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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4.26 Melancholia ;앎의 질병 ; 마리 클로드 랑보트 Marie-Claud Lambotte - ⓑ

Melancholia ;앎의 질병 ; 마리 클로드 랑보트 Marie-Claud Lambotte - ⓑ

덧없음
 이미 관객은 재앙의 끝을 보리란 것을 영화 처음부터 알고 있다. 그러므로 영화의 두번 째 부분은 
행성의 접근을 상징하는 것이라기보다 호흡을 유지하며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묘사하는 것 뿐이다라 할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행성은 현실에서 실제로 나타나지 않는다. 멜랑콜리아는 땅과 가까워지지만, 또 땅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 멀어지는 사실은 재출현과 소멸을 반복하며 이어지는 우울증의 단계를 생각나게 한다 ; 이런 우울증의 지속성은 거친 자기 파괴로까지 이어지거나 예측이 불가능한 행동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에서, 관객은 처음부터 결말을 알고 있다 ; 그러나 행성과 땅이 충돌하거나 그것을 모두 흡수해버릴 지 정확히는 모른다. 이야기의 결말을 알지만, 지진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게 주변이 붕괴하며 파괴되기 전에, 피할 수 있기를 바라며 침착할 수 만은 없다. 저스틴이 클레어의 아들 레오를 위해 만든 오두막이 마법의 피신처가 아니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가장 약한 그곳에서 세명 모두 거대한 종말을 기다린다. 정확하게는, 더이상의 상상을 할 수 없는 우울증에 빠져, 사건이 끝날 이 공간 안에서 아이의 눈을 감기는 일 밖에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Tristan and Isolde 의 음악은 중요한 역활을 한다. 사실 관객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다...마치 저스틴이 대재앙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아는 것처럼. 그리고 어쨌든 클레어가 이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을 즐기는 동시에, 저스틴을 다시 보게 된다. 그러므로 
초반부부터 우리는 우울증이란 주제의 한 가운데, 그리고 덧없음의 한 가운데로 던져진다.
물론, 우리는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가  공허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지 모른다. 공허함 자체는 정신적 종교적 알레고리를 초월하며 환상의 위험 뿐 아니라, - 그리고 가장 생각하기 어려운- 절대적 권력의 위험을 상기시킨다. 우울증에서 모든 문제는 근원적인 상실감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난 이미 알고있다》혹은 《난 예전부터 알고있었어 》라는 말로 나타나는-.그리고 이러한 상실감은 곧 말이나 행동으로 변형되거나 욕망을 야기하기도 한다. 달리 말하면, 인간의 조건을 결정짓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변형대신에 우울증은 그대로 굳어버리는 고착화의 감정이 되어, 어떠한 노력도 무용하게 하는 부정적 표현으로 밖에 남지 않는다. 《무, 공허》는 눈 앞에 나타나지 않는 낙원을 좇거나 상실하기 전 가치가 없다고 단정지으려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런 의미에서, 저스틴은 근본에 맞닿은 진실을 숨길 수 없는, 공허의 세계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행성이 도래하면 모두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진실을 말이다. 충돌시점이 가까워지면서 레오가 만든 기구로 행성의 크기를 가늠해보는 다른 가족들과는 달리 저스틴은 침착해보인다. 그리고 행성과의 조우를 위해, 그녀는 기이한 빛속으로 들어가거나 한밤 중에 풀밭에 길게 벗은 몸을 뉘인다. 그런 그녀를 따라간 클레어는 얼굴에 깃든 기쁨을 보게 된다. 멜랑콜리아는 오래된 격언처럼 저스틴을 일깨운다 ; 저스틴은 그것을 재발견했다 여기며, 클레어는 반대로 그녀의 무력함을 인정하지 않으며 저항한다.

우울증 : 앎과 뒤섞인 진실
 멜랑콜리아 행성이 나타나면, 세계가 멸망하는 장면이 스크린을 메운다. 여기에서 역시, 뒤러의 Melancolia 천체가 생각난다. 무지개로 둘러싸여 있는 이 판화에서 마찬가지로 빛이 충만하다. 저스틴도, 뒤러의 천사가 땅의 시선이 아니라 천공의 시선으로 묘사하려 했듯이, 현실의 시점을 넘어선다 ; 주로 대재앙 (당시에는 혹사병)의 의미이거나 미래에 닥칠 재난으로 해석된다. 이런 비교는 또한, 우울증 환자의 지적능력은 나타내기도 한다. 궁지에 몰려 자살하는 클레어의 남편, 존이 내세운 천문학적 가설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천사의 발밑에 버려지거나 측정도구들이 필요없어지는 것처럼, 우울증 환자는 과학적 지식으로 절대자의 존재를 알기란 힘들고 절망에 빠지고 말거란 것을 안다.《 스스로에 대한 불만[우울증]은 이유가 있어보인다. 그리고 다른 인물이 우울증을 겪고 있지 않는다는 분명한 사실 이외에는 알 수가 없다》라고 프로이트는 《우울증과 죽음》에서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 《우울증이란 사람에 따라, 자신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이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 예를 들어 질병에 걸려야만 느끼게 되는 진실같은 것을 아는 것이다.(형이상학 Métapsychologie, 1915, 장 라플랑슈 &퐁탈리 Jean Laplanche & J.-B.Pontalis,  갈리마르 출판사,1990 )》
 어떻게 우울증 환자의 독특한 지적 능력, 질병인 동시에
《천재성》이기도 한 이 능력-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분명 이를 가치있다고 여기는 게 분명한-을 평가할 것인가? 감독이 저어한 부분(Nils Thorsen과의 인터뷰), 조금 《꾸며진 듯한》형태로 감춰져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물론 영화의 미학적 측면에서 사용한 방법으로 우울증을 바라보는 대중의 흔한 시선을- 모두 같아서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할 수도 있는 시선-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미적 영상 너머에 있는 다른 속뜻, 우울증이 전복시키기를 바라며 파괴해버리고 만다는 것을 을 관객이 모르도록 하는 것인가? 이 영화의 성공적인 면은 다른 모든 작품처럼 관객에게 무한대로려있다기 보다 상영관 내부에 잔상을 남긴다는 점이다. 계속해서 사고의 지점을 바꾸며, 총괄적으로 말할 수 없는 우울증환자와는 반대로, 진실을 받아들이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념은 이 고유의 주제가 다루어진 방식대로 아주 가깝게 남는다. 두가지 의미에서, 관객이 우울증환자와 같이 영화 초반부부터 안다는 것. 그리고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이 두 부분을 완벽히 지휘하며, 우울증 환자의 아름다운 첫인상 뒤에 숨어있는 폐쇄적인 부조화를 보도록 한다는이다. ■ 


멜랑콜리아 MELANCHOLIA
프랑스, 덴마크, 스웨덴, 독일, 2011
연출, 각본 : 라스 폰 트리에 Lars von Trier
촬영 : Manuel Arlberto Claro
Molly M.Stensgaard
Kierten Dunst, Charlotte Gainsbourg, Kiefier Sutherland, John Hurt,
Charlotte Rampling, Alexander Skarsgard, Stellan Skarsgard
Zentropa, Slot Machine
Les Films du Losange
2h12
2011.10.10



출처  :  CAHIERS DU CINéMA
기사  :  Stéphane delor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