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를 위한 아카이브?

한정판 작품으로 명성이 높은 상을 수상한 몇몇의 비디오 작가들의 개척정신은 잊혀지기 쉽다. 무엇보다 예술이 배급방식(예를 들어 텔레비전같은)을 이용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비디오아트는 아카이브와 도큐멘트를 생각해볼 수 있다. 몇 가지 그 사례를 들어보자.

비디오를 위한 아카이브는?
■  1971년 하워드 와이즈 Howard Wise 가 창림한 비영리기구 Electronic Arts Intermix (EAI)는 미디어를 포함한 예술품 경제를 위해, 조형적 비디오작품의 가치를 재발견하며 초석을 다지도록 하고 있다. EAI는 현재 이 분야의 주요한 본보기로 여겨진다 ; Resource Guide for Exhibiting , Collecting and Preserving Media Art[전시의 동기를 유발하며, 조형예술 비디오를 보존하고 수집한다]과의 연관되어있다.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에서, 그간의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달라진 모든 수집목록을 선보이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기획된 바 있다. 이 프로그램은 다음 웹사이트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 《 설치에서 시간이 주요한 변수이므로, 보여주기에 정확한 방법이 아닐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작품이 설치되어야하는 이유와 그 설치물에 대한 적확한 설명, 그리고 사용자의 향후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1968년 베를린, 게리 슘 Gerry Schum(1938, 퀼른 Cologne- 뒤셀도르프 Düsseldorf, 1973 )은  《텔레비전-갤러리》개념에 따라 장소에 작품을 암시하였다. 그의 Fernseh-Galerie Berlin 프로젝트는 평단과 서독 관객들을 겨냥한 것으로 시각적 다큐멘터리- 창조의 과정이나 행위들-이다. 이 작품으로 당대 예술의 새로운 경향을 이끌어냈다 : 그것은 바로 대지미술, 개념미술, 또는 아르테 포베라 이다. 1960년대 말, 조형 예술 분야에서 가능한 모든 재료- 토지, 바다, 하늘-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968년 Amalfi에서 열린 Arte Povera + Aziono Povere 전시에서 그것을 증명해보였다.  여기에서 주요한 점은 매체를 혁신적으로 유지하는 것과 풍경과 작품의 생성과정에 행위들에 대한 기억을 지키는 것이었다. Television-Exhibition Land Art(1969) 전시 카달로그에서 게리 슘 Gerry Schum 은 이렇게 기술했다 : 《 불변의 삼각형은 현대에까지 예술에 영향을 미친다. 아틀리에-갤러리-수집가들의 경계는 무너졌다. 개인사는 작품을 알리는 것 이상으로 불편하다. 그리고 예술은 출판이나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보다 방대하게 대중과 접할 수 있는 소통의 수단이 되었다.》현재 우리에게 나타나는 담론은 시간성과 시장과 제도에 충격을 주고픈 예술가의 열망으로 나타난다. 슘의 결론을 보면, 예술가는 갤러리, 미술관이나 텔레비전에서 보는 작품들에 직접 다가갈 수 있는 권리를 지녔다는 것이다.
 어쩌겠는가, 때이른 죽음은《비디오갤러리》의 활동에 종말을 고하며, 예술가의 프로젝트에 마침표를 찍었다. 슘은 예술계에 3년간의 작업으로 유산을 남겼다. 흑백 비디오, Tentativo di volo[절도 시도](1970), Gino De Dominicis [각주:1]3a Solutzione d'immortalita, De Dominicis vi vede[불멸의 3번째 방법 도미니시스가 당신을 보고있다 3e Solution d'immortalite, De Dominicis vour regarde](1972), Ger Van Elk Idenifications (Cactus rasé, 1970 )Barry Flanagan Hole in the Sea [바다의 구멍](1969), 길버트 & 조지 Gilbert & George 의 고든은 날 취하게 해 Gordon's Make us Drunk [Gordon;s nous soûle la guele] A Portrait of the Artists as a Young Man[ Portrait de l'artiste en jeune homme ](모두 1972년 작품) 이다. 역설적으로, 이 영상들은 슘의 맹세를 거역하였다. 작품은 아틀리에-갤러리-수집가의 굴레를 깨뜨리었다. 에지디오 마르조나 Egidio Marzona[각주:2] 가 수집을 했기 때문이. 유럽에서 개념미술을 퍼뜨린 주요한 갤러리스트는 바로 콘래드 피셔Konrad Fischer 이다. 그는 슘을 수집가들에게 소개시킨 적 있다. 콜렉션을 더 자세히 보면, 2002년 베를린  Staatliche Museen zu Berlin에 의해 이뤄진 대부분의 구매로 인해 작품을 볼 수 있었다.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Hamburger Bahnhof 같은 곳에서, 대지 미술Land Art(2011.3.26- 2012.1.15)을 통해서였다. 
 역사의 아이러니로, 슘의 말을 인용하며 전시를 소개하였다 :《대지 미술 예술가들은 일상적 범주를 벗어나는 새로운 표현 수단을 가지고 있다. 이 것은 더 이상 캔버스에 풍경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풍경 그 자체이거나 작가의 고유한 신호를 풍경에 새겨넣는 것이다.》이러한 개념을 현실화시킨 작가는 바로 리차드 롱 Richard Long[각주:3]이다. 그래서 수집가 마틴 Martin과  미아 비저 Mia Wisser 를 위한 카달로그에 Fernseh-Galerie Gerry Shum을 참조한 7개의 사진으로 실린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게리 슘 Gerry Schume 의 아카이브는 퀼른에서 재구성되었다; 그의 미앙인 우술라 위버Ursula Wevers에 의해 관리된다.


사고를 전환하기
 여러면에서 슘의 뒤를 잇는 사람은 바로 마리아 글로리아 콘티 비코치 Maria Gloria Conti Bicocchi 가 될 것이다. 미래주의 화가 프리모 콘티 Primo Conti (활동시기는 매우 짧았다)의 딸이다. 최근의 인터뷰(나폴리, 지난 해2010년 12월)에서 그녀는 초기에 슘의 작업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갤러리 Art/Tapes/22를 강조하며, 《비디오갤러리》와는 다른 위상을 가지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도 하였다. 비코치가 젊은 미국 기술자(빌 비올라 Bill Viola[각주:4])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은 1972년의 일이다. 그녀는 비디오작품을 만들어 플로렌스의 갤러리에 판매를 제안했다.  1974년, Long Beach Museum of Art는 미국과 유럽의 작가들을 초대하여 전시를 하도록 하였다. 카달로그에서 이런 문구가 있었다 :《비디오테이프 아카이브 시스템에 첫 발을 내딛었다. 폭넓은 배급망을 가진채로.[...] Art/Tapes/22의 핵심에서, 비디오가 예술의 영역에 처음으로 이르는 선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구조를 생생하게 유지하는 매체는 바로 즉각성이라고 말이다[...] 텔레비전 방송은 작품을 위한 이상적 해결같았다. 미술관, 갤러리, 대학이나 다른 기관등으로 설치가 제한되는 작품들을 바로 집안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텔레비전으로 인해 비디오는 생각을 전환하게한다. 그것은 오브제가 아닌 것이다. 》
 롱 비치의 전시에서, 비코치는 갤러리의 경제여건 때문에 더 이상 그와 교류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탈리아는 더이상 텔레비전으로 현대예술을 방영할 수 없게 되었다. 테이프는 1976년 ASAC(베니스 비엔날레의 현대예술 아카이브 Archives historiques d'art contemporain de la biennale de Venise )가 구매하였다. Ca’ Foscari 대학에서 중세미술 교수로 재임중인 Wladimiro Dorigo의 적극적 추천에 힘입은 결과였다. 그에 따라, 비코치는 1977년까지 2년동안  비디오분야 책임자로 있었다. 1981년, 전시 이탈리아의 정체성 Identité italienne 에서 조형적 비디오의 역사를 설명해주기를랬다. 퐁피두센터에서 Germano Celant에 의해 기획된 전시, 1959년 이후의 예술 에서 Art/Tapes/22 는 이탈리아 제일가는 갤러리로 나섰다. 뚜렷한 족적에도 불구하고, 그사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행히, 2003년 이후부터 두 점의 작품이 이를 정당화시켰다 : 첫번째는일종의 비코치 자서전작가로써, Tra Firenze e Santa Teresa dentro le quinte dell'arte [예술의 내막에, 플로란스Florence 에서 산타 테레사 Santa Teresa 까지]라고 부른다 ; 두번째는 작품복원과 Udine대학과 ASAC (Cosetta G.Saba, Arte in videotape : Art/Tapes/22, collezione ASAC Biennale. Conservazione, restauro, valorizzazione, 2007 )이 테이프를 디지털하는 작업을 말한다. 비디오는터넷을 통해 쉽게 열람할 수 있지만 Asac(Vega Center, Porto Marghera ) 아카이브측과 먼저 만나고 난 이후에 가능하다. 물론, 원본은 문화예술 유산으로 분류되어 당연히 보호되어야 한다. 이런 조치는 테이프의 사용에 제한을 두고, 대여료를 지불함으로써 작품을 보존하는 것은 작가가 아닌 아카이브라는 것을 상징한다.
 2011년5월 26일 27일에, 안 마잔티 Anna Mazzanti 가 폴로니카Follonica에 위치한 시립미술관 Pinacoteca Civica  (Grosseto )에서 기획한 컨퍼런스에서 Art/Tapes/22의 활동에 새로이 방향을 제안했다. 잘 알려진 대학의 콩쿠르- 부차적으로 시대를 증명하는- , Valentina Valentini 와 Silvia Borgini같은 젊은 연구자들에 의해서여다.
 비코치의 주요한 역활은 텔레비전에 예술을 보급하는 것과 지울리오 파올리니Giulio Paolini [각주:5]나 야니스 쿠넬리스 Jannis Kounellis [각주:6]같은 사례처럼 매채를 분명히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었다.  비코치가 그 두 작가를 초대하기 전에, 이 비디오를 만들지않았었다. 25분 분량의 쿠넬레스의 작품(무제, 1973)은 그리스 연극을 연상시키는 가면과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라고 쓰여진 촛대가 나타난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점은 비코치가 한 말이다. 그는 매체는 언어가 아니다, 작품을 제작하기 위한《단지, 도구일 뿐》이다.
 파올리니는 여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난 비디오(Unisono, 1974) 작업을 하는 긴 시간(1960년에서 1974년까지 4년간 )동안 상징화와 전반적인 조화를 개발시켜가며 그 기간동안 요약.정리할 기회를 만들었다고 확신한다. 오늘날, 내가 만들고 있는 작품 모두가 그렇다. 》
 Maria Gloria Bicocchi와 다른 예술가들이 한 작업은 Egidio Marzona가 구매하였다. 그는 이미 게리 슘의 비디오를 소유하였다 ; 작품은 현재 베를린의 Kunstbibliothek 에 소장되어있다.


워싱턴의 백남준NAM JUNE PAIK
 마르조나는 작품 뿐 아니라, 모든 종류, 예를 들어 초대카드, 교환 서신 등을 아카이브하는 것을 좋아한다. 비코치의 친필이 담긴 1974년 3장의 서신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서신은 백남준의 미완의 프로젝트(1932서울- 2006마이아미)를 위한 것이다 ; 제목은 Video Events Composed on the Way to Rome 이다.  그리고 소개글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도쿄대학에서, 교회역사는 불가피하게 단일한 기독교인들의 사건으로 이뤄진 것이다. 단일성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다...그리고 예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이 단일성을 비디오, 반복되는 매체로 전환시킬 것인가, 그것은 내가 몇년동안 줄곧 생각해온 문제이다. 어떤면에서, 비디오-신시사이저를 위용한 ,분류가 불가능한 내 퍼포먼스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답인 것이다. 》이 텍스트는 프로젝트를 위한 뎃셍에 적혀있던 것이다. 거기엔 다른 메모도 있었다.《두 개의 카메라와 특수효과장치, 분할화면이 필요하다. 두개의 카메라는 동시작동되도록 하여, 카메라A는 바닥에 놓고 다른 하나는  트럭, 트랙터등에 놓아 저속력으로 전진하도록 할 것이다. 》 이러한 방향에서 카메라가 망가지면서, 경제적인 이유로 프로젝트를 단념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다큐멘트가 있기에, 작가의 사고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워싱턴(D.C)의 스미스슨 미국 미술관 Smithson American Art Museum은 관장인 존.G.한하트 John G.Hanhardt의 주장을 바탕으로, 백남준의 작품을 소장하기로 하였다. 그는 작품 구매, 프로그램과 연구 책임자이며 미디어예술을 운영하고 있다.
 Paik-Megatron-Matrix (1995) , Electronic Superhighway : Continental US , Alaska , Hawaii (1995) 등 기념비적 설치는 복원되었다 ; 그리고 영구조상되었다. 백남준 재단에서 2009년 아카이브를 소장하면서 실제적으로 미술관측이 소장하게 되었지만, 미래 재단이 확잠함에 따라, 백남준 미이더아트 센터 Nam June Paik Media Arts Center 에 이전될 것이다.
 미디어 아트 갤러리가 열리면, 작가 백남준이 현대예술에 미친 영향과 중요성을 알 수 있도록 영구적으로 작품을 소장하게 될 것이다.  향후 문헌의 복원을 위해서라도 비디오와 도큐멘트의 보존이 시급함을 다시 말하는 바이다. ■


출처  :   ARTPRESS #382. 2011.10 
기사  :   Eleonora Charans
불한번역  : PLONGEUSE ( 잠수부 )
 
  1. Gino De Dominicis (Ancona, 1947 - Rome, 1998) was an Italian artist. A controversial and mystifying figure, even the news of his death was greeted with suspicion, as for years earlier he had reported his own demise in the mock conclusion to a biographical essay.His first show was at Rome's Galleria L'Attico in 1969. In the late 1970s he started collaborating with Galleria Emilio Mazzoli in Modena, where he had his last show in 1998. De Dominicis first appearance in the Venice Biennale in 1972 included a young man with Down's syndrome as an element in an installation; in 1993 he announced that his tempera-and-gold-on-panel paintings could not be considered for Biennale prizes; in 1995 he publicly declined to appear at all.De Dominicis' work has influenced a lot of younger Italian artists, such as Maurizio Cattelan and Paola Pivi. In 2010, a big retrospective of the work of De Dominicis curated by Achille Bonito Oliva, was held at MAXXI, 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in Rome. Simultaneously, a seminar called "I testimoni di Gino" was organized in his hometown Ancona by Riccardo Lisi. [본문으로]
  2. COLLECTIONSMARZONA COLLECTIONContaining Conceptual, Land, and Minimal Art and works of Arte Povera created between 1965 and 1978, the Marzona collection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ensembles of Conceptual Art. The collection encompasses more than 600 outstanding works, which are distributed today between the Hamburger Bahnhof and the Berlin Kupferstichkabinett. Also found in the Berlin Kunstbibliothek is the archive of the Marzona collection, which contains many thousands of books and periodicals, posters and invitations, recordings, films, photographs, and letters. This archive is accessible within the Kunstbibliothek to interested members of the public for research purposes.The Marzona Collection was assembled by Egidio Marzona, a passionate collector who followed developments in the art world of the 1960s and 1970s with intense interest. As early as the mid-1960s, encouraged by art dealer Konrad Fischer, Marzona founded his own art gallery as well as a publishing house, the so-called "Edition Marzona," both located within the intellectual orbit of the Düsseldorf Art Academy. It was in this period that he began building up his collection, conceptualized along the lines of an immense and encyclopedic archive. Found in the collection are objects by approximately 150 different artists which reflect an intermedial approach to art production, but also three-dimensional objects in a variety of materials, including drawings, sketches, collages, works in mixed techniques on paper, and photographs. Alongside these objects, Marzona has collected many thousands of invitations, exhibition catalogs, and posters, whose often unusual designs must also be regarded as realizing artistic ideas. In its sheer diversity and complexity, the Marzona Collection dialectically links the polar opposites of order and disorder in an open, flexible structure of artistic positions whose material and medial strategies and modes of realization manifest perpetual variations, transformations, expansions, and corrections. [본문으로]
  3. www.richardlong.orgRichard Long (born 2 June 1945) is an English sculptor, photographer and painter, one of the best known British land artists. [본문으로]
  4. Bill Viola est un artiste américain né à New York le 25 janvier 1951. Il s'est principalement illustré par la création de monumentales installations. Il est l'un des pionniers de l’art vidéo. [본문으로]
  5. Les premières œuvres de Giulio Paolini (né en 1940 à Gênes, vit et travaille à Turin) au début des années 1960 anticipent par bien des aspects les données que Germano Celant va théoriser quelques années plus tard sous le terme d'“arte povera”. Au cours des années 1970, Paolini s'emploie à révéler les éléments constitutifs du tableau ainsi qu'à faire apparaître l'ensemble des relations que tisse une pièce entre l'objet, l'artiste, le spectateur et le contexte de l'exposition. Cette démarche analytique rapprocha Giulio Paolini des artistes conceptuels. Multipliant les références à l'Antiquité et au Néoclassicisme, mêlant les techniques les plus traditionnelles aux matériaux et aux formes d'expression les plus contemporains (mobilier, performances, collages, installations...), Giulio Paolini invente un langage paradoxal extrêmement personnel dont le dédoublement et le fragment sont les figures les plus récurrentes. Son travail a été présenté à de nombreuses reprises à la Biennale de Venise ainsi qu'à la Documenta.출처http://www.lespressesdureel.com/auteur.php?id=726 [본문으로]
  6. Yannis Kounellis est né en 1936 au Pirée, en Grèce. Il est un des artistes de de ce que le critique Germano Celant a défini comme l'Arte Povera.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