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발톱

디지털 촬영의 시대에 영화들은 과거의 표현 중에 어떤 것을 쓸 수 있을까


                    과거의 발톱


 디지털은 과거 이미지와는 다른 것을 드러낸다. 장식이나 의상들은 보다 가깝게 보이며, 보다 인위적이면서 가끔은 당대의 문화적 정신적 구조를 다시 새롭게 해야 할 정도이다. 지난 몇년 간 일련의 영화들 (퍼블릭 에너미 Public Enemies, 검은 비너스 Vénus noire, 리스본의 미스테리 Mystères de Lisbonne, 디텍디브 디 Détective Dee ,그리고 트리 오브 라이프 The Tree of Life 도 35mm로 촬영되었지만 일부는 디지털로 구현되었다 ) 은 비디오 영상에 내재된 평면성과 차가운 부분을 도맡아 표현했다. 복고의 유행도 아닌, 편이를 위해서도 아닌 뭔가 다른 표현을 하기 위해서였다.
 조르주 멜리에스 Georges Méliès 에 의해 드레퓌스 Dreyfus 가 몽트뤼일 Montreuil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이후, 영화 속 판타지는 항상 이야기를 구성하며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Barry Lyndon(1975) 가 촛불을 켠 후 집단 상상 속에서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기술과 영화의 종속성이 혼합되면서 위대한 예술을 탄생케하는 것이다. 큐브릭 Stanley Kubrick [각주:1]의 영화를 본 관객들은,《 영화가 정말 18세기에 촬영된 것 같아》 라고 한다. 그리고 식자들은 이렇게 덧붙이곤 한다 : 《게인즈버러 Thomas Gainsborough [각주:2]와 조르류 드 라 Georges de la Tour [각주:3]가 영화를 만든다면, 그렇게 만들 었을 지도 몰라.》 현재, 마이클 만, 스탠리 큐브릭, 라울 루이즈 와 서극의 영화들은 여기에 기준을 적용하기에, 너무나 독보적으로 다른 질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외된다. 리스본이나《파리의 미스테리》, 혹은 690년도의 중국이더라고 그러할 것이다.
 이런 시대와 맥락은 우리에게 재구성할 여지를 친절하게 알려 주지만 일면 냉혹하다. 필름과 디지털의 것은 역설적이다 : 이미지는 선명하고, 사실적이다(우리의 눈이 그 선명함을 알아챌 정도로 정확하다면) 하지만 반대로 부드러움과 둥근 형체를 잃었다. 셀룰로이드를 다른 시간대의 것으로 바꾸곤 했던, 35mm의 고색창연함이여 안녕!
 이 선명함은 무지막지하다. 그리고 한밤의 장면,예를 들어 퍼블릭 에너미 Public Enemis 에서 존John Dillinger이 거리에서 처형될 때, 후미진 골목의 검은 배경과 어울리지 않게, 자동차, 의상, 악세서리등이 너무나 명확하게 보인다. 그래서 사실을 기록하는 듯한 현장감을 준다. 이는 역시 말에게 풀먹이는 대신 치료를 하는 것 - 빛의 투과성의 미학을 영화적 제안으로 대체할 만큼 효율적인- 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점은 때로 필수불가결한 모호함을 제거버리는 위험도 가진다 :  《영화를 위해》 라는 명목으로 척박한 표면에서 아무런 장식이나 의상, 다른 부자연스러운 요소들을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더이상의 투과되는 것이 없다. 요약하자면, 장식의 이면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때로 장소가 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솔직히 말해서, 검은 비너스 Vénus noire디텍디브 디 Détective Dee 의 어느 장면에서- 이 영화 작품의 가치를 떠나서- 영화 자체의 이미지와 뒷 이야기가 서로 간섭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 둘 간에 거의 차이가 없어보이기까지 하다. 의상은 너무 가까이 보이고, 장식의 한 부분은 입체감이 안느껴지거나 역설적으로 거의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잊었다고 생각한 스펙트럼을 다시 상기시킨다 : 쇄신하여 국제화된 《SFP[각주:4] 픽션》의 것이다. 이 두 영화가 밀실공포를 드러내고 조밀한 공간을 연출할 때, 사람들은 그를 믿었다. 그들이 《영화를 만들기를》원할 때, 연출하고자하는 거대한 공간은 디지털 방식에서 보다 텔레비전 기준에 맞추어져있다. 규정은 아직 필름의 반전현상에 맞춘 것인데도 말이다. 현재까지 HBO Rome 시리즈는 35mm로 , 배경은 시네시타Cinecitta 에서 대형 스튜디오로 촬영된 것이다!
 예술사적으로 35mm에서 디지털로의 이전은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회화에서 사진으로 변화처럼 볼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 자체로 기술적 진화라기 보다 고유의 체계를 갖춘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다 매체 자체의 변화이며, 이미 입증된 바를 어떻게 쓰느냐에 관한 방법론에 가깝다. 그림으로 보자면, 우리는 유화나 아크릴화에 비해 보다 독자적인 노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 고유의 피그먼트, 표면에 광택의 글라시를 만드는 부드러움, 보다 더 유화의 《껍질》보다 덜 두꺼우면서 그와 더 유사함 등이 그렇다. 그리고 기술적으로 보다 가벼우면서 예술적 행위에서 보다 다른 접근이 가능하다. 회화의 규범에 가까우면서, 더 이상 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그리지 않는다. 유화나 아크릴로 명암을 그리지 않는다. 이런 점은 서극의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 : 행위는 불꽃처럼 타오르지만, 정확히 무엇인지는 드러내지 않는다. 여기에서 움직임은 같지만, 색채나 질감에서 같은 방식으로는 더이상 《소리를 만들지》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차이는, 리스본의 미스테리 Mystères de Lisbonne 에서 나타난다. 특히, 회화적으로 구성된 내부에서, 명암이나, 반사체, 그리고 촛불, 다른 광원등으로 인해《과거의 직결되어 있는》베리 린든  Barry Lyndon 의 빛의 환영을 재현한 듯한 인상이다. 그 누구도 비슷하게 해낼 수 없을 거라 여겼던 환영을 말이다.  리스본의 미스테리 Mystères de Lisbonne 에서 내부는 마치 스크린 앞에 유리벽에 가려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방대한 묘사를 한 프레스코화를 보거나 미니어쳐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관객은 궁으로 초대를 받은 것이 아니라, 호기심에 차서 작품을 판독하는 데 만족해야 할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장면의 심도를 다양하게 하고, 그늘에 색깔을 넣으면서 회화에서 명암의 일반적 원칙을 벗어나는 장면도 있다. 디지털이 가진 고유의 매력을 보이기 위해, 이러한 인위적인 공간을 연출하거나, 이중적인 장치를 하는 것이다. 극사실의 선명도는 이처럼 예측불가능하게 이미지-매체를 탄생시키거나 과거의 표현을 다시 끌어들여 창작에 활용하게끔 한다. 루이즈 Raul Ruiz감독의 영화에서, 회절하는 색채는 장면의 허구성을 조형적으로 상기시키고 영화의 허구성을 뒤좇는다. 마이클 만 Michael Mann 은 액체이면서 동시에 금속성인 《수은-영상》을 개발하여, 헤드라인 기사의 도식적인 사진이 가진 갈색에 대한 대안으로 보다 아름답고 밀도있는 이미지가 가능해졌다. 
 당대의 모든 영화가 두 시대에 전하는 격언이 있다는 것을 안다 : 연출의 요소들과 촬영의 요소들이다. 90년대의 졸작들은 값비싼 댓가를 치른 기록으로 남는다. 이미 20년이 지났지만, 그 중 몇몇 코미디 영화는 《자연 그대로의》헤어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디지털은 다소 모호한 디테일에 의해 당시의 무지몽매한 시대상을 폭로한다. 《여기, 그리고 지금》을 거론하는 동시에 과거의 영화에 대한 역설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35mm에서만큼 확실하지는 않지만 비너스 호텐토트(검은 비너스 )의 흑단같은 피부에 흐르는 땀방울은 분명 디지털에서도 동일하게 빛을 발한다. 이 방울의 밀도는 다른 장식이나 의상, 배경과 같이 샤키 바트만 Saartjie Baartman 이 당한 인간적인 수모를 보다 잘 나타낸다.
 우리는 이제 더이상 카메라로 시간적 내러티브를 좇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나아가고 있다 : 명확한 눈과 카메라의 초감각으로 인해 시간은 다양한 층위를 가진다. 그래서 촬영 행위는 그 자체로, 행위하는 현재와 과거의 영화 사이의 화학적 반응이며 그것을 고정화한다. 사람들은 디지털이 현실의 두계를 포착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디지털은 우리에게 이보다 더 많은 것을 선사한다 : 재정의는 아직 이뤄지는 중이며, 새로운 대기가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



출처  :  CAHIERS DU CINéMA #672. 2011.11
기사  :  Joachim Lepastier
번역  :  PLONGEUSE ( 잠수부 ).[작성. 2012.02.07]


  1. 스탠리 큐브릭 [Stanley Kubrick, 1928. 7. 26~1999. 3. 7] 요약 미국의 대표적 에스에프(SF) 영화감독. 《롤리타》,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등으로 블랙코미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계태엽장치의 오렌지》등의 미래 시리즈 3부작으로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SF영화의 경향을 바꾸며 이후 수많은 감독등에 영향을 끼쳤다. 국적 미국 활동분야 영화감독 출생지 미국 뉴욕주 뉴욕시 브롱크스 주요수상 1969년 아카데미영화제 시각효과상, 1976년 영국 아카데미영화제 작품상 주요작품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3),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본문 ‘19세까지 책을 읽은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큐브릭은 학교생활에 큰 흥미를 갖지 못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이러한 그에게 아버지는 사진을 권유했고 취미삼아 시작한 사진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16살에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죽음을 다룬 세트사진이 《LOOK》지에 실렸고 17세부터 이 잡지의 견습기자로 활동했다. 이때부터 많은 시간을 근대미술관의 필름도서관에서 보내며 영화에 열중하게 되었다. 그 후 4년간의 사진기자 기간을 거치면서 세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인 《시합의 날 Day of the Fight》(1951), 《날으는 목사 The Flying Padre》(1951), 《항해자 The Seafarers》(1953)를 만들었다. 1953년 첫 장편영화 《공포와 욕망》을 통해 본격적인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였다. 이 영화는 전쟁에 대한 강한 항의가 표현된 반전영화였다. 제작, 감독, 촬영, 시나리오, 편집까지 모든 작업을 혼자서 해낸 《공포와 욕망》(1953), 《살인자의 키스》(1955) 이후 ‘해리스·큐브릭 픽처스’를 설립하여 《살인》(1956), 《영광의 길》(1957), 《스파르타쿠스》(1960), 《롤리타》(1961)까지 네 편의 영화를 만드는데, 이 중 최종 편집권과 각본을 고쳐 쓸 권리를 갖지 못했던 《스파르타쿠스》의 경험 이후 큐브릭은 좀더 완전하고 자유로운 작품활동을 위해 영국으로 가서 《롤리타》를 촬영하게 된다. 중년 남자가 롤리타라는 소녀에게 매혹되어 파멸되어 가는 과정을 중년 남성에 대한 냉소적인 관찰을 통한 블랙 코미디로 그린 이 작품은 이후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로 이어져 블랙코미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된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3)에서 시작해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시계태엽장치의 오렌지》(1971)로 이어지는 미래 시리즈 3부작으로 큐브릭의 영화세계는 절정기를 맞는다. 특히 영화혁명으로 불리는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은 인류가 달에 착륙하기 1년 전에 만들어졌고, 일반에게 공개되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인류 역사와 기계 문명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이 담긴 이 영화는 이후 에스에프(SF)영화의 경향을 단번에 뒤바꿔 놓았고 루카스, 스필버그, 랜더스, 카펜터 등 수많은 감독들에게 영향을 미쳤다.이후 영국에서 《배리 린든》(1975), 《샤이닝》(1980), 《풀 메탈 재킷》(1987)을 만든 이후 10년간 침묵을 지키다가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 주연의 신작 《아이즈 와이드 샷》의 촬영 후 1999년 3월 7일 70세의 나이로 영국 런던의 자택에서 죽었다.큐브릭의 영화세계는 매우 극단적이고 난해하며 몇 작품은 특수효과의 교과서로 불릴 정도로 그의 테크놀로지에 대한 관심은 지대했다. 당시 《Time》지는 ‘오손 웰스 이후로 가장 상상력이 풍부한 각본과 촬영을 보여준 감독’이라고 격찬했다. 그러나 그의 영화가 발표될 때마다 환호와 비난이 교차하는 논쟁이 일기도 했는데,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메시지와 그가 추구하는 영상표현을 위한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대한 평가가 서로 충돌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출처] 스탠리 큐브릭 [Stanley Kubrick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
  2. 토머스 게인즈버러 [Thomas Gainsborough, 1727.5.14~1788.8.2] 요약 18세기 영국의 풍경화가. 그의 풍경화는 자연에 대한 애정 표현으로 19세기 풍경화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초상화는 반 다이크의 영향으로 모델의 성격을 정서적으로 파악해 유연한 광선 밑에 생겨나는 명암조와 우아한 색조로 표현했다. [출처] 토머스 게인즈버러 [Thomas Gainsborough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
  3. 조르주 드 라투르 [Georges de La Tour, 1593.3.19~1652.1.30] 요약 프랑스의 화가. 그 작품에는 종교의 경지로까지 고양된 깊은 인간성에의 통찰이 있으며, 명쾌하고 청아한 분위기와 더불어 명암의 대비, 인물의 기하학적 대치, 세련된 단채화법(單彩畵法) 등은 현대미술과 상통하는 바가 있다. 종교적 주제를 다룬 작품이 많다.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예술 출생지 프랑스 로렌 주요작품 《성탄도》《성(聖)세바스티아누스의 죽음을 슬퍼하는 성(聖)이레누》 ↑ 점쟁이 / 라투르의 작품 본문 로렌 출생. 빵집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로렌공(公)의 회계사의 딸과 혼인, 부호가 되어 종교전쟁, 30년전쟁 등 동란시대에 광대한 영지를 소유하는 행운을 안았다. 그러나 민중을 돌보지 않고 농민에게 린치를 가하는 등 반민중적인 행위를 일삼은 탓으로 1652년 1월 일가족이 학살당하였다. 생존시의 그의 행적과는 달리 그 작품에는 종교의 경지로까지 고양된 깊은 인간성에의 통찰이 있으며, 명쾌하고 청아한 분위기와 더불어 명암의 대비, 인물의 기하학적 대치, 세련된 단채화법(單彩畵法) 등은 현대미술과 상통하는 바가 있다. 종교적 주제를 다룬 작품이 많으며 그 중에서도 《성탄도》《성(聖)세바스티아누스의 죽음을 슬퍼하는 성(聖)이레누》 등이 유명하다. [출처] 조르주 드 라투르 [Georges de La Tour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
  4. SFP [ Societe Francaise de Production ] 프랑스 정부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회사로 1982년 프랑스 방송법 개정으로 만들어진 SNP(Societe Nationale de Production)의 전신.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