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NARD OLLIER_베르나르 올리에_인터뷰(레아 비무스& 자크 앙리)
베르나르 올리에의 전시가 파리의 리볼리 가에 있는 장식미술 도서관에서 4월 17일부터 5월 14일까지 열린다. 그의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 작품은, 1970년부터 《지우는 뎃셍》으로 불려왔다. 특히 형태를 섞으면서 종이의 채도를 이용하고 있다. 그는 동시에 그래픽적 행동으로만 국한할 수 없는 책을 쓰기도 하였다. 이 두개의 행보는 모두 그의 예술적 개념인, 혼돈과 지각을 나타내고 있다.
줄 마시에의 작품에 대한 응답이상으로, 거의 그에 맞먹는 것일 겁니다. 사실 마시에는 이미지로 가득찬 도서관을 구상하였습니다. 바로 창작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몇만가지의 서류 이상을 수록한 5천여권의 앨범을 생각했죠. 그러면서 예술적 창조행위와 기술적 행위 사이의 조화를 이루려고 했죠. 벽에는 모든 주제를 아우르는 앨범 콜렉션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 묘지들, 모자류, 의사으 서재, 공공 건축 등등...모든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죠.
난 이 총합을 보고 나의 옛 프로젝트가 기억났습니다 : 이미 시작한지 40여년이 된 어휘사전집이죠. 난, 이 것을 완성하려고 했습니다. 내가 직접 쓴 텍스트 부분만 한해서 말입니다. 난내가 쓴 29개의 소설, 내 소개글 등에서 내가 썼던 것들의《모든 요소》(오브제, 장면, 행동, 개념 등...)를 함축하고 있는 오브제를 원했습니다. 다행히도 완전히 예측불가능했죠.(웃음) 내가 보기엔 이건 마시에가 하기 원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것입니다 : 내 작업을 총체적으로 기술하는 것, 그건 아마도 오만할 수도 있겠지만, 상관없습니다...전시는 내가 재구성하고 싶은 유명한 작품, 예를 들어 안녕하세요 쿠르베씨 같은 작품에 관한 모든 문서를 선택했습니다...그건 내가 시작한지 20여년이 지난 작업이었고 그것으로 소설을 쓰게 되었죠 : 감시되는 전시 입니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 전쟁의 시기에, 레지스탕스 운동으로 인해 미술관에는 사람도 없고 작품들도 사라지게 되죠. 그러면서 작품들이 스스로 전시를 열기로 합니다. 그들은 차례대로 작품이 되었다가 관객이 되죠. 예술작품이 존재가 되는 동시에 시선이 되는 거죠.
이곳에선, 이중의 대화가 가능합니다 : 우선, 책들과의 대화이고, 그다음은 내 작업의 내적 대화입니다. 거기에선 문학적 행위와 회화적 행위사이에 있죠. 나로선, 이 도서관은 문학적 경험과 회화적 경험이 교차하는 장소일 뿐입니다. 내 작품을 실현할 만한 신체적 조건일 때, 난 항상이 두 요소를 엇갈리게 하죠. 그림을 그릴 때, 언어의 부재를 증명하는 것들을 그립니다.
내가 회화작품을 볼때 문장으로 구성되지 않은 언어나 비공식 언어로 말하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내가 글을 쓰면, 그림을 그릴 때처럼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문자적 행위
JACQUES HENRIC자크 앙리 당신이 문학적이면서 회화적인 이중의 시도를 하는 것에 말해보죠 : 이런 시도들이 어떻게 진행되는 건가요?
내가 17세일때즈음에, 글쓰기와 그림그리기는 잇달아 일어난 일입니다 : 뎃셍을 하면서 글쓰기를 했고, 그 반대의 경우에도 그랬습니다. 이후에 시도는 점점 닮아가다가 서로 섞이게 되었죠. 지금은 타자기를 많이 이용하는 편입니다. 타자기로 로만체를 쓰면, 그건 이미 죽어버린 언어가 되죠. 나는 문장구성을 변형하면서 텍스트를 표현합니다..
LB 당신은 뎃셍과 글쓰기의 실험에서 같은 행동을 보입니다. 종이위에 그릴 때는 보다 열광적일 듯 보이지만, 수첩에 글을 쓸때는 보다 차분해보입니다. 사실은 종이에 조각을 새기거나 자르거나 구멍을 뚫기가 힘든 일이죠.
이 두 행위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이지만 나한테는 결국 같은 겁니다. 글을 쓸때 반복적으로 표현하거나 흩뜨러뜨리거나 파편화하는 것과 그림을 그릴 때 채워넣거나 다시 덮어버리는 행위는 동일하게 정신적 혼란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니까요.
JH 당신은 신체적인 관점에서 뎃셍으로 침잠하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나요? 저는 당신의 작품 중에서 뒤죽박죽 뎃셍 연작을 무척 좋아합니다.
1970년대 초에 그런 얽혀있는 뎃셍을 시작했죠. 당시 뎃셍그리는 법을 배우고 사물을 비슷하게 묘사할 수 있게 된 이후부터, 나는 의미가 없어보이도록 뎃셍을 마구 뒤섞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뒤죽박죽의 상황, 그건 완전히 비논리적이었죠. 거기에 완전한 신체는 없었지만, 육체적인 무언가를 볼 수 있었죠. 그로부터 한참 지나서야, 라블레 1를 그려보고 싶어졌습니다. 그의 반복적인 언어때문에요...그리고 기요타 2를 읽었을 때에도 역시 그 이야기를 묘사하고 싶어졌죠.
LB 당신의 뎃셍 중에 대형작을 보면, 완성하기 위해 바닥에 내려놓고 그림 위에 올라앉아 시선을 종이에 고정한채 작업을 합니다. 이건 당신이 종이에 의해, 그리고 종이 속으로《신체-정신》이 흡수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크레용으로 완성되는 대형 작품 : 내가 올라타 있는 종이 작품이죠. 그것의 목적은 추상화가 아닙니다. 그보다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의 상황과 그 세계에 대한 감각을 느끼는 동시에,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즐기고자 하는 겁니다. 난 아이가 세상에 나올 때의 그 신생아가 완벽한 아름다움을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신생아는 순전히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희열을 누리고 있었죠.
그래서, 종이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칠을 하고 채워넣습니다. 그건 종종 재앙이나 폭력이 덮친것 으로 시작되지만, 마치 액션 페인팅이나 싸우는 경우처럼 말입니다. 애를 많이 써야 그런 복잡한 선들의 조직이나 어지러운 조각들이 가능하죠. 크레용을 놓고나서 난 피곤해서 겨우 숨을때가 많습니다...여러개의 크레용으로 작업을 마치고 나면, 애초의 인상을 유지하면서도 이런 폭력성을 가리면서 순화시키죠. 모든 잔상이 존재하면서도, 부분적으로 부드러움과 수많은 반복적 표현이 있는 거죠.
LB 시선의 초상으로 돌아와서, 이 거대한 초상을 보면 처음에 어두운 표면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나서 망막현상때문에 조금씩 유령이미지처럼 나타나는 이미지가 보입니다. 그리고 그건 계속 사라지거나 나타나기를 반복하면서 움직이죠. 마치 나르시스의 거울처럼 말입니다. 이 연작에서, 당신은 사진을 사용했더군요.
난 반대적으로 사진을 사용한 것입니다 : 촬영된 인물은 전면에서 그의 시선을 우리에게《줄 수》밖에 없습니다. 레비나스 3가 말했듯이, 이 작업에서 시선은 중요합니다. 이 사진에 나는 크레용으로 확장시키고, 더이상 아무것도...혹은 거의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뒤덮습니다. 동공의 색같은 가장 짙은 검은색으로 칠하죠.
LB 시선의 초상 이란 제목에서, 시선은 얼굴표정에서 오는 건가요?
물론, 시선의 심연에서, 아이는 인지적 면에서 출생이전의 총체적 세계과 닿아있죠. 어떤 포유류도 출생하면서 소리를 지르지 않지만, 신생아는 그의 전부였던 세계를 박탈당했기 때문에 외치는 겁니다.
LB 이 초상에서, 사람들이 유령의 얼굴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요? 혹은 얼굴의 다양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난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고 일종의 영화적 효과를 봤습니다. 하루는, 렘브란트의 노파의 초상앞에서 오랜 시간동안 앉아있었습니다. 그 시간동안, 나는 시대를 거슬러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늙은 여인이 성숙한 여인으로, 그리고 젊은 여인으로 변해가는 것이었습니다. 시각적 피로감때문에 난 얼굴 주변의 구조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주름이 있는 지도 몰랐죠...
당시 망막에 피가 쏠린것처럼 시야가 흐려졌고, 제대로 인지를 할 수 없어졌고, 그림이 잘 보이지 않았죠. 그리고 점점 그림이 내게 한 여인의 인생 이야기를 하는 것같았습니다. 마치 영화를 보여주듯이 말이죠. 그래서 검은빛의 초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일종의 유희와도 같습니다. 사라지는 것은 사회적 인생의 순리와도 같습니다. 나타나는 것은 존재의 이면이나 내세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크레용으로 사람의 일생을 나타내는 것이죠.
LB/JH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아마도 당신은 인생에서 어떤 에피소드가 작업을 하는 어떤 방식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 예를 들어 2008년에 집에 큰 화재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내 많은 작품이 불에 타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때문에, 내 유년기부터 완성해온 모든 작품에 주석을 달고 분류를 하는 내 프로젝트 완성된 작품Oeuvres complétes 을 추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죠.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는 목록에 집착하고 있었고, 늘어놓고 보니 총 400미터가량 길었습니다. 그건 이미지가 없는 카달로그 같았습니다. 모든 뎃셍작품들이 순서대로 나열되고, 묶이고, 제목을 붙이고, 목록으로 만들었습니다. 아주 큰 크기로 인쇄된 복사용 카본지에 타자로 제목을 붙였죠. 그 작업을 시작할 때의 일이 기억납니다 : 거의 내가 5살일때, 내 부모님이 내게 과슈를 주었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난 따라그리기보다 꽃들을 그렸던 기억이 납니다...아주 빠르게, 그리고 잘 그렸었죠. 그러고나니, 초초해지기 시작했고, 그림을 검은색과 붉은 색으로 뒤덮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가 그걸 보고 내게 물었고, 이렇게 대답했죠 : 《불이 난 거예요》...결국 작품을 오래 보존하는게 중요할까요? 완성된 작품 이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매우 만족했습니다. 거기엔 어떠한 작품도, 뎃셍도, 재생산된 작품도 보이지 않았고, 거대하고 연속적인 텍스트에 지나지 않았스니까요. 그건 끝이 없는 열거목록이며, 연속적 기념비였습니다. ■
BERNARD OLLIER
58-60 쪽, artpress 376
Léa Bismuth &Jacques Henric
PLONGEUR ( zamsoobu )
Léa Bismuth &Jacques Henric
PLONGEUR ( zamsoobu )
- François Rabelais c. 1494 – 9 April 1553) was a major French Renaissance writer, doctor and Renaissance humanist. [본문으로]
- Pierre Guyotat is a French writer. He was born on January 9, 1940 at Bourg-Argental, Loire. [본문으로]
- Emmanuel Levinas (French pronunciation: [leviˈna, leviˈnas]; 12 January 1906 – 25 December 1995) was a Lithuanian-born French Jewish philosopher and Talmudic commentator. [본문으로]
'★자료.번역(;Recherche > 예술가(;les artist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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