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and Humour (7)_ 예술가의 속임수 ⓑ; 존 암리더 John Armleder. Iris Clert

존 암리더 John Armleder : 게으름의 찬가


붉은 벨벳과 벽난로 : 현대예술에서는 이런 키치스타일에 쉽게 빠져들지 않는다. 하지만 존 암리더
[각주:1]는 관습을 벗어나는 유형이다. 그는 2008년 스위스 문화센터에서 코스트 Costes 호텔이나 푸케 Fouquet's 의 여성적이며 우아한 장식을 한 자크 가르시아 Jacques Garcia 에 맞추어 재량을 선보인다. 공동작업인가? 전혀 아니다! 이 스위스 출신 조형예술가는 후기-현대식 로코코 장식으로 장소를 연출한다. 마치 마래 지구의 독특한 호텔처럼 꾸며놓는다. 침대의 호피장식, 중국 오리엔탈 의자, 그리고 천장에 우상을 바라보듯 매달린 원중이조각 : 악취미와 우월한 취향을 모두 조롱하는 것이다. 암리더는 저자의 성스러운 이미지를 지운다. 무슨 의도인가? 그가 저항하는 바는 이렇다 : 《모든 행위가 도발하려고 한 것이다. 악마이자 악마의 변호사이다.》《움직일 것, 그것은 도발하고자 함이다 ; 살아갈 것, 그것도 도발하고자 하는 것이다 : 어떤 준거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닌 것이다. 여기에 좀더 친절한 구석이 있다. 진정한 도발자가 되는 것은,본질적으로 장난기를 가지는 것이다 : 난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만, 그렇게되려면 아주 힘들죠! 난 단순히 아주 게으를 뿐입니다.》다른 논쟁의 여지는 없는가?《난 여기가 좋아요, 우리 가문이 5대째 호텔사업을 했고, 그게 내 배경 이니까요. 아마 나는 호텔리어가 되기에 부족한 예술가로서 유일한 사람일 겁니다.》이 식도락가는 이렇게 덧붙인다 :《구조적인 이유로, 난 밀푀이유를 좋아하죠. 먹는다는 건, 아주 복집힌 일이지만, 그 생각으로 나는 들뜨곤 하죠.》전시를 통해, 그는 고급취향의 현대 위장에서 여전히 꾸르륵거리며 배탈을 일으키는 중이다. E.L


이브 클라인 Yves Klein : 파리를 완전한 공허의 장으로 초대하다

NRF 의 수장이었던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 는 이브 클라인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 《공허함, 그것은 힘으로 가득 차 있다.》 어느 황금서보다 부추기는 이 메시지는 이런 것이다《공허? 그것은 실패다...(원어 ; Le vide? C'est le Bide...르 비드?세 르 비드...)》정말 실패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1958년 4월 28일, 보자르 街에서 이리스 클레르 Iris Clert[각주:2] 의 엉뚱한 갤러리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무절제한 시위로 간주되어 경찰과 소방관을 출동케 한 것이다. 하지만 이 향연은 전혀 공격적이지 않았다 : 이브 클라인은 단지 모든 파리시민들을 평방 20미터의 공간에 백색도료를 칠하도록 초대한 것이다. 회화나 조각이 아닌, 단지 유리창너머로 백색이 보일 뿐이었다. 건물 안의 물건들, 청색 타피세리 등은 갤러리 뒤로 옮겨졌다. 그 뒤에 숨겨진 《작품》을 위해서였다. 여기에서 이브 클라인은 관객들에게 비물질적 경험을 겪도록 하였다. 그들은 《백색은 청색이다, 당신 알고 있듯이- 그럼 청색은? 청색은 오렌지색이지. 내가 보기엔.》
피가로 FIgaro 紙 에서는 혹평을 실었다 : 《너무 심하다. 우리를 모욕하자는 심산인가?》아무 것도 보지 못한 관객들은, 알콜의 힘을 빌려야 했다...
 전시공간에서, 칵테일이 이어졌다.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진, 퀴라소(오렌지껍질로 만든 술), 메틸렌 블루(염료, 소독제)였다. 관객들을 마지막으로 놀라게 한 것은 : 음료 덕분에, 그들의 소변이 푸른 빛이었던 것이다! 클라인 블루 소변? 우연히도 1958년 schtrumpfs[각주:3]  건물이 완공되었다. 
 

출처 : Beaux Arts Magazine N.326 , 2011.8
기사 : E.L
번역 : PLONGEUSE ( zamsoobu
  1. John Armleder (born in Geneva in 1948) as the son of a hotelier (owners of Le Richemond), is a Swiss performance artist, painter, sculptor, critic, and curator. His work is based on his involvement with Fluxus in the 1960s and 1970s, when he created performance art pieces, installations and collective art activities that were strongly influenced by John Cage. However, Armleder's position throughout his career has been to avoid associating his artistic practice with any type of manifesto [본문으로]
  2. Iris Clert was the owner of the Galerie Iris Clert from 1955 to 1971. During its tenure, her gallery became an avant-garde hotspot in the international art scene, particularly to Yves Klein, Jean Tinguely and Arman. Originally of Greek nationality, Clert became an overnight socialite with the success of her gallery. Clert was active in the French Resistance during the Second World War. [[image:Iris Clert Portrait Rauschenberg.jpg|thumb|300px| Portrait of Iris Clert by Shunk-Kender © Roy Lichtenstein Foundation In 1961, Robert Rauschenberg, who would become one of the forerunners of the Neo-Dada movement, was invited to participate in an exhibition at the Galerie, in which the artists were to create and display a portrait of Iris Clert. Rauschenberg proceeded to send a telegram to the Galerie, containing the words "This is a portrait of Iris Clert if I say so/ Robert Rauschenberg". This was a significant move for Rauschenberg and the artistic community, signifying a step away from the Dadaist work of Marcel Duchamp and Jasper Johns - which tended to focus on the role of the observer in applying meaning to a work of art - and toward a more active role of the creator in defining art's meaning. [본문으로]
  3. Schtrumpfs 건물Les Grottes neighbourhood에 있는 rue Louis-Favre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Schtrumpfs건물은 불어로 돈 세탁을 하는 사람이란 뜻에서 파생하였습니다. 제네바에서 가장 호기심을 돋구는 장소 중 한 곳인 이 곳은 실제로는 아파트 건물이며, 독창적인 건축가 세 사람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아무렇게나 뒤섞인 듯한 모양으로 만든 건물입니다. 아르 누보 양식보다 더 정교하게 꾸며질 것이라고는 했지만, 건물의 디자인과 색채는 가우디의 미술에서 나왔습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