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ter Murch ; 편집감독

기술의 변천은 편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Francos Ford Copola 를 매료시킨 편집자 월터 머치 Walter Murch [각주:1],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잉글리쉬 페이션트>, <컨버세이션> 등의 편집과 음향 작업으로 유명한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편집감독이자 음악감독인 " height=14 valign="top"> 와 인터뷰를 하였다.


디지털 편집에 대해

월터 머치 와의 인터뷰



음향 편집가를 거쳐 영상 편집자, 그리고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Francos Ford Copola 의 진정한 동료가 되기까지, Les Gens de la pluie(1969) 에서 테트로 Tetro(2009) 까지, 월터 머치 Walter Murch 는 라 로슈 쉬르 용 국제 영화제 Festival international du film de La Roche-sur-Yon(2010.10.13-18)에 자신의 작품 En un clin d'oeil 를 발표하고 작업 방식을 공개했다. 디지털 편집은 지난 15년간 피할 수 없었지만, 기술의 진보의 흐름보다 앞서는 면도 있다(돌비 시스템이전에 Conversation secrète 를 상영할 때, 공간의 여러 곳에 음향 설비를 갖춘 것이 그 예이다). 기술의 변천은 편집에도 대대적인 수정을 요한다.

당신의 작업대는 건축용 테이블과 두 개의 모니터가 눈높이에 위치합니다. 초벌 편집 후에 서서 작업하시나요?
 구형 Moviola 를 사용하면서부터 초벌 편집을 서서 하기 시작했어요. 롤들이 수직적으로 위치하죠. 편집은 탱고를 추는 것과 같아요. 파트너- 필름-와 발을 맞추는 거죠. Moviola 에 신체적으로 많이 움직이면서 하려 합니다. 70년대 초기에는, 수평 배열의 Steenbeck 으로 작업했어요. 이 기기의 큰 장점은 소음이 적고 필름 훼손이 덜하다는 거죠. Moviola 로는 2분이 못지나 이상해지는 반면, Steenbeck 으로는 10분까지 무리없죠. 난 이 기기의 성능을 아주 만족했지만, 사무실 직원처럼 늘 앉아있게끔 하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L'insoutenable légèreté de l'être ( 필립 카우프만 Philip Kaufman[각주:2] ) 을 작업할 때, 계속 앉아서 하기 힘들었어요. 나는 나무 상자를 이용해서 높이를 더 올려서 서 있는 자세에서 모니터 반응을 볼 수 있도록 하였죠. 디지털 편집이 도래했을 때, 내 작업위치를 잡는 게 더 쉬웠어요. 왜냐하면 기계 무게가 늘어나지 않았거든요. 건축가용 테이블에 놓은 키보드로 서서 작업할 수 있었고, 눈높이에 모니터를 설치했죠.



Avid 작업을 하게 되면서, 캔버스로 작업하던 화가처럼 재창조를 하려 하지 않았나요? 기계가 점령한 세상에서 예술행위가 가능할 지 걱정하지 않았나요?
 연극에서 영화까지 오면서도, 부분적으로는 그랬죠. 같은 맥락으로, 영화는 종이 위에 하는 조각과도 같습니다. 연극과 조각 사이의 변환점을 찾았고, 창조적인 행위로 바꾸었죠. 일반적으로, 영화가 문제가 있는 것은《연극적》부분을 찾지 못한 것이고, 《조각적》부분도 찾지 못한 겁니다. 난 디지털 편집이 재밌지만, 아날로그적인 요소들을 유지하려합니다. 내 화면이나 장면에 종이로 표시를 하죠. 모든 것은 필름의 재질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리고 모니터에서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죠. 그 덕분에, 디지털 이미지의 편집에 흡수되는 처지를 면한 것 같군요. 




디지털 편집이 추상적이 되었기 때문일까요?
 아니요. 전혀. 기본적으로 디지털 편집이 데이터나 메타데이터로 남는다고 하더라도 그렇죠. 단일 위치에 고정되어있는 게 위험하죠. 당신은 유일한 관심사에 함몰 될 수도 있어요 : 바로 디지털의 창이죠. 그래서 그 창문의 둘레와, 그 너머의 풍경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제의 컨퍼런스에서, 필름 편집의 특별한 순간에 대해 말했습니다 : 되감기를 빨리하다보면 무의식적으로 영화의 구조에 대해 어떤 영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 무의식 작용이 디지털 편집에서도 가능한가요?
 난 편집기술에서 우연한 기회를 제공할 새 방법을 항상 찾아요. 영감은 기술이나 지식보다 강렬하죠. 우리가 말로 옮기지 못하는 언어로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요 : 당신이 쓰는 프랑스어를 이해못하고, 영어로밖에 대답할 수 없지만. 디지털에서, 《리와인드》를 우연히 하곤 합니다. 앞으로나 뒤로나 빨리 돌려보면서 일련의 그림 속에서 장면 이미지들을 모으죠. 편집 작업에서 같은 요소들을 만들지 않지만, 어림잡을 수 있죠. 당신이 과정에서 우연이나 기회를 조금이나마 믿는다면, 항상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영화 전체적 맥락에서 당신이 의도대로 한 것보다 훨씬 좋을 수 있죠.


디지털로 인해 기술자들이 퇴보할 위험이 있나요?
 디지털의 위험은 앞으로,
  《비 협력적》으로 되어간다는 겁니다.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할 수 있습니다. 수만명의 사람들에게 말해야 하는 작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위험하죠. 한사람이 완성할 수 있는 데예는 한계가 있어요. 재능있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보면, 각자가 다른 관점으로 작품을 완성해 갈 수 있죠. 또, 작품을 검토하면서 여러 면의 빛을 반사하는 다이아몬드로 만들 수도 있죠.


휴대용 컴퓨터를 기반으로, 우리는 옴므 시네마 Home cinema 가 되어가는 걸까요?
 내가 작업한 최근 작품인 Hemingway & Gellhorn (필립 카우프만 Philip Kaufman , 2012 개봉예정 ) 에서,Final Cut Pro 로 25개 영상꼭지와, 50여개의 음향꼭지, 그리고 특수 효과, 스테레오와 주파수로 작업했어요. 20m높이의 스크린에 디지털 상영을 위해 QuickTime 으로 출력했죠. 질적인 손상은 없었어요. 편집실에서 스크린으로 바로 이어진 거죠. 어떤 믹싱작업이나, 색보정 과정없이요. 필름 영화는 이런 단계를 밟아야하지만, 앞으로는 편집실과 영화관 사이에 이런 과정이 단축될 겁니다...좋아요, 하지만 실험적이긴 하죠. 끝까지 고수할 지는 알 수 없죠. 


Heart of Darkness 의 결말부의 Apocalypse Now 의 촬영 다큐멘터리가 나오는데, 코폴라감독은 이 영화 매체의 대중화에 대해 예언비슷하게 말했습니다.
 지금의 영화는 마치 300년 전의 1720년대의 음악같아요. 처음에, 음악이 발명된 시기죠. 중산계층은 질 높은 악기를 살 수 있었고, 집에서 연주하곤 했죠. 새로운 장르가 등장하면서 음악의 대중화가 이뤄진거죠 : 바로 아마추어, 예술 애호가의 것이요. 재능있는 진정한 프로의  음악과 그 것을 들을 새로운 대중이 생긴거죠. 하지만 이 애호가들이 한계에 부딪힐 거라는 것도 스스로 알았습니다. 이미 대중과 예술가들 사이의 상징적 관계가 200여년전부터 형성이 된 겁니다. 이 관계에서는 처음부터 영화가 없었습니다. 대중은 아라비아 로렌스 Lawrence d'Arabie 를 교회를 가듯이 보러갔거든요. 현대에 각 가정마다 최첨단 기술이 깊숙이 들어와있죠. 작업의 여러 요소들을 생각하는 관객들이 있는 건 장점이지만 동시에 영화를 만드는 데 난점이기도 합니다. 대중과 감독들간의 상징적 관계가 형성될 시기가 올 것을 기대해요. 그렇게 될 겁니다. 



디지털 편집은 영화 완성에서 다른 결정을 하게 하지 않나요? 기기의 탄력성으로 인해 마지막 순간까지 변화를 추구하고 싶진 않나요?
 애초의 혁신은 이미 2,3년전에 이뤄졌습니다. 컴퓨터는 한 대로도 장편을 완성할 수 있을 만큼 많이 개발되었어요. 이전에는 영화가 20여분씩 조각으로 이뤄졌죠. 영화 초반에 수정을 하면 끝 부분도 동시에 수정해야 했습니다. 그 여세로 수정을 할 수 있었죠. 편집에서 선택은 변하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처음 장면을 보면 내가 결정했던 순간 밖에 보지 못해요. 그래서 기분이 안좋죠. 점점 동시에 감정들이 사라지죠. 하지만 내가 했던 부분을 알아채지 못한 채 볼 때도 있어요. 마치 장면 스스로 움직이는 것 같죠. 그러면 작업을 멈춥니다. 물론, 장면은 보다 넓은 맥락에서 적절하게 삽입되어야 하죠. 
 하지만 영화에서 전체적인 여운을 주거나 즉각적인 의미를 주는 순간이 항상 있어요. 만약 당신이 배를 만든다면, 망치를 두드리는 순간과 덮개를 크게 만들어야 되는 순간을 아는 것 같아요. 영화 편집이 완성될 때 생기는 감정과 비슷합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Francis Ford Coppola 은 최근작품인 Twixt 의 미국 상여ㅛㅇ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데, 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편집실과 극장의 중간 통로를 보다 단축시킨》사례 중의 하나죠. 


출처  :  CAHIERS DU CINéMA #672. 2011.11
기사  :  Jochim Lepastier
번역  :  PLONGEUSE ( 잠수부 ).[작성. 2012.02.24]

  1. "<지옥의 [본문으로]
  2. 카우프만 [Philip Kaufman, 1936.10.23~] 요약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감독. 《골드스타인》,《용감한 프랭크》,《배회자》,《프라하의 봄》,《헨리 밀러의 북회귀선》,《떠오르는 태양》,《블랙 아웃》 등에서 할리우드 식 영화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펼치고 있다. 본명 필립 클라크 카우프만 국적 미국 활동분야 영화감독 출생지 일리노이주 시카고 주요수상 칸영화제 신예비평가상(1963), 전미비평가협회 작품상과 감독상(1988) 주요작품 《필사의 도전》 《프라하의 봄》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 본문 1936년 10월 23일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독일계 유대인 이민자의 자손으로서 본명은 필립 클라크 카우프만(Philip Clarke Kaufman)이다. 1958년 시카고대학교에 들어가 역사를 전공하였다. 이어 하버드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였으나 중간에 그만두고 다시 역사를 공부하였다. 1960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뒤 소설을 쓰다가 유럽을 여행하며 이탈리아의 미국학교 교사로 일하였다. 그러던중 프랑스의 누벨바그와 활기 넘치는 이탈리아영화에 매료되어 영화계에 입문하였다. 1963년 시카고로 돌아와 영화제작기술을 익힌 뒤 풍자 넘치는 영화 《골드스타인》을 제작, 각색, 연출하였다. 이 작품은 비평가들의 호평 속에 칸영화제에서 신예비평가상을 수상하였다. 이어 《용감한 프랭크》(1965), 《미네소타 대소탕》(1972) 등을 연출하여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았다. 그뒤 딘 시걸의 SF공포영화 《우주의 침입자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1978)를 다시 만들어 호평을 받았으며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이듬해에는 1960년대 이탈리아계 갱들을 소재로 한 《배회자 Wanderers》로 컬트영화감독으로서 명성을 얻었다.1983년에는 미국 우주계획 초기 역사를 소재로 한 대작 《필사의 도전 The Right Stuff》을 발표하여 아카데미 8개 부분의 후보에 오르고 4개 부분에서 수상하였다. 1988년 발표한 《프라하의 봄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은 삶과 사랑을 성적 관점에서 솔직하게 다루었으나 지성적이고 경박하지 않은 작품세계를 선보여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 작품은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로 올랐으며 전미비평가협회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이밖에도 작가 헨리 밀러의 사생활을 소재로 한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1990), 액션 미스터리 《떠오르는 태양》(1993), 스릴러 《블랙 아웃》(2004) 등을 연출하여 할리우드식 영화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펼치고 있다.[출처] 카우프만 [Philip Kaufman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