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독립영화의 새로운 바람9_콘스탄틴 보야노프 Konstantin Bojanov

불가리아 감독 콘스탄틴 보야노프는 두 명의 청소년이 등장하는 감성적 여정을 다룬 영화로 칸 영화제를 깜짝 놀라케 하였다. 그의 영화는 비평가주간( cahiers du cinéma N#668 참조.) 에 상영되었다. 그가 뉴욕에 머무른 지는 오래되었다. 대도시에 매료된 것이었다.
콘스탄틴 보야노프는 현대 예술 프로젝트와 아베의 불가리어를 영어로 바꾸는 작업을 앞두고 있다.


S.D

●뉴욕에는 어떤 일로 오신건가요?
 런던에 조형예술 공부를 위해 갔었는데 L.A 에 살고있는 여인과 사랑에 빠졌어요. L.A를 알게되었죠. 처음엔 아주 이국적이었던 데다가, 나중에 이 도시에 실망하게 될 지도 몰랐어요. 작가인 폴 맥카시와 함께 좀 독특한 서부영화를 준비하게 되었어요. 폴 맥카시와 늘 작품에 대해 말했지만, 그는 인텔리였고, 교조적이었기 때문에 숨막히게 하는 뭔가 있엇어요. 내 감상적인 이야기를 마치고, 뉴욕에 몇달간 머무르기로 했죠. 런던으로 돌아가기 전예요. 이미 15년 전의 일이군요. 지금은 나와 뉴욕을 보면 조화로운 결합같다고 할까요. 바바라 크루거를 L.A에서 본 적이 있어요. 그녀가 다음 전시를 위해 뭔가 영상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죠. 현대예술의 제작을 분리시키려고 하는 편입니다. 나만의 영화를 만드는데 직중해야 해요. 감독으로써, 또 제작자로써. 내 영화, 내 조형예술작품을 오가며 하루에 15시간씩 일할 수는 없어요. 난 사진이나 조각도 하거든요.

갤러리보다 영화쪽에 목표를 두고 있지 않나요?
 네, 하지만 쉽지는 않아요. 나의 첫 다큐멘터리 영화, 인비지블 Invisible (2005) 은 주제 문제로 끝내는 데 오래 걸렸어요. 젊은 마약중독자 6명의 4년여 걸친 이야기였죠. 2000년 대 초기에, 소피아(불가리아 수도)의 어느 곳에서나 헤로인을 구할 수 있었어요. 나는 길거리에서 이 젊은 이들을 만났고 자급자족으로 영화를 만들었어요. 인비지블 Invisible은 감정적으로 눈물에 호소하는 영화는 아니예요 : 젊은이들이 보고 느끼는 세계를 보여주는 플랫폼일 뿐이었죠. 마약중독자들의 세계jinkieland 라는 사파리투어가 아니죠. 최근에 유투브에 빠졌어요. 15분간의 영상들이요. 하지만 나중에 영화를 다시 찍고싶은 어쩔 수 없는 욕망을 느꼈죠. 페드로 코스타 Pedro Costa 의 영화에서 내 원래 의도에 가까웠지만, 편집자는 아주 빠르고 내러티브적으로 보여주길 원했죠.
 Invisible 이후에, 레드 훅에서 죄와 벌 Crime et châtiment 의 각색을 했어요. 아주 매력적인 곳이었죠 : 거대한 HLM(임대아파트) 단지가 있고, 예술가들의 다락방, 그리고 최근에는 월스트리트의 금융인들이 보이기 시작했죠. 첫번째 픽션 영화였기 때문에, 아주 의욕적이었죠. 한 친구가 서둘러 촬영에 들어가지 말고, 개인적 이야기를 섞어보라고 조언했어요. 나는 아베 를 쓰는데 시간이 걸렸고, 끝내는 데 4년이나 걸렸어요! 지금도 죄와 벌에 다가갔다고 느끼지 않아요 : 소설은 상당부분 라스콜리노프Rasko(죄와 벌'의 주인공)의 머릿 속을 묘사하죠. 그걸 영화로 표현하기는 아주 어려워요. 우리는 도시의 흑인 청소년을 영화로 만들었지만, 그들의 삶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해요.
 The Kiss 에 사로잡힌 지 10년이 지났어요. 그 책은 캐서린 해리슨Kathryn Harrison [각주:1]의 자전적 이야기로, 20세부터 24세까지 그의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쓴 책입니다. 나는 그녀에게 Avé 시나리오를 보냈고, 답변을 기다렸어요. 내가 느낄 수 없는 부분을 그녀에게 설명하고 싶었어요. 난 Bus(Tunç Okan, 1977) 리메이크 저작권 있었어요. 이 70년대 영화는 파스빈더 같이 연극적인 것도 있으면서, 버스터 키튼의 블랙 유머도 가지고 있었죠. 터키 이주민들이 고국으로 돌아가서 스톡홀름에 참여했던 마을사람들을 점령하는 이야기죠. 거기서 그들은 돈 한 푼 챙기지 못하고 여권도 없이 쫓겨납니다. 난 파리에서 불가리아의 단기 노동자들과 일하는 게 좋았어요. The Kiss의 리메이크 저작권을 얻는다면, 다른 감독에게 맡기고 나는 제작자로 나설 겁니다.   


●감독님을 매료시키는 젊은 뉴욕 영화감독은 누가 있을까요?
 조쉬 사프디Josh Safdie 의 The Pleasure of Being Robbed 를 다시 보고 싶어요. 처음보다 더 좋아질 것 같군요. 그들을 보면 고다르[각주:2]의 초창기가 떠올라요 : 인물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찍죠 : 어떤 목표는 없지만, 나태한 건 아니죠. 젊은 감독들은 에너지가 넘쳐요. 또 재미있는 제작자들도 있죠. Pars and Labor이나 , Jay Van Hoy 회사, 그리고 Lars Knudsen 등이 Old Joy(Kelly Reichardt, 2006), Treeless Mountain (So Yong Kim, 2008), Exploding Girl ( Bradley Rust Gray, 2009), Cold Weather (Aron Katz, 2010)등의 영화를 제작했죠. 2008년 당시 처음엔 독립영화사 였지만 지금은 미라맥스나 퍼스트 룩과 일하는 스캇 루딘Scott Rudin[각주:3] 과 계약을 이뤄냈어요. 이라 사치Ira sachs 의 새 영화를 제작 중입니다. 최근에 그들은 헐리우드 시스템으로 몇 백만이라는 거대자본을 투자해서 결혼 생활Married Life(2008) 으로 참패했죠. 지금은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개인투자금으로 촬영하고 있어요. 헐리후드 시스템에서는 불가능한 성적인 코드가 있죠. 이라는 50세로 나이가 들어가는 처지지만, 인터넷으로 투자처를 찾고 있어요. Kickstarter 사이트[각주:4]같은 거요.

●9.11 사태가 뉴욕 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잘 모르겠어요. 월드 트레이드 센터로부터 몇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았어요. 하지만 텔레비전으로만 그걸 목격했죠. 너무 추상적이었어요.

●라파엘 나자리 Rapaël Nadjari 의 영화(The Shade, 2000 ; I Am Josh Polonski's brother, 2001)를 아시나요? 그 영화는 지금 시대에 부합하는 뉴욕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네, 아주 잘 알죠. Avé 제작자 중 한명이 그 영화 제작자 중의 한 사람이예요 : 조프리 그리슨Geoffroy Grison 이죠. 그의 영화들은 사프디의 날 것의 이미지들을 연상시켜요. 단지 미학적인 이유에서 만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방식에서 그 핵심이 그렇죠.
 90년대 말과 2000년 대 사이 뉴욕 독립영화계에는 큰 공백이 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인생은 항상 떠도는 상태여서 동시적인 작용은 없어요. 아마 부쉬 대통령이 6년 째 임기를 하고 있지 않나요... ■

8월 12일, 뉴욕에서
니콜라 엘리오뜨, 스테판 들롬
영불 번역 니콜라 엘리오뜨

출처 : cahiers du cinéma Nº 2011.9
기사 : Stéphane Delorme & Nicholas Elliott
불한번역 : Plongeur ( zamsoobu )

  1. Harrison's memoir The Kiss documented a love triangle that developed involving her young mother, her father, and herself.[1] It described her father's seduction of her when she was twenty and their incestuous involvement, which persisted for four years and is reflected in the plots and themes of her first three novels, published before The Kiss.[2] In The New York Times Book Review writer and memoirist Susan Cheever wrote of the book, "The story of an intellectually powerful man and his consuming desire to ravish an innocent, almost preconscious, young woman (sometimes his daughter) has often been told—Zeus, Lewis Carroll and Humbert Humbert come to mind—but Kathryn Harrison turns up the volume, making this ancient immorality tale a struggle between good and evil, between life and death, between God and the Devil."[3] In The New York Times critic Christopher Lehmann-Haupt called the memoir "appalling but beautifully written."[4] In The New Republic, by contrast, James Wolcott strongly criticized the work, asking at one point, "Did she call him 'Dad' in bed?" While much of her body of work—the essays collected in Seeking Rapture: Scenes From a Life; a second memoir, The Mother Knot; and The Kiss—documents her tortured relationship with her mother, who died in 1985, Harrison also has written extensively of her maternal grandparents, both in her personal essays and, in fictionalized form, in her novels. Her grandmother was raised in Shanghai, where she lived until 1920, her experiences there inspiring Harrison's historical novel, The Binding Chair. The Seal Wife, set in Alaska during World War I (and which critic Michiko Kakutani in the New York Times called "mesmerizing"[5]), draws on the early life of her British grandfather, who spent his youth trapping animals to obtain their fur in the Northwest Territories and laying track into Anchorage for the Alaska Railroad. Harrison has published six novels, three memoirs, a travelogue, a biography, and a book of true crime. She frequently publishes reviews in The New York Times Book Review. Her personal essays have been included in many anthologies and have appeared in Bookforum, Harper's Magazine, More Magazine, The New Yorker, O: The Oprah Magazine, and Vogue, and at Salon.com, Nerve.Com and elsewhere [본문으로]
  2. Jean-Luc Godard, 1930.12.3~] 장뤼크 고다르(Jean-Luc Godard)는 누벨바그의 상징적 영화 감독이다. 1930년 파리에서 의사인 아버지와 스위스 유력 은행가 가문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2차대전 중 고다르는 스위스 시민으로 귀화하고, 스위스 니용에서 자랐다. 1940년대 후반 그의 부모들이 이혼한 뒤 파리로 돌아와 1949년 소르본느 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던 그는 소르본 대학을 중퇴하고 시네마테크(Cin?math?que)에서 프랑수아 트뤼포((Francois Truffaut)), 클로드 샤브롤(Claude Chabrol) 등과 함께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했다. 영화평론지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ma)'에서 영화평론을 쓰면서 침체되어 있던 프랑스 영화계의 새로운 흐름 '누벨바그(nouvelle vague)'를 주도하였다. 평론가로 활동하던 그는 1960년 그의 장편영화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1960)》를 발표하면서 누벨바그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의 누벨바그 시기 작품들은 현대인의 소외된 삶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지적하고 비판하면서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즉흥적인 촬영과 편집, 자연광 조명과 사실적인 음향기술 등 자유분방한 형태로 담아냈다. 이후 진보적인 주제와 실험적 기법이 뛰어난 영화들을 제작했는데, 《여자는 여자다(1961)》, 《비브르 사 비(1962)》, 《작은 병정(1963)》,《알파빌(1965)》,《미치광이 피에로(1965)》 등이 누벨바그 시기의 대표작들이다. 1968년 5월 혁명이 프랑스를 휩쓸자 고다르는 정치적으로 분명한 태도를 취하며, 장 피에르 고랭(Jean-Pierre Gorin)과 함께 급진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 영화운동집단인 '지가 베르토프 집단(Group Dziga Vertov)'을 창설하였다. 이 시기에 고다르는 《프라우다(1969)》 , 《동풍(1969)》등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사고하는 투쟁가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었으며, 상업적 제작 배급망을 배척하고자 하였다. 1973년 지가베르토프 집단이 해산된 후, 고다르는 그르노빌이라는 소도시에 은둔하여 비디오작업에 몰두하였다. 이후 그는 비디오라는 매체의 많은 사람과의 일상적 소통 가능성에 대해 주목하며, 정치적 이데올로기보다는 일상적 사건과 소외에 대한 내용을 주로 담았다. 1980년 상업영화계로 복귀한 그는 《할 수 있는자가 구하라. (인생)(1980)》을 발표하였고, 《미녀갱 카르맨(1983)》으로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하였다. 1988년부터 영화의 역사, 유럽영화의 역사, 프랑스영화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영화의 역사/이야기(들)(Histore(s) du Cinema)》시리즈를 제작했으며, 《사랑의 찬가(2001)》, 《아워뮤직(2004)》등을 발표하였다. 1994년 제59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 특별상, 2010년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평생공로상 등을 수상하였다.[출처] 장뤼크 고다르 [Jean-Luc Godard ] | 네이버 백과사전[출처] 장뤼크 고다르 [Jean-Luc Godard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
  3. 1958년생. 영화제작자 [본문으로]
  4. Kickstarter is an online threshold pledge system for funding creative projects. Kickstarter has funded a diverse array of endeavors,[1] ranging from indie film and music to journalism, solar energy technology and food-related projects.[2]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