 의 미궁_artiste

모니카 소노브스카( Monika Sosnowska) 의 미궁_artiste


■《모든 방에는 문이 여러개 있지만, 모든 문이 열쇠로 닫혀 있었다; 그래서 앨리스는 하나에 이어 다른 하나의 문을 열려고 헛수고를 했다. 그녀는 어떻게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각주:1]》모니카 소노브스카의 작품에는 우리각각의 앨리스가 잠재되어 있다. 그리고, 루이스 캐롤의 세계처럼, 각각의 문이 지닌 가치와 오브제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여정과 통로에 대해 화두를 던진다. 또한 모든 요소가 꿈, 유년시절, 그리고 초현실적인 이야기에 대해 각인시킨다. 하나의 문이 다른 문으로 이어지며, 혹은 통과할 수 없도록 크기를 달리하며 다른 곳으로의 연결을 의미한다. 마치 앨리스처럼 관객은 탈출구나, 창문이 없는 미술관에 갇히며 신체적 구속을 경험한다.

영적 공간
 

《작품의 발상은 견고한 구조에서 출발합니다. 그 이후에 보다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형태로 그것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것입니다. [각주:2]》그렇다면 무엇이 진실인가? 어떤 공간이 그가 바라는 목표인가? 우리는 그것을 찾거나, 혹은 그곳이 우리를 변화시킬 것인가? 그 공간은 현실인가, 아니면 허구적 공간인가? 앨리스조차도 이 질문에 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공간은 서로 다른 규모를 가진다- 크기, 층, 평면도, 공간의 유형-그래서 매우 독특한 경험을 하며 현실의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인지를 강화한다. 우리는 기꺼이 이런 인지작용에 한 요소로써 이용당한다. 그럼으로 신체적 공간에서 우리는 영적 공간으로의 전이를 체험한다 : 《난 건축적 공간이 영적 공간적 측면이 드러나는 순간에 특히 흥미를 느낍니다[각주:3]》비밀은 붉은 플러시천의 장막 뒤에 숨어 있다; 하나에 거리를 두면서, 우린 서로가 마찬가지로 같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가까운 주변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지만, 또한 새로운 회의를 품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발견하는 모든 것은 세번째 장막에 가려져 있는 제3자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모니카 소노브스카는 우리의 반응을 즐기는 듯하다. 바로 우리의 신경물질의 반응 말이다. 그의 작업은 우리를 놀라게 하며, 상실을 느끼는 동시에 그것을 유발시킨다.
 우리는 단지 닫히거나 위장된 탈출구로 가득한 미궁(San Gimignano, 2004) 속에서 길을 잃었을 뿐이다. 길은 뒤틀렸다. 각각의 극점에는 하나의 문이 있다. 각각의 작업은 베이지색 벽과 회색의 두꺼운 양탄자가 깔린 작은 방으로 통한다. 통행을 불가능하게 하는 뒤틀린 형태의 각각의 문은 다시 닫히기에 이른다. 그 뒤로 유일한 탈출구는 가려진다. 그것을 발견하려면 네번 정도 몸을 굽혀야 할 것이다. 서로 복잡하게 간섭하는 요소로 인해 우린 갇힌 것이다.

더 이상 이상한 것은 없다



《앨리스는 과자 한 조각을 베어물면서 그녀가 얼마나 자라고 다시 작아질 수 있는 지 그의 머리에 손을 갖다대어 보았다 ; 그리고 머지 않아 그녀의 키가 변하지 않는 것을 알고 매우 놀랐다(...) 앨리스는 이상한 것에 더 이상 놀라지 않게 되었다. 더이상 기이한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완전히 바보스러운 일이거나 슬픈 일이었다[각주:4].  》2004년 갑자기 그는 더 이상 이상한 것이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은 행동하는 방식에 비하면 비교적 언급이 되지 않았다. 작업물은 단순화되면서, 그 정보들은 무게를 덜합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할 때면, 항상 전 스스로에게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자문합니다. 전 보다 적은 양의 정보가 보다 보는 이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각주:5] .》2004년 서펜타인 갤러리에서의 전시는 갤러리의 외관을 제외하고 수정하지 않았다. 갈색에서 연상되는 수많은 지형학적 요소들을 배치하면서 공간에 대한 인지를 해체한다. 형태가 완전히 그 자체를 대신하기 까지 말이다. 갤러리는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이어지거나, 고립되는 여러개의 분절된 블럭들의 총합에 지나지 않았다. 관객은 여기에 신체적이면서 정신적인 조작의 한 구성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 장소의 기능은 물론, 장소 자체를 정의하기도 어렵다. 뉴욕현대미술관(2006)에서, 천장에서 잔해가 떨어지며  바닥을 분절시킨다. 전시실은 매우 큰데 반해, 오브제는 매우 작아 분위기는 공허하며 작업은 보다 소심한 듯 보인다. 《일상적 오브제에서 그것들의 범상한 감각을 찾는 것은 현실적 의미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다죠[각주:6]》. 단순한 것들에서 의미를 찾으며 진정성을 추구한다. 그것이 완전히 닮아있지 않더라도, 일종의 환영으로서 말이다.

그러나 작가의 흔적은 인식가능한 환영이며 분명 좇아갈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그의 말버릇을 숨길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저의 모든 설치작업은 디자인이나 건축적 요소로 작용합니다. 지금 구상 중인 프로젝트- 뎃셍과 모형-가 있습니다. 전 제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빠르고 적확하게 할 수도록 요소들에 역활을 부여합니다.  작업구상에 있어 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한 것처럼 보이도록 신경씁니다. 예를 들어 벽은 벽돌공에게 맡기고, 목재로 된 오브제는 목수에게 맡깁니다[각주:7]》매체는 아직 가공 전이다. 이 것을 작가는 공간처럼 다루며 거기에 철학적 면모를 부여한다. 소음이 공기중으로 흩어진다. 바로 다른 관람객들의 발걸음소리, 사각지대이기 때문에 들리지만 미처 보이지 않는 소리인 것이다. 설치작업은 단조로우며 때로는 일상이나 집안 내에서 일어나는 경험들과 연결짓기 어렵다.  우린 인형의 집이나 추상회화, 혹은 호텔을 연상시키는 건축적 맥락이나 진부함에 갇힌 듯하다.  바로 우리 각자의 경험, 기억, 그리고 유머감각에 따라 말이다. 또한 각자의 기준에 따라서도 그렇다 : 루이스 캐롤, 카프카, 미니멀 아트 혹은 폴란드 추상회화 등등.
  폴란드-그의 건축, 추상화 작용, 문화, 경제적 측면-는 작가가 다음 베니스 비엔날레의 폴란드관에 설치할 작업물에 근거가 된다. 그의 1930년대 건축작업물은 철골구조를 차용하고 있는 1960-79년대의 전형적인 현대식 건물구조를 잘 나타낸다.  이렇게 대형 층계로 구성된 구조는 당시 폴란드의 대중적 건축코드였다.  이러한《콘크리트의 유산》은 내부적으로 끝없이 무너지고 다시 재건되며 거대한 역사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건축적 체계, 사회적이거나 정치적 체계가 보다 재활이 생동감 있게 이루어지길 바라며, 구조는 다른 요소를 낳는다.
모니카 소노브스카의 작품은 우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일상성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단번에무 것도 말하지 않는 것이거나 너무 많은 것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역활이 없는, 《목표가 없는》오브제를 정성을 다하여 창조한다. 문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보편적으로 비춰진다. 왜냐하면 작품에 드러나는 사고는 관객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순환하기 때문이다. 그릇용기과 그 내용물 사이에서 불균형이란 특징이 두드러진 작품은 암시를 하거나 보여주기를 반복한다. 여기에 동등함의 원칙에 대해 화두를 던지는 로베르 필리우처럼, 비가시성으로 인해 더욱 강하게 가시성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1972년   폴란드 출생.
            바르샤바 거주하며 작업.
1999      암스텔담 한스 브링커 전시
2000      암스텔담 라익스아카데미(rijksakademie)
2004      런던, 서펜타인(serpentine) 갤러리 전시
2005      바르샤바, 폭살 갤러리 : 비엔나, 프루이드 미술관; 글래스고, 현대 협회
2006      뉴욕, 현대미술관
2007      제 52회 베니스 비엔날레, 폴란드관



출처: art press #335
번역: zamsoobu(plongeur)
  1. 앨리스의 모든 것, 46쪽, 루이스 캐롤, 1979년, 지에프-플라마리옹 출판사 [본문으로]
  2. http://www.nova-polska.pl참조 [본문으로]
  3. 《Mala Alicja》www.csw.art.pl [본문으로]
  4. 49쪽, [앨리스의 모든 것], 루이스 캐롤 [본문으로]
  5. 2006년 뉴욕 현대미술관 전시, 인터뷰 중에서 [본문으로]
  6. 15쪽, 1995년, 생 에티엔느 현대미술관. 프랑수와와 니농 로벨린의 콜렉션 전시 카탈로그 중에서,앨런 카프로우의 말 인용 [본문으로]
  7. 2006년 뉴욕 현대미술관, 안느 트렘킨Anne Tremkin과의 인터뷰에서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