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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1.19 (1)무엇이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가?

(1)무엇이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가?

누구의 작품이 가장 중요한가 : 데미언 허스트인가 아니면 파브리스 히베르[각주:1]인가? 다니엘 뷔렌[각주:2]의 산산조각 난 오두막집인가 아니면 존 챔버레인[각주:3]의 조각인가? 안드레아스 거스키[각주:4]의 사진인가 소피 칼[각주:5]의 사진인가? 우선 작품이 무엇인가에 따라 달려있다. 좋은 작가는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을 번갈아가며 생산한다. 하지만 그것이 시장에 들어서면, 이 세 명의 프랑스 작가의 뛰어난 작품이 다른 작가들의 준작에 비교하여 훨씬 낮은 가격에 거래된다. 예술가적인 관점에서, 나는 어떠한 쇼비니즘에 좌우되지 않고도, 이 세명의 프랑스 작가가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1980년대 미술시장이 팽창한 이래로, 작품의 가치는 콜렉터들과 갤러리들, 그리고 특히 경매장에서 결정된다. 비평가들이나 미술관 관계자들이 비평하듯,  이런 연유로 미디어들은 작가에 대해 말하기보다 작품의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 밖에 들추지않는다. 또, 이런 현상은 많은 갤러리들이 전시를 열거나 미술관이 보다 대중에게 열릴 수 없도록 한다...그러나 누군가 말하듯, 모든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걱정하는 작가가 상표가 되는 현상에 대해 예술사에서는 그에 반하여 회복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가 쿤스의 작품을 구찌 제품을 사듯 구매한다. 《상표로서의 작가》가 분류되는 현상은 미술관의 렘브란트 작품같은 고전을 교과서에 실리는 낡은 사례로 남게하고 말았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모네의 어떤 시기의 작품이라도 똑같이 모사할 수 있다. 결국 작품은 그가 가진 결국 사고를 열어주는 역활을 잃은 것일까? 우리는 예술의 오브제를 탈신성화시켜야 하는가? F.B.

역사가 진화하면,
가치는 변하기 마련...

풍부한 재료 때문일까? 어떤 표식으로? 도덕적 가치때문에? 전통에 대한 존경? 스캔들을 내기 위해?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여기에 공통점이 있다. 역사 속에서 작품의 진화와 가치의 변화는 모든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뒤샹이 그의 작품 《레디 메이드》를 발표한 날을 상상해보라 ; 뒤샹은 단지 전시 공간을 그의 일상생활에 이용했을 뿐이다. 이 구상으로 그는 작품을 단지 그의 재료로 삼았다. 기준으로 말이다. 뒤샹의 예는 개념적인 접근이며 예술작품의 진화단계에서 나타났다. 15세기로 거슬러올라가면, 사람들은 점점 작품의 온전한 가치에 대해 인식-다시 말해 그것이 작가의 아틀리에에서 만들어지는 방식과 과정-하기 시작했다. 교회의 장식화를 인근지역 아무개가 아니라 앙게랑 콰르통[각주:6] 에게 맡기면서부터 그 관계성, 투기성, 취향, 시장의 현대적 진영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뒤샹이 조롱한 것은, 시장이 가진 한계성이다 : 작가의 권능이 무너지고, 고유의 표식이 침해받는 상황들이 그렇다( 또, 보쉬Bosch , 크라나흐Cranach, 보티첼리Botticelli의 모조작이 16세기에 시장을 흐려놓았다 ). 작품을 둘러싼 아우라는 소멸되기 시작했고, 작품 가치는 그것을 사는 사람들에 의해, 우연적 사회에 의해 결정되었다. 절대성이 사라진 것이다!
 이러한 서명의 시대는  1563년 플로란스 지방에서 부터 현저한 변화로 인해 재배치되기 시작했고, 17세기(1648년 회화와 조각 왕립 아카데미가 프랑스에 설립)부터 강화되었다. 그리고 18세기에 그 끝을 보게 된다 : 순수회화의 독립성은 기술적인 것이다. 그러면서 길드에 작가들을 연합시켜 그 고유의 가치, 자유로운 창조성을 결정지었다. 작가가 작품에 그에 공들인 노하우나 도덕적 신념를 고려하여 가치를 부여하기 전에, 작품의 주제, 특히 장르에 의해 그 가치가 결정되었다. 역사화는 보다 가격이 높았다. 물론 풍경화보다 초상화가 더 가격이 높았다. 이런 식으로 작품의 질은 경제적으로 미학적으로 의존적이었다.
 하지만  18세기에 들어서 시민혁명 이후에 이런 위계질서가 보다 평탄해진다-샤르뎅의 행보를 보면, 역사화와 정물화를 동등하게 대하였다- . 왜냐하면 이런 공식 살롱에 출입이 보다 자유로워졌고, 직업이 다양해진 것이다. 예술상인의 군상도 다양하였다. 19세기에 부르주아층이 두터워지면서 그들의 요구에 맞도록, 보다 작은 크기의 작품들이 제작되었다. 이런 새로운 상황때문에 콜렉터들은 작품의 가격이 떨어질 것을 우려했다.
 특히, 새로운 중간 매체인, 갤러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폴 뒤랑-루엘Paul Durant-Ruel(1831-1922)은 오히려 비평문단이나 수집가들에게 주목받지 못한 《신진작가》의 작품을 구매하면서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 젊은 작가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독립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 마치 내기처럼, 그들은 그렇게 유명세를 얻거나 낙엽처럼 떨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실은 나타나는 법- 반 고흐Van Gogh, 큐비즘 작가들, 추상화가들...-.20세기는 예술사에서 몹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   사람들은 후대를 생각하며 불안에 잠기며 사색하면서 하루만에 돌연 스타가 된 작가들을 의심하였다. 많은 작가들 중에, 빔 델보이[각주:7]가 있다. 그는 체제를 《뒤흔들며》등장했다. 예술의 가치를 유희하면서 즐기며- 도발적인 시선으로(레디 -메이드, 서명의 조작 등등). 또, 작가들은 영구적이지 않은, 물질적이지 않은, 수집가들에게 속하지 않은(랜드아트를 생각해보면 더 그렇다) 작품을 만들었다. 특히, 20세기 들어, 쿠르베Courbet가 시작하긴 하였지만, 피카소Picasso 에 의해 가속화된 추상적 움직임과 초현실주의가 나타났다 : 더이상 작품의 가치는 미학적 연구나 매혹에 부속되는 것이 아니었다. 기준과 준거를 뒤흔드는 것이 전부였다. 미소짓는 사람은 바로 뒤샹이었다. ■ Thomas Schlesser

시장의 룰,
상대성의 법칙

시장과 전시의 복합화 속에 현대예술은 경매소에 진열된 수집가들과 백만장자들의 고부가가치 상품이 되었다. 하지만 그 곁을 보면, 아직 몇몇 예술가들은 이에 맞서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술의 가치》에 대한 문제가 대두된 것은 그리 멀지않다. 바칼로레아 철학과목에도 종종 등장하는 이 주제는 1990년과 2000년 사이, 두 번의 경제 위기와  크리스티Christie's 와 소더비Sotheby에서 경이로운 판매《기록》을 세운 이후에 자주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현재 미디어와 증권시장은 이 예술시장에 열광하고, 이 부차적《경제》에 집중하고 있다.
 작품의 진화 준거와 장치들에 사고하기보다, 비평계와 역사학계들은 그 작품들이 속한 시공간에 따라 그 질적 기준을 바꾼다. 20세기 말까지 작가의 정당성은 예술계의 전문가와 규정에 따라 좌우되었다. 진정한 위기는 바로, 우리가 이 경제곡선이 그려지는 대로 그 작품의 여파를
추측할 수 밖에 없게되는 것이다. 그 흐름을 알기 위해 세계 어느 곳의 시장이 팽창되는 가(인도, 중국, 남아메리카 등등)를 보면 충분하다. 그 곳에서 예술은 더도 덜도 아닌 소비재가 되어가며, 전세계의 관광 상품, 호화산업의 부가적 가치로 되어가고 있다.
 그러면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 이 새로운 세계는 무엇인가? 혹자가 말하듯, 초-생산주의와 민주주의의 문제가 생긴 것일까? 그것은 이미 200여회의 비엔날레, 그만큼의 시장, 가격들이 작가의 주변에서 흥망하기를 번복하며, 작가들을 지역으로 묶거나, 일시적인 철새로 여기는 것과 관련이 있다. 불안정한 기후에서, 미술관측이 진보의 주요 역을 맡는다면( 주요한 소장품 가운데에서 얼만큼 관여를 하는가에 따라 작품의 가치가 달라진다), 이 경제가 덜 위험할 것이다. 행정당국은 대중에 복속되어, 개인에게 의존하면(국가가 더 이상 자금을 지원하지 않을 때). 공동 구매에 제한이 따를 수 밖에 없다.
 동시에, 제작자나 갤러리들의 요구에 따라 작가가 작품을 만들도록 하는 1차 시장과 2차 시장의 분명한 불균형의 문제도 있다. 우리는 여기 호화 산업의 거물들이 수집가-애호가들로 예술계의 주요 인사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이런 예술의 목표나 계약관계가 유일한 변수는 아니다. 수치가 주는 잔혹성과 다른 형식적이며 경제적 논리가 난무하는 풍광에서 몇몇 작가들은 이에 묻히지 않기 위해 이에 반대하고 있다.
 뒤샹 이래로, 시장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례는 많았다. 기 디보르[각주:8]는 1953년 도시의 한 벽에 이렇게 썼다 :    《일하지 마시오!》이 시위조의 어구는 작가들에게 앞으로 다가올 스펙타클의 사회를 예고하는 말이었다. 마르셀 브루타에스[각주:9]는 1964년 그의 처녀 전시 카달로그에 이렇게 썼다 :《나 역시, 인생에서 뭔가 이루었다.》 이 고백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작품을 가장하는 것들을 마치 신화 속의 그것처럼 꾸며놓은, 슬픈 사실이 숨어있다.
이브 미쇼Yve Michaud, 철학가:

《롤렉스 신드롬》

《우선, 가격이 치솟는 것-모자, 장식된 낙하산, 스톡 옵션의 기증자, 무역 수입 등 이외엔 작품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사람들은 돈으로 무엇을 할 지 모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전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이 돈으로 어떻게 쓰는 것이 더 나을지 자문한다. 수많은 수집가들처럼 세상에 대부호들이 넘쳐난다. 중국에, 러시아에, 인도네이사에, 그리고 페르시아만에, 라틴아메리카에. "백만장자처럼 부자"라고 말하는 대신, "소수의 지배자"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예술은 부와 문화의 상징으로 그의 왕족의 힘을 나타내는 것이다.더욱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말하면 : 여분의 돈을 예술적 가치에 쏟는 것이다.
"위대한" 예술가와 그의 어시스트 집단의 작품을 두고 경쟁하면서 가격은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른다. 시간이 자연스레 작품을 만들며 역사학자와 사회학자는 이렇게 예술품을 쌓아두는 이 시대를 "탐욕의 시대"라 부를 것이다.


장 위베르 마텡Jean-Hubert Martin
문화재 보존총괄책임자

 미술관은 작가, 갤러리나 상속자의 곁에서 작품을 구매하는 데 특혜가 있지 않나요?
갤러리측과는 20% 까지 가격의 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 할인가는 판매자나 협상가에 따라 다릅니다. 갤러리는 미술관에 작가를 선보이는 잇점이 있고, 작품을 판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자금으로 다른 작가에게 기회를 주고싶어하죠.
작가나 상속자들과의 협상에서는 모든 경우의 수가 있습니다. 작가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미술관에 고가의 작품을 기증하고 시장에 나오는 것을 꺼릴 때도 있죠. 작가와 상속가들은 매우 심사숙고하여 그들의 소장품 중에서 시장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작품을 미술관에서 소장하기를 바랍니다.

미술관측은 어떤 역사적 경제적 가치를 고려하여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나요?
모든 작가가 미술관의 고려대상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예술사에서 그의 입지를 고려해야하죠. 또한 혁신적인 창조적 개념에 부합하는 미학적이며 역사적 기준에 적합해야 합니다. 이런 예술적 가치는 시장에서 재주목을 받죠. 그의 형식이나 다양한 가격에 의해서요. 시장 가격이 필수적 조건은 아닙니다. 시장은 취향이나 유행에 따라 달라지죠.

미술관측이 구매를 할때나 전시를 기획할 때, 당국이 가격의 조정에 규제를 두지않나요? 기준이 무엇인가요?
이런 류의 충돌은 익히 알려져있는 겁니다. 그리고 전문가/보존가의 영원한 숙제이죠. 프랑스는 정부가 예술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시장을 보호합니다. 최근의 전시가 있기 전에, 수집가들은 그들이 얻게 될 명예로움 때문에 전시에 적극적으로 작품을 기증하였습니다. 전시의 성과는 고미술에 대한 조예만큼이나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걸작을 소장한 연륜있는 수집가가 기증함으로써 가격이 아주 크게 변하는 거죠.

국가로부터 아주 높은 가격에 구매한 작품이 있다면, 그 가치를 떠나 그것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1999년 자크 케샤슈Jacques Kerchache 가 앞장서서 아일랜드의 울리Uli작품이었는데 비슷한 유형의 작품군보다 높게 케 브란니Quai Branly미술관에서 구매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나는 아프리카미술관에서 떠나 뒤셀도르프의 쿤스트 팔레 미술관의 책임자로 가게 되었죠.



조슬린 울프Jocelyn Wolff, 갤러리스트

현대 작가의 어떤 점이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이유는요?
작가를 둘러싸고 수요와 공급 이외에 다른 요소가 있다는 걸 명시해야겠군요. 사실 수요와 공급은 시장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윤을 생산하는 여러 요소들로 인해 영향력있는 관계망(단지 금전적 부분만이 아닙니다 : 모든 예술체계와 가치를 생성하는 총합체에 영향력이 있는 넓은 의미입니다 )이 형성될 수 있죠.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새로운 작가를 《 발굴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이뤄집니다 (우리는 리 로자노Lee Lozano, 샤를로트 포세넨스케Charlotte Posenske, 동부유럽의 작가들을 발굴했죠)...혹은 젊은 작가군들에게 분포된 개념작가들(프란츠 에르하르트 발터Franz Erghard  Walther[각주:10])도 《빠뜨리면》안되겠죠. 그러면, 누가 과대평가되는걸까요? 내 대답은 내 취향은 반영한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분석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죠. 시장에 의해 과대평가된 작품들은 많아요...물론 모리조 카텔란Maurisio Cattelan 이나 제프 쿤스Jeff Koons 같은 경이로운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은 예외겠죠. 하지만 현대 작가의 가치는 가격이 모두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술적 가치에 일치하는 건 아니죠.

반대로, 어떤 현대작가들이 과소평가되는 걸까요, 어떤 이유에서요?
예술 시장이 역사적 위상에 걸맞는 주요성과 질적인 면을 갖춘다면, 두 가지 유형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모든 개념작가들이 장식적인 미학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물질적으로 《만들어지는》것이 아니죠. 난 예술시장이 역사적 동인이 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않습니다. 조르쥬 브레히트, 존 케이지, 스탠리 브라운, 로버트 필리우, 윌리암 아나타시, 로버트 비어[각주:11]...지난 50여년 동안 거장들이죠. 다른 부분으로는, 수많은 비디오작가와 영화작가, 10 000유로 보다 가격이 낮은 작품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죠.
S.M
다니엘 뷔렌의 경우에, 다른 젊은 작가들 중에서도 좀더 행동파답게 다른 주제를 다룬다. 그의 1960년 다른 미술관측과의 계약서에 드러난 그의 문체는, 《경고문》의 형식이다. 진실성의 작품의 가치, 공증, 저작권에 관한 취약한 개념을 짚으면서 이론으로 무장한 채 작품활동으로 이러한 미술계에 참여한 것이다.
 티노 세갈[각주:12] 같은 경우는, 다니엘 뷔렌과는 또 다르게 작품과 텍스트, 모든 물질적인 것, 오브제의 생산에서부터 급격히 거리를 두고자 한다. 작품 구매 계약서를 비롯한 모든 문서들에서부터 말이다. 그의 작품은 일종의 참여나 움직이는 그림으로 관객들이 스스로 미술관과의 관계를 맺도록 한다. 세갈의 작품은 이미 공공 기관에서-퐁피두 센터에서도 소장- 소장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확신한다 :  《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오브제를 중시하는 것에 반대한다. 나는 물질로 가득한 미술관의 것들을 상황이나 다른 요소들로 바꾸려 한다.》 재난 현장 전문가이거나 인류학자인 티노 세갈은 시장의 가치에 반대한다. 그는 공간을 우리의 욕망을 가시화시키는 표현의 장으로 이용한다 : 《시장 경제는 이념이 아닙니다. 그건 열려있는 구조이며, 미리 결정지을 수 없습니다. 시장은 우리가 생산하고자 하는 창조적 욕구이외에는 어떤 것도 만들 수 없습니다.》S.M




출처 :   84-92page, BEAUX ARTS MAGAZINE
기사 :  Fabrice Bousteau, Stephanie Moisdon, Thomas Schlesser, Pierre Stercks & Isabelle de Wavrin
번역 :  PLONGEUR ( zamsoobu )
  1. Fabrice Hyber(1961년생)낭뜨 보자르 졸업.전분야에 걸친 조형예술가. [본문으로]
  2. Daniel Buren(1938년생)프랑스 조각가. 화가 [본문으로]
  3. John Chamberlain(1927년 미국 인디아나 주 출생.)부서진 자동차를 소재.팝아트 작가이자 추상표현주의 작가. [본문으로]
  4. Andreas Gursky(1955-)독일의 사진작가. 유형학적 사진의 모태가 되는 '베허 학파 Becher School'의 제 1세대 작가로 2001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개인전을 통해 일약 당대 최고의 작가 그리고 독일 사진예술의 미래로 평가받고 있다[출처]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Andreas Gursky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
  5. Sophie Call(1955-)프랑스의 사진작가이며 개념미술가. 자신의 몸과 삶 전체가 허구를 만들어 내는 작품의 대상이며, 일상과 예술을 뒤섞어 진실과 허구 사이의 게임을 극대화 한다. 그는 각각의 프로젝트를 '사진-소설' 형식으로 엮어 책으로 출판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출처] 소피 칼 [Sophie Calle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
  6. 프랑스의 화가. 랑에서 출생하여 1444~1466년 남프랑스에서 활약. 대표 작 『성모의 대관(戴冠)』(1454, 빌누브 레 자비뇽 시료원)은 제작에 관한 상세한 계약서가 남아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작풍은 캄핀, 반 아이크, 웨이덴 등 초기 플랑드르 회화의 영향을 보이고 있으나 화면 구성에는 고딕 대성당의 팀파늄 조각을 연상케하는 모뉴멘털리티를 느끼게 함. 확증이 있는 작품으로는 『자비의 성모』(샹티 콘데 미술관)가 있으며 또 『아비농의 피에타』(루브르 박물관)도 그의 작품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본문으로]
  7. Wim Delvoye (born 1965 in Wervik, West Flanders) is a Belgian neo-conceptual artist known for his inventive and often shocking projects. Much of his work is focused on the body. He repeatedly links the attractive with the repulsive, creating work that holds within it inherent contradictions- one does not know whether to stare, be seduced, or to look away. As Robert Enright wrote in Border Crossings, "Delvoye is involved in a way of making art that reorients our understanding of how beauty can be created."[1] Wim Delvoye has an eclectic oeuvre, exposing his interest in a range of themes, from bodily function, to the Catholic Church, and numerous subjects in between. He lives and works in Belgium, but recently moved to China after a court of law judged his pig tattoo art projects illegal. [본문으로]
  8. Guy Ernest Debord (December 28, 1931 - November 30, 1994) was a French Marxist theorist, writer, filmmaker, member of the Letterist International, founder of a Letterist faction, and founding member of the Situationist International (SI). He was also briefly a member of Socialisme ou Barbarie.출처ㅣ 위키백과 [본문으로]
  9. Marcel Broodthaers (28 January 1924 – 28 January 1976) was a Belgian poet, filmmaker and artist with a highly literate and often witty approach to creating art works. [본문으로]
  10. 1939년 독일 출생. 보자르 졸업. [본문으로]
  11. George Brecht▶▶▶(August 27, 1926 – December 5, 2008), born George Ellis MacDiarmid, was an American conceptual artist and avant-garde composer as well as a professional chemist who worked as a consultant for companies including Pfizer, Johnson & Johnson, and Mobil Oil. He was a key member of, and influence on, Fluxus, the international group of avant-garde artists centred around George Maciunas, having been involved with the group from the first performances in Wiesbaden 1962 until Maciunas' death in 1978.John Cage▶▶▶Stanley Brouwn(1935년 출생)▶▶▶Robert Filliou▶▶▶(Born January 17, 1926, in Sauve, France - Died December 2, 1987, in Les Eyzies, France) was a French Fluxus artist, who produced works as a filmmaker, "action poet," sculptor, and happenings maestro.▶▶▶ Willian Anatasi▶▶▶Robert Breer(September 30, 1926 – August 13, 2011) was an experimental filmmaker, painter, and sculptor.[3] [본문으로]
  12. Tino Sehgal (born 1976) is a British-German artist based in Berlin. His works, which he calls "constructed situations",[1] involve one or more people carrying out instructions conceived by the artist.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