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라는 근원성, 급부상하는 현대성 ⒜

뿌리라는 근원성, 급부상하는 현대성 ⒜

 

그의 최신작인 Radicant , pour une esthétique de la globalisation, 에서 니콜라 부리오 Nicolas Bourriaud 는 현대성에 관하여 가장 급진적이며 최근의 도식화된 분석들을 피하며, 후기현대성으로 돌아온다. 이번 담화를 통해, 그는 건축과 도시환경에 관한 수많은 질문등을 통해 이를 정의내리고자 한다.

 

DA : 저서에 붙여진《RADICANT》이란 제목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Nicolas Bourriaud : 그건 우리가 살고 있으며, 가장 자주 도마에 오르는《포스트모던》을 재평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시할 수 있는 첫번째 가설은 이 것이 모더니티와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상의 타당성을 나타내기 위해, 나는《탈세계화》를 제기하겠습니다. 20세기의 모더니티의 개념으로 다시 돌아가야겠군요. 우리 시대와 떨어져있지만 늘 존재하는 개념이죠. 그 중에 그 근본성은 항상 비평의 대상이 됩니다. 근본성은 《근원으로부터의 출현》을 상징합니다. 나는 이미 이 급진성을 20여년 동안 사용해왔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현재의 이론이나 예술적 행보에 관한 지침으로 자주 생각하곤 하죠.

 문자그대로, 근본성은 미래나 보다 진보적인 시대로 우리를 밀어붙입니다. 현대 예술의 장과 마주치면서, 이 단어는 보다 풍부한 의미를 지닌다. 수많은 행보들을 되짚어보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오해는 종종 질 들뢰즈 Gilles Deleuze 와 펠릭스 가타리 Félix Guattari 의 《 리좀 rhizome》개념과 혼동을 일으킬 수 있죠. 

식물학에서 리좀은 각각의 부분이 모든 부분과 연계되는 구조를 가리킵니다. 리좀 rhizome 은 조직의 은유로 사용되었는데, 인터넷의 성공적인 사례는 여기에 힘을 부여하였습니다. 근본성은, 담쟁이 넝쿨처럼,나무의 도식을 말합니다. 이러한 선의 개념은 중요합니다 : 그리고 근원에 관한 문제를 생각하게 되면서 목표의식을 제거합니다. 《어디로 갑니까?》는 현대의 화두이죠. 후기현대주의가 체계적으로 근원에 대해 묻는데 반해, 동시에 영구적으로 이항의 문제에 대해 생각을 개진시킵니다. 식민지와 점령자, 북부와 남부, 정복자와 피정복자 등의 이항적 개념은 이제 퇴색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복합문화주의는 그의 이름처럼 복합적이지 않죠 : 이민자들이 원래의 삶의 방식에서 도전을 받게 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근본성과 탈모던화의 개념으로, 나는 상대주의를 이용하여 조화로운 상황을 깨뜨리는 것이 좋습니다. 브뤼노 라투르 Bruno Latour 《비대칭》의 개념에 이어서 말이죠.

 

급부상하는 현대성 ⒝에 이어... 

 

 

니콜라 부리오 Nicolas Bourriaud 는 전시기획자이면서, 작가, 예술비평가이다. 그는 팔레 드 도쿄 Palais de Tokyo 에서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책임자로 있었으며, 현재 런던 테이트미술관 보존책임자이다.

 

 

출처   :   D'ARCHITECTURE Nº200. 2011.5

기사   :   Nicolas Bourriaud

번역   :   plongeuse (ZAMSOOB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