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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9.25 세르주 다네 Serge Daney

세르주 다네 Serge Daney

세르주 다네 Serge Daney

구경꾼

 

La Maison cinéma et le monde. Tome 3, Les années Libé (la suite).P.O.L

 

■ 1992년 6월 11일 세르쥬 다네가 에이즈로 사망한 지 벌써 20여년이 지났다. 《진정한 긍정의 행위》, Trafic 매거진의 창간호에 실린 그의 인생을 다룬 기사의 제목이다.  다네가 끊임없이 쇄신하고자 했던 이중의 기념일은 바로 이것이다 : 복합적 말의 생동감있는 탐구, 그리고 그가 뱉은 말들에 대한 부정이 그것이다.

 이번 년도,  Trafic 의 특집호에서 다네가 집필한 20여편의 평론과 20여명의 협력자들에 대해 다룬 이래로, 파리의 퐁피두센터에서 그를 추모하는 전시가 열렸다. 더불어, 세르주 다네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Cinémathèque français 를 점령한 데에 이어, P.O.L 출판사에서는 파트리스 롤레 Patrice Rollet 가 방향을 제시한 대로(매우 호의적으로), 시네마 스튜디오와 세계 la Maison cinéma et le monde 의 제3권이 발간되었다. 총 900페이지의 매우 두툼한 이 저서는 과거(1986-1991)부터 최근(1981-1985)에까지 세르주 다네의 원고를 다루고 있다. 까이에 뒤 시네마 Cahiers du cinéma 를 떠나 1981년 리베라씨옹 Libération 지紙의 영화섹션에 실렸던 글이다. 그래서 이러한《리베(자유) 연보》시기에는 그 이전과 유사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리베라씨옹 Libération 에 기고하기 시작한 첫 해에, 다네는 Cahiers 와의 무거운 관계(계보 뿐 아니라 정치와의 연관되는 면까지, 다네는 마오이즘의 급진적 좌파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에서 자유로워졌다. 《나》에서《우리》로 옮겨가면서, 《90%의 동성애》적 태도로, 일상적 글쓰기의 즐거움을 발견하면서, 보다 위대한 독자를 자처한 것이다.

 1968년, 다네의 《리베라씨옹 》은 그의 독특한 스타일을 통해 완성되었다. 하지만, 일종의 의식 (첫해에 열린 회담에서만 드러났던 )이 억압된 것 같이, 다네는 영화가 예술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이에 따라, 그는 이미지의 체계를 새로이 하면서 부분 혹은 전체적으로 영화의 개념, 또 기존의 포스트모던에 대한 영화 이데올로기를 전복시키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자주 《영화가 죽었다》[극장을 찾는 관객수는 줄어들지 않는데 반해]고 말한다. 다네는 여기에 이렇게 말한다 : 영화가 죽었다는 것이 필름이 소멸한 말은 아니다. 그보다, 새로운 관객층과, 효과적인 연출보다 새로운 영화[영화화된 영화가 대세인 가운데]를 갈망하는《촉진자》가 발생한다는 것에 주목해야한다.

 

 

 

허겁지겁 서둘러

 

다네의 글을 읽기 위해서 두 가지 방법과 두 가지 방향이 있다 :  시간을 뛰어넘거나 시간을 두고 천천히 가는 것이다. 그의 스타일은 이러한 이중의 읽기를 필요로한다. 사람들은 우연히 교회당의 성경을 보듯이 무작정 파고들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기이하면서 영감을 주는 제목(《터번 혹은 반-터번》,《아프리카의 이중인화》)에 말장난적 취미를 덧붙여 문맥을 따라 어떠한 수많은 이념에 천착할 수 있을 것이다. 중대한 매개체에 의해 방향이 달라지면서 영화를 인지하는 방법이 새롭게 달라지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영리하게 추락하기 전, 재치를 발휘하면서 보다 혼동에 빠지기 위해 이 느린 속도를 감지하고 이해하는 것이었다. 《허겁지겁 서둘러》이리저리 교묘하게 난국을 피해가면서 양방으로 통하던 주제들을 다루었다. 만화경을 보듯이 리베라씨옹에 실린 다네의 이러한 복합적인 주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다시 도약하기 위해》영화분야를 떠났던 사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여기에서 정치, 테니스, 텔레비전, 책들에 대해 말하고, 라캉식의 매거진 âne과 그의 학술적 연구에 대해서도 여러편의 특집글을 기고하였다. 또, 일본 여행 이후에, 망가에 대한 글고 artpress 에 기고하였다 ; 연재글은 마치 카드엽서처럼 그의 지인들에게 보내졌다. 세르주 다네는 오래된 학식을 바탕으로 텔레비전 네트워크 매거진과 영화에 대한 새로운 대담 방식을 창안하였다. 종종 쓰기-다네와 테니스의 기술(그가 저술한) 사이에 존재하는 평행선은 다네를 마치 마술사처럼 상상하게 한다. 그를 향한 포탄을 다른 장소로 동시에 되돌려보내기 때문이다.

 모든 감정을 쌓아두는 것처럼 이러한 읽기의 방식은 마치 경기 중의 결정적 한 방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이러한 행동-계획은 《그 자신보다 위대한》무언가에 맞서기 위해 그가 선택한 개방적 태도, 통행과 접근하는 말들, 그리고 오브제와의 대화를 창조하는 비평적 행위라 볼 수 있다. 마치 질 들뢰즈 Gilles Deleuze 가 말한 것 같이 말이다. 《빠른》읽기와는 반대되는, 하지만 보다 정제된 방식이면서, 보다 《전통적인 프랑스》같은 이러한 방식은 모호한 동시에 보다 쓰기에 가깝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네를 읽는 것은 연속적이지 않을 수 있다. 시네마 메종과 세계 La Maison cinéma et le monde 의 텍스트들은 다른 경로로 소개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다네가 회상록 작가라는 사실을 잊고, 도덕주의적인 측면에서 그에게 접근하려 한다. 셍 시몽 Saint-Simon 공작과 함께 초벌작업을 한 유명한 작품 기억 Mémoires[각주:1] 가 있다. 공작은 그를 가리켜 영원한 구경꾼 voyeux 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은 그가 보는 것 과 동시에 곰곰히 생각한다 는 걸 가리킨다. 다네로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결정하고 구성하는 영화의 이치가 바로 《왕좌에 오르는》것이었다. 다양한 영화작가들, 배우들, 주요 인사들, 영화작품 들이 뒤섞인 가운데 영화-국가라는 주제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것에 대해 저술한다는 것은, 실현과 권력 간에 존재하는 요소들을 파고들면서 정치적 분석에까지 이르는 것이었다 : 바로 상호관계, 응답, 은밀한 모의 등. 구경꾼 voyeux 이 된다는 것은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면서 역사를 재구성하는 시각을 갖춰가는 것이다. 또한, 이런 과정을 쓰기를 통해 나타내면서, 쓰여진 이미지의 힘을 주장하는 것이다. 특히 생 시몽과 대조적으로 묘사적 취향과 쓰기의 리듬을 넘어서, 1986-1992년 다네는 역사학적 면모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런 방법은 그의 운명적인 계보에 이르는 새로운 그의 방식(《씨네필 cinéfils 》이란 간판에 부합하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Cahiers 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고 믿는 만큼, 더 이상 이해 불가능한 시대에서 그 가르침의 기초를 상기시키기 위해 다네는 역사를 끌어들인 것이다.

 

 

비평과 치유

 

다네의 글은 그 안에 조각난 파편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에, 긴 호흡으로 읽어내려갈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그의 근심이나 혼란에 감사하자. 그는 《건강함》에 대해 특히 걱정(마치 사람들이 군주의 건강을 염려하듯이)하였다 : 바로 영화의 불합리한 건강함, 텔레비전의《거짓된 건강함》, 이념이나 시나리오의 위기, 걸작의 소멸, 모호한 정체성, 극우파의 등장, URSS의 발발.. 이러한 배경들이 그의 글 문맥 사이에 종종 드러난다. 들뢰즈가 바라보듯, 비평은 일종의 치유이자 세상을 진단하는 하나의 도구이다. 다네가 반석으로 여겼던 영화의 이러한 효용성은 세상을 사실적으로 증언하게 한다. 《영화가 더 이상 우리의 욕구를 반영하지 않는 순간에, 영화가 우리에게 스스로 잃어버리고자 했던 것들을 보여준다는 것을 높이 사야 할 것이다(3)[각주:2] 》: 영화는 유일한 움직이는 이미지의 원천이지만, 광고와 텔레비전이 성장함에 따라 그 영광의 자리를 넘겨주고 있다. 다네는 천연-이미지의 유형을 정의하기 위해, 새로운 단어인 visuel 이란 단어를 창안하였다. 《"광고를 위한 광고"라는 새로운 스캔들은 이전의 "예술을 위한 예술"이란 스캔들보다 낫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종의 우리 사회의 진실("스캔들에 할당된")을 밝히기 위해 그 다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대중과 사회적 소통을 하기 위해 여전히 엘리트주의적인 현대예술을 바꿀 수 있을까?(4)[각주:3]

 

 

 

물의 역사

 

영화라는 단단한 지평면에 대항하여, 지형학적(유년시절부터 꾸준히 비평적으로 접근하였던 지도와 영토의 기술(5)[각주:4]) 표면에 대항하여《비디오의 양수를 세례》받는다 : 다네는 1980년대 말 현대 영상에 대한 접근에서 종종 물을 비유적으로 사용하곤 하였ㄷ. 상징적인 두 편의 영화를 인용하면서 : 바로 그랑블루 le Grand Bleu(Luc Besson, 1988)와 Palombella Rossa(Nanni Moretti, 1989)이다. 이 영화는 모두 경이로운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끈적끈적한 유동성의, 투명한 액체는 빛을 내며 흐른다. 영원하게 움직이는 perpetuum mobile  이 물은 대표적으로 역사적 훈련을 옛것으로 만들어버린다 : 이러한 영화류는 영화의 반-매체일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 초, 다네는 영화외적으로 끌어당길 요소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에 심한 회의를 느꼈다 ; 아마 시간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매거진 트래픽Trafic 의 재단에서는 거대한 파도 한가운데 은밀히 들어온 섬처럼, 엘리트주의, 현대주의, 그리고 영화의 개념을 다시 추적하기 시적하였다. 하지만 1986-1991년 동안, 이러한  벼랑 끝에 택했던 진로는 소기의 성과없이 흐지부지해져버렸고, 다네는 여기에서 격동적으로 열정적으로 역사소설에 진심으로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출처        :    78-79page,ARTPRESS.#391. 201207-08

기사        :    Perre Eugène

번역        :    PLONGEUSE (zamsoobu)

  1. 2)트래픽 Traffic .제37호에 실린 세르주 다네의 텍스트에서, 장 루이 슈페르 Jean Louis Schefer 가 2001 봄 그에 대해 서술한 대목이다. [본문으로]
  2. 3)<<눈을 기다리며>>,리베라씨옹.1987.12.24. le Salaire du Zappeur, P.O.L .1993.재발간 [본문으로]
  3. 4)<<아기는 목욕물을 찾는다,2>>, 리베라씨옹. 1991.10.1 [본문으로]
  4. 5)경이로운 텍스트에서 사장 아름다운 예시를 찾을 수 있다. <<영화-도시 와 근교-텔레>>{영화-도시 카달로그, 1987}에서 다네는 도시의 영화와 아프리카 마을 사이, 그리고 대도시(근교가 커지면서 도시중심지가 사라진)의 영화를 실체적, 이념적으로 연결하여하였다. [본문으로]